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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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이 책은 52년의 인생 중에 무려 35년이라는 시간을 독일에서 보낸 여인의 이야기다. 이 책은 독일에서 건축공부를 마치고, 현지인과 결혼하고, 둘 사이에 아들, 딸 하나씩 낳고 기르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돈보다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그녀. 그래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히 거절해버린다는 그녀. 분명히 평범한 사람들이 들으면 “우와 대단한 분이다.”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인생관이 뚜렷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등장하는 역사문제나 외국인문제에 관한 그의 경험과 통찰력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깨달음과 생각할 문제들을 제공해준다. 

고등어를 먹지 않는 이유?

대관절 그녀가 말한다. “고등어는 먹지 않겠다.”고……. 참으로 이상하다. ‘그 맛좋은 고등어를 대체 왜 안 먹겠다는 걸까? 고등어에 무슨 문제가 있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조금만 책장을 넘겨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을 곰곰이 되새김질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저자가 살고 있는 독일은 대부분의 지역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바다생선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에너지가 낭비된다. 그래서 그들은 고등어를 금하노라고 외친다. 즉, 예전에 이 땅에서 살던 조상들이 접하지 못한 새로운 먹을거리를 앉아서 편하게 먹어치우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반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족은 제 철과 제 지역에서 나는 음식물만 먹기로 규칙을 정한다. 국내산이 아닌 각종 수입한 먹을거리들. 터무니없이 싼 가격표를 가슴팍에 붙이고 있는 이면에는 정당한 급여를 제공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음을 알기에 고객들이 매번 그런 상품만을 찾게 된다면 제3국가의 노동력 착취는 갈수록 심화 될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자유방임

자녀교육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하나로서 자기 아이를 ‘방목’시킨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에서 말하는 자유방임식 교육을 보고 있으면, ‘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방임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 보다 시간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실이 자녀교육에서도 뿌리내렸다. 이 집에는 TV가 없다.이 가족은 하루 세끼 식사시간만 찾아오면 한사람도 빠짐없이 식탁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야기꽃은 아이들의 나이가 들면서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토론하는 장으로 발전되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뒷바라지를 한다. 즉, 요즘 뜨고 있는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것을 이 가정에서는 10년 정도 앞서서 실행한 것이다. 전문기관에 위탁해서 키운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똘똘 뭉쳐서 이뤄낸 점을 보고 있으면, 사교육이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딱 하나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들에게는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들지 않도록 감시한 것이고, 딸에게는 엄마 아빠가 직접 성교육을 하면서, 건전한 사교생활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자유방임의 결과는? 현재까지 매우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의 역사 청산작업. 그리고 한ㆍ일 관계

저자는 3장의 주제를 ‘공존’이라고 설정한 뒤,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 책은 보통 가정의 아내 그리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넘어선다. 3장부터는 인류의 공존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지성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프리랜서로 건축 디자인을 조금 하면서 살고 있다고 겸손해하지만 3장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충실하게 삶을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장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녀의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독일의 과거 청산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자신들의 역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나중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나 역시 동의하는 점이다. 사람들의 피해의식과 감정에 호소하여 탄생한 극단의 민족주의 ‘나치즘’을 원인에서 결과까지 솔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아!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이 나치즘의 초기와 비슷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가까운 곳에 과거 청산을 거부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은 우리를 침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러일전쟁이나 청일전쟁과 같은 굵직한 침략전쟁을 기리면서도 우리 땅을 넘고,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식민지화 했던 역사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일합방의 기초가 된 한일의정서 이후의 식민지 역사의 해석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항거한 ‘문화 말살과 수탈의 시대’지만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인 다수의 지지를 받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본에도 분명히 시대를 정확하게 바라보려고 하고 그 속에서 반성할 점을 찾는 지식인들이 있지만 아직은 그들의 이야기가 주류로서 인정받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들을 주류로 끌어올리는 것. 올바른 과거청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의 반성이 가장 우선이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보려는 일본인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 불씨를 살릴 수 있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상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꼼꼼하고도 철저한 디딤돌을 만들어 두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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