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께 친구가 물었다. 우리 마누라 말인데요, 어떤 때는 이 여자밖에 없구나~ 싶다가도 금방 부부는 등돌리면 남이라더니 하는 생각이 들게 하걸랑요. 더 늙기 전에 한번 바꿔봄이 어떠한지요? <떼에에끼놈. 네 마누라가 뭘 좀 아는 여자여. 이눔아. 생전 마누라 치마꼬리 붙잡고 살 놈이 까불긴. 조상님께 감사허구 받들어모셔 이 어벙한 눔아.> 아 예~.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 우리 애 한테 너 커서 뭐되고 싶냐면 뭐라 그러는줄 알어? 되고 싶다고 되겠어? 나 지금 무지 행복하거든. 그러니까 엄마. 나보고 뭐 될거냐 묻지마. 나중에 생기면 얘기해줄께. 옆에서 듣던 다른 엄마가 끼어든다. 어젯밤에 애를 끼고 누웠는데 잠은 안자고 말똥말똥 쳐다보더니 뭐라 그러게? 엄마는 왜 내 엄마니?
두들겨 패서 해결할 문제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어미의 애정표현을 받아들이는 요즘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확실히 우리 때와 다른 것 같다. 일단 새끼들의 숫자가 다르다. 예전엔 최소한 셋은 됐기 때문에 알콩달콩 아이들과 말장난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도 어쩌다(일년에 두번쯤) 엄마가 자상한 눈길을 보내면 황송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엄마가 네 꿈이 뭐냐 물으면, 나는 단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대통령, 검사, 판사, 과학자 등을 주워섬기며 엄마의 기대에 어긋날까 눈치를 살펴야했다. <엄마가 왜 내 엄마니?>라는 질문은 <저를 고아원에 갖다 버려도 좋아요> 하는 얘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가장 큰 차이는 요즘 애들이 결핍을 모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부족한 게 없다는 것은 더 바랄 게 없다는 뜻이고, 찾으면 손에 닿는 곳에 항상 넘치게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항상 입이 궁금했던 나는 엄마 앞에선 판검사를 읖조렸으나 기실 빵집주인, 만두가게 점원, 뽑기 장수가 꿈이었다. 고백컨데 나는 공산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것과 똑같이 판검사도 생면부지였으며 뭐 하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설사 그들이 죄를 판단하는 자들임을 알았다해도 나는 두 눈이 사팔뜨기가 되어 조심조심 귀퉁이를 침발라 떼낸 내 역작이 과연 합격인지 아닌지를 단숨에 판단하는 뽑기 장수 아저씨가 훨씬 위대해보였을 것이다.
옆길로 샜다. 이만 돌아가자. 사랑을 하려거든 쿨하게 하라. 대상이 이성이든, 자식이든, 나 자신이든 몰입하지도 말고 소격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랑이든 거리가 있어야 한다. 결핍을 느끼게 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그렇다고 반지름 밖에서 뱅글뱅글 맴돌란 얘기가 아니다. 온탕 냉탕 오가듯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몰입과 소격을 반복해줘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든 집착을 보이면 안된다.
도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친구의 마누라는 쿨한 여자임에 분명하다. 진퇴가 분명하고 밀고 당김이 확실하다. 놀랍게도 가장 섹시한 이성의 표정은 무심한 얼굴이다. 마치 눈앞에 서있는 나를 넘어 그 뒤의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노스탤지어의 눈빛. 남자는 그 녀를 간절하게 붙잡지만 손 안에는 한줌의 바람뿐. 이럴 때 남자는 미치고 환장한다. 여자가 내 눈빛을 맞추며 윤기 나는 입술로 사랑을 속삭일 때 그녀의 쿨한 영혼은 잠자고 있는 중이다.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만족스럽게 껴안으며 다른 생각을 시작한다. 나는 친구가 마누라의 치마꼬리를 놓지 못할 거라는 말에 동감한다. 오늘도 그는 자유의 도피를 꿈꾸지만, 밤 열두시가 되면 신데렐라처럼 신발짝을 내팽개치며 집으로 달음질할 게 뻔하다.
쿨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은게 모성애다. 자기 몸에서 분리시켰다는 생물학적 생식과정이 그런 맹목성을 갖게 하는 것일까. 요즘은 아비들도 마치 자기 배 아파서 낳은 것처럼 착살맞게 군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밸런스가 깨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친, 아버지는 엄친. 이렇게 균형이 잡혀있을 땐 아이들도 알아서 굴었다. 아비한테 혼찌검이 나고 엄마 품에 와락 안기면 어찌나 서럽고 고맙던지. 그 때 엄마에게서 나던 찌개 냄새는 모성애의 향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요샌 엄마가 땍땍거리면 아비가 나서서 아이들 역성을 들어주며 <엄마가 조아 아빠가 조아?> 하고 앉았다. 그 얼굴에 대고 애가 묻는다. <아빠는 어쩌다 내 애비가 된 거야?> 모성이 쿨하기 어려우면 부성이라도 제발 그리 할 일이다.
부성애를 생각하면, 고교시절 국어선생님이 해준 얘기가 오래 남는다. 명절날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뛰어나오며 두팔을 활짝 벌리고 자식과 손주를 맞아주신다. 아버지는 사랑채 문만 빼꼼히 열고 <왔냐?>하면 그만이다. 아버지 앞에서 절하고 앉기 무섭게 <나가봐라>고 하신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보낸 후 대학 졸업식에 딱 한번 올라오셨던 아버지. 선생님에게 아버지는 그저 무심하고 데면데면한 존재에 불과했다. 며칠을 묵고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어느날. 밤늦게 까지 고향 친구들과 술추렴을 하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는데 새벽녘엔가 기척을 느껴 잠을 깨게 됐다. 누군가 내 발을 쓰다듬고 있는 걸 느낀 것이다. 눈을 뜨지 않았으되 그는 볼 수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아이들의 발도 한번씩 만져보고 행여 들킬세라 당신 방으로 건너가셨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실 즈음 병실에 둘이 남았을 때 선생님은 아버지의 까칠한 발을 만지며 물었다. 아버지 그 때 왜 저희들 발을 만지신 거에요?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언제>
잘은 모르되 하느님의 자식사랑도 쿨해서 오래가는 것 같다. 한없이 사랑하신다지만 자식의 눈물과 고통을 쉽게 닦아주지 않는다. 자식이 건방지게 구는 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사랑을 간구해도 금방 들어주시는 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믿는 자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극히 사랑하되 거리를 두는 사랑. 그런 사랑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랑하는 내가 잘 살아주길 바란다. 행복하길 바라고 불행하길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내가 행복해진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고작 하는 짓이 끝없이 집착하고 지겹게 매달린다. 행복해지길 바란다면서 죽도록 괴로와하고 심신을 학대한다. 가끔은 몰입하되 결코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 것이며, 때로 소격하되 영영 멀어지지 않은 것이 나를 위한 쿨한 사랑법이리라.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명상출판사)은 전시륜이라는 미국 교포가 남긴 원고를 모아 낸 책이다. 살아생전 자기 이름으로 낸 책 한권을 소망했었지만 이 책은 그가 폐암으로 돌아간 후 석달 지나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행복론은 유쾌하며 거침이 없다. <행복이란 내 생리, 내 식성, 내 성향에 맞는 생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 요는 내가 나의 괴팍성으로 인해 이웃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사회질서를 교란시키지 않는 한에서 편하고 즐거운 길을 택하란 것이다. 서머셋 몸은 말했다. 행복의 관건은 골목길에 순경이 서있나 없나를 살펴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데 있다고. ...어느날 배우 도날드 서덜랜드가 아들에게 낚시를 잘 하는 법에 대해 얘기했다. Learn the water, learn the fish, learn the line, learn the bail. Then, everything coiltake carve of itself. 물을 알고, 고기를 알고, 낚싯줄을 알고, 미끼를 알아라. 그러면 누구나 고기를 잡을 수 있다.
행복한 삶이란 그저 단순하고 유쾌한 삶이다. 금강경 앞 장을 읽어보니 도를 통하면 모든 것이 空하고 삼라만상이 유쾌하단다. 일맥상통 아닐까. 아침잠이 행복하면 아무리 상사가 아침형인간을 부르짖으며 지랄을 해도 자명종을 치워 버려라. 넥타이 매는게 싫으면 뭐 대단한 거라구, 당장 풀어버려라. 맵고 짜야 입맛이 돈다면 의사의 걱정 따윈 까맣게 잊어버려라. 그렇게만 해도 세상은 그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지지 않은가. 쪽팔리는 게 싫으면 그럴 만한 곳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럴 만한 일을 안하면 된다. 집착하지 말고 약간 떨어져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일이다.
몸살 때문에 심신이 나른하다. 이럴 때 유쾌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당장 내일부터 쿨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겠다. 그러자면 일단 잠부터 쿨쿨자고. (쩝.... 영 마무리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