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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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언제나 그렇지만, 리뷰따위의 타이틀은 버리고 잡담을 위시한 발췌문 모음이다. 왜냐고?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인 스페인 내전 당시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파시즘, 사회주의, 공산주의(오, 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같은 건줄 알았는데!), 무정부주의, 노동당(오, 전국노동자연맹과 노동자총연합은 도대체 왜 구분하는 것인가!) 우파, 좌파, 프랑코…. 나를 좌절하게 만든 단어들이다.


  오웰 스스로 사족이라 불렀던 5장과 11장은 당시의 역사와 정당간의 다툼, 언론 기사 등을 다룬다. 다른 장에 비해 지루하지만 배경지식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걸 읽어도 도무지 모르겠는 걸 어떡해. 그리하야, 역사에 관해 무지한 나로선 사실주의에 입각한 <카탈로니아 찬가>(이하 찬가)를 르포로서 평할 수가 없다.


  어떤 고전이나 마찬가지로 <찬가> 또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배경이 되는 1935년 후로 8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역시, 언론이다. 오웰에게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89쪽) 적군을 헐뜯고 아군의 사기 증진(사실 사기증진이랄 것도 없다)을 위한 '공작'은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다.


  언론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날조한다. 의용군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졌다.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40쪽) 하지만 그들은 전시에서 수준이 그리 높진 않았다. 나중에 의용군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훈련과 무기부족으로 인한 결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등주의적 체계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된 것이다.


  여러 매체의 보도는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견야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215쪽) 이러한 보도는 편견을 조성한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들어본 영국인은 많지 않은 반면 영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적폐가 그 본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웰을 분노케 한 것은 전쟁이 무엇보다도 정치적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66쪽) 파시즘에 대항하여도 모자를 판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노동자연맹(연합? 둘을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 두 단체를 구분하지 못해서다)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안달이 났다. 바르셀로나 시가전 이후 공산당은 선전을 통해 통일노동자당을 파시스트의 앞잡이로 몰아간다. 이에 수많은 당원들이 잡혔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갔다. 이런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전투 중에 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277쪽)


  이렇게 발췌문 몇을 묶어놓고 보니 뭔가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아직도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언론은 아무도 믿지 않을 사진을 찾거나 합성해서(오, 이런!)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고선 아군이 하는 일에 무조건, 무논리적으로 편든다. 속보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실치도 않은 일을 단언하듯 말하고, 언론 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저 '알 권리'만을 외치며 자극적인 발언만 외쳐댄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언론의 폭력성을 말했다면, <찬가>는 국가와 이념적 측면을 강조한다. 국가와 이념을 위해 개조된 입은 사악한 지능을 가진 거대한 존재가 도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우리 소시민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고 그리 외쳐도 내 한 표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지레 포기하곤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쓴 오웰도 사실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스페인으로 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념조차 잘 몰랐다. 오웰은 좌파의 입장이었는데 그가 속했던 것은 통일노동자당이었다. 스페인을 떠나고 싶은 진짜 동기는 주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단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꼈을 뿐이다.(256쪽) 심지어 제대증을 얻자 관광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261쪽) 스페인에 처음 왔던 때 보이지 않던 거리, 오래된 돌다리, 사람들의 수레바퀴, 재미있는 반지하 상점들을 인식한다. 앞에서 느껴진 분노와 환멸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었을 했습냐는 질문에 오웰은 식량만 축냈습니다, 라고밖에 답하지 못했다.(96쪽) 그는 죽지 않기 위해 스페인을 떠났고 (그의 입장에선) 파시즘에 대한 대항에 아무런 힘도 싣지 못했다. 그 후 오웰은 자신의 재능인 글쓰기를 통해 분노를 토해냈고 이는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책으로 탄생,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과 경각심을 불어주었다. 전장에서는 무능(역시 그의 입장에서이다)했던 오웰이지만 결국 진실을 호도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자, 그러면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해봐야 한다. 분노가 단순히 분노로 끝나는 순간,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악의 편이 되고 만다. 우리 일반인들이 오웰처럼 큰 영향력을 미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은 우리지만 하나의 불씨라도 만들 수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세상에 자신이 티끌만한다고 주눅들 필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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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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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한국 단편집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와 정서가 다른 책들과 비슷하다. 허나 김연수만의 것이라 느낄 수 있는 표현과 묘사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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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시오패스 - M.E. 토머스


이 책은 위험한 소시오패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인정해달라는 수줍은 ‘말 걸기’다. 소시오패스들을 위한 ‘변명’이자 그들을 대표한 ‘고백’이다.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소시오패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소시오패스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비밀 해제 -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이 나왔으나 시간적으로는 더욱 가까운 과거이나 한물 간 - 동시에 엄청나게 숨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의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다룬다.

동아일보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

신기할 따름이다.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팀 하포드


<경제학 콘서트>로 '~콘서트' 열풍을 이끈 장본인의 새 책이다.

가상독자와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철저히 '초보'를 위한 '거시경제학' 설명서다.

팀 하포드 이름만 믿고 사도 될 듯하다.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의 후속작이다.

전권의 아우라만 봐도 선택의 고민은 끝!










천사는 여기 머문다 - 전경린


'07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가장 크게 실린 작품이 7년만에 단편집으로 꾸려나왔다.

<물의 정거장> 이후로 11년 동안 써내려간 단단한 9편의 단편은 가히 전경린 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빵집의 경영 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일반적인 경영과 마케팅 성공 잣대를 무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최고의 빵을 만들며, 부패와 순환작용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시골빵집에 찾아낸 '부패하여 순환하는 경제'의 핵심은 발효와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이 4가지로, 다루마리는 이 모든 것을 지향하며 실천하고 있다.




젊은 기획자에게 묻는다 - 김영미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을 통해 세상을 더 다채롭게 하는 일곱 명의 젊은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기획자로 일해온 저자가 전시 기획, 공연 기획, 마을 기획, 홍보 기획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발히 자신만의 역량을 펼쳐보이는 젊은 기획자들을 만나 "기획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라는 기획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공통 질문을 중심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신들을 위한 여름 - 에드워드 J. 라슨


199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 수상작이다. 
진화론은 근대주의자와 원리주의자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고 문화계와 과학계 지식층 사이에서 표면적으로 불가지론이 상승세를 타면서 한층 더 심화됐다.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미국의 논란은 근본적으로 미국 공립학교 생물 시간에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는 과학 이론과 충돌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25년에 일어난 스콥스 재판이다.

이 책에서는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90년 전에 일어난 옛 이야기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엮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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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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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영원한 '청년' 작가라 불리는 박범신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동생에게 <은교>와 <비즈니스>를 선물하고 <소금>을 가지고 있지만 여태껏 읽어보지 않았다. 왜냐고? 그의 이름에서 고루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짧은 경험이지만 한국문학의 '노장' 작가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고루하고 꼬여 있다. 고 최인호 작가가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다. <촐라체>, <고산자>에서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근래에 영화 '은교'를 봤을 때 놀랐다. 노교수 이적요가 어린 은교를 사랑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이 영화에서 '노(老)작가' 박범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젊은과 늙음, 욕망과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구식 감각(<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느껴졌던 감각이다. 다시 한번 고 최인호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이 아닌 젊고 가벼운 느낌으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사람들이 박범신을 '청년'작가라고 칭하는 이유를 살짝 엿보았다.


  <소소한 풍경>은 이번에도 사랑 이야기다. <은교>에서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사랑이다. 전문 용어로... 흠흠, 알아서 생각하시라. 그 사랑이 플라토닉 러브였다면 그나마, 그나마 어느정도 용인이 됐을텐데 읽어보면 상세한 묘사가 없을 뿐이지 엄청난 육체적 사랑이다. 그렇다. 박범신은 사람들이 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을 잘 포장하여 내놓는다.


  <은교>와 <소소한 풍경>이 3류 포르노처럼 저속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작가의 사유의 깊이다. 겉으로 본다면 세 남녀의 육체적 행위는 손가락질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박범신은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사랑이란 단어로 재단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반문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 말이 가진 폭력성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과시욕이 합쳐져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니면 안돼, 넌 내 거야라는 말은 오직 '나와 너'라는 폐쇄적인 관계망에서 서로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일 뿐이다.


  세 남녀는 '사랑한다', 'sex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덩어리진다'고 한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독점적 욕망으로 서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지탄받지 않는다. 또한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둥 남의 기억과 추억까지 소유하려는 모습에서 사랑은 '정보화'에 따른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에게 덩어리지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깊은 이해였던 것과 다르게 말이다.


  이참에 금기된 사랑에 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우선 <은교>와 <롤리타>를 비교해보면서 말이다. 과연 '진짜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감정을 단순히 사회적, 정신적 질병으로만 취급해야 할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사랑은 국어사전이 말하는 몇 개의 정의만으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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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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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도무지 쉴틈이 없다. 문단과 이야기의 호흡이 길어 흐름을 한번 놓치면 찾기가 꽤나 힘들다. 프랑스 고전의 특성일까. 빅토르 위고만 해도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에서 그 장기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덕분에 1장을 다 못 읽고 덮었던 기억이 있지. 위고에 비해 발자크가 나은 점은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고는 이런 설명이 필요할까 할 정도로 말만 길다는 느낌인 반면 발자크는 개연성 있게 말이 많다. (참 다행이지) 한번 말을 시작하면 네댓 쪽은 소화해버리는 수다쟁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야기 흐름은 끊이지 않는다. 보통 문학에선 행갈이를 하고 문단을 나누면서 이야기 전개가 약간 바뀌는데 발자크는 카메라로 롱 테이크 씬을 찍듯이 계속 이어진다. 끊어 읽기 힘든 구조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 장면, 인물 묘사로 가득찬 1장 '고급하숙집' 고비만 넘어가면 4장까지는 금세 읽는다. 인물도, 사건도 흥미진진하다.


  어찌 보면 얼마 전에 읽은 <오만과 편견>과 궤가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결혼이 바탕인데, <오만과 편견>은 가문과 돈, 출세에 대해 다소 밝게 그렸다면 <고리오 영감>은 그 아래의 암투를 묘사한 느낌이다. 남편의 가문과 아내의 지참금만이 결혼의 목적이 되고 각자 내연관계를 가지는 건 너무 당연하게 그려진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 눈에 띌까, 괜찮고 성격 좋은 사람이 보이네, 이런 쑥덕거림이 있는 사교계가 아닌, 자신의 영향력을 알아보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사교계가 있다.


  춤추고 술마시고 노래하는 이 사교계는 겉으로는 신나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서로를 밀치고 시기하는 시선이 보인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보세앙 부인의 마지막 파티이다. 내연남에게 배신당하고 파티에 쓸쓸한 모습으로 나설 보세앙 부인을 보기 위해 파리 사교계의 모든 인물이 몰려든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는 셈이겠지만 속으론 꼭지점에 있던 그녀가 저 아래로 적나라하게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비웃고 위안삼을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관계는 역전되고 모두들 아래는 쳐다보지 않는다.


  이런 사교계의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옷과 마차, 마부, 미용사, 하인까지, 잘나보이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결혼할 상대의 가치는 그(그녀)가 가져올 지참금으로 정해진다. 돈에 눈이 멀어 도박과 무리한 투자가 성행하고 빚만 늘어간다. 보트랭은 으젠을 돈의 액수로 유혹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면 쉰 살이 되어서야 연수입 5만 프랑이 될까말까 하겠지만 사교계에 뛰어들어 여자의 지참금으로 한밑천 잡는 괜찮은 혼(婚)자리를 선택한다면 그정도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명예심과 고결함을 버리면 돈은 성공과 사치를 불러오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이미 레스토 부인 집에서 사치의 냄새를 맡은 으젠은 출세를 위해 결국 사교계로 뛰어든다.


  하지만 고리오 영감이 있었기에 으젠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은 가난하게 살아도 되니 두 딸에게 무한정한 사랑을 배푸는 영감을 보고 으젠은 마음을 다잡는다. 애초에 출세를 위한 마음가짐은 보트랭이 말했던 검은 속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고리오 영감의 딸들의 모습과도 대비된다. 사교계에 진출해 자신이 출세하길 원하는 으젠은 어머니와 자매들에게 돈을 부쳐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보낸다. 돌아온 답장을 보고서 펑펑 우는 으젠에게 출세란 그저 이기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감의 딸들은 다르다. 어릴 적부터 요구하는 것은 영감이 모두 들어주었고 그녀들의 지참금, 생활비, 재산으로부터 오는 후광은 딸들을 돈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고리오 영감의 부정과 사랑은 돈에 찌든 타인들에 비추면 훌륭해보이지만 돈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는 점에서 어긋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돈으로 받은 사랑과 돈으로 주는 사랑 모두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으젠은 꼼수를 써서(물론 그당시에는 흔한 방법이었지만) 출세하라고 부추긴 보트랭도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어가는데 무도회에 갈 생각만을 하는 델핀을 보며 세상에는 치사한 범죄만 날뛰고 보트랭이 차라리 더 위대하다고 말한다. 돈을 수단삼는 것보다 목적으로 두는 것에 날선 비판을 한다. 으젠은 황금과 보석으로 덮인 이 더러운 사회를 그 누구도 묘사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야기의 마지막엔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라는 도전적인 어투로 말한다. 으젠은 고리오 영감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한 셈이다. 사교계와 돈, 출세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다. 뒤에 이어질 '인간희극'에서 으젠이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그가 사회와 타협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고결한 감정을 알았고, 고결한 감정이 어떻게 치사스럽고 비좁고 겉만 번지르르한 이 사회와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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