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의도에서 핀 인동초, 김대중

 

백무현은 만화를 통해 역대대통령들을 다루는 작업을 이뤄냈다. 만화 김대중(5)<인간 김대중>, <경천애인(敬天愛人)>,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을 다뤘다. 흥미롭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200917)

 

 

 

김대중에 대한 이야기는 1권에서 1, <, 하의도>로 시작한다.

근데 이 이야기가 굉장히 구슬프다.

 

 

 

김대중의 고향, 하의도 이야기

김대중이 태어난 하의도(전남 신안군 하의면 소재의 섬)는 역사적인 아픔을 가진 이력을 지니고 있다.

 

 

딸 바보, 선조의 농담 같은 발언이 화근이 되다

역사는 선조대로 올라간다. 선조가 7명의 부인을 두고 14명의 아들과 11명의 딸을 낳았다. 근데 51세에 인목대비로부터 얻은 맏딸 정명공주가 문제였다. 늙은 나이에 얻은 딸이 얼마나 이뻤을까? 근데 그게 문제의 씨앗이 되었다. 선조는 너무나 딸이 이쁜 나머지 우리 정명공주와 결혼하는 부마에게는 3도 땅을 것이다란 말은 남겼다. 중전은 이 말을 그냥 흘려 듣지 않았다. 정명공주가 6살 때인 1608년에 선조는 죽는다. 당쟁 끝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정명공주의 친오빠인 8살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 생모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고 정명공기는 혼기를 넘어버린다. 1623년 인조반정이 성공하면서 광해군의 폐위되고 인조가 왕위를 잡자, 인목대비는 실권을 쥐게 되고, 20살의 정명공주는 3살 연하의 홍주원과 혼인한다. 선조의 농담 같았던 3도 땅 발언이 마침내 현실이 되고 만다.

정명공주에게 하의3도 농지 20결을 무토사패하신다는 유지가 실행화된다.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선조의 유지대로 3,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땅을 줄 수 없으니 대신 3를 찾았고, 그 도()가 바로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였다.

 

 

 

언제나 문제는 <가진 자의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홍주원은 인조반정의 일등공신 김유의 제자로 특별히 간택된 풍산 홍씨였다. 풍산 홍씨는 정명공주로 인해 4대손까지 3도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아 부를 누리는 특권을 누렸다. 하의도 농지 20결의 결세를 조정을 대신해 4대손까지 홍씨 가문이 받도록 한 것은 당시 봉건체제 하에선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80여년 뒤 1700년이 될 무렵 하의도의 농지가 160결로 증가한 것을 알게 된 홍씨 집안은 20결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160결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도록 결정을 내린다. 일종의 이중과세인 셈이다. 역사는 언제나 자본을 가진 자들의 지나친 욕심에 의해 비극은 시작된다. 홍씨 일가는 추가한 세금으로 인해 부를 더 축적하게 되었고, 하의도의 백성들은 절망의 끄터머리에 서게 되었다. 하의도의 농민들은 조정에 신문고를 울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전라관찰사 홍낙인은 이런 농민들의 변에 대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홍낙은은 바로 풍산 홍씨 홍봉한의 아들, 사도세자의 장인으로 영조와는 사돈관계였다. 영조가 등극했지만, 영조와 사돈인 풍산 홍씨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개혁군주 정조의 어제御製도 불태워지고...

마침내 개혁군주 정조의 시대가 열렸다. 정조의 홍씨집안에 대한 개혁의 기록인 어제(御製)를 받아 든 농민들은 기쁜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홍씨 일가는 부하들을 동원해 농민들을 협박하고 어제를 불태워버린다. 정조와의 어제는 이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절망적인 일토양세의 멍에는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때까지 150년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국유화된 하의도

고종 7, 하의도의 농지 20결 외에는 140결에 대한 세금은 절대 징수치 말 것을 명한다. 150년간 맺힌 한의 풀렸다. 하지만, 29년 후 1899년 하의도는 다시 국유화되고 만다. 1897년 갑오개혁 뒤 왕권을 굳건히 지키면서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 소유로 환급된 많은 토지가 재차 내장원 관할로 편입되었다.

 

 

섬의 주인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다

하의도의 농지가 홍씨 가문에서 국유화된지 5, 하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에 친일 매국노의 악명 높은 이완용이 등장한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을사늑약에 체결되었다. 1908년 총리대신 이완용을 찾은 인물은 바로 정명공주의 8대손 홍우록이었다. 홍씨 집안은 매국노 이완용과 협잡해서 하의도 땅을 삼켜버렸다. 세금을 거두려는 자와 주지 않겠다는 자와의 갈등은 사망사건으로 이어졌고, 홍우록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재판은 농민들이 승소했지만, 홍우록은 이미 재판결과에 대해 눈치를 채고 헐값으로 하의도를 다른 이에게 팔아치운 뒤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15000원에 당시 한일은행장 조병택은 유달산을 세 번 팔아먹었다는 목포의 유명인사 정명조에게 다시 57000원에 넘기고, 정병조는 일본 오사카 재벌 우콘 곤자에몬에게 115000원에 넘겼다. 일본인에게 마침내 하의도 땅이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감자와 같은 땅을 받은 우콘은 결국 농민들과 끈질긴 소유권반환청구소송과 시위, 폭력사태, 부녀자들의 구속사태 끝에 겨우 주민들과 합의를 본다.

 

 

화해조서

토지는 우콘의 소유를 인정하는 대신 현 경작자의 영구소작권을 인정한다. 소작료 납부가 우량한 소작인에게는 5년 후 시가의 9할 가격으로 매도한다.

 

 

이것 또한 우콘의 치밀한 각본이었다. 실제 땅 주인인 농민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하의도 땅을 431만 평을 거머쥔 것이다.

 

 

 

3.1운동이 일어났다. 우콘은 조선인들의 독립의지에 위협을 느껴 일본 국회의원 가미나미에게 17만원에 매도한다. 가미나미는 다시 일본 재벌 도쿠다 야시치에게 팔아치운다. 국제경제에 눈이 밝은 도쿠다는 하의도 땅에 대한 과거의 역사를 익히 알고 초장부터 제대로 관리하기로 한다. 쉽지 않게 일이 풀리자, 도쿠다는 친일파 깡패 두목(정치깡패의 원조)인 박춘금을 용병으로 부른다. 이완용과 송병준 등이 나라를 팔아넘긴 1차 매국노라면, 박춘금은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2차 매국노의 대표적인 상징인물이다.

 

 

 

300년 만에 제 주인을 찾은 하의도

김대중은 이처럼 하의도 농민항쟁이 한창일 때 태어났던 것이다. 아버지 김운식도 이 투쟁에 앞장선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1945815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나라는 해방되었다. 도쿠다는 어쩔 수 없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앉은 미국 군정청은 점령지의 재산권 접수를 착착 진행시켰다. <미군 군정청 법령 제33>는 말 그래도 일본이 남겨둔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미군정이 갖게 된다는 현실이었다. 하의도의 분쟁은 후에도 계속되다가 하의도 7.7농민봉기가 절정을 이룬다. 경찰과 농민과의 싸움에서 25살 김점배 청년이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도 없었던 총기살상사건이 미군정 아래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미군정청의 쇼트버거 중위는 3개월간 하의도에 주둔하면서 하의도 주민들의 피눈물 나는 지난 300년 동안의 항쟁사를 알게 된 것이다. 미군정청의 하지 사령관은 이 상황을 듣고 하의도의 문제에서 미군의 발을 빼는 것으로 한다. 마침내 1950213일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발표한다.

 

하의도 농지 1500정보는 하의도 농민들의 소유지이니 무상반환하기로 결의합니다!’

 

하의도는 1729년 정명공주의 5대손 홍상한이 세도를 믿고 하의도를 자기 소유라고 억지 주장을 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미군정과 정부에 이르기까지 땅주인의 명의가 9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의도 주민은 1950년 국회의 결의를 통해 드디어 제 땅을 되찾게 된 것이다.

 

 

 

김대중의 출생

김대중은 이런 아픔과 고통의 우여곡절이 있는 하의도 땅에서 태어났다.

192416일에 김대중이, 이보다 6년 앞선 19171114일에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김대중의 최대정적 박정희가, 박정희보다 10년 늦고, 김대중보다 3년 늦은 19271220,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김대중의 정치적 라이벌 김영삼이 태어났다.

 

김대중의 어린 시절, 탁월하고 성적이 우수했던 아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하의도 땅의 소유권 문제로 일본 지주와 한참 갈등중이이서 김대중 집안의 경제사정은 녹녹치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의 비상한 실력이 아까워하던 부모는 섬을 떠나 목포로 전학을 결심하는데, 이 교육 정책이 김대중에게 결정적인 행운으로 작용했다.

 

 

 

김대중의 아버지가 늘 강조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에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의 지역감정이 어떻게 이렇게 뒤틀려졌을까! 우리의 후손들에겐 이런 감정을 물려주지 않아야 할텐데...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김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두 영웅은 전봉준과 이순신이었다.

 

 

 

1945년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해방이 되자, 누가 과연 독립 조선을 접수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누가 과연 독립조선을 접수할 것인가

 

좌파 박헌영

좌파 박헌영,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그는 조선공산당을 창당하고 일제의 체포령을 피해 전남광주의 벽돌공장에서 숨어지내다 해방이 되자마자 주도권을 쥐기 위해 비밀리에 서울에 올라온다. 그는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우파 이승만

우파 이승만, 외교활동에만 의존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즉시 귀국을 서둘렀으나, 미국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1026일 귀국, 미군정의 보호하에 조선호텔에 묶게 된다.

 

 

중도우파 백범 김구

중도우파 백범 김구, 중국에서 30여년 동안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벌여오다 국내 진공을 앞두고 해방을 맞았다. 그 역시 귀국을 서둘렀으나 임시정부 자격으로는 귀국할 수 없다는 미군정과 마찰을 겪은 끝에 1123일 개인자격으로 쓸쓸히 귀국했다.

    

 

가장 대중적인 준비된 지도자’, 여운형

그러나, 해방 직후 가장 먼저 독립 조선의 주도권을 쥔 인물은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여운형이었다. 몽양 여운형, 일제 시대에 꿋꿋이 정도를 걸으면서도 꾸준히 지하조직을 만들어 해방 1년 전부터 건국동맹을 결성, 해방에 대비해온 독립운동가이다. 준비된 지도자로 해방이 되자마자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할 만큼 탁월한 정치능력을 지녔다. 해외의 화려한 허영에만 기댄 이승만, 등과는 달리 국내에서 민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로 자신을 키워왔던 것이다. 여운형은 준비된 지도자였다(165p). 하지만, 시대는 <좌 아니면 우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었다. 내가 생각할 땐, 여운형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인 듯하다. 하지만, 백범 김구나 여운형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언제봐도 재미진 기억이 있는, 그러나, 울분과 분노와 슬픔이 배여 있는 우리나라 역사...

 

 

김대중의 조선신민당 입당과 탈당

건준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김대중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출신의 백남운이 주도하는 좌익계의 조선신민당에 입당, 목포지부 조직부장을 맡아 합법적인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47년 말 준비된 지도자여운형이 피살당하고 미군정의 좌익에 대한 대규모 탄압으로 인해 백남운 마저 월북을 해버린다. 그의 활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에는 극좌, 극우 편향을 벗어난 민족자주국가 수립의 가장 올바른 노선의 하나로 꼽혔다. 당시 공산당은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자라는 김대중의 장인 차보륜의 말을 김대중은 가슴에 새겼다. 하지만, 이때의 활동은 1980년 전두화 정권에 의해 김대중을 좌익으로 모는데 악용되었고 용공으로 조작되기 일쑤였다. 김대중은 조선신민당을 나와 한민당 지부에 입당한다. 한민당(한국민주당)은 송진우,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만든 보수우익정당으로 친일경력의 지주층이 중심이었고, 인민공화국타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권력가들에게 필요한 내려놓음, 하심(下心)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전쟁발발 3일째, 이승만은 대전으로 도망친 뒤 서울시민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어떻게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던가! 이승만의 모습은 앞에서 이야기한 하의도 사건에서도 이미 드러난 인간의 모습이고, 우리 민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권력의 중심에 섰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의 기득권을 쥐고 있을 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하심(下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파워의 기운이 몰리는 권력의 중심에서 보통사람들 수준의 보편적인 양심조차도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었던 한국인들을 보면서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 일제 감정기와 한국전쟁사의 이 대목은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다.

 

김대중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으로 인해 청년실업가에서 정계 투신을 결심하게 된다.

 

 

 

백무현의 역대대통령을 조망하는 시리즈는 거의 다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북**쿠키님 덕분이다. 이런 만화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 분이시다. 감사하다.

 

 

만화 김대중①』은 말 그대로 하의도에서 핀 인동초’, 김대중을 다루고 있다. 하의도의 역사이야기가 너무 가슴에 남아 이 만화는 꼭 리뷰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버렸다. 배고프다. 점심도 미루면서 이러고 있네. ㅜ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감히 평가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좋다.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라이프스토리를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읽어보았지만, 읽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노벨평화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김대중 대통령! 사상과 철학과 생각을 다 동의할 순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그 분이 괜히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좌 아니면 우>라는 색안경을 벗을 수 있을까? 그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테제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투쟁의 한을 가진 하의도에서 태어난 한 평생 투쟁의 삶을 사셨던 멋진 인간이셨구나! 

하의도의 이야기는 인간 김대중에 대해 더 숙연해지게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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