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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군을 뜻하는 ‘80후’ 작가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한한의 <연꽃도시>. 비록 한국과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20대의 삶을 보내고 있지만, 아니 한국과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이기에 나는 그 곳에 사는 친구들을 대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뿌리칠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가 끝나게 된 1980년대의 한국. 덩샤오핑이 사회주의 이념 하에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개혁ㆍ개방 정책을 채택한 1980년대의 중국. 어찌되었건 이 두 나라는 성장을 위해서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유혹을 결국 떨쳐버리지 못하고 국가가 가야할 방향으로 설정하고 달려온다.
산업화를 통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라면 소비재의 대량 생산으로 인한 물질문명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물질들은 광고와 같은 '마케팅 도구'를 사용하여 긍정적으로 '브랜딩'하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네 꿈에 미쳐라>라는 책에서 그는 인류의 역사를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다시 이 도구가 인류를 바꾸어 놓는 사건의 반복” 이라고 정의한다. 즉, 사람이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돈이나 물질들은 되레 사람을 돈과 물질에 허우적 되게끔 조종한다. 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자본주의가 으뜸으로 추구하는 가치인 돈. 그리고 소비재들은 사람들의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버리고, 그것만을 최고로 생각하면서 추구하는 이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명품족’ 혹은 ‘된장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연꽃도시>에 등장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생활에도 이런 물질만을 추구하는 어두운 단면이 적나라하게 표현됨을 알 수 있다.
객지를 처음 방문한 주인공 ‘나’에게 전화기를 빌려주면서 그리고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나'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우면서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 당장에 치료가 급한 환자(젠수)가 병원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시장경제의 원리 운운하면서 돈부터 내놓지 않으면 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의사의 모습. 어디에선가 화재가 나거나, 차들이 구덩이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재미있게 감상할 뿐 도와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습.
중ㆍ고등학생의 교복에서 구속을 받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었던 신발과 가방조차 유행을 따라서 하나의 브랜드로 뒤덮이게 되어버리는 현실. 대학교의 4대 퀸카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BMW, 벤츠, 호화빌라로 설명되는 대학가의 풍경. 힘들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자친구에게 화장품 세트를 사다주면 더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을 달라는 연애풍속도. 새롭게 들어선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기만 하면 자신들도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시민의식. 주인공 '나'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은 이처럼 한숨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우리의 상황과 닮아있었다.
그렇다고 주인공 ‘나’와 젠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요소만 탓할 것이 아니다. 돈을 벌고자 고의로 바이러스를 만들어 학교에 퍼트리다 발각되어 학교를 잘리게 되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사회구조가 그들을 버렸음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는 한없이 무기력한 주인공 무리들), 책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의 닷컴열풍처럼 웹페이지를 개설해서 일확천금을 노려보겠다는 그들의 허황된 꿈들 역시 자본주의가 중국사회에 불러일으킨 어두운 단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쓰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적인 메시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면 갈수록 사태의 심각성이 커져감에도 불구하고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주지 않으면서 -도시의 폭발사건과 그에 대처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단면들- 시종일관 21세기 중국의 사회체제에 대한 냉소적인 비꼬기만 되풀이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저 그가 이야기하는 어두운 현실에 공감해야 했다. 더 나은 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고심은 접어두고 그저 ‘지금 우리는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패배의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콘돔’ 하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 주인공들의 삶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유일한 것 -비록 그들이 돈에 눈이 멀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도 ‘콘돔’이요. 지금의 삶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도 역시 ‘콘돔’이기 때문이리라. 그 만큼 ‘연꽃도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미래는 암흑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