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은영이란 소설가를 염두해 두기로 했다! 순전히 우연한 선택에 의해 빌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 가득담긴 주옥같은 표현과 넘치는 심리묘사, 내면세계를 순례하고 관찰하는 구도는 내 마음과 영혼과 감성의 결을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결코 “무해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러면 우린 진공상태나 달나라 쯤 가 있어야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디테일하게 훑으며 심리를 추적하고 진단하고 두드리는 작가가 최은영이었던가!


책을 펼치면 그 사람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흠뻑 빠져든 기분이다. 단편들이 다 좋구나!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주인공과 공감되는 이야기 옆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에서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
<601,602>에선 아들중심적인 나의 가정과 효진이네 가정, <지나가는 밤>에선 주희와 윤희, <모래로 지은 집>에선 고교때 통신친구였던 공무, 모래와 나.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p.120)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p.127)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는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니까. 그 마음 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 하는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봐(p.141).’

“너에게 그런 충고 듣고 싶지 않아.”
“넌 이런 감정 모르잖아.”
그 때의 나는 화가 났을까 슬펐을까. 아마 외로웠던 것 같다. 모래의 말은 맞았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맷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맷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p.152).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p.180-181).


<고백>에선 미주, 주나, 진희는 고1때 같은 반 친구들이다. 학년이 올라가 미주와 진희가 같은 반이 되었다.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 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 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p.195-196).

진희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친구들에게 고백했지만 미주, 주나는 충격을 받아 못 받아들인다. 그게 고백한 진희를 더 충격으로 몰고가 진희는 자살한다.

한참후에 다시 만난 남은 자, 주나가 미주에게 말한다.

“네가 그때 걜 어떤 표정으로 봤는지 알아? 걔가 사람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경멸하듯 봤어. 넌”
“몰랐으니까. 몰랐으니까 그랬어.”
“넌 예전부터 의뭉스러웠어. 아니, 위선적이었지.남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신경쓰고, 네가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나 있었어?”...
“이렇게 잔인하게 굴면 네 마음 편해져?”
“우습다. 가장 잔인한 사람은 너 아니었니.”(p.206)

그날, 진희에게 지었던 표정을 미주 자신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 애를 바라봤는지 잊은 건 아니었다. 주나의 말이 맞았다. 미주는 눈빛으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우웩”, “정말 역겹다”)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 그 사실을 미주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p.207).


무해한 사람?
나는 얼마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처럼 살아왔던가! 법없이도 살 수 있는 무해한, 무공해의 도덕론자를 자처했지만, 누구에게나 웃고 화내지 않고 온유한 성품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내 곁에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생채기를 남겼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인간실격자이다.


이기호의 단편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윤희를 3년만에 찾아온 민호에게 윤희가 말한다.

“오빠...민호 오빠...이제 이자 놀음 따윈 그만 좀 하고 사세요.”

어떻게...네가 나한테 ...저 사람을 데려올 수가 있어...어떻게 네가 나한테...그럴 수가 있냐고...(p.232-233)

‘이자놀음’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의 이자놀음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듯 했다.


<최미진은 어디로>에서도
“그런데 씨발.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p.31)

이 친구, 최미진과 헤어진 전 남친이 하는 말을 보라.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이 말이 ‘누구에게나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작중의 작가의 가슴에 꽂힌다. 전 남친의 환경적 상처였고, ‘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는 최미진과 연결된 또 다른 깊은 상처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미주나 강민호의 모습이 꼭 나의 자화상 같다는.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 그런 이야길 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편’의 이야기는 잘 하지만, ‘곁’의 이야긴 잘 하지 않는다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 에 따라 이야기와 스토리가 달라지고 그것에 귀를 쫑긋 세운다. 내 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자르고 가르고 베어버리는 게 우리의 습성이라는. 그래서 정말 당사자의 “곁”에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이야기는 잘 없다는 사안이다.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조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p.7)

역시 이기호의 소설에서 제기한 “환대”의 문제이다.

 


우린 결단코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더 따스해질 수 있는 “곁”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빌려서 읽었는데 <내게 무해한 사람>은 읽고난 후 당당 책을 구매했다! 또 읽고 싶다는. 근데 또 읽고 싶은 사람치고 잘 읽는 사람 드물던데...

<손길>에서 숙모와 혜인...
<아치디에서> 랄도와 하민, 랄도의 가정사, 하민의 가정사.

‘내가 춤을 추면 사람들이 웃어. 그러면 마음이 아프거든.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 편해지는 게 있었어. 그래서 그랬어.’(p.291)

‘넌 네 삶을 살거야.’(p.300)

하민의 제스처가 적절한가?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렇게 내 마음,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성찰이 있다면, “곁의 이야기” 를 내 가슴으로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을 제대로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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