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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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고등어의 푸른 빛깔'같은 20대로 접어드는 시점 전후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야기의 첫 단추를 풀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상실의 시대
 이 소설은 상실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상실은 이중성(doubleness)을 갖는다.
 첫째는 자기 존재성의 상실이며 둘째는 관계성의 상실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방향감각이나 목표의식도 없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자기 상실,
그리고 카오스(Chaos)는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자기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에게 파급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와타나베를 '피해자'로 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와타나베의 고교친구인 나오꼬는 이미 어린 시절에 언니의 자살을 목도했고 
 
기즈키라는 소꼽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 관계성의 상실과 상처다발
  그녀는 와타나베와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관계성을 회복할려고 하지만 그와의 섹스는 오히려 그녀의 카오스를 극에 치닫게 만들고 결국 그녀는 정신 요양소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만난 레이코여사는 어릴 적에 정신질환을 두 번 앓은 적이 있고 결혼엔 한 번 실패한 중년여성이다.
와타나베에게 있어 레이꼬 여사는 결과적으로 볼 때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그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연극 강의를 같이 듣다 알게 된 미도리는 가족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를

아버지의 장례식을 '피크닉'이라 부르고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내 존재의 절반은 아버지의 정자쟎아요?"

라고 하면서 자신의 알몸을 내보이는 아주 도발적인 행동을 한다. 

  와타나베의 학교 선배 나가사와의 애인, 하쓰미는 나가사와의 에고이스트적인 삶과 사랑의 방식-그에겐 모든 것이 '게임'이었으며 20여년 동안 80명의 낯선 여자와 섹스를 했다-에 상처만 입고는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와의 연인관계를 이중적으로 계속 유지하면서도 주말이면 나가사와 함께 '여자사냥'에 나가 낯선 여자와 '프리섹스'를 하는 이러한 카오스적인 애정행각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러다가, 나오꼬와 하쓰미는 자기 존재성의 상실과 관계성의 상실에 못이겨 자기파멸(파괴)-자살-로 치닫고 만다. 그렇게 카오스는 카오스를 낳고 만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방황하다가 예전 고교시절 섹스파트너였던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생전 처음으로 '상처 입은 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이런 자각은 후에 미도리와의 전화통화하는 순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방황 끝에 그는 레이꼬 여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와타나베 자신에게 있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첫째는 미도리에게 다가갈수 있다는 가능성-관계성의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나오꼬의 장례식을 위해 51곡의 기타연주 이후에 아직 나오꼬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가시지 않았는데 
            이들은 네 번의 방대한 섹스를 가졌다는 점-자기 존재성의 상실의 가능성-이다.
 
  와타나베는 레이꼬 여사와 헤어진 후 미도리에겐 전화를 하지만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그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자문하며 카오스상태로 빠져든다.
 왜냐하면 설사 미도리와의 관계성은 회복될지 몰라도
 자기 존재성의 상실, 카오스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딜레마(dilemma)인 것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진 정체성(identity)의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본다.
 이것은 와타나베에게 있어 가장 큰 상실이요, 카오스인 것이다.  

 상실은 또 다른 상실을 낳고
  와타나베가 가진 개인적인 상실은 그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이와의 관계 가운데 상실을 파급시키면서 상실은 또 다른 상실을 낳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소설속의 와타나베의 초상화이기도 하지만 현대문화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이 작품에서 '자기 존재성과 타인과의 관계성'의 '어울림' 을 강조하고 있다.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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