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치지 못한 편지
김영하의 소설 『검은꽃』에서 황실가문의 사대부인 이종도란 인물이 등장한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장으로서 멕시코행 배를 타는 선택을 한다. 그것은 악수惡手였다. 가족을 위기에 빠지게 하면서도, 가장으로서 그는 생계를 위해 농장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읽는다. 후에 고종황제에게 멕시코의 이런 상황을 편지로 보낸다. 고종황제가 과연 그 편지를 받고 멕시코 이민자들의 생활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나 있었을까? 사대부 이종도의 현실감각은 너무나 뒤떨어진다. 그의 편지는 자신들을 관리하던 권용준에 의해 전달되지만, 그는 그 편지를 불태워버린다.
부치지 못한 편지 이야기이다.
나라가 사라질 운명인데, 생존근육 없는 허울뿐인 대한제국의 초상화가 ‘이종도’란 인물에 깊게 배여 있다. 어린 아들은 농장에서 죽어라 일하고, 딸은 연애질에 빠지게 된다. 결국 와이프 윤씨는 다른 농장주인과 결혼을 한다.
‘1919년 이종도는 조선에서 고종이 승하한 후 거국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엉뚱하게도 왕조의 복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를 쏟으며 집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완성을 채 보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이진우는 아버지의 유품을 모두 불태웠다(319p)’.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하는 사대부의 자가당착적인 행동이었다.
2.
만주의 군부대 주위에 위치한 위안소는 주간스케줄이 정해져 있었다.
일요일(1,2중대)
월요일(3,4중대)
화요일(5,6중대)
수요일(1,2중대 수송부대)
목요일(야전근무대)
금요일(연대본부)
토요일(대대본부)
사병들은 오후 1-5시, 하사관은 오후6시-8시, 장교는 9시 이후 로 스케줄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적게는 열 너댓명에서 많게는 40여명 이상의 군인들을 받았다.
3.
전쟁은 사람들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치를 떨게 한다.
“내일 전투가 있어 내가 살아서 돌아 올 수 있을까?”
“내가 열 세 살 때....”
“살아서 돌아오라고 빌어줘.”
.......
“살아서 돌아오라고 빌어달라니까.”
“살아서, 살아서 돌아와요.”(29p)
그렇게 위안부소녀들에게 하루의 위로를 30분 안에 갈구하고 다음 상대를 맞이해야 했다. 그들은 위안부의 소녀들에게 가끔 담배, 치약, 흑사탕, 비누, 설탕, 돈(1전)을 쥐어주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병이라도 옮기면 가만 안 두겠어.”(30p)
“언젠가 네 더러운 구멍을 총으로 쏘고 말겠어.”(98p)
라고 협박하고 윽박질렀다. 그 10대의 어린 소녀들에게 말이다.
4. '"제발, 삿쿠를 껴요!"
위안부들에겐 가장 큰 문제는 ‘임신’이었다. 당시의 전쟁터의 위안소에 벼룩, 빈대, 사면바리 등이 다양했다. 위생과 청결은 엉망이었다. 비단공장에 취직해서 돈벌어오겠다고 떠난 주인공 금자 앞에 버티고 있는 현실은 절망 중의 절망이었다.
“다시는 아기를 갖지 못하게. 아기가 들어서면 개 값도 못 받으니까.”
내가 개 값을 못 받는 건 괜찮다. 내 몸이 개 값도 못 받는건....
그래서, 위안소의 적게는 초경도 지나지 않은 소녀에서 많게는 20대 중후반까지 여인들은 남자들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소리쳐야만 했다.
“삿쿠를 껴요. 제발, 삿쿠를 껴요.”
삿쿠는 남성용 콘돔의 일본식이름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삿쿠를 끼라고,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쳐야 했다. 밤에는 군인들은 받고 낮에서 냇가에 가서 그 수 십개의 삿쿠를 씻어서 재사용했다. 모든 게 위안부가 챙겨야 했다. 하지만, 그 삿쿠가 사용 중에 터지거나 찢어지기도 했다. 술 취한 군인들은 삿쿠도 외면한 채 욕망을 채웠다. 그렇게 해서 임신을 하면 때론 죽은 아이를 낳기도 하고 때론 산모가 죽기도 하고, 아니면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이를 다른 이에게 넘기기도 한다.
5.
“군인들도 빨래를 하네.”
“군인들도 사람이니까.”
“우리만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면 뭐예요.”
“개나 돼지겠지.”(105p)
6. 부치지 못한 편지2
15세의 소녀가 강물에다 편지를 쓴다. 글도 모르는데 편지를 쓴다.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데까지 끌려와 조선삐가 되었을까요(291p).’
처음에 조선삐라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부를 때 곤충이나 풀벌레이름인 줄 알았던 위안부소녀들이었다. 세계위안소의 조선여자애들을 ‘조선삐’라고 불렀다. ‘버러지 이름 부르듯이’ 불렀다.
‘강물에 쓰는 편지는 쓰자마자 흘러가지만 땅에 쓰는 편지는 흘러가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비석에 새긴 글처럼.
“애 먼 땅에 무슨 문신을 그렇게 새기는 거야?”
악순언니도 나처럼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말을 잘한다. 그녀는 종이나 천에 쓴 것만 글자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왼 팔뚝에 새겨진 글자가 문신인 것처럼. 끝순이 들은 척도 않자 악순언니가 또 묻는다(당시 군인들은 마음에 드는 위안부의 팔뚝에 자기 마음대로 일본어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땅이 아프다고 안 해?”
그 말이 끝순이 손가락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 애는 더는 쓰지 못하고 못을 내려놓는다. 쓰다만 편지 옆에.
끝순은 못으로 땅에 문신을 새겨도 못을 땅에 꽂아 넣지는 않는다. 하루가 지나서야 끝순은 쓰다 만 편지를 마저 쓴다. 어차피 집에 부치지 못한 편지 끝에 그 애는 집주소와 아버지 이름을 꼭 써 넣는다(72-73p).
7.
금실과 은실은 자매이다. 자매인데 같이 위안소로 끌려왔다. 금실은 7살 때 열병을 앓아 눈이 멀었다. 장님이다. 그래서 항상 동생 은실이가 옆에 챙겨 줘야한다. 삿쿠도 대신 씻어줘야 한다. 금실이 언니가 말한다.
“나는 눈물 흘리는 게 무서워.”
“눈물 흘리다가 눈동자가 눈물에 떠내려 갈까봐.”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깨끗하다. 내 눈동자는 흐리고 더러운 데, 추악한 걸 너무 많이 봐서, 끔찍한 걸 너무 많이 봐서(101p).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
역사라는 일람표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인간집단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
한 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
그 존재는 현실인가 꿈인가, 좋은가 나쁜가, 귀중한가 무가치한가?
-로베르트 무질, 『통카』
8.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어쩌면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이다. 아물 수 없는 상처이다......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 많은 소녀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아는 사람, 모른 사람들의 브로커들의 거짓 정보에 이끌리거나, 강제로 납치되거나, 어떤 이는 아버지로부터 팔려가기도 했다. 게중에는 마을의 중간의 브로커 되는 ‘공 씨’가 마을의 10대 소녀들을 일본군에게 넘긴다. 공씨에겐 딸이 넷이나 있었지만 그 애들은 안전했다(?). 공씨는 마을의 이웃의 딸들을 위안부소녀로 넘기면서, “14살이면 다 컸네!”(의역함) 라는 말을 남긴다. 자기 딸내미들도 다 거기서 거기인 나이 대인데도 말이다. 자기 가족 살리려고, 남의 가족을 파렴치하게 팔아넘겼던 민족사의 비극......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9. 부치지 못한 편지3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다.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생사를 알 길 없는 전쟁통에 편지만이 유일한 소식지였다. 하지만 발신인도, 수신인도 있지만, 정작 부치지 못한, 받지 못한 편지들이었다. 이 편지들은 미군이 노획하여 미 국립문서보관소 창고안에 수취인을 기다리고 있다. 62년만에 열어보는 북한 노획 편지함,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 엄선하여(?) 책으로 등장했다.
전쟁은 우리 민족의 상처다.......
"군인들도 빨래를 하네." "군인들도 사람이니까." "우리만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면 뭐예요." "개나 돼지겠지."(105p)
"나는 눈물 흘리는 게 무서워." "눈물 흘리다가 눈동자가 눈물에 떠내려 갈까봐."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깨끗하다. 내 눈동자는 흐리고 더러운 데, 추악한 걸 너무 많이 봐서, 끔찍한 걸 너무 많이 봐서(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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