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결혼한 시오노 나나미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왜 로마로 건너갔는지 안다. 그녀는 로마에 대한 최고의 열정가였다. 내가 대학 수업 때 ‘영국 희곡’ 전공의 여교수님은 ‘나는 세익스피어와 결혼했다’면서 평생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그만큼 세익스피어에 대해선 남다른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내가 아는 그 교수님 말을 빌리자면 ‘로마와 결혼한 여인’인 것이다. 나는 아직 시오노 나나미의 평생 대작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글에 대한 느낌이 조금은 미온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 이 텍스트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적어보고 싶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들의 로마, 로마인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가 주는 흥미와 재미는 바로 ‘인간의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렇다. 특히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이야기했다고 하는 카이사르의 대목에서 나는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로마의 역사를 새롭게 재편하고 구성하기 위해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면서 루비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카이사르! 위대한 혁명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지만 로마인, 로마라는 특별한 도시는 ‘영웅이 필요치 않는 공화정의 나라’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아쉽게 막을 내린다. 로마는 모든 개방과 개혁을 스스럼없이 감행하는 특이한 나라이자 도시이지만 로마의 로마됨은 ‘공화정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해준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로마의 자화상을 이처럼 현실적으로 그렸기에 ‘공화정’이라는 정치적인 시스템으로 유지, 보수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여동생의 손자인 아우구스투스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철저한 ‘연기자‘로서 자신의 소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영웅이 필요치 않은 나라였지만 영웅은 많았던 로마

비록 로마인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보편제국’을 꿈꾸었지만 11년이란 아쉬운 세월의 흔적만을 남긴 위대한 카리스마의 인물-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포에니전쟁의 젊은 주인공 한니발과 그의 부하였지만 나중에는 원수가 된 스키피오, 카이사르 보다 70년 먼저 로마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아쉬운 마무리를 한 그라쿠스 형제, 역사가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던 ‘보편제국, 로마’의 꿈을 ‘관용’의 이름으로 구현하려 했던 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와 카이사르의 미완의 꿈을 기민한 처세술로 ‘로마사상 최대의 연기자’로 분한 아우구스투스 등. 힘과 기백이 넘치는 인물들이 로마사를 수놓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기 나름대로 로마의 불세출의 영웅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 인물들을 5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를테면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려는 의지 이다. 이 5가지로 개인적인 성적표를 제출했는데 모두 면에서 만점인 영웅은 카이사르와 페리클레스 뿐이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나는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하는 장면에서의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슬펐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 시대와 한 나라인 로마의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나아갔지만 그가 너무 앞서 갔던가? 친구인 브루투스도, 당대의 지성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는 키케로조차도 카이사르의 속내를 읽지 못했으니 말이다. 진정한 리더의 발목을 잡는 눈 먼 부하들과 주변인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존재하는구나! 그런데 브루투스에 대한 점수를 보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브루투스의 점수를 보라! 30, 20, 20, 15, 60
 

 자기 나름대로 나라를 위한답시고, 로마를 위한답시고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 카이사르의 안목을 이해할 줄 아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사진은, 암살자 브루투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이라고 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해석에 나는 공감하며 호쾌, 상쾌, 유쾌, 통쾌해했다! 하하하

영웅이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면 여운은 덜할 것이다. 로마의 영웅들은 여운이 깊다. 그것은 그들이 로마를 지독히 사랑하고 염려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로마라는 나라는 바로 ‘공화정’이라는 정치적인 시스템을 가진 나라이다. 이 시스템은 ‘영웅을 필요치 않는 시스템’이고, 이러한 구조의 벽으로 인해 영웅들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지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 나라를 위한답시고, 로마를 위한답시고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 카이사르의 안목을 이해할 줄 아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사진은, 암살자 브루투스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자신들이 점령한 나라와 영토에 대해서 다소 완만한 정책을 썼다. 그것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말처럼 ‘패자마저도 자신들에게 동화시킨다는 그들만의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로마연합’이라는 식민지에 대한 로마만의 스타일이었고 이것이 후에는 ‘팍스로마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로마는 네트워크로서의 도로망을 잘 건설함으로 말미암아 ‘로마연합’이라는 광대한 포괄정책을 잘 구현하기도 한 것이다. 로마사에 대해 막연했던 나에게 저자는 굉장한 통찰을 부여해주었다.

로마인의 개혁 이야기

로마인의 이야기를 시오노 나나미는 ‘혁명’의 키워드의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녀는 로마의 혁명은 과거의 로마를 부정하는 차원이 아님을 밝혔다.
‘자칫하면 개혁이란 오래된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성공한 개혁은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유효한 것을 골라내어 그것이 최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재구축해 나가는 작업이 아닐까’(289)
‘어제는 오늘의 결과이며 오늘은 내일의 거울이다’
역사는 바로 그런 것이다. 로마인의 이야기는 오늘의 결과로서의 현실을 주목하게 되며, 오늘은 또 다른 오늘인 내일을 가름하는 시금석이 된다. 로마인의 이야기는 오늘날 여러 측면에서 나눠볼만한 유용한 어제의 오늘인 것이다.

로마인의 대가, 시오노 나나미의 유혹

사람이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파면 그 분야에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시오노 나나미는 나름대로의 로마사의 대가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하다. 대가가 쓴 로마사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읽고픈 충동을 굉장히 자극하고 도전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물론 이것이 시오노 나나미가 1권의 책으로 자신의 15권의 시리즈 책을 읽게끔 꼬드기며 유혹하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미소를 감추지 않고 그 꾐에 넘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게끔 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적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15권을 읽히기 위한 또 하나의 전략적인 masterpiece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15권을 읽기 전에 이 한권으로 ‘로마, 로마인’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Survey한 것에 굉장한 만족감을 누렸다.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디저트가 아닌 에피타이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는 또 하나의 디저트라고 보기 보다는 내겐 하나의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맛은? 굉장히 좋다.

Written By Karl21(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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