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 느린 걸음으로 나선 먼 산책
윤경희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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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야속하다. 처음부터 무슨 말인고 하니……. 표지에 있는 그녀의 사진에 대한 소심한 불평이다. 책의 앞뒤를 이리저리 뒤적여 보아도 보이는 것은 그녀의 하반신뿐……. 제대로 보이는 것은 잘 다듬어진 추파춥스 모양의 나무 한그루 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애기 입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나를 약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정체는 미궁 속에 박아두고 여행의 순간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두 번째 여행 에세이인데……. 읽어내려가면서 지난번에 읽었던 <잘 지내나요, 청춘>과 한 가지 대비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정체를 겉표지 속의 그녀의 모습처럼 활짝 드러내 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나이와 생김새를 알 수 없다. 단지 이 책은 그녀의 직업이 디자이너라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누구인데,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너는 어떠냐?” 의 접근법보다 전부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또한 그것에 대하여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려고 노력한 방법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덮여있지 않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만남이 더욱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런 것 말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점차 기억 안쪽으로 흩어지고 옅어진다.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지난 날 내가 파리와 도쿄에서 만난,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고요한 사진과 낮은 속삭임은 당신이 잊고 있던 ‘여행의 순간’ 들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책 뒤의 글귀)

어쩌면 위의 글귀처럼 같은 곳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가 이 책의 감동을 가장 잘 불러일으키게 할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순간>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그녀가 방문했던 7개 도시에서 겪었던 하나하나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곳을 이미 여행했던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그래 맞아! 나도 그랬어!”, “아! 이 책을 보고나니 또 가고 싶어지네.…….”와 같은 반응이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리고 몰입도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나는 해외여행을 안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공감하기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여기요~~저는 해외는 커녕 서울 구경도 몇 번밖에 해본 적이 없는 촌놈이에요.” 내가 물어본 질문에 나는 자랑스럽게 촌놈이라고 밝힌다. 그렇다. 나는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세계 고전을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또한 이런 여행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해외의 어느 도시의 풍경과 그곳의 유명한 카페와 관광지와 그곳의 사람들을 아무리 맛깔스럽게 표현해낸다 한들 정작 나의 머릿속에는 그와 관련된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행에세이를 이처럼 어려워하는 것이리라. 나는 또 한 번 <월든>의 잔혹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미 개발되어 버리고 산업화 되어버린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의 그 아름다운 <월든호수>을 기억해낼 수 없었던 것처럼 해외의 기억을 담은 여행에세이에서도 비록 사진이 있다 치더라도 마음놓고 맞장구 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한가지의 딜레마요……. 앞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있었다. 최근에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과 관계된 다큐멘터리를 봤던 것이 이 책에 씌여있는 프랑스 파리와 니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TV를 통해서 접한 파리의 길거리의 풍경을 과장 조금만 보태서 이야기해본다면 한 블록마다 카페와 빵집이 있는데 나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가 파리의 커피와 빵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호텔 뒷마당의 아담한 정원, 한적한 거리,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도착하는 빵 가게와 식료품점, 그리고 노천 카페 등이 있어서 파리의 아침 일상을 두루두루 즐기기에도 딱 좋다. 걷다가 갓 구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합류했다. 가만히 서 있자니 빵 굽는 냄새가 온 거리로 퍼져 나간다." (121쪽)

그리고 이 책에 나와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대한 이야기에서 저자가 왜 그토록 그 언덕에서 셔터를 눌러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파리에서 언덕이란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정돈된 도시의 경치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임을 알기에…….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덕 끝자락으로 나아가자, 고층 건물이 거의 없는 파리 시내가 저 멀리 수평선까지 드넓게, 막힘 없이 펼쳐졌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에펠 탑도 반갑다. 차차 바람이 거세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산책자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서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본다. 사람들과 바람, 파리와 하늘 이 모든 것을 담고 싶어 참으로 오랜만에 여러 번 반복해서 셔터를 눌렀다."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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