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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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만에 다 읽었다.
지인 중에 시인이 계시는데 그 분 시집은 한 시간만에 다 읽었는데, 이 시집은 그렇게 읽기에는 너무 묵직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편씩, 몇 page씩 읽어갔다.

대학시절부터 알았던 류시화와 그의 철학을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게재한 시와 해석과 설명이 여운이 되어 내 가슴에 매일매일 녹아났다.

박웅현이 “삶은 순간의 합이다”라고 했는데, 류시화는 페이스북에 매일 매일 ‘아침의 시’를 올렸다. 그 하루 하루가 모인 유리병편지가 매일 커피를 갈고 커피를 내릴때마다 음미하면서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음미했다.

한번은 악동뮤지션의 “집에 돌아오는 길”을 듣는데 엘라 훨러 윌콕스의 <가치 있는 사람the man worth while>이란 시를 읽다가 눈물이 터져 버렸다. 시인의 삶의 무게가 녹아난 시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삶이 노래처럼 흘러갈 때
즐거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못 흘러갈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p.39)

악동뮤지션의 그 노래도 계속 들으면, 우울한 골목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내 감수성이 이 시를 읽으면서 터져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울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의 정점”을 찍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좋다.

시에 대한 기억:
1대학시절, 영시 수업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씩 소개하고 발표하고 해석하란 과제가 있었다. 난 그때 어떻게 그렇게 엉뚱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제일 앞에 게재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란 노래가사를 가지고 혼자서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근데 비틀즈의 노래의 숲으로 번역된 wood가 ‘숲’이 아니라 ‘가구’라는 이견도 있다). 수많은 시 중에 팝송가사로 발표할 생각을 했을까? 그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하루키가 있어서, 비틀즈가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2대학원 면접을 볼 때였다.
교수가 내 전공을 보더니 ‘좋아하는 영시를 하나 외우는거 있음 외워보라’고 했다. 면접당담교수는 내가 이전부터 책으로 좋아했던 교수였다. 나는 ‘영시는 외우는게 없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시는 하나 외운다’고 했다. 그럼 한번 읖어보라고 했다.

그때 서정윤의 홀로서기를 읊었다.

홀로서기 5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다른 뜻은 무엇일까.

그땐 이 시가 너무 좋아서 ‘그 시에 납치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몇달 동안 이 시들에 납치되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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