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었는가?
 그런 질문과 의문사는 책을 열어보면서 확연하게 느껴졌다. 


 19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신사고운동의 3대 인물이 있다. 
 공산주의 이론의 칼 마르크스, 진화론의 다윈, 심리학의 프로이드이다. 그 중 심리학의 프로이드의 영향력은 인류에게 큰 트라우마 이론을 제공했다. 학부시절 교양과목으로 심리학을 들으면, 프로이드의 이론을 우린 접할 수 있었다. 과거의 원인이 있기에 현재의 결과(현상)이 있다는 접근 방식이 바로 프로이드식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접근방식을 거부한다.

왜?
그 방식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정과 평가와 대안은 객관적인 접근일때만 가능하다. 그 객관적인 접근방식은 지금 현재의 나의 상처나 습관이나 성격이 과거에 부모님의 성격이나 배경이 어떻고 저떻고 DNA가 어떻고 저떻고 따지는 식의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스타일을 취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서 출발하고, 모든 문제의 해결도 자신에게서 해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프로드이가 이야기한 원인론의 방식이 아니라 목적론이다. 현재의 모든 현상에 대한 원인분석보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식이다.

  <추천사>에서 싸구려인정을 SNS를 통해서 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위안을 삼으려는 표피적인 시대의 표피적인 자화상! 정말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우물물의 온도는 1년 내내 18도를 유지한다네.


1.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되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그런데, 다시 역으로 나는 인제 변화하기로 결심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환경과 배경과 내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인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자책과 절망과 비관과 부정이 아니다(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냐가 주안점이 아니란 말).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과 관건이다.

2.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열등감이란 Min-der-wertigkeitsgefuhl이라고 한다. 독일어로 ‘가치(Wert)가 더 적은(minder) 느낌(Gefhul)’이다. 즉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서 철학자는 자신의 키가 155cm라고 밝힌다. 하지만 자신은 열등하지 않다. 자신은 불편하지 않고 불편해하는 감정, 즉 열등감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란 말씀!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의 사람!
  주위에 정말 그런 사람을 보고 있다. 자신의 것을 인정받으려고 나이가 충분히 먹었는데 부하직원들에게 자신의 컨텐츠에 대해 인정받고자 하고 자랑하고자 한다. 역겹다. 정말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행동의 목표
1자립할 것
2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위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1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2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

3.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행복해지려면‘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아들러의 심리학은 타인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유대교교리에 그런 말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 준단 말인가?”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네.

*알렉산드로스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이야기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과제의 분리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내 자신이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과 방침에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자신의 자유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이다.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 vs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인생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저자의 솔직한 고백
아버지의 평생 꺼내지 않았던 한 마디 “고맙다”

4.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자네도 나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야.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되네. ‘내가 이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면서도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원이자 전체의 일부란 사실. 이것은 아들러의 철학과 더 나아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왜 인간관계가 고민의 출발점인지, 왜 우리가 자신만을 위해 살아선 답이 없는지, 우리의 목적이 타자공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공헌감이 우리의 존재이유인데, 그게 없다면 우린 ‘ㄴ’이 탈락된 ‘공허감’을 맛볼 것이다.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조차도 자녀들이 무언가 선하고 칭찬받을만한 행위를 했을 때 그들을 추켜세우고 찬사를 보내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행위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자녀들을 대할때도 평가도(칭찬조차도) 비교도 하지 말라.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100으로 잡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다그치고 화내고 분노하고 짜증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를 0으로 잡고 거기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상하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출발하라는 점.

5.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바로 이거야’라는 탄성을 질러댔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꿈이 있다. 위대해지고 놀라워지고 대단한 꿈, 절대 평범하지 않고 비범한 꿈! 그 꿈과 야심 때문에 내 존재가 한 없이 커져 보이는 꿈!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만약 지금 내 꿈대로 커지지 못한 채 죽어버린다면, 내 인생은 너무나도 허망할 거야. 내 인생은 정말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인생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부분에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 평범이 비범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것을 키네시스적 인생과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키네시스는 막연한 꿈과 이상을 부여잡고 그것만이 자신의 모든 인생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상황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결과중심, 목적중심’의 시각이다. 내가 위대한 성악가 되지 못한다면, 내가 위대한 작가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 그러기에 무조건 지금 성공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성공의 종점만이 인생의 유의미함이라고 믿고 사는 인생이다.

  에네르게이아는 ‘과정 자체를 결과를 보는 운동’이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찰나에’ 스포트라이트를 강하게 비추라는 것이다. 지나온 과거, 다가올 미래도 현재‘ 지금 그리고 여기’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지금 현재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거기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그 찰나를 누릴 때 설사 자기가 생각한 만큼의 성공과 번영을 누리지 못하거나, 나이가 스물이 되었건, 아흔이 되었건 간에 중요한 것은 에네르게이아적인 관점은 지금 여기에 인생의 모든 것이 완결된 삶이며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에네르게이아는 현재,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삶의 방식이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다. 정말 나는 ‘지금 여기’를 즐기지 못하고 항상 ‘먼훗날’, ‘언젠가’나의 모습이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파랑새를 쫓아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다분하다. 그런데 눈이 번뜩 뜨인다. ‘지극한 현실주의자’가 진정한 이상주의자란 소릴 저자는 하고 있다. 그것이 또한 아들러의 심리학이요, 과거 무수한 철학자들의 소리이기도 하다. 

 타자공헌...
 어떻게 이런 단어와 목적이 등장할 수 있을까? 우리 인생의 목적은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이 아닌 다른 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른 이에 대한 관심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또 다시 아들러의 주장처럼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와 맞물린다. 나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공헌’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인간관계도 해결된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책이 나올때 적은 리뷰인데, 알라딘에 옮겨봅니다. 순전히 요약정리판입니다. 하루 한 리뷰!)


 


여담...
나는 5장을 읽으면서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다.
제가 얼마전에 올렸던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란 영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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