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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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현실과 기독교의 관계

-황석영의 ‘손님’을 읽고

세계지도의 아주 작은 여백을 메우고 있는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이라는 분단의 선분을 긋고 있다. 그 분단의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었던 과거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소설 ‘손님’의 스토리는 잔학한 미군과 기독청년들의 횡포사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소설 가운데서도 드러나지만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단지 남한과 북한, 두 이념 간의 대립. 갈등구도에서 남. 북한이 자의적으로 해결되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제3자가 개입함으로 말미암아 남. 북한의 상처는 더 확대된다. 사람과 사람의 갈등도 제3자가 괜스레, 불필요하게 개입함으로 말미암아 구도 자체도 어색해지고 양대 구도가 삼각구도로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분위기는 더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황석영의 ‘손님’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정치적, 역사적 현장 위에다 기독교를 양념(?)화하여 자신의 논리를 소설화하고 있다. 역사적 불청객으로 둔갑한 기독교인들의 만행에 대해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없겠으나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만 극대화한 것에 대해 서운함이 없지 않다.

솔직히, 우리 민족의 분단을 조장한 것이 서양 즉 미국이긴 하지만 그 미국과 기독교를 equal(=)부호로 동일시한다는 것은 말도 아니 될 뿐더러 분단의 아픈 현실 가운데 기독교가 악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기독교라는 명찰을 단 기독인들의 책임이고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버리고 우리 기독교의 역사적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처사가 아닐 것이다.

소설 속의 기독인의 죄스런 처사가 비록 단편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민족이 가진 상처는 기독교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 한국교회에 친일파 전통이 배여 있다는 뼈아픈 역사현실 위에다 개인적으로 황석영의 소설을 통해서 나로서는-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 중의 한 사람으로서- 6. 25전쟁 이후의 후유증에 대해 기독교는 또 한 번 통감의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임을 생각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는 시대를 아우르고 시대를 포용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교회 즉 기독교는 이러한 역사적인 책임성을 걸머쥐고 민족이 가진 동존상잔의 비극, 그것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 모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 우리가 민족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에 있다-물론 나는 종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Martin Llyod Jones가 쓰는 표현인 ‘기독교는 관계이다’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민족을 향한 선지자적인 눈물을 훔치고, 흘렸던 믿음의 선조들처럼 기독인들은 이런 눈물로 주 앞에서 긍휼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작금의 세태 가운데 남북관계에 대해 기독인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주 언급되고 있는 ‘흡수통일’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봐도 ‘통일비용’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고통분담금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기에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남북한의 합일(Unity)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섣부른 긍정이나 부정의 판단 이전에 한국 기독교는 남북한의 분단 현실에 대해서 계속적이고도 진지한 관심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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