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창원에서 살고 대학원이 천안이라 수업을 하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수업도 일찍 마무리하고 카풀을 해서 내려가는 길, 근데 눈이 너무 내렸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지독함으로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부고속도로가 막혔다. 오르막에서 차가 멎더니만 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1시간, 2시간...라디오에선 눈사태를 방송하고 있었다. 그러면 조만간 교통체증이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오전에 출발한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가다가 서다가 반복하다가 아예 멈춰서버렸다. 게중에는 사람들은 차를 놔두고 도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탈출이었다.


눈이 엄청 내렸다. 사방이 눈천지였다. 배가 너무 고파서 교통체증에 멈춰버린 과자운반차량은 과자를 박스 채로 팔기 시작했다. 우린 그걸 운좋게 샀다. 나중에 어떤 친구는 인근의 마을에 내려가 주먹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때 느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재난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구나! 카풀한 사촌 형은 차에서 밤을 지새워야하기 때문에 기름을 아껴야 한다고 히터도 자주 켜주지 않았다. 배도 고픈데, 춥기도 추웠다.


그때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은 헬기로 빵과 우유봉지를 중앙분리대 쪽에 떨어뜨려주는 것뿐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하루를 꼬박 새웠다. 도로에서 기다린 24시간을 지나 우린 기다림에 지쳤다. 결국 참다못한 누군가가 앞쪽에서 시멘트로 된 중앙분리대를 옮겨 길을 텄다. 우린 유턴을 해서 다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행히 반대쪽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서, 차를 내버려두고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재난에 대해 구조적으로 굉장히 취약하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 후에 어떤 이들은 변호사를 구해 보상금을 받는 카페에 가입을 해서 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도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지 않는다. 눈 오는 날, 뼈저리게 느낀 시간!


<세월호>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것, 그것을 거의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읽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다. 똑같은 실수의 번복과 무책임한 사람들, 자신의 책임을 무마하려고 변명과 핑계를 일삼는 사람들, 애꿎게 죽은 303명의 생명들, 그리고 단원고의 푸르디 푸른 아이들, 그리고 피눈물 흘리는 유족들...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더 내려놓고 싶었다. 우울해진다. 서글퍼진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가 이토록 무기력하다는 생각.


예전에 지인의 친구였던 ‘김선일씨 살인사건’이나 나의 ‘고속도로 눈사태’사건, 그리고 뉴스에서 알려졌던 수많은 재앙과 재난 사건들...그에 대한 진정한 책임자는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세월호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기관들, 구조팀들의 발빼기는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1심과는 달리 2심에서 형량이 줄어들었고, 무죄판결도 많았다. 죽어간 생명들만 원통할 뿐이다. 너무 답답했다.


가카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리더십들이 너무 재난에 취약한 구조를 가진 나라!


나의 개인적인 독서의 여정 가운데 한국사의 어두운 면들, 친일, 친미, 반미, 종북, 권력비리, 대통령들의 추악한 역사, 그리고 식민주의적 사관의 교육 등을 재발견하면서 너무 우울했다. 근데 세월호의 이야기는 더 나를 낙담하게 만들었다.


르몽드의 창간자 위베르 뵈브메리는
“바보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던져 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감정도 같이 개입되는 것이기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고작 텍스트 읽기도 이처럼 힘겨운데, 당사자들의 슬픔과 아픔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은 불투명할 따름이다.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도주하지 않고 다시 배로 돌아가고, 승객들에게 퇴선을 지시하고, 승객들이 밖으로 나오기만 했어도, 이 만큼의 저주같은 재앙은 없었을 것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세월호 사건’ 앞에 원통하게 죽어가는 승객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역사적인 비극이 우리 후손들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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