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나라에서
히샴 마타르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 <남자들의 나라에서>가 의미하는 ‘남자들의 나라’는 리비아라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리비아. 지나가다 한 번 정도는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나라인지라 최소한 리비아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찾아본 결과 리비아는 지도상으로 바라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이 리비아라는 국가는 공식적으로 리비아 인민사회주의 아랍공화국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남자들의 나라에서>의 실체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아랍권의 사회주의국가. 이것이 바로 현재 리비아의 모습임과 동시에 소설 속의 시대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1979년 여름의 카다피 독재정권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런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다가 낭패를 보고야 말았다. 이 소설의 코드를 불륜에 맞춰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공 술레이만의 아버지가 술레이만과 그의 어머니에게 해외출장을 간다며 거짓말을 하는 장면. 술레이만의 어머니가 남편이 없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 도무지 성별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 나세르와 거리를 활보하면서 정체모를 한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 그 장면을 술레이만에게 들키는 장면들이 나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리비아의 국가정보를 알고 나서 그리고 책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부터- 이 책은 전혀 불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술레이만의 아버지는 불륜을 저지르기 위해서 남들의 눈을 피해 다녔던 것이 아니라 카다피 독재정권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출장을 떠난다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더욱이 남편이 정치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사실을 술레이만의 어머니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잊기 위해서 그녀는 빵집에서 몰래 약을 구입해서 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약이 아니라 술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인 9살의 어린 술레이만 밖에 없었다.

결국 저자가 이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이 모든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주인공의 눈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애가 뭐를 알겠는가? 독재와 민주주의를 알겠는가? 병 속에 든 구린내를 풍기는 것이 약인지 술인지 알겠는가?

문득, 심윤경님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동구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탱크라는 것을 실제로 구경하고 싶어서 밤늦게 몰래 길을 나섰다가 붙잡혀 올라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탱크가 민주주의를 짓밟는 도구라는 것을 어린 동구는 알 길이 없었던 것처럼 <남자들의 나라에서>의 술레이만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술레이만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뭔지. 약과 술이 뭔지. 깨달아가면서 서서히 성장해나간다. 물론, 9살이라는 나이가 가지고 있는 미성숙한 자아의 허술한 면도 책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지나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해가 되는 인물인 사리예프에게 달려가는 모습이나 전화에 대고 절대 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될 사실들을 폭로하는 모습과 같은 장면들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닥친 여러 상황들은 그를 성장시킨다. 부정적인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가슴아프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었는데.....

희망이라는 것은 카우보이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들. 즉, 위험에 처한 우스타드 라시드를 맞이하는 것은 광기어린 시민들의 목소리 뿐.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TV속의 화면을 보고 있는 어린 술레이만으로부터 전달된다. 이처럼 독재에 맞서서 투쟁하던 이의 허무한 죽음과 이로 인해서 모진 고초를 겪게 된 아버지의 상한 몰골은 술레이만을 매개로 하여 우리들에게 불가항력적인 권력의 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편, <남자들의 나라>에서의 여자들의 대우는 너무나도 불평등해보였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랍권의 여성들이 겪는 비인권의 모습 또한 리비아에도 마찬가지로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 불공평함의 격한 목소리는 술래이만의 어머니의 입을 통하여 술레이만에게 전달되고 또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그녀가 14살 되던 해에 있었던 별거 아닌 사건은 진보적인 지식인의 탈을 쓴 그녀의 오빠로 하여금 고발케 만들고, 그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한 달간 감금당하게 되는 동시에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된다. 혹시나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가문의 흠집을 낸 죄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다행스럽게 그녀는 정조를 유지하고 있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미처 몰랐는데,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약까지 먹었다는 사실도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아들 술레이만까지 원치 않은 삶에서 태어난 원치 않았던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의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슬픔이라는 방향과 가깝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내는 타오르는 풍경들과 끓어오르는 지표면은 술레이만으로 하여금 천국을 통과하기 위한 다리를 그리도록 하고, ‘천사의 열매’ 오디를 왕창 집어먹고 설사를 하는 엉뚱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남자들의 나라에서>가 내게 준 것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공산주의가 가지고 있는 독재정치의 폐해를 부각하려고 쓴 것인지 아니면 아랍권의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서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둘 다 아닌 것 같다.

술레이만이 기억할 수 있는 과거. 그 추억 속의 리비아의 모습들. 지금 살고있는 카이로에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아서 그리운. 채우고 싶어도 다시는 갈 수 없는 리비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좋은 추억보다는 나쁜 추억이 더 많았지만, 자신을 있게 한 그 곳을 갈망하는 눈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독재는 타도되어야 한다.” ,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라.” 는 구호들은 다른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투쟁이 아니라 단지 술레이만이 겪은 과거를 고스란히 내 머리 속에서 그려보고 같이 신비로움과 더불어 그 속에 자리한 슬픔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리비아라는 곳을 좀 더 친숙한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일 것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이리저리 교차하고 있다. 때로는 분노하고 슬퍼하며 쓴웃음 지으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런 과거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술레이만의 선 굵은 감정들.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될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느낌이 솟구쳐 올라온다. 엄청난 힘을 가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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