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X모나미X알라딘 작가펜(헤밍웨이)

평점 :
절판


글씨는 거침없이 잘 써지나 똥이 많이 생겨 장식용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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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ㄱㅂ 2015-12-29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재밌는 평이네요.
 

  난 뭐든지 갖고 싶다. 그게 고가의 물건인든 뛰어난 재능이든, 그 어떤 것이든 동경하는, 어쩌면 썩 좋지 않은 습관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문자와 공부하는 인문학, 철학, 과학보다 예체능이 더 탐난다. 체보다는 예에 욕심을 내는데, 운도이야 어차피 몸 쓰는 것. 그저 행동하는 근육만 조금 단련이 되면 큰 무리 없이 남들과 즐기기 어렵지 않다. 운동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이리 느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대표 골키퍼로 다른 학교와 축구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농구를 시작하고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예술 쪽은, 당최 뭐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쳐서 '듣는 법'은 알지만 느끼고 소리를 내는 법을 전혀 모른다.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웠어도 기계적으로 음만 내는 법을 배웠지, 진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었던가.


  대학 동창 중 피아노를 제법 잘 다루는 친구가 있다. 한번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친 피아노 곡이라며 동영상을 올렸다. 깜짝 놀랐다. 화질은 안 좋지만 들리는 음악은 수준급이었다. 상상을 뛰어넘어 적어도 내 귀에는 원곡만큼 멋있었다. 덧글로 네가 친 거 아니지, 라고 쓰려다가, 내 몰지각함과 질투심니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관뒀다.


  마침 여자친구도 피아노를 즐겨 치고 그걸 듣다보면 즐겁고 신나기에 나도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운동과 피아노 강습을 겸하기 힘들어 시작은 못했...던 게 아니다. 시간은 핑계다. 기숙사 지하에 피아노 한 대가 있어 언제든 가면 연습할 수 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것뿐이다.



  여자친구에게 전자키보드를 잔뜩 물었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따로 나만의 공간에 살면 키보드를 하나 사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할 거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캬, 음악작업이라니, 정말 그럴 듯해보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올해 초에 한 친구는 통기타 연습을 해서 멋진 노래와 함께 공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나와 비슷한 헛소리일 뿐이라는 게 며칠전 밝혀졌다.


  올해 초였던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두었다. 회사 게시판에 동호회를 만든다는 글이 올라왔다. 워낙 악필이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으로 독학하긴 힘들 것 같아 가입신청서를 들이밀었다. 인원이 부족해 결국 동호회는 시작하지 못했다. 내친김에 글씨 교정이라도 해보고자 결심했다. (가끔 두 여동생과 글을 쓰면서 놀다보면 소녀소녀한 글씨체 가운데 요즘 초등학생도 안 쓸법한 글씨체에 좌절하곤 했다)


  글씨를 교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바른 글씨체로 쓰기를 꾸준히 하면 된다. 교보문고에서 많은 교정 관련 책 중 하나를 골랐다. 굳은 마음으로 첫 획을 그었다. 이틀 연습하고는 다신 책을 펴는 일이 없었다. 나에게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는 이미 쓰기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미술의 범주였다.


  모든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싫어한 과목은 미술이었다. 음악이야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가정은 나의 화려하고 따뜻한(?) 손놀림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술은 아니었다. 필기야 암기하면 된다지만 실기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니, 똥이었다. 똥...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사실 나도 미술학원에 다녔더랬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 한가지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겉에 니스를 발라 말려야 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던 나는 격정적으로 니스를 발랐다. 빳빳한 니스붓이 나의 스피드를 만나... 왼눈에 니스가 들어가고 말았다. 황급히 물로 씻어냈으나 그게 독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안경을 썼다. 물론 니스가 들어가지 않은 오른눈도 같이 나빠졌으니 시력 저하의 주범이 니스는 아니다. 니스가 눈에 영향을 주었든 안 주었든, 아픈 기억이 마음 깊숙히 박혔으니 미술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뭐, 트라우마 따위는 단순한 핑계일 뿐이고, 나는 단순히 미술 감각이 심히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색감이 정말 부족한 편이다. 미술시간에 사과를 연필, 볼펜, 목탄으로 데셍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볼펜 한 자루만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과의 명암을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엉망인 그림을 제출했다. 아직도 집에 이 그림이 있는데, 다시 꺼내보려니 침대 밑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과여서 그럴까 싶다가도, 미술을 즐기는 다른 공대생을 보면 그건 아닌 듯싶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을까. 운동이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듯이 미술도 마찬가지려나. 잘 그리려 하기 전에 많이 보고 느껴야 할까. 부족함을 안다면 꾸준히 보면 된다. 기초연습부터 하면 되고 죽어라 그려보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못한다. 애초에 책상에 앉아 당장 성과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면 스스로 참을 수 없다. 이 기초연습이 언제 어떤 결과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논리적인 식에 근거하여 풀어가면 결국 답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게 없다. 게다가 예술은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분야기에 계속적인 발전을 꿈꿔야 한다. 나는 그런 기약없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들고온 타블렛을 보고 순간 탐이 났다. 단순히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 마음에 든 건지, 이 도구로 그릴 그림을 꿈꾼 건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웹툰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림으로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있던 장소에서 함께 만난 사람과 나누어 먹은 음식, 주변의 분위기를 단순히 사진으로만 남기기 아쉬워서이다. 사진은 어떤 것보다도 장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허나 그림은 삐뚤뺴뚤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기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해도 그 대상에게 내 마음이 투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그때의 나를 알 수 있다.


  지하철 문 주변에 서서 노트에 지하철 풍경을 그림으로 끼적이는 사람을 보았다. 캬,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인가! 고1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캐릭터화 시킨 만화를 종종 그리셨다. 심지어 국어선생님이셔서 좋은 글과 귀여운 그림으로 보기도 좋았더랬다. 이리 보니 그림을 그리고픈 열망과 감정이 멋있어 보이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일기도 한다. 흠, 충분히 그렇다. 나란 사람은 허세와 멋부림으로 사니까. 그래도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좋은 태도라고 생각(이라 쓰고 합리화라 읽는다)한다.


  그림 생각을 하다가 책을 주문했다. 재작년에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제공받은 김충원의 <이지 드로잉 노트>다. 정해진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 하니 그림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이 폈다. 절반도 못 마치고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며 덮어버리고 말았다. 선 몇십 번 그어보고 재능을 운운하니 이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인기가 많은(그렇다고 하는) 블로거가 낸 <데일리 드로잉>도 함께다.


  역도 선수들은 첫 1년은 무게를 달지 않고 빈 바로 자세를 바로 잡는단다. 바는 쇳덩어리지만 역도동작을 하기에는 가벼운 편이다. 바만 쥐고 운동을 하면 힘을 주체 못하고 하늘로 휙휙 날려버리고 자세도 망가져버린다. 이렇게 1년 동안 자세 교정만 한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습관을 만드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포기했던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씨 교정 책도 다시 펴본다. 겨우 하루치 연습하고 말았다. 아, 이런 의지박약...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끼칠 정도다. 표지 왼편에 먼지가 쌓여서 물티슈로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책장 가장 위에 두었다.


 그놈의 허세 때문에, 연필로 필기해보고자 주황이 파버카스텔 연필을 한 다스나 사뒀다. 벌써 2년 전이다. 열두 자루 중 이제 한 자루를 절반 정도 썼을 뿐이다. 연필은 충분하다. 지우개도, 연필깎이도, 노트도 충분해. 이제 직접 쓸 차례다. 자자, 올해의 9할이 거의 지나간 시점에서 올해의 늦은 다짐을 해본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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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 


1. 난 원래 셜록 홈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시절, 제대로 된 장르문학을 괴도 뤼팽과 함께 해서 이런 모양이다. 뤼팽에 비하면 홈즈는 신사도 못돼고, 멋지지 못했으며 전혀 쿨하지 못했다. 제일 처음 읽은 홈즈 시리즈는 단편을 만화로 꾸린 책이었다. 그림체고 뭐고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뤼팽의 <기암성>에 비해 스케일이 너무도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15년도 더 된 기억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2. 이런 내가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홈즈의 데뷔라고 할 수 있는 <주홍색 연구>(나로서는 정말 적응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절반은 지금, 절반은 과거의 전기를 말하는 추리 소설이라니...)를 읽고 어릴적 만화로 본 단편집을 독파한 후, 드디어 홈즈 시리즈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배스커빌 가의 개>로 넘어왔다. 뭐, 솔직히 말하건대 내가 <주홍색 연구>를 읽은 이유는 시리즈를 차례대로 읽기 위해서였고(<배스커빌>은 3번쨰에 위치한다), <배스커빌>을 읽은 이유는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기 위해서였다. 팬심에서 발로된 독서가 아니어서 셜로키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3.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사실 도서 정가제 전에 피에르 바야르 책을 잔뜩 사뒀지만 잘 읽진 않았다. 어느날 책장 정리를 하는 중에 제목이 참 마음에 드는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제목부터가 매우 도발적이다. 읽지 않은 책을 어떻게 말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지 않나.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즈의 수사가 틀렸다고 말하고 말하지 않나. 제목부터 뭔가 구미를 팍팍 당긴다. 이 한순간의 유혹 때문에 3일 간의 부산여행길에 기차에서, 버스에서, 거리에서 세 권의 홈즈를 겨우 마쳤다.


4. 책은 말 그대로 셜록 홈즈가 틀렸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이 분야를 추리 비평이라고 칭한다. 문학 작품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시 곱씹어보며 생각한다. 이 책의 전작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나>, <햄릿을 수사하다>와 비슷한 궤의 책이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가 추리비평 시리즈(?) 중 마지막이어서인지, 이 책 중간 중간에 이전 책(애크로이드, 햄릿)에 대해 말한다. 솔직히 이 점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책을 읽기도 전에 다른 책에서 스포를 당한 느낌이랄까.


5.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배스커빌가의 개>의 범인이 스태플턴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베릴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말한 근거를 여기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책의 절반을 여기다 옮겨써야 하므로 패스한다. 읽다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반박이다. 흥미가 돋는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요약할 능력이 안돼서 죄송합니다.


6. 책을 모두 읽으니 홈즈는 이 작품에서 형편없는 탐정으로 보인다. 범인의 의도대로 추리하고 행동한다. 의뢰자(헨리 배스커빌)를 위험에 빠트리고, 엄한 사람의 사망 사건을 오독한다. 으스스한 배스커빌의 자연 경관에 빠져 사건의 디테일을 신화적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사고조차 사건으로 착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진범(베릴)을 찾지 못했다.


7. 피에르 바야르는 이 빗나간 추리가 사실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의 의도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많이 알려진 사실로, 코난 도일은 일반문학쪽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홈즈는 매우 모순적인 존재였다. 상업적 성공을 줌과 동시에 '코난 도일=셜록 홈즈'라는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난 도일은 일반문학을 쓰기도 했고 작품도 썩 괜찮았다고 한다) 그리하야 코난 도일은 큰 마음을 먹고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 교수를 싸움 중에 계곡 아래로 떨어뜨려 죽였다.


8. 허나 홈즈는 코난 도일의 생각보다 엄청난 인물이었나보다. 많은 독자들이 홈즈를 살려내라고 수많은 청원을 냈다고 한다. 작가에게 강력한 항의를 넘어 협박한 독자도 있다고 하니 홈즈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코난 도일의 어머니조차 홈즈를 살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단다. 그는 장고 끝에 결국 <배스커빌 가의 개>로 홈즈를 컴백시켰다. 죽었던 홈즈가 살아돌아온 것은 아니고, 왓슨이 쓴 이전 사건의 회고록 정도라고 한다. 도일은 홈즈를 완전히 살리지는 않았지만 우선 컴백은 시켜놨으니 독자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그 이면에는 엇나간 추리를 통해 홈즈에게 빅엿을 선사함으로써 사소한 복수를 선사했다.


9. 도일과 홈즈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안의 세계가 온전히 소설만의 것은 아니다. 가상 인물인 홈즈를 없앤 코난 도일이, 현실의 독자에게 뭇매를 맞아 홈즈를 되살렸다. 그런데 홈즈가 잘못된 추리를 하면서 코난 도일이 홈즈을 엿먹인다. 이는 독자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10.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실존 인물인 조르바를 만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다. 그리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독자 중 몇은 조르바에게 감명받아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을 것이다. 조르바에게 영향을 받은 감정은 소설뿐만 아니라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반영됐을 것이고, 반영된 감정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것이다.


11. 쓰고보니 이 글을 보면 책이 뭘 말하려고 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사실 중간에 현실과 소설세계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냥 뛰어넘었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셜록 홈즈가 정말 틀렸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잇,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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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6. 


1. 한 달간의 황금방울새. 두 달간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는 후반부에 재밌기라도 했지, 양 많은 황금방울새는 뒤로 가면 갈수록 엄청나게 흥미가 떨어졌다. 중간중간 잡지와 셜록 홈즈를 보았으나 길게 읽는 책이 두 권이나 되니 이쯤되면 머리가 터질 모양이었다. 여차저치 책들을 모두 끝내놓고 머리를 식힐, 재미만을 위한 책이 필요했다.


2. 전부터 읽으려던 마션을 꺼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터치했다가 맞으려나. 이런 흥미 위주 소설은 전자책으로 가볍게 샤샤샥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종이책이 16만에 육박하고 전자책은 무려 6만이다. 뜬금없지만 전자책이 점점 활성화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국내에 새 기기도 두 개나 나오고.


3. 베스트셀러 탐독자인 나로서는 조금 늦게 읽은 편이다. 책이 발간되자마자 눈도장을 찍어놨지만 한참 책 읽기에 난항을 겪던 때라(조르바를 만나고 있을 때였다...) 새 책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 '마션'이라는 제목만 듣고 무슨 이런 어감의 단어가 있나, 싶기도 했다. 무심코 넘겼던 책인데 슬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쪽에서 입김이 생각보다 셌다. 자주가는 전자책 카페에서 슬슬 마션이 재밌다는 소문이 돌고, 리X북스 사람들이 지금 많이 읽고 있는 책 1위에서 쉬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유행을 좇는 제가 이 책에 조금씩 눈길을 보낸 건...


4. 잠깐 구매내역을 살펴보니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마션을 황금방울새와 같이 산 것이다. 두둥. 뭐부터 읽을까, 하다가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이 아닌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책(황금방울새는 2014년 퓰리쳐상 수상작이다)을 골랐는데, 지금 보니 이런 낭패가 있나.


5. 마션은 화성 탐사를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의 행성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우주복만 남은 건 아니고, 임시 거주용 막사와 그 안의 환경을 조절해주는 기계, 화성상승선(MAV), 약간의 식량, 식물 씨앗(마크는 생물학자라고 한다) 등등이 있다. 자, 이제 마크는 남은 것들을 가지고 화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탐사대를 위해 NASA가 떨궈놓은, 아-주 멀리 떨어진 MAV를 향해 갈 계획을 세운다.


6.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숨쉴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산소가 포함된)공기, 마실 수 있는 물,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식량,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공간. 헌데 마크가 남겨진 화성이란 공간은 척박할 따름이다. 산소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식량은 커녕 물도 없다.(아쉽게도 얼마 전 나사가 화성에서 소금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중대발표라고 하길래 소설 마션이 논픽션이라는 발표를 할 줄 알았다) 화성의 차가운 대기는 마크의 체온을 마구 뺴앗아간다. 이런 와중에 저 멀고 먼 곳까지 여행을 해야 한다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7. 하지만 소설에서 주인공이란 어떤 존재인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와도, 죽을 고비를 앞두고도 뭐든 이겨내고 긍정적인 인물 아니던가! 그는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무려 2년의 생존 계획을 세운다. 뭐, 물을 전기분해해 산소와 수소를 분리한 후 태워서 어쩌고 저쩌고 한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 그의 해박한 과학 지식이 드러나지만(사실 고등학교 과학만 배웠어도 알 만한 수준이다) 그것들을 대충 넘겨도 읽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8. 화성에 남은 마크를 구하기 위해 전세계가 구원의 기도를 올린다. 여기저기서 힘내라고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뉴스에도 온통 그의 이야기가 넘친다. 후반부에는 우주개발에 힘쓰던 중국조차 그의 안녕을 위해 나사와 힘을 합친다. 좀 말이 안되는 설정이긴 하다만, 미국식 소설로는 당연한 전개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제 G2 중 하나인 중국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둘이 뭉쳐 미국인 마크 와트니를 구한다, 작가는 위 아더 월드를 부르며 글을 썼음에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 큰 의미는 없다. 미국은, 과거에는 전장에 홀로 남겨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미래에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을 보낸다. 뭔가 의미심장하다. 물론, 농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마션의 주인공은 모두 맷 데이먼이다)


9. 식량인 감자는 물론이거니와 물과 산소까지 자급자족해야 하니, 인터넷에서 말하는 화성판 삼시세끼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화성에 홀로 남겨졌으니 21세기(22세기인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도 할 수 있겠네. 그나마 윌슨 대용으로 동료들이 가져온 드라마와 음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10. 나는 과학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아닌, 어떻게 표현하냐를 중점에 둔 SF를 좋아한다. 단순히 과학을 이야기에 써먹는 게 아닌, 인간의 번뇌(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짜 나인가, 우리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를 다룬 작품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마션은 조금 부족한 편이다. 내 기준에는 SF라 불리기에는 조금 애매한 작품이다. 과학을 끼얹은 페이지 터너에 가깝다고 할까. 전형적인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고 위기는 예상 가능하다. 첫 문장, '아무래도 좆됐다'가 주는 기대치를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재밌게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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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4, 045.


1. 오랜만에 진득-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전에 읽은 책이 김영하의 <말하다> 같은 몇 쪽 읽지도 않고 바로 덮어버렸거나, 머리 쓸 일이라곤 하나 없이 읽는데 재미만 있으면 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도착의 론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동시에 읽은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주 지드으으으으윽한 책이어서 조금 재밌는 책을 찾아야 했다.


2. 그러던 중 눈에 띈 것이 황금 방울새. 무슨무슨 상에 약한 나는(재미로 읽는 책은 다 팔아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작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퓰리쳐상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에 눈길이 계속 갔다. 신뢰하는 소설 전문 리뷰 사이트, 소설리스트에서 2015년 퓰리쳐상 수상작을 그 주의 소설로 선정하니, 작년 수상작은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팍팍.


3. 주인공은 어린 학생 시오 데커. 불량한 친구와 사고를 쳐 학교의 부름으로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던 길에 갑작스런 비를 피하고자 들른 곳은 미술관이다. 둘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다가 그만 미술과 폭발 테러에 휩쓸리고 만다. 폭발 현장에서 시오는 노신사를 만나고 뭐에 홀린듯 '황금 방울새'라는 미술품을 가지고 탈출한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는 죽고, 아빠는 진즉에 집을 나갔으니, 시오는 순식간에 고아 신세가 된다. 부유한 친구의 집에도 살고, 미술관 안에서 만난 노신사의 사업 파트너와 함께 지내기도 한다. 갑자기 돌아온 아빠는 시오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고 거기서 평생의 친구(과연 그럴까...) 보리스를 만난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는 뒷전이고 온갖 나쁜 짓만 하고 다닌다.(술을 마신다는가, 약을 한다든가) 그러는 중에도 그림 '황금 방울새'는 꽁꽁 싸매진채 시오만 아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 전 세계는 테러사건 때 사라진 '황금 방울새'를 찾는다. 시오는 이 그림을 계속 간직하고자 노력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4. 요약이 엉망인 이유는 내가 원체 글을 못 쓰기 때문. 요약이 다소 긴 이유는 분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전자책 합본으로 읽어서 정확한 양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검색해보니 1권이 580쪽, 2권이 488쪽이란다. 지금 읽으려고 준비한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데, 이 두꺼운 책이 겨우 500쪽이다. 그러니까, 어휴, <황금 방울새>는 이 책 두 권 두께구나. 잠깐 교보문고에서 종이책을 봤는데 글씨도 생각보다 작다. 이거, 종이책으로 읽었으면 어느 세월에 다 읽었을랑가 모르겠다.


5. 앞에도 썼듯이, 이 책은 순전히 나의 허영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두껍고 뭔가 있어 보이는 책. 2014 퓰리쳐상 수상작. 가장 인상깊게 다가오는 광고문구는 '완독률 98.5%'다. 아니, 어떻게 완독률을 따지는 거지? 사실 여기서 완독률은 읽은 사람의 비율이 아니라 호킹지수를 말한다. <시간의 역사> 지속적으로 팔리는 스테디셀러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고 책장에만 꽂아둔 것을 빗대어 만든 말이다.(전자책에서 하이라이트나 책갈피 정보를 수집하여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의 역사>는 호킹지수 6.6%,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4%다. 43.4%의 <헝거게임>과 비교해서 이 책의 호킹지수 98.5%는 엄청난 수치다.


6.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많은 회원이 성장, 연애, 추리, 스릴러, 이외의 많은 장르가 뒤섞인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고 했다. 한번 잡으면 쉬이 놓칠 수 없는 책.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궁금해서 답답한 책. 과연 호킹지수에 걸맞게 사람들이 이 책을 그렇게 재밌게 읽었을까.


7.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완독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분량이 많은 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읽는 재미만 있다면 제아무리 두껍더라도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끝까지 읽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두꺼운데다가 읽는 재미도 없는 거야...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재의 기발함도 한몫하지만 특유의 전개감 때문이다. 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장황하게 늘여서 지루하지도 않게, 적당히.(참 어려운 기준이구만) 허나 <황금 방울새>는 늘어져도 너무 늘어진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자동차 보닛 위 엿가락처럼 말이다. 근래의 소설에는 질척거릴 정도로 구사하는 묘사가 특징이라고 하더라도(카더라임) 작가가 너무 말이 많다. 아직 프루스트는 읽지 못해서 묘사의 끝판왕은 모르지만- 내가 읽었던 묘사가 가장 장황한 소설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이다. 이 책은 내 기준에 있어 묘사가 엄청나게 길었지만 적당한 때 끊고 적당한 전개속도를 보여서 묘사가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도나 타트는... 지루할 정도로 말이 많다. 어느 하나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한다. 문장은 성긴 것도 문제지만 너무 빡빡해도 문제다. 아, 역시 나는 싸구려 독자다.


8. 문장 덕분에 이야기 진행도 느릿- 느릿. 사실 속도감만 아니라면 읽는 데 어려움은 없을 듯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 해봐야 사실 뻔할 뻔자다. 2권 후반부에 그림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냥... 총으로 위협하고, 도망치고, 웃고 떠들다 총쏘고 죽고 또 도망치는구나... 근 정도. 그분들은 분명 제대로 된 스릴러를 못 읽어본 게 틀림없다.


9. 결론적으로 카페 회원들이 말했던 성장, 연애, 추리, 스릴러 중 남는 건 성장뿐이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시오에게 사고 당시 얻었던 그림은 결국 과거의 유산이다. 그림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고 숨기는 등 많은 노력을 들인다. 시오 데커가 어떻게 과거를 떨쳐내는지를 무려 1,100쪽에 걸쳐 집요하게 파고든다. 옛날 것들이 없어지니 만사가 해결되더라- 식의 이야기여서 더욱 허무하다. 시오가 한층 성장한 것은 기쁘지만, 어찌보면 참 슬픈 이야기. 아, 갑자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기억의 쓰레기장으로 떨어지는 봉봉...


9.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한 달 넘게 시간을 투자하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 건진 책은 처음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후반부가면 엄청 재밌어서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읽었는데 <황금 방울새>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책이 되어버렸다. 더욱 웃긴 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서 시오가 수쪽에 걸쳐 독백하는 부분이다. 작가가 하고픈 말을 쭈욱 쓴 짧은 에세이의 느낌이다. 산다는 것은 저주와도 같다, 우연은 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의 핑계다... 등등. 이런 메세지는 인물과 이야기에 자엽스럽게 녹였어야 했는데, 본편의 마무리는 애매하면서 에필로그를 갑자기 수필로 끝내버리면 어쩌자는겨. 고전소설에나 써먹을 만한 수법 아닌가.


10. 아, 그렇군. 98.5%의 호킹지수는 마지막 장에 쓰인 그럴듯하고 멋져보이는 문장에 마구 하이라이트를 쳐서 나온 수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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