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번에 건물 짓는데 쓴 빚을 다 갚고 가시겠단다. 용을 쓰면 한 5년 걸릴텐데 그전엔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고 한다. 나중에 무슨 소릴 들을려고 빚을 남길소냐, 재산은 못남겨도 빚은 절대 안 넘길테니 걱정말라 하신다. 정말 걱정이다. 어머니가 빚을 빨리 갚게 될까봐 큰 걱정이다. 보아라. 나는 그 빚이 절대로 다 갚아지지 않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다. 동방삭이 삼년고개에서 내리 굴렀듯 빚이 계속 남고 남아서 어머니가 백년천년 만수무강해야 한다. 도대체 어머니의 사생관을 나같은 범부는 가늠조차 할 길이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숨을 깊게 들이 쉰다. 이윽고 허파의 꽈리들이 산소를 충분히 빨아 들였다고 느꼈을 때 길게, 아주 길게 토해낸다. 나는 호흡한다. 호흡하므로 살아있다. 마지막 호흡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번 내쉼으로 이생이 끝난다면..더 이상 호흡하지 않을 때 죽음이다. 산소결핍으로 심장이 멈추고, 뇌가 멈추고, 내 몸의 모든 장기들이 작동을 중지한다. 정적이 깔리고 서서히 암전이 된다. 살아온 시간들, 수백억 기가바이트의 기억들이 지워진다. 최후의 파노라마가 뇌리를 스쳐간다. 사랑도 슬픔도 고뇌와 기쁨. 그렇게 의미지우려 했던 많은 것들이 그저 하나의 스틸사진으로 지나간다. (사진의 미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떨굴 마지막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삶을 말할 때는 그리도 방정을 떨던 혀가 죽음 앞에서는 빳빳이 굳는다. 지구에 살았던 인간들이 저마다 한번씩은 맞닥뜨렸을 그 순간이 언젠가 내게도 올 것이다. 

오전 9시경 아침을 먹던 중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어머니에게서 온 것인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설명 없이 '빨리 대학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2000. 5.29)  

어느날 나의 가족에게도 이런 순간은 오리라. 그들은 암이나 당뇨, 또는 그와 유사한 병에 대해 듣게 될 것이고,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게 될 것이다.  석달이라면 짧다고 생각할까, 일년이면 아직 멀었구나하며 안도할까. 그리고나서 가족들은 내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아주 짧게 논의할거다. 만약 알리지 않았다간 막판에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모를테니, 아마 누가 알릴 것인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지. 누구라도 상관없다. 다만 석달'이나', 일년'이나' 남았다고 말을 꾸며주길 바랄 뿐. 나는 귀가 얇은 사람이니까.

내가 신을 믿지 않고 확고한 내세관이 없다면 많이 당황할 것이다.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을 지언정 죽음의 공포와 고통에 비하면 춘삼월 꽃놀이패 아닌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말은 하지만 죽자고 달려들면 일단 피하고 보는게 인지상정이다. 교회를 다녀볼까, 불경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병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으려니와 무엇보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평생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는데 마지막까지 왔다갔다 수선을 떨면 곤란하지 않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빛, 색깔, 공기>(대한기독교서회)는 고 김치영목사가 간암진단을 받고 4개월동안 살다 가시는 과정을 아들의 눈으로 보고 쓴 책이다.  최근 몇년동안 족히 수백권의 책을 들었지만 이번만큼 정독하려고 애썼던 적은 없었다. 예전같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고 서가 저 윗칸에 꽂을 책이었는데. 더 솔직히 말하면 기독교 출판사가 펴낸 목사님 책은 아예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인데. 나는 몸살로 신열에 들뜨면서도 얄팍한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평생 신을 모셨던 이 양반이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를 뚫어지게 보면서, 나는 내 죽음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암이라는 말을 듣고 긴장하셨다. 아버지는 그 순간의 당혹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성적으로는 담담한 것 같다. 그런데 조금전에 혈압과 맥박을 쟀는데, 혈압이 상당히 높게 나왔어. 나도 모르게 불안한 모양이야." ...  나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상태의 환자라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어느 정도 될 지 물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아버지가 평소 남기시려고 한 책을 쓰실 시간이 될지를 생각했다. 의사는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개월이라는 말에 나는 매우 놀랐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2000.6.5)

아버지는 어젯밤부터 심한 고통에 시달리셨다. 주치의가 처방해준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었다. ... 저녁 무렵에 갑자기 많은 피를 토하셨다. 간호사가 뛰어와 바가지로 피를 받았다.... 수술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버지 곁으로 갔다. 나는 아버지의 손이 너무 차가워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가 조그맣게 말씀하셨다. "너무 놀라지 마라. 지금 이렇게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아주 편안하단다." (2000. 7.24)

그 후 김목사는 자기가 쓸 소나무관을 만들고, 터너의 그림을 보며 기뻐하고 자기 장례예배의 설교문을 구술하며, 제자들을 만나다가 문득 아들에게 링거 주사를 뽑으라 한 후 오직 남은 시간을 주님과의 영적교제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썼다.

오후 4시경 아버지의 숨소리가 약해지셨다. 너무나 평안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흡사 잠이 들어있는 듯 했다. 우리들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잘 가세요, 그동안 미안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어버지는 고요히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2000.10.7)

김목사에게 큰 딸은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자식들이 아비의 죽음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담담하게 아버지에게 죽음을 전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아비와 딸은 그렇게 죽음 앞에서 마치 공깃돌을 놓듯 명랑하게 주고 받는다. 죽음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 생을 거쳐 다음 생으로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믿음. 그리고 당사자가 능히 그 믿음에 충만해있다는 걸 잘 아는 사람만이 갖는 자신감.

그렇다. 어떠한 죽음도 결코 미화되지 않는다. 고통은 현실이며 웬만해선 피할 수가 없다. 고통도 없고 잘만하면 영원히 죽지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 사기다. 그러고 보니 성서도 죽음의 실체를 가감없이 소상하게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무한고통과 허무, 극복이 곧 성서의 양과 질면에서 모두 요체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목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오늘날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테고, 성경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졌을 것이다.

부활을 알지 못하는 나는 <부활로 나아가는 죽음>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와 같은 얘기다. 또다른 생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생의 삶은 덧없을 뿐.  그렇다.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내세관이 반드시 있다는 것. 만일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시간으로 변할까. 하바드대학 도서관에 붙어있다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바로 그날이다>라는 어구만 떠올려도 잠깐이나마 정신이 버쩍 나는데.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정말 단 한쪽의 무지개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뒤에 부록으로 붙은 설교문은 미처 못읽었다.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눈에 들어오지 않아 못읽었다. 본문안으로 들어가는데 나같은 무신자들은 걸림돌이 많다. 기독교책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 다했다. 오랜만에 교회를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 공연히 마음에 품고 들어갔다가 빈 마음으로 나오는게 아닐까. 모처럼의 발심을 소중히 간직하려고 잠시 미뤘다. 발심 만으론 어림없다던데. 어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천당도 부활도 별 생각없으시고, 당장 빚 말고는 이생에 특별한 집착도 없으신 우리 어머니. 언젠가 내가 개똥철학을 푸니까 같잖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인생? 그거 그냥 지질하게 살다 가는거여.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별루 달블 거 없다. 괜시리 엄헌데다 헛심쓰지 말어라.>  아이고. 엄니.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샴푸의요정 2004-11-1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독하셨다니 기쁩니다. ^^
 
 전출처 : stella.K > [스크랩] 하버드대 도서관의 새벽 4시....30번 보면 공부해야지요

출처 : 비움


 

 

 

 

 

 

 

 

 

 

 

 

1.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2.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3.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4.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5.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6.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7.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8.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9.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

 

10. 남보다 더 일찍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성공을 맛 볼 수 있다.

 

11.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에서 비롯된다.

 

12. 시간은 간다.

 

13. 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

 

14.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15.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16.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17. 학벌이 돈이다.

 

18. 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9.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20. no pains no gains 고통이 없으면 얻는것도 없다.

 

21.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22. 눈이 감기는가? 그럼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23. 졸지 말고 자라.

 

24. 성적은 투자한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25. 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26. 지금 헛되이 보내는 이 시간이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겠는가?

 

27. 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28. 노력의 댓가는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29.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30. 한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stella.K > [펌]박신양 신드롬과 '퍼뮤니케이션'

얼마 전 ‘박신양 신드롬’이 일어났습니다. SBS TV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연기한 주인공 기주가 사랑하는 태영(김정은)을 위로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며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르는 장면이 화제가 된 것이죠. 주변 사람들 특히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여성들의 휴대전화로 연락하면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르는 박신양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파리의 연인은 물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장면을 시청하지는 않았을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답은 조선닷컴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를 통해서였습니다. 한 네티즌이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린 박신양이 노래하는 장면을 다른 네티즌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퍼가면’ 또다른 네티즌이 이를 다시 퍼가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가며 신드롬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디지털 입소문’이라고 할 수 있는 ‘펌’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급부상 중입니다. 네티즌 98%가 다른 사이트에서 글을 퍼온 적이 있으며, 1주일에 한 번 이상 퍼온다는 응답도 72%였습니다.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퍼온 글이나 사진이 전체 컨텐츠 중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는 경우도 64%에 달했습니다. 
 

이는 광고대행사 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가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인터넷 일기장) 등 1인 미디어를 보유한 16~34세 500명을 대상으로 ‘펌’ 이용 실태를 조사·분석한 결과 나타났습니다. 휘닉스컴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퍼뮤니케이션의 시대’를 29일 발표했습니다.

 

‘펌’이란 ‘퍼옴’ 또는 ‘퍼나름’을 의미하는 용어로, 다른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그림 등의 컨텐츠를 퍼와 자신의 홈페이지 올리는 행위를 말하며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입소문(口傳) 역할을 합니다. ‘조블’ 이용자들께서는 ‘펌’이란 용어에 이미 익숙하겠죠?
 

휘닉스컴은 이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1인 미디어를 통한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컨텐츠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다른 사람의 컨텐츠를 자연스럽게 퍼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휘닉스컴은 이처럼 펌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펌과 네티즌들이 ‘즐거움’이라는 의미로 즐겨 사용하는 ‘킨’(KIN을 옆으로 눕히면 ‘즐’자가 됨)의 합성어인 ‘펌킨족’으로,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퍼뮤니케이션’(purmmunication)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휘닉스컴은 “기업들은 펌 문화를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업 광고물이나 제품 정보 등이 펌을 통해 1인 미디어를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사실 많은 기업들은 이미 펌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블로그 사이트인 ‘싸이월드’에 기업 또는 브랜드 홈피가 개설돼 있습니다. 이 홈피에서 블로거들은 제품 포스터, 광고모델 사진, 광고에 사용된 음악 등 매력있는 컨텐츠를 공짜로 퍼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컨텐츠로 꾸며진 홈피 또는 블로그를 찾은 또다른 블로거들이 이를 확산시킵니다. 기업들은 광고로도 하기 어려운, 자사 및 자사 브랜드에 대한 친근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쉽게 심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습니다.

 

휘닉스컴은 이른바 ‘펌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기업들이 다음 5개 전략을 채택하라고 제시했습니다.

 

우선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만한 보편적 주제를 선택할 것’.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입소문이니만큼 쉽게 '씹을 수 있는' 술안주 같은 주제를 담으면서 상업적 메시지는 최대한 감추라는 겁니다. 두번째로는 ‘재미와 유머가 있는 컨텐츠를 제공할 것’. 휘닉스컴에서는 "익살을 선물하라"고 말하더군요. 1인 미디어 운영에 필요한 컨텐츠에 유머를 더하면 재미을 추구하는 펌킨족들이 자연스럽게 퍼간다는 제안입니다.

 

셋째, ‘은근하게 컨텐츠를 노출할 것’. 이를 휘닉스컴은 "풀잎처럼 누워있어라"고 표현했습니다. 펌틴족은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 퍼뜨리기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조블 여러분, 그렇습니까? 넷째는 ‘컨텐츠에 대한 접촉을 제한시켜 호기심을 유발할 것’. 컨텐츠에 대한 접촉을 제한시켜 펌킨족의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하란 것입니다. 세번째 전략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나 제품에 대한 뒷얘기를 적극 누설할 것’. 저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화제의 인물이나 기업, 사건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다룬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유난히 높거든요. 추석 연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구름에

출처: 구름에 달 가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사님께 친구가 물었다. 우리 마누라 말인데요, 어떤 때는 이 여자밖에 없구나~ 싶다가도 금방 부부는 등돌리면 남이라더니 하는 생각이 들게 하걸랑요. 더 늙기 전에 한번 바꿔봄이 어떠한지요? <떼에에끼놈. 네 마누라가 뭘 좀 아는 여자여. 이눔아. 생전 마누라 치마꼬리 붙잡고 살 놈이 까불긴. 조상님께 감사허구 받들어모셔 이 어벙한 눔아.> 아 예~.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 우리 애 한테 너 커서 뭐되고 싶냐면 뭐라 그러는줄 알어? 되고 싶다고 되겠어? 나 지금 무지 행복하거든. 그러니까 엄마. 나보고 뭐 될거냐 묻지마. 나중에 생기면 얘기해줄께. 옆에서 듣던 다른 엄마가 끼어든다. 어젯밤에 애를 끼고 누웠는데 잠은 안자고 말똥말똥 쳐다보더니 뭐라 그러게? 엄마는 왜 내 엄마니?

두들겨 패서 해결할 문제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어미의 애정표현을 받아들이는 요즘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확실히 우리 때와 다른 것 같다. 일단 새끼들의 숫자가 다르다. 예전엔 최소한 셋은 됐기 때문에 알콩달콩 아이들과 말장난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도 어쩌다(일년에 두번쯤) 엄마가 자상한 눈길을 보내면 황송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엄마가 네 꿈이 뭐냐 물으면, 나는 단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대통령, 검사, 판사, 과학자 등을 주워섬기며 엄마의 기대에 어긋날까 눈치를 살펴야했다. <엄마가 왜 내 엄마니?>라는 질문은  <저를 고아원에 갖다 버려도 좋아요> 하는 얘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가장 큰 차이는 요즘 애들이 결핍을 모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부족한 게 없다는 것은 더 바랄 게 없다는 뜻이고, 찾으면 손에 닿는 곳에 항상 넘치게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항상 입이 궁금했던 나는 엄마 앞에선 판검사를 읖조렸으나 기실 빵집주인,  만두가게 점원, 뽑기 장수가 꿈이었다. 고백컨데 나는 공산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것과 똑같이 판검사도 생면부지였으며 뭐 하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설사 그들이 죄를 판단하는 자들임을 알았다해도 나는 두 눈이 사팔뜨기가 되어 조심조심 귀퉁이를 침발라 떼낸 내 역작이 과연 합격인지 아닌지를 단숨에 판단하는 뽑기 장수 아저씨가 훨씬 위대해보였을 것이다.

옆길로 샜다. 이만 돌아가자. 사랑을 하려거든 쿨하게 하라. 대상이 이성이든, 자식이든, 나 자신이든 몰입하지도 말고 소격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랑이든 거리가 있어야 한다. 결핍을 느끼게 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그렇다고 반지름 밖에서 뱅글뱅글 맴돌란 얘기가 아니다. 온탕 냉탕 오가듯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몰입과 소격을 반복해줘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든 집착을 보이면 안된다. 

도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친구의 마누라는 쿨한 여자임에 분명하다. 진퇴가 분명하고 밀고 당김이 확실하다. 놀랍게도 가장 섹시한 이성의 표정은  무심한 얼굴이다. 마치 눈앞에 서있는 나를 넘어 그 뒤의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노스탤지어의 눈빛.  남자는 그 녀를 간절하게 붙잡지만 손 안에는 한줌의 바람뿐. 이럴 때 남자는 미치고 환장한다. 여자가 내 눈빛을 맞추며 윤기 나는 입술로 사랑을 속삭일 때 그녀의 쿨한 영혼은 잠자고 있는 중이다.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만족스럽게 껴안으며 다른 생각을 시작한다. 나는 친구가 마누라의 치마꼬리를 놓지 못할 거라는 말에 동감한다. 오늘도 그는 자유의 도피를 꿈꾸지만, 밤 열두시가 되면 신데렐라처럼 신발짝을 내팽개치며 집으로 달음질할 게 뻔하다.

쿨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은게 모성애다. 자기 몸에서 분리시켰다는 생물학적 생식과정이 그런 맹목성을 갖게 하는 것일까. 요즘은 아비들도 마치 자기 배 아파서 낳은 것처럼 착살맞게 군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밸런스가 깨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친, 아버지는 엄친. 이렇게 균형이 잡혀있을 땐 아이들도 알아서 굴었다. 아비한테 혼찌검이 나고 엄마 품에 와락 안기면 어찌나 서럽고 고맙던지. 그 때 엄마에게서 나던 찌개 냄새는 모성애의 향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요샌 엄마가 땍땍거리면 아비가 나서서 아이들 역성을 들어주며 <엄마가 조아 아빠가 조아?> 하고 앉았다. 그 얼굴에 대고 애가 묻는다. <아빠는 어쩌다 내 애비가 된 거야?>  모성이 쿨하기 어려우면 부성이라도 제발 그리 할 일이다.

부성애를 생각하면, 고교시절 국어선생님이 해준 얘기가 오래 남는다. 명절날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뛰어나오며 두팔을 활짝 벌리고 자식과 손주를 맞아주신다. 아버지는 사랑채 문만 빼꼼히 열고 <왔냐?>하면 그만이다. 아버지 앞에서 절하고 앉기 무섭게 <나가봐라>고 하신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보낸 후 대학 졸업식에 딱 한번 올라오셨던 아버지. 선생님에게 아버지는 그저 무심하고 데면데면한 존재에 불과했다. 며칠을 묵고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어느날. 밤늦게 까지 고향 친구들과 술추렴을 하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는데 새벽녘엔가 기척을 느껴 잠을 깨게 됐다. 누군가 내 발을 쓰다듬고 있는 걸 느낀 것이다. 눈을 뜨지 않았으되 그는 볼 수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아이들의 발도 한번씩 만져보고 행여 들킬세라 당신 방으로 건너가셨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실 즈음 병실에 둘이 남았을 때 선생님은 아버지의 까칠한 발을 만지며 물었다. 아버지 그 때 왜 저희들 발을 만지신 거에요?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언제>     

잘은 모르되 하느님의 자식사랑도 쿨해서 오래가는 것 같다. 한없이 사랑하신다지만 자식의 눈물과 고통을 쉽게 닦아주지 않는다. 자식이 건방지게 구는 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사랑을 간구해도 금방 들어주시는 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믿는 자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극히 사랑하되 거리를 두는 사랑. 그런 사랑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랑하는 내가 잘 살아주길 바란다. 행복하길 바라고 불행하길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내가 행복해진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고작 하는 짓이 끝없이 집착하고 지겹게 매달린다. 행복해지길 바란다면서 죽도록 괴로와하고 심신을 학대한다. 가끔은 몰입하되 결코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 것이며, 때로 소격하되 영영 멀어지지 않은 것이 나를 위한 쿨한 사랑법이리라.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명상출판사)은 전시륜이라는 미국 교포가 남긴 원고를 모아 낸 책이다. 살아생전 자기 이름으로 낸 책 한권을 소망했었지만 이 책은 그가 폐암으로 돌아간 후 석달 지나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행복론은 유쾌하며 거침이 없다. <행복이란 내 생리, 내 식성, 내 성향에 맞는 생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 요는 내가 나의 괴팍성으로 인해 이웃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사회질서를 교란시키지 않는 한에서 편하고 즐거운 길을 택하란 것이다. 서머셋 몸은 말했다.  행복의 관건은 골목길에 순경이 서있나 없나를 살펴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데 있다고. ...어느날 배우 도날드 서덜랜드가 아들에게 낚시를 잘 하는 법에 대해 얘기했다.  Learn the water, learn the fish, learn the line, learn the bail. Then, everything coiltake carve of itself. 물을 알고, 고기를 알고, 낚싯줄을 알고, 미끼를 알아라. 그러면 누구나 고기를 잡을 수 있다. 

행복한 삶이란 그저 단순하고 유쾌한 삶이다. 금강경 앞 장을 읽어보니 도를 통하면 모든 것이 空하고 삼라만상이 유쾌하단다. 일맥상통 아닐까. 아침잠이 행복하면 아무리 상사가 아침형인간을 부르짖으며 지랄을 해도 자명종을 치워 버려라. 넥타이 매는게 싫으면 뭐 대단한 거라구, 당장 풀어버려라. 맵고 짜야 입맛이 돈다면 의사의 걱정 따윈 까맣게 잊어버려라. 그렇게만 해도 세상은 그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지지 않은가. 쪽팔리는 게 싫으면 그럴 만한 곳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럴 만한 일을 안하면 된다. 집착하지 말고 약간 떨어져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일이다.

몸살 때문에 심신이 나른하다. 이럴 때 유쾌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당장 내일부터 쿨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겠다. 그러자면 일단  잠부터 쿨쿨자고. (쩝.... 영 마무리가 안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4-11-1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님의 글에서 하나 배우고 갑니다.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저에게 추천하시는 책으로 보아도 되겠죠. 읽어보고 싶네요.^^
 

어제 금요일 저녁무렵부터 잇몸이 솟는다 싶더니 영락없이 몸살이다. 말 그대로 몸에 살이 낀 것이다. 지난 일주일 만사가 귀찮아 운동을 작파했었다. 어젠 하루 종일 공사판에, 부동산 업자에, 협회 간사님들까지 쉴새없이 만나고 돌아다녔다. 연거푸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인상을 썼더니 백수의 수호신께서 응징에 나선 것이다. 뭔 놈의 백수가 그러고 다니냐. 너같은 놈 때문에 다른 일백만 백수들이 낮잠한번 발뻗고 편히 못자는게야. 네 놈을 일벌백계해야쓰것다. 아무렴입쇼. 제 죄를 소인이 잘 압지요.

오후 다섯시만 되면 어둑어둑한게 집에 가고 싶다. 오늘 저녁엔 뭘 해먹을까 하며 지하철 역으로 막 들어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안갔으면 좋겠는데....) 일주일 전에 한 약속을 친구가 잊지 않고 챙긴다. 광화문으로 꼭 가야하나. 그냥 강남에서 만나면 안돼? <그냥 광화문으로 오셔. 앞으로 두시간 있다가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만나.> 누구누구 오는데? < 잘 아는 사람. 여자만 둘. 나까지 셋. 복터진 줄 아시고.> 아 예~. (혹시 ?)

오랜만에 타본 퇴근시간 지하철은 여전히 지옥철이었다. 역삼에서 교대, 교대에서 종3가까지 땀으로 미역을 감았다. 딴에는 책을 보면서 쉬엄쉬엄 가보자고 탔던 것인데 세상은 여전히 바쁜 인파로 차고 넘쳤다. 압구정에서 한강을 넘어 가는 동안 내내 마음 조렸다. 이러다 한강물에 거꾸로 박히는 거 아냐. 그러면 완전 죽음인데. 아까 압구정에서 내릴 걸 그랬나. 에이XX., 아프다고 집에 가는건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잡생각으로 식은땀을 흘리노라니 벌써 옥수역 플랫폼이다. 나의 이런 병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옛날엔 비행기 타는게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어쩌다 다른 사람 돈으로 비즈니스를 타고 태평양을 건널 때는 스튜어디스의 엽렵한 섬김도, 골라 먹을 수 있는 기내식 메뉴도 내 허영기를 더 바랄 나위없이 만족시켜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탑승 몇분전에 동행인이 재수 옴붙는 얘길 한마디 한 것을 그만 한 귀로 듣고 말았다.  비행기 추락사고의 80%가 이륙후 5분내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날 따라 그 얘기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뜩이나 찜찜한 판인데 하필이면 이 빌어먹을 비행기가 뜨자 마자 요동을 치는게 아닌가. 그날 일기도 괜찮았는데 탁자의 커피가 쏟아질 정도로 흔들릴게 뭔가 말이다. 나는 오금을 발발 떨어가며 마의 5분을 간신히 넘겼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짧지 않은 인생을 오롯이 반추했으며,  내가 잘못을 저지른 많은 분들께 용서를 빌었고, 천운으로 살아난다면 정말 착하게 살겠노라 철석같이 다짐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두시간이 넘는 비행은 극구 사양했다. 당연히 미국 출장도 딱 끊었다. 물론 그날의 약속은 곧바로 잊었다가 지금 생각났을 뿐이다.

그렇게 부대끼며 광화문 뒷골목까지 겨우 찾아갔다. 옥호가 뭐라고? <그냥 오향장육이라고 써있대.> 주식회사 짜장면이군. 그래 뭐 요즘 중국집 이름 다양하긴 하더라. 진짜루, 빠떼루, 몽고반점, 짬짜볶짜, ... 골목어귀에서 세번째 집을 찾으니 말 그대로 가로 간판에 <오향장육 전문점>이라고 써있었다. 물론 옆에 세로로 一龍 이라는 고유명사도 있었지만. (삼룡이나 구룡은 들어봤어도 일룡은 전원일기 일용엄마 말곤 처음이다. )

대학 졸업한 이후 그런 중국집은 처음이었다. 봉천 사거리 관악구청 맞은편 미도관이 그랬다. 쌍팔년도를 풍미했던 비닐 꽃자수 테이블보가 깔린 탁자와 황학동 고물시장에나 있을 법한 의자들이 등에 때 밀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침 구석자리가 비어 잔뜩 구부리고 앉은 나는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주인장은 내던지듯 네 개의 물잔과 물수건을 놓고 가버렸다. 딴 집은 식은 보리차라도 따라주더구만. 에이.  진즉에 온다던 친구는 그후로 이십분쯤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 친구도 주위를 둘레둘레 살피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여긴 처음이야. 이따가 올 사람이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하여튼 좀 깬다.>

그 친구가 주차하러 나간 사이, 이 집을 강추했다던 여인(편의상 제2의 여인이라 부른다.)이 도착했다. 곁눈질로 보니 그녀 같았다. 내가 겸연쩍게 눈을 맞췄는데 이 여인 쓰윽 외면하는게 아닌가. 쳇 아닌가 두고보자. 딱 넌데. 이따 친구 오거든 얘기하지뭐. 일찍 수인사해봐야 어색하기만 하고. 난 읽던 페이지에 눈을 돌리고 금새 몰입했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제2녀에게 실례가 될 것이므로 밝히지 않는다.)

3~4분 지났을까.  <어 안녕하세요>어쩌구하는 귀익은 소리가 들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왜 그 친구는 어렵게 사적 모임을 주선하면서 참석자들의 친소관계를 미리 짚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가급적(절대로) 이렇게 만나길 원치않는 제3의 여인이 나타나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제3의 여인에 대한 나의 불편한 심사를 밝히고자 한다. 한때 딱 일년동안 이벤트로 날새고 해떨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남몰래 쑈PD를 꿈꾸었던 나는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코엑스 전체를 빌리는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를 그것도 한해에 네개씩이나 저질렀다. 물론 그때 이후로 나는 집안 행사조차 자제할 정도로, 이벤트없는 조용한 세상을 지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만났던 그쪽 업계(이래야 어딘지 불분명할 터)의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타가 공인하는 삼류(속칭 산마이)였다. 공사장 노가다들보다 일하는게 두서없고, 막무가내 꼴통인데다, 양아치식 위계질서를 숭상하고,  여우처럼 자기보호에 급급한 치들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아니겠구나 했다. 회사에서 만나면 언제나 씩씩하고 남 잘 챙기는 직원이었기에 내 직업적 편견쯤은 언제라도 내동댕이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수호신이 있다면 , 그녀는 나를 밖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그렇게 만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쪽이 싫어서 여기로 왔다던 그녀는 그쪽의 대마왕이었으며, 그 삼류근성을 기대이상으로 유감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말로 듣던 얼굴이 아닌데요? 얼굴에 살집이 있으며 눈썹이 짙은 형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잖아요.> 어라. 첨보는 남정네한테 대뜸 얼굴 얘기부터 들이대시는구려. 허허 아마 몇년전의 모습을 얘기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지금은 그렇게 호남형은 아니신 듯 한데.> 미친X. 그럼 영남형이냐. 아님 범죄형이겠지. 말뽄새하곤. 허허. 반갑습니다. 그렇게 여자 셋과 남자 하나가 초라한 중국집 귀퉁이에 바퀴벌레처럼 몰켜 앉았다.

제2의 여인은 거침없이 오향장육 한접시와 오리알 두접시를 시켰고, <역시 꼬량주 아니겠어> 하며 술을 시켰다. 나는 욱신거리는 잇몸 핑계를 댔지만 그보단 예서 취하면 큰 사단 나겠다 싶어 청하를 한병 달라고 했다. 시커멓게 곯은 오리알이 먼저 나왔다. 입에 채 넣기도 전에 고린내부터 확 풍겼다. 보통 중식당 코스요리에 섞여 나오는 오리알을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한 입 넣은 나는 뇌에 미각중추를 즉각 마비시킬 것을 강력히 지시한 후,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면서 <먹고싶은 요리 리스트>에 등재돼있던 모든 오리알을 영원히 삭제해버렸다. 그보단 오향장육이 좀 나았다. 그게 정통인줄 몰라도 조그만 춘장접시에 수북히 담은 멀컹한 검은색의 오향 젤 덩어리는 있던 입맛도 떨어뜨리는 탁월한 효과를 냈다. 결국 오리알은 연신 <음 맛있어. 이렇게 맛있을 수가.>를 연발하던 제2녀가 말끔히 해치웠고 다른 두 여인과 나는 두 접시의 물만두로 저녁 겸 안주를 대신해야 했다. (그래도 난 오향장육을 부지런히 법도에 따라 먹었다. 나는 매너있는 남자임에 분명하다.) 

그날 무슨 오찬에서 NGO계의 유명인사 최모씨가 식사 후 커피로 가글을 하더란 얘기, 이태원에 가서 신수점을 본 얘기,  요새 한참 수다방의 단골화제로 떠오른 혈액형 얘기, 남녀 궁합 얘기 등을 나오는 대로 주워섬기며 연신 잔을 부딪히고, 옆 테이블의 소음에 양미간을 찌푸려가며 두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만 가자고 일어나면서 제2녀를 제외한 두 여인이 강남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알어 알어. 이럴 줄 내가 알았남. 나두 깜짝 놀랐어. 걔 특이하데.> 내 질책어린 눈초리를 간파한 친구는 제2녀가 화장실 간 사이 먼저 선수를 치더니 빨리 가자고 팔을 잡아 끌었다.   

밤 열시에 광화문을 떠나 강남에 도착한 것은 무려 한시간 뒤. 오늘의 악녀 제2의 여인께서 집 앞까지 차를 끌고 들어갔던 탓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안하무인의 행동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 젊은애들이라면 모를까. 낫살이 마흔을 넘고 사회밥도 스무해 가까이 먹은 사람이.  참 4가지 없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중국집에서 구겨 앉았다가 다시 지프차에서 한시간을 앉아 있으려니 차멀미가 나고 온 입이 욱신거렸다. 긴 여정을 겨우 끝내고 바에 들어온 일행은 잭콕(여인들)과 코로나(나)를 시켜놓고 공짜안주로 나온 양파링을 우적우적 깨물어 먹었다. 그후로 일어났던 일들은 여기 적어놓으면 나중에 혹시 읽었을 때 다시 생각날까 무서워 아예 빼버릴란다. 그날 제3녀의 4가지는 인내의 선을 훌쩍 넘겼다.  

분당으로 돌아오는 새벽 택시안에서 생각하니 한심했다. 바로 엊그제 다짐하길 놀 때 제대로 놀자, 꼭 못노는 놈이 그 시간에 안해도 되는 일을 열심히 하기 땜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 아닌가. 타의 모범이 되게 잘 놀자. 일 잘하는 것보다 백배쯤 잘 놀자 했거늘 이게 무슨 횡액이란 말인가. 이러다  <아무래도 난 일이나 하는게 맞겠어> 하고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마음에 병이 있을 땐 오늘 같은 자리는 절대로 피하는게 옳았다. 특히 제2, 제3의 여인까지 등장하는 모임은 금기임을 확실히 기억하자. 간 밤에 구강소독제를 오래 물고 있었더니 아침에 혀 반토막이나 얼얼한게 무감각하다.  이마가 따땃한 것이 열이 나기 시작하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삭신이 쑤신다.

그렇게 그날 밤 몸살은 내게 찾아왔다.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다. 게다가  내 부덕을 엄히 징치할 목적으로 찾아주셨으니, 잘 보살폈다가 편히 보내드려야겠다.  Thanks  God, It's  Friday!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4-11-1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밌는 글 오랜만에 읽는군요.

죄송합니다. 몸살기는 좀 가셨는지요?

조선효자님의 글을 자주 읽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