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의 그림자>는 이여영의‘아지트’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알게 된 책입니다. 에디션더블유의 이숙향 대표의 추천도서 중 한권이었습니다. 그녀는 프로그램 말미에 다른 책은 안 읽어도 좋으니 꼭 <바람의 그림자>만은 읽어보라고 권해주셨지요.

사실 <바람의 그림자>는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입니다. 왜냐하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라는 저자에 대하여 전혀 아는바가 없었고, 라틴계작가 중에서는 파울로 코엘료 정도밖에 모를 만큼 (아참 주제 사마라구도 있지요.) 어쨌든 이 저자는 저에게 생소한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게 된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 도통 무슨 장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표현해보자면 로맨스 반 큰술, 추리 한 큰술 반, 범죄/스릴러 한 큰술, 역사 반 큰술. 정도를 절묘하게 버무려냈다고 할까요?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억지설정도 조금 있고, 결말 부분에서 "그럼 그렇지"라고 할 만한 충격을 전해주는 막장(?)스러움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 자체의 몰입도는 매우 뛰어났습니다.  특히,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니엘, 훌리안 카락스. 그리고 주인공들과 대립관계라고 할 수 있는 악의 화신 푸메로 경위. 그들 사이에 얽힌 인연과 악연의 고리는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책이 영혼을 변화시킨다.

<바람의 그림자>는 열두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갔었던“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곳에서 실제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름인 <바람의 그림자>를 선택하면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묘지를 찾아가면서 다니엘의 아버지가 다니엘에게 해준 말입니다.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지.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깨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 진단다.

마치 “잊혀진 책들의 묘지”가 책을 안 읽는 사람들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서점이나 도서관인 것 같고, 다니엘의 아버지가 이 책을 추천해주신 이숙향 대표인 것 같고, 다니엘책을 읽지 않는 우리들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면. 다니엘은 <바람의 그림자>에 매료되어 버립니다. 그는 그렇게 훌리안 카락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참지 못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다니엘은 훌리안 카락스의 인생 속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게 됩니다.

처음에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대립적이었습니다. 한 쪽은 책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책을 불태워 버리려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둘 사이에 어긋나있던 발자국은 어느새 똑같은 보폭을 유지하면서 똑같은 장소로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둘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의 닮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예를 들자면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친구의 가족을 사랑하게 된 두 주인공. 책을 보게 되신다면 더욱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카락스의 흔적을 찾기를 통해서 다니엘은 훌리안 카락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카락스는 그런 다니엘을 지켜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다니엘의 영혼과 훌리안 카락스의 영혼의 끈끈한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아지트'에서 이숙향 대표가 이 책에서 추천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바람의 그림자>를 통해 다니엘이 변화한 것처럼, “당신을 다니엘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당신만의 책”을 직접 찾아 나서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한권쯤 정도는 가슴 속에 기억해두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실 것 입니다. 이상하게도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주인공과 내가 비슷한 것 같고, 어떤 저자의 생각들이 나의 생각과 비슷한……. 그런 기분 말이죠.  

나를 만든 몇 권의 책 

저 같은 경우엔 어렸을 적엔 무협소설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 중에서 김용의 <천룡팔부>라는 책에 나오는 단예라는 인물은 몇 년 전부터 저를 표현하는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힘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 그의 모습. 그토록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단예는 어쩐지 저와 닮아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책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소유라는 글자를 소리 내어 발음했을 때 들려오는 어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게임 캐릭터에 이 <무소유>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바라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무소유라는 글자를 한자씩 되뇌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돈 욕심과 물질적인 욕심보다는  삶의 행복을 우선시 하고, 그것을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숙향대표는 왜 우리에게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던 것일까요? 제가 생각한대로 책이 사람을. 아니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아니면 일정한 한 장르를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앞으로의 책의 방향을 이끌기 때문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