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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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법에서 어떤 사물을 묘사하는 방법에는 직유, 은유, 대유, 활유, 상징, 반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의 저자인 철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김용규씨는 유난히 은유(메타포)가 가진 힘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시인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해석인 은유 또는 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열어 밝히는 사람이고, 시를 읽는 독자는 그 시의 텍스트를 ‘은유적으로 봄’으로써 시인이 열어 밝힌 세계를 다시 이해하고 해석하여 또 하나 자기의 세계를 열어 밝히는 사람” -44p-

또한 저자는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에서 외로움. 연애와 사랑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시들을 소개하고, 한편에서는 후기 자본주의나 프로메테우스 세계관 같은 국가적인 문제를 다루는 시들까지 소개한다. 저자가 개업한 <철학카페>에는 시인뿐 아니라, 시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면 저자가 내걸어 놓은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외국의 소설가, 철학자, 사회학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비좁다.

많은 이들이 붐비는 곳에서 무슨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상당히 곤혹스러웠는데, 그중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개념이 겹치는 것 같은 가르침 몇 가지를 품에 안고 카페 문을 이만 나설까 한다.


나와 너, 시와 시인, 존재와 인간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상호 주관적 매듭.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그들.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의지하면서 어울리고, 남들이 인정하는 보통의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인=직접성의 인간 = 페르소나)에게 필요한 실존적인 삶(주체적인 삶) 즉, 기획투사나 앙가주망.


몰아세움과 닦달. 이것을 겪는 모든 인간, 사회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에게 꼭 필요한 가치투사 즉, 절대 선의 가치 추구


‘시’라는 장르는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와 같은 SNS (Social Network Service)처럼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책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 까지 접할 수 있는 문학으로서의 전파력도 클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실제로 시를 읽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없다.


그 이유는 ‘시’라는 장르의 권위적인 성격 자체도 문제겠지만, 그것 보다는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시’라는 것을 대할 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정답을 찾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시’를 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제 정답 찾기에 골몰하는 것 따위는 그만두자. 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충분히 시인과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시’라는 것을 함께 읽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SNS는 ‘시’를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유리하게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두려움만 버리면 된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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