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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7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기의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급격하게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은 이 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경직된 유교사상의 틀에서 탈출하여,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조일전쟁>의 책에서 도쿠가와 막부를 언급하기를 ‘공자 왈 맹자 왈’만 부르짖는 성리학을 사회적 체제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조선이 나약해진 원인이었던, 신분사회와 관료주의의 그늘에 그들도 사로잡히게 되었고,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890년대의 일본 사회에서의 하녀 기요와 시골의 중학교를 통해서 그 당시에도 쉬이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신분사회와 관료주의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가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모든 조직이 가지고 있는 병폐 중의 하나인 관료주의 조직의 어두운 면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천방지축으로 자랐지만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은 지닌 인물이다. 또한 자신의 주관이 매우 뚜렷한 인물로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이와 같은 도련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쨌든 '도련님' 의 한 성깔 덕분에 그는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적도 수 차례 있었고, 가족들에게도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미운털이 박히지만 '도련님'의 천성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하녀 기요는 사랑으로 그를 보듬어 안으면서 그의 자존심을 우뚝 세워준다.
그랬던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의 작은 중학교로 발령받으면서 관료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시작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의 이미지는 인심이 후덕하고, 서로 한 가족처럼 보듬어 살피는 정겨운 동네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것이 그 시대의 일본 시골의 풍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좁아터진 시골동네라서 그런지 '도련님'이 무슨 행동을 하기만 하면 다음 날 바로 소문이 퍼져서 학생들의 별명 목록에 추가되질 않나, 이놈의 학생들이라는 녀석들은 선생을 존경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신출내기 선생을 골려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생각과 행동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교 내부 그 자체에 있었다. 시골의 중학교에서는 기이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동안 관료주의에 물들어 기존의 틀과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있는 ‘너구리’ 교장에서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직 내의 파워를 가지고 조직을 뒤흔들어 놓는 ‘빨강 셔츠’ 교감과 그 밑에서 감언이설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늘어놓는 ‘알랑쇠’ 선생까지 어떻게 된 학교가 권력싸움에 골몰하여 저 혼자 살 생각밖에 하질 않는지……. 나도 기가 막히는데, 학교에 실제로 부임한 도련님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런 썩은 곳에서도 제대로 된 인간은 있었다. 특히 '멧돼지' 수학선생과 '끝물' 영어선생이 있긴 했지만, '멧돼지'와는 '빨강셔츠' 의 이간질로 인해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고, '끝물'이라는 인간은 얼굴빛이 창백한 것이 영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 거리감을 좁히진 못하게 된다.
더욱이 이 ‘빨강 셔츠’ 라는 작자는 ‘끝물’ 선생과 약혼을 앞두고 있던 그 동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마돈나’ 를 꾀어내어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면서 ‘끝물’ 선생을 저 멀리 보내버리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마침내 그는 이 순해빠진 ‘끝물’ 선생을 다른 시골로 보내버리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정의로운 마음을 가슴에 지니고 있던 우리의 주인공 ‘도련님’은 ‘멧돼지’ 수학선생님과 의기투합하여 그들의 불의와 위선을 참아내지 못하고 그들에게 어퍼컷 한방을 먹임으로서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아마도 이것이 책 표지에 적힌 통쾌함과 젊음,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바로 그 문구의 의미였으리라. 나쓰메 소세키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권선징악의 의미를 부여해주면서 참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었다.
<도련님>이 내게 준 것
아마 우리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회사에서 가장 꼴불견인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빨강셔츠’와 ‘알랑쇠’ 같은 인간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조직 사회에서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 하에 자신과 의견일치를 보이지 않는 부하직원을 마음대로 제거하려들고, 또 권력의 중심(?)에 기생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가기 바쁜 이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가 '빨간 셔츠'와 '알랑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빨간 셔츠'처럼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무조건 배척해 버린다면, 우리의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알랑쇠’ 와 같은 인물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생각해볼 때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길이며, 편협한 시각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 말씀에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또래집단이 무리를 이루어 서로 간에 반목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조금 더 열린 시각을 갖고 친구들을 대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같은 반의 친구가 내 패거리가 아니라고 헐뜯고 싸우지 말자. 같은 패거리가 아니라고 서먹서먹해 하지말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보자. 생각보다 효과는 탁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