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 하 스티븐 킹 걸작선 9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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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1,800쪽의 기나긴 장편인 <그것>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한 권에 사흘씩 총 아흐레 동안 읽으려고 했는데 중간에 설도 껴 있어서 결국 열하루 걸렸네요. 평소 싫어하는 하드커버인데다가 책 두께도 다른 책의 거의 두 배여서 거부감도 들었지만 재미있는 책은 그 누가 분탕질을 쳐도 결국 읽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다 읽었습니다. 상권과 중권에 각각 감상을 썼기에 이번 글에는 하권과 전체적인 이야기를 짤막히 쓰려 합니다.

  하권만 따져보면 텐션은 여전합니다. '그것'보다 긴장감 유지에 더 큰 역할을 한 헨리 패거리 덕분이지요. 물론 중권에서 돌싸움으로 액션이 폭발하긴 했습니다. 전까지는 왕따클럽과 헨리 패거리가 같은 10대의 느낌을 풍기지만 이번엔 완전 역전되지요. 헨리가 아버지 부치 바워스를 따라(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미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2살이 이런 모습을 보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어요. 그동안 같이 악동 짓을 하던 두 명의 친구도 이런 헨리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정도로요.

  그리고 장면전환이 전보다 빨라져서 진행속도도 덩달아 빨라졌습니다. 이건 하권의 좀 뒷부분에서 그런데요, 인물마다 시야가 빨리 바뀌고 현재와 과거 각 시간대의 전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걸리는 속도(전 이걸 문장의 분위기나 단어의 갯수로 그냥 어렴풋이 느꼈습니다)도 전보다는 긴박하고 빨라졌지요. 그리고 이 작품에서 처음 본 표현 방법이 있는데요, 현재와 과거를 도약하는 순간을 참 재밌게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

(현재)  벤은 자크 덴브로의 작업대를 비추던 깨끗한 노란 불빛고 기억한다. 그리고 빌이 했던 말도.
  "우리 모두 조, 조,

(과거)  조심해야 해. 흔적을 나, 남겨 놓으면 안 되니까. 잘못하면 아빠가……." 빌은 '기, 길'을 되풀이하다가 가까스로 "길길이 화를 내실 거야."라고 말했다.


중반까지는 어떤 것을 보고 뭔가를 떠올린 후 과거로 넘어가는데요, 종반에 이르러서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아주 절묘하게 왔다갔다 합니다. 이 방법참 쓸 만한 것 같아요.

  묘사력은 역시 스티븐 킹, 할 정도입니다. 액션신 하면 치고 박고 날라차고 퍽퍽퍽 으악 윽 이러면서 괜히 페이지를 때우는 작품이 많죠. 하지만 진짜 액션신이라면 액션이 부르는 감정이나 통각도 떠올리게 해야 합니다. 물론 조금 성향이 다르겠지만요. 하여튼, 인물이나 '그것'이 느끼는 충격까지도 생생하게 그린 킹 선생에게 박수 세 번 칩니다. 참 대단한 작가에요.

  작가뿐 아니라 번역자에게도 박수를.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더니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보다 모르는 어휘가 더 있답니까. 신기한 일입니다. 더께, 옹송그리다, 대꾼하다, 희붐하다 등 번역서에서 보기 힘든 순 우리말글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정확한 의미로 쓰이지 않고 의미를 비틀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요. 이런 번역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무리가 좀… 거시기해요. 총 5부의 장편인데 4부까지 비중 있게 그린 건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 과거란 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합니다. 기억을 복원해내는 것이 과거에 그들이 부렸던 마법을 다시 부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그런데 있죠, 27년만에 데리에 모인 그들이 할 일은 결국 '그것'을 없애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그것'을 없애는 일은 5부에 가야지 제대로 시작해요. 양이 300쪽으로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니까요. 게다가 어릴 때의 추격전이나 황무지에서의 돌싸움은 그렇게 잘 표현해놓고는 '그것'과의 결전은 글쎄요, 뭔가 뜬구름 잡는 듯했습니다. 전과 너무 달라진 액션(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에 조금 벙찌는 감도 있네요. 이상하게 스티븐 킹은 장편만 가면 매력이 떨어진단 말이죠. 특히 결말 부분에서.

  사람의 상상력과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를 '그것(it)'이라고 표현한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것'은 빌에게는 동생 조지의 모습으로, 에디에게는 문둥이의 모습으로, 스탠리와 마이클에게는 새의 모습으로, 벤에게는 미라의 모습으로(비벌리와 리처드, 미안하다. 너희가 무얼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형상합니다. 데리라는 무대에서 왕따클럽 7명이 주인공으로 행동했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에든 존재하겠지요.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센 '그것'이었지만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약점잡힌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에디가 평소 사용하는 천식약은 사실 수돗물에 쓴맛을 내는 게 섞인 의약일 뿐이지만 강력한 산성이라 믿고 '그것'에게 쏘자 '그것'은 진저리를 치며 도망가지요. 이 소재는 그렉 이건의 단편소설 <야경꾼>에서도 사용되었는데요 이 단편도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여튼, 다 읽었습니다. 너무 뛰어난 묘사 때문에 상권에서는 지루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중권부터는 마구 휘몰아치고 하권은 마지막 150쪽 정도가 조금 거시기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장편이었습니다. 단숨에 읽을 정도의 흡입력 있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솔직히 이런 류의 소설은 재미를 추구하기에 인생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얻거나 삶을 뒤돌아보게 하지는 않지만요, 재미라는 본분에 충실하면 된 거 아닐까요. 그런데 당분간은 스티븐 킹의 장편은 안 읽을 것 같습니다. 별 거 아닌데 머리가 터질 듯한 느낌이 들까요, 왜.

  (2012년 1월 24일 ~ 1월 27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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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중 스티븐 킹 걸작선 8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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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설 쇠러 시골에 가느라 읽는 속도가 약간 뒤쳐지긴 했습니다만 읽긴 읽었습니다. 그것도 폭풍과 같은 속도로 말이지요. 시골에서 하도 잠이 안 와 불편한 자세로 이 책을 잠시 들여다 보았는데 이런. 이야기 위주의 소설책일 경우에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한 시간에 100페이지 정도밖에 못 읽는 편입니다. 게다가 집중력도 바닥이지요. 도무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진득하게 못 보는 편이라니까요. 이런 제가 밤 중에, 자는 가족들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휴대폰 불빛 가리느라 모로 누워 불편한 자세로 300쪽을 봤다 이겁니다. 직전에 본 위화의 <인생>도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가더니.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려.

  상권에서는 마이클의 전화를 받고 인물들이 모이는 장면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과거를 조금씩 떠올리지요. 저기 아래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이 충돌하기도 하고 그때의 아픔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중권에서는 드디어 이들이 만납니다. 왕따클럽 7명 모두가 모이지는 못해서, 또 이제 어른이 돼서 과연 그들이 예전과 같은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가운데 이야기는 계속 진행됩니다. 이 와중에 7명의 고리역할과 동시에 데리의 숨은 수호자와 기록자를 맡고 있는 마이클의 과거를 볼 수 있어서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이클이 어떻게 황무지로 왔는지, 또 어떻게 왕따클럽과 만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긴장감이 엄청난 책이었습니다. 그 어두운 불빛 아래 불편한 자세와 잘 보이지 않아 자꾸 어둡게 가라앉는 글씨를 견뎌내고서 계속 책을 봤다 이거 아닙니까. 주인공들은 아직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다 같이 공유했었을 기억이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기뿐이니까요, 자신에게 닥쳤던 위험한 상황은 자신만이 기억합니다. 아니, 자신이 너무 잊고 싶어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인데도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도 있지만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문구라든가 단어에서 궁금증을 부른 후 그게 등장하는 과거의 에피소드를 불러오는 식이지요. 시답잖은 것도 있고 중요한 것도 있고. 계속 이런 식의 진행인데도 희안하게 중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고 물리는 6명의 기억사슬 때문인가.

  다만 하나 걱정되는 건 진행상의 문제입니다. 아니, 스티븐 킹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는 조금 그렇다 이겁니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장편에서 6명의 인물이 만나는 건 3부입니다. 책으로는 중권의 1/3 정도 되는 부분이군요. 그런데 중권이 끝난 시점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고 떡밥은 계속 던지고, 이럽니다. '그것'의 정체가 까발려진 지금, 성장한 그들이 '그것'을 물리치는 게 이 이야기의 목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권을 읽으면 궁금증이 풀리겠지만요. 단순히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던 예전을 훌훌 털고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던 헨리 일당을 혼내주는 모습만 보면 '그것'은 괴물의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성장하기 위해 경험치를 줄 중간 보스의 자리에도 서 있는 듯하다는 건방진 생각도 해봅니다.

  하여간, 상권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다가온 중권이었습니다. 번역자의 센스는 여전히 뛰어나고(전 역서에서 순 우리말글을 배우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스티븐 킹의 문장 또한 신이 납니다. 다만 종종 등장하는 마이크는 누구이며(마이클의 오타인 것 같은데) 가끔 주어가 빠져 웃긴 문장도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에이, 뭐 이 정도야.

  (2012년 1월 20일 ~ 1월 23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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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7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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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올해의 8번째 책은 오랜만에 읽는 스티븐 킹의 책입니다. <샬렘스 롯>과 함께 명작으로 꼽히는 <그것>입니다. <언더 더 돔>도 엄청난 길이의 장편이지만 <그것>도 만만찮네요. 권당 600쪽 씩 세 권, 전체 1,800쪽의 대작입니다. 게다가 만지면 읽기 싫은 느낌이 나는 하드커버라니. 거기다 오래된 책이라서 냄새가 풀풀 풍기다니. 왜 책은 찢어져서 열 몇 페이지씩 날아다니는 거냐고요. 인기 많은 소설을 읽기 이렇게 힘들단 말이냐.

  아직 1/3밖에 진행되지 않은 이야기기에 스토리 상의 별 진척은 없습니다. 이제 막 인물 소개가 끝났고 과거를 조금씩 회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장소설을 보는 듯합니다. 로버트 맥캐먼의 <소년시대>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도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괴생물체가 등장합니다. 물론 <그것>에 비해 유순한 편입니다. 아주 많이 유순하죠. 연쇄살인사건은 없고 인물들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관문으로 그리곤 합니다. 소재 자체는 사실 조금 평범할 수도 있습니다. 한 마을의 분위기가 이상해, 뭔가 검은 것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그런데 어른들은 쉬쉬해.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의 괴물은 무섭습니다. 판타지 속의 괴물이 아니라 데리라는 현실의 공간에서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괴물. 물론 아직 그 괴물의 정체가 밝혀질리는 만무하지만요. 아니, 아직 맛뵈기밖에 안 됐다니까요? 이야기에서 괴물이 전면으로 부상한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다, 데리는 이상한 곳이다, 라는 투로 툭툭 던지는 거죠. 이야기의 복선을 비치면서도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느낌'을 주욱 이어가며 긴장감을 줍니다.

  그리고, 역시 스티븐 킹은 각종 묘사에 능숙한 작가입니다. 심리든 상황이든 (사실 배경은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줄기차게 써주시죠. 단편에서는 텐션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이런 초 장편에서는 글쎄요,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기도 하지요. 분명 그런 부분이 있긴 합니다.

  사실 어른이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없었는데(글을 잘 쓴 것과는 다른 거죠, 흠흠) 그나마 어릴 때의 회상부분이 재밌어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인물이 많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각자의 회상이 얽히고 섥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참 재밌습니다. 약간 지루해지려는 찰나, 상권의 끝을 추격씬으로 절묘하게 마무리한 편집부에 박수를. 짝짝짝.

  (2012년 1월 17일 ~ 1월 19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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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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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007.

  오 마이 갓. 저는 분명 어제 새벽에 <더블 side B>를 덮고 자려고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시간을 조금 때울까 하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찜해둔 위화의 <인생>을 잠깐 폈습니다. 정말, 한 50쪽만 읽고 자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에잇, 5시 조금 넘어서 편 책을 날이 밝을 때까지 들고 있을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겨울이라 해도 늦게 뜨잖아요.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어제 아침에 시계를 확인했을 때 바늘은 8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무려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시느라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때였죠. 엄청났습니다.

  위화 작가는 작년에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참 늦은 만남이지요. 그때 읽었던 작품은 <허삼관 매혈기>였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한 가족을 통해 그대로 투영하고 그에 따른 가난과 고통을 슬프게, 하지만 너무 슬프지만은 않게 해학적으로 그려냈었죠. 허삼관과 아빠의 모습이 겹쳐 엄청 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떤 나라든 근현대사는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기계가 들어오는 시기잖아요. 과거와 미래가 서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시기. 그렇기에 사는데 굴곡이 참 많고 정말로 드라마틱한 광경이 많이 벌어집니다. 위화는 소설에 중국의 근현대사를 절묘하게 녹여냈습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다룬 책입니다. 부농이었던 푸구이의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고 어떻게 중국의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견뎌냈는지 써내려갑니다. 주인공 '나'가 노인 푸구이에게 말을 든는 형식으로 돼 있어서 서술은 모두 대화체입니다. 대화체인 건 정말 큰 장점입니다.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독자가 푸구이 앞에서 직접 얘기를 듣는 듯하게 문장도 준수합니다.

  집중도는 높았으나 <허삼관 매혈기>와 약간 비슷한 방식의 전개여서 아쉬웠습니다. 물론 다루는 감정은 조금 다르지만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또 이렇게 되는 거야? 푸구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정말로요. 푸구이의 인생, 참 더럽게도 꼬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 따위는 그딴 거 두렵지 않은 법이라고, 푸구이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럼요 그럼, 인생사 새옹지마잖아요. 그런데 푸구이의 삶은… 아이고, 눈물납니다.

  너무나 낙관적인 것이 책의 아쉬웠던 점이라고들 하는데 오히려 저는 정 반대입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점, 이런 낙관적인 마음으로 살기에 푸구이가 그 고난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만의 의식이 아닐까요.

  아쉽게도 <허삼관 매혈기>보다는 찡한 게 덜한 작품이었습니다. 읽히기는 잘 읽히나 공감가는 면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위화의 작품을 읽다 보니 중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해 보고 싶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중국 근현대사에 관련된 책과, 그 역사 안에서 빛나는 루쉰의 책을 읽으렵니다.

  (2012년 1월 16일,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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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side B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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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한국 문단의 이단아, 그러면서 아름다운 유니크를 자랑하는 작가, 제가 가장 좋아하지만 아직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작가, 박민규 작가의 두 번째이자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작품집입니다. 그 사이 장편 2편, 단편 24편을 썼는데 <더블>은 그 중 단편 18편을 모은 책입니다.

  <카스테라>를 읽었을 때 그 느낌은 어찌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검색해보니 05년도에 출간되었네요. 친구가 희한한 책을 보고 있길래 저도 호기심에 봤었죠. 처음에는 이게 뭐야, 했다가 두 번째에는 오오, 세 번째에는 이 작가의 팬이 되었습니다. 표제작 '카스테라'(작품집이라 낫표와 겹낫표를 써야 하지만 귀찮으므로 그냥 쓰겠습니다)는 읽을 때마다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현재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빼고는 작가의 출간된 작품은 모두 읽었습니다. 이 작가, 단편에선 좀 희한해도 장편만 가면 펄펄 날더군요.

  <더블>의 첫 번째 권인 side A는 작년에 읽었습니다. 계속 장편소설만 읽다가 오랜만에 접한 단편이었죠. 그동안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는 글만 읽어서 그런지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글들뿐이었습니다. 내가 박민규를 따라가지 못하느냐 박민규가 작품의 방향을 바꾼 것이냐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 별 생각없던 그때, 그냥 작품의 불가해성의 원인을 후자라고 해버렸습니다. 결국 멍청한 건 저였는데.

  갑자기 읽고 싶다, 고 머리에 떠오른 책이었습니다. 사실 1월 들어서 제대로 된 소설은 읽지 못했거든요. 사랑에 대한 에세이(뭔지 모르겠습니다), 작법서, 역사서, 마음 치유서(이건 뭐지) 등을 읽느라 잠시 이야기에 대한 감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작법서에서 말하는, 통칭 '잘 먹히는 소설', '바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든 거지요. 파괴자, 박민규.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기본을 충실히 하라, 입니다. 기초를 탄탄히 다진 후 기초를 파괴하고 자신만의 문체를 쌓아올려라. 그렇기에 글쓰기의 기초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엉망으로 쓴 글을 보며 혀를 끌끌, 차왔지요. 저도 글은 정말 못 쓰지만 무조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며 우겨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민규의 작품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박민규 작가를 처음 접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슨 이런 괴짜가 다 있어? 말줄임표 …도 ...로 쓰지, 서술과 대화는 한 곳에 뭉태기로 쓰지, 남발하지 말라는 쉼표는 문장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척 보기에도 엉망인데 글을 읽다 보면 인물들도 야리꾸리하거든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책을 쓰고 이상하게 환호를 받네, 하며 관심을 꺼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건 마치, '나는 이렇게도 쓸 수 있다'하며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낮잠'에서는 늙어가는 데 생기는 회한을, 정말 아무 상황이 아닌데도 쓸쓸하고 고독스럽게 표현합니다. 그러면서도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그러니까 화성까지 가는 방법은 네비를 보면 됩니다처럼, 써재낀다 이거죠. '용용용용'(수다스러울 절)에서는 무협의 요소를 가져오면서 '아스피린'에선 약간 SF적 요소까지. 아직 문단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많이 읽어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요, 장르문학적 요소와, 발칙한 상상력을 이리도 멋있게 일반문학으로 가져온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치보이스'나 '별', '아치' 같은, 다른 기존 작가들이 다루었을 법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면서도 나 박민규올시다 하고 존재감 팍팍 드러내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그의 파괴적인 문법에서도 '박민규스러움'을 알아챌 수 있지만 묘사나 서술에서도 '스러움'이 보입니다. 엄청납니다. 뜬금없어 실소를 자아내고 한편으론 너무 우스운,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요.

  나는 마리아 샤라포바의 서브 동작과 괴성을 흉내냈는데 반응이 정말 심상치 않았다. 네 명의 여자애들의 비너스 윌리엄스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비치 보이스')

  (상공에 괴비행체가 떠 있는 상황) 여느 때처럼 각자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 황보의 발표가 이어졌다. 긍러므로 제가 잡은 컨셉은 프리미엄입니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 퍼센트, 당신을 위한 요실금팬티... 하는데 ('아스피린')


  사실 제대로 이해한 작품은 없습니다. 그냥 어렴풋이, 이런 뜻으로 글을 쓴 건 아닐까 추측만 했지요. 하지만 SES 언냐들이 말했지요, 저스트 쀨링~. 뭐 있나요, 그냥 글 읽고 좋다는 느낌 받았으면 된 거지. 허섭한 글 쓰다 보니 이 책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냥 작가에 대한 저의 찬양론만 잔뜩 있군요. 감상문 쓰려고 했는데 슬프다. 흑흑. 박민규 작가의 글 읽을 때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할 점은, 작품을 읽자마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파괴적인 요소도 그대로 가져오면서요. 이 점 조심하세요. 조심 조심 완전 조심.

  (2012년 1월 15일 ~ 1월 16일,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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