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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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청춘소설은 성장소설과 읽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소설 중에 정말 손에 꼽는 청춘, 성장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작품이 없는 게 아니라 읽은 경험이 없을 뿐이다) 내 기준에선 성장소설은 서양이, 그리고 청춘소설은 일본이 강세를 보인다. 서양 성장소설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서양문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일본 청춘소설은 이상하리만치 날라리 기운을 띄기 때문에 그렇다. 날라리 기운이란, 나쁜 뜻은 아니다. 서양에서 한참 히피문화가 떠돌았듯이 일본의 8, 90년대는 서양과의 많은 개방을 통해 다소 자유분방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그무렵 우리나라는 한참 민주화를 위해 정권과 싸웠기 때문에 글에서 불타는 청춘은 조금 어두운 면이 있다.


  도쿄의 한 멘션. 원래 한 명만 거주해야 하는 이곳에 무려 5명의 남녀가 살고 있다. 선배의 애인을 호시탐탐 노리는 요스케, 인기 배우와 비밀리에 연애 중인 고토, 매일 밤 술에 찌들어 사는 미라이, 남창 일을 하며 젊을을 태우는 사토루, 그리고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나오키. 나이도 제각각, 직업도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인 5명. 각 인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 누구나 추측하겠지만, 모두 썰렁하다. 회사를 다니는 내 입장으로 보면 사회에서 원하는, '똑바로' 사는 사람은 없다. 대학생이란 요스케는 도무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무직인 고토는 티비에 나오는 연애상대를 보며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미성년인 사토루는 밤일에 종사한다. 미라이는 잡화점 점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매일 술독에 빠져 산다. 도무지 다들 나이에 맞게 사는 것 같지 않다. 독립 영화사에 근무하는 나오키만이 이들 중 그나마 '정상'의 범주에 가까워 보인다. 행동거지도 어른스럽고 말이다.


  때때로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다"라는 사이비 인도주의 풍의 대사를 종종 듣는다. 단순히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이 세계'가 모인 '이 세계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며,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것 역시 그런 대로 평등한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고 현재 우리 생활과 아주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도 주인공이 아닌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엄밀히 그 전에 역시 누군가 주인공인 이 세계가 필요하다. (184쪽)


  소설은 인물 수와 같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마다 각 인물이 주인공이다.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인물들은 조연으로 등장한다. 각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 전 장에 나왔던 한 장면이 다음 장에서 소도구나 중요한 기폭제로 사용된다. <퍼레이드>라는 한 작품에서 그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비슷한 환경에 함께 있으니 멀티버스가 마치 유니버스처럼 보인다. 참 유쾌한 소설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소설은 괴상해진다. 유니버스처럼 보이는 멀티버스에 그 해답이 있다. 각자의 세계는 순수히 개인의 것이므로 서로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멘션이라는 유니버스에서는 티비를 보며 하하호호 웃고, 신나게 술도 마시러 다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지만 각자의 유니버스에서의 그들은 너무나 색다르다. 거실과 방 두 개로 이루어진 멘션. 겨우 방문과 벽으로 나뉜 우주일뿐인데 서로 등을 보이며 뒤돌아서는 순간 모두의 사이에는 뭔지 모를 어색함이 돈다. 장을 거듭할수록 다른 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함께 있으면서도 '모른다'는 감각은 상당한 불쾌감을 안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얼굴을 가릴 가면을 쓰고 산다. 모두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처음엔 그 거짓말이 어색했겠지만 남에게 보이는 자신을 구축하려다 보니 거짓말은 무의식적 영역으로 넘어가고만다. 가장 솔직할 것 같은 사람이 속에 비밀을 가장 많이 품고 있다. 다른 사람의 우주에서는 그렇게 유쾌하던 사토루이지만 자신의 우주 안에서는 한없이 우중충하다. 사토루의 우주인 4장은, 전의 장들과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문장이 딱딱하고 어둡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적 결말. 그리고 그런 충격을 너무나도 괴이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 세상에나, 가면은 그정도로 깨지지 않을만큼 너무나도 단단했다.


  인간에게 정상의 범주란 과연 무엇일까. 다 비정상이고 나는 더 비정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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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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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나는 시사IN이라는 언론을 몰랐다. 물론 그 전에 시사저널이라는 것도 몰랐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집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그때서야 엄마는 보수언론을 버리고 얼른 경향신문을 구독했다. 신문이 바껴도 보는 내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문화면, 스포츠면. 그때까지 나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치가 왜 필요한지 전혀 몰랐다. 21살 겨울, 운명의 대통령선거마저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분에 대해서는 그저 '청계천'밖에 알지 못했다.


  항간에 정말 떠들썩했던 나꼼수도 처음에는 큰 거부감이 들었다. 그전까지 이어폰으로 듣는 방송이라곤 메이저 방송사의 라디오밖에 없었기 때문에 귀로 들리는 욕설과 말도 안되게 들리는 루머 비스무리한 소식들은 그저 뇌에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꼼수가 우리 젊은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가. 나와 아무 상관없을 것 같던 정치가, 바로 우리네 삶에 그리도 밀접하다는 걸 뼈저리게 알려주지 않았는가. 나는 이런 점을 높게 샀고, 한동안 나꼼수 빠돌이가 돼서 살았다. 그때서야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IN을 알게 되었고 다소 힘이 빠지고 여자 같은 목소리를 가진 주진우 기자를 알게 되었다.


  나꼼수를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모든 멤버의 팬은 아니었다. 다소 마초적 이미지가 강한 김어준은 갈수록, 또 김용민은 선거에 뛰어들면서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졌다. 진짜 좋은 사람은 아무리 불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절대 욕을 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후부터는 나꼼수 청취를 그만두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사람은 주진우 기자였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고,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더욱 좋아졌다. 나꼼수 4인방 모두 팩트를 기초로 설을 풀었지만 적어도 '기자'직함을 달고 있던 주진우 기자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갈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기사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로 가는 과정은 냉정하고 치열하다. 항상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려 한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현행법과 더불어 정서법을 들이대고 기준점을 넘으면 가차없이 돌팔매질을 한다. 중립이라고 자위하면서 음흉한 속을 감추는 언론보다 편파적인 게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7쪽)


  언론이란 응당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건과 국민을 이어주는 창은 언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언론이 편파적이라면 우리 국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언론사(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권력세력)가 원하는대로 살기 바쁠 것이다. 예전의 땡전뉴스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5 18 광주혁명이 일어났다 해도 당시 언론은 '북괴의 일'이란 보도를 때렸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여러 잣대를 가지고 최대한 여과없이 정보를 우리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위로, 주진우 기자는 발칙한 말을 했다. 당당히, 자기는 편파적인 기사만 쓴다고 말이다. 언론이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주진우 기자의 용기가 드러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정부 들어 많은 언론사들이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로비와 청탁을 나서고 있다. 노골적으로 정부의 편에 드는 곳도 있고, 전통적으로 국가의 나쁜 뿌리에 벌레처럼 달라붙어 단물만 쪽쪽 빨아먹는 곳도 있다. 이런 언론들은 과연 중립적인가? 우리나라의 고위층에게 잘못 보여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과연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으려 할까? 절대 아니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은 이미 저 아래로 쑥 들어가고 만 상태다. 기득권을 칭찬해줄 입들은 많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중립을 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우리는 대차게 그들을 '까도 된다'.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썩었다. 물론 깨끗한 곳도 많다. 나뭇가지 끝들은 아직 쌩쌩하다. 하지만 나무 겉을 뜯어 심재를 보면 아마도, 새까말 것이다. 물이 지나다니는 곳은 바싹 메말랐고 뿌리 부분은 조금만 건드려도 폭싹 주저앉을 것처럼 썩어 있다. 덩치만 더럽게 커졌지 전혀 실속이 없는 속이다. 뿌리가 썩을대로 썩어 땅에서 빨아들이는 영양분은 뿌리에서 모두 소모하고 위로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본부터 잘못돼 있는 나무에서, 우리들은 맨 꼭대기에 살고 있다. 해를 바라보며, 누군가 구원해주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마음을 놓으며 살고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지 겨우 1년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누구보다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열심히 정보를 알아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발걸음도 제대로 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아직 너무나도 불합리하게 기득권층이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직 내가 배울 건 많고, 우리나라도 뒤엎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무던히도 들었다. 우리나라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불합리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검경, 삼성, 종교, 언론, 당, 친일파와 빨갱이 등 정말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이슈만 모아놓았다. 무엇이 나를 이리 슬프게 만드는가, 무엇이 나를 이리 분노하게 만드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주진우 기자가 말했듯이 '편파적'인 글들이므로 다른 쪽으로 편파적인 글도 찾아봐야 함이 마땅하다.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고 했다. 나는 애써 화를 삭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겁내며 피하는 것일까. 그리고서 하는 변명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다. 그런 변명이 더 더럽다. 미래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갈까. 나도 17살의 주진우처럼 짱돌을 들고 보이지 않는 검은 벽에 덤빌 수 있을까. 글쎄, 대답은 알 수 없다. 아직 겁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 많이 배우고 깨달아가겠다.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겁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 정말 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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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드로잉 노트 이지 드로잉 노트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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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나에게 그림이란 정말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이다. 초중고 시절, 음악과 체육은 정말 재밌었다. 예체능을 제외한 과목 성적도 꽤나 높은 편이어서 예체능까지 섭렵한 모범생 이미지였다. 단지, 미술시간만큼은 나에게 쥐약이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실기가 문제였다. 친구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찰흙을 조물딱거리면서 재밌게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그 '어떻게든'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분야든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지 못하면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 하지만 내 머리 위의 벽을 깰 자신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걸 알고 말았다. 사과 데셍을 하던 목탄을 조용히 책상에 내려놓은 후, 그림은 나와 영 친해질 수 없는 놈이었다.


  몇주 전 회사 교육 중에 그림을 그릴 일이 있었다. 동기는 나에게 간단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분명 말했다. 나는 선도 제대로 그을 줄 모르니 잘 못그려도 너무 타박하지 말라고 말이다. 동기는 그러마 하고 일을 맡겼고, 팀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떨리는 손으로 정성들여 선을 하나하나 천천히 그었다.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그림을 동기에게 주었다. 그리고 보았다. 순간 흔들리는 동기의 눈동자를.


  이런 일도 있었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형이 내 캐리커쳐를 그려준 것이다. 나를 흘끗 보고는 선 몇개를 쓱쓱 긋더니 다 완성됐다며 내게 그림을 건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린 그림도 아니었고 갤럭시노트와 S펜을 사용한 그림이었다. 간단한 그림이었는데 정말 내 특색을 120% 살린 그림이었다. 전체적인 얼굴 형상은 물론이고 두꺼운 안경 때문에 굴절돼 보이는 얼굴까지, 정말 보자마자 이게 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림이었다.


  이런 나라고 노력을 안한 건 아니다. 내 만화책을 가지고자 빌린 만화책을 그대로 배껴 그리기도 했고 이 책의 저자, 김충원씨의 책도 여러권 보면서 천천히 그리기도 했다. 캐릭터 그리기였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손오공을 그리기도 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곡선을 채우면서 얼굴 방향을 맞추기도 했고 나만의 캐릭터도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솔직히 150여 쪽의 이 책을 보고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할리는 없다. 아무리 재능보다 노력이라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지'라는 말처럼, 참 쉽게 시작하는 책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림은 선부터 시작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어떤 책도 선부터 연습시키는 책은 없었다. 조금 유치해보이지만 연필을 들고 선을 그려보았다. 직선도 삐뚜름하다. 선을 지그재그로 계속 그어보니 모양이 아주 더럽다. 직선도 이런한데 더욱 연습이 필요한 곡선은 어떠할까. 일정한 크기로 원을 그려야 하는데 점점 작아지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기본적인 선도 못그리니 캐릭터나 인물은 더 가관이었다. 뒤로 갈수록 그림은 엉망이 되었다. 26년간 좌절했는데 단 2주 동안 또 좌절했다. 이 쉬운 것조차 이렇게 엉망이라니.


  하지만 연필심이 닳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책에 이런 부분이 있다. 눈을 감고 연필 가는대로 선을 긋는 부분이다. 그저 연필이 종이에 닿는 촉감을 즐기라고, 저자가 말했다. 아직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가만히 눈을 감고 연필을 놀려보았다. 스윽스윽 하는 소리가 참 좋다. 연필심 가루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그리고나니 양쪽이 검은색 선으로 가득했다. 연필심이 닳아 커터칼로 연필을 깎았다.


  과연 나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꾸준히, 또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내 친구들이 그림을 대했던 것처럼 어떻게든 될까. 하지만 연필을 잡고 글 대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확실히 가질 수 있었다. 나만의 드로잉 노트를 가지고 열심히 그려보련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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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경제학은 없다 - 부자들이 감추고 싶어 한 1% vs 99% 불평등의 진실
스튜어트 랜슬리 지음, 조윤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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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오늘 한겨레 신문에 한 기사가 났습니다. 2010년에 우리나라 소득 상위 1%의 소득 비율이 12%에 이르렀다는군요. 미국과 영국, 캐나다보다는 낮고 일본, 호주보다는 높다고 합니다. 소득별 구성비 중 가장 높은 것은 바로 근로소득(57.4%)이고요. 이런 소득 불평등은 최근 10년간 급격히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고, 소득 불평등도가 영미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언제부턴가 우리네 사회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 말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분명 GDP는 증가하고 경제도 성장하고 있는데 실상 가정 꾸리기는 너무 힘들지 않나요. 세계의 경제 성장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세상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우리는 왜, 돈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고 해하고 이토록 불행한 걸까요. 적금에 돈을 아무리 부어도 결국 이율이 거지 같아서 돈은 전혀 모이지 않고 집을 사려면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겨우 살 수 있지요. 게다가 그 대출금을 갚으려면 아주 등골이 빠지죠.


  이런 소득 불평등은 비단 우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남북분단 후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 우리나라입니다. 그렇기에 미국이 그동안 보여왔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문제를 분석하고 풀기 위해서는 위에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영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 100여년 간의 미국과 영국 경제에 대해 말합니다. 그냥 경제가 아니라, 바로 99%의 부를 차지한 1%의 꼼수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 현상이 도대체 어떻게 벌어졌는지 말입니다.


  규제 당국이 뒷짐을 지고 앉자 은행들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경제의 틀을 만들고 개별 회사들을 성장시키는 데 훨씬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금융화'라고 불렀다. (126쬭)


  그러나 이제 금융 기관은 수익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고객 예금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빌려 주기 시작했다. 레버리지란 은행으로서는 마치 기적처럼 돈을 더 많은 돈으로 바꾸어 이익을 부풀리는 방법이었다. 은행은 몇 백만 파운드의 고객 예금을 기반으로 이 금액보다 20배나 30배 아니면 그 이상으로 많은 돈을 대출해 주었다. (132쪽)


  다른 어떤 내용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현재 주식시장은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습니다. 자본금에 최대 10배까지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투자에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시장은 성장합니다. 그런데 참 웃긴거죠. 빌린 돈으로 성장시킨 시장은 그저 허상일 뿐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모래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아마 햇빛에 물이 마르면 곧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외형적 크기 상승에 따른 외부자본유입이 쉬울지 몰라도 외국 투자자들이 과연 이 사실을 모를까요.


  부자들이 발을 빼 주식을 처분하고 투자를 중단하자 경제의 소득 창출력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9쪽)


  현재 주가는 2,000 위아래로 계속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주식은 계속 올라 사상 최고치를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낮은 장을 이끄는 장점이 있지만 과연, 삼성전자 주식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생각하기도 참 무섭지 않나요. 겨우 몇 프로가 이끄는 전체.


  지독히도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아마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상위 계층의 꼼수를 파악하고 우리의 여유로움을 되찾으려면, 공부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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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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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일본 영화 '배틀로얄' 기억나십니까?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고등학교 한 반이 배틀로얄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어 서로 죽고 죽이던 영화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이 영화를 봤는데 처음에는 피 때문에 기겁을 했어요. 그런데 그걸 조금 참고 영상을 보다 보니 신기하게도 자리에 앉아있을수 ㅔ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익숙해지더라고요. 영화 안의 인물들도, 처음엔 방금 전까지 그리 가까이 지내던 친구를 해꼬지하지 못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로를 죽입니다. 이것도, 그냥 익숙해진 거겠지요.

<헝거 게임>의 두 주인공 캣니스와 피타는, 이런 배틀로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합니다. 무시무시하고 설명하기 복잡한 어떤 미래에, 판엠이라는 나라의 수도 캐피톨은 주변 도시의 반역에 의해 무너질 뻔했지만 겨우 막아냈습니다. 주변 도시에게 겁을 주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한 구역을 없애고 남은 열두 구역에서 매해 조공인 두 명씩을 뽑아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합니다. 24명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며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구역의 다른 참가자도 쳐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올해의 헝거 게임은 비극적인 두 남녀, 캣니스, 피타와 함께 막을 엽니다.

그렇게도 재밌다고 다들 손가락을 추켜세우던 책이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영화화까지 되었지요. 무슨무슨 게임이란 제목을 보면 일반 장르소설보다 추리나 스릴러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이번에 개봉한 영화가 아니었으면 전 이 책이 판타지 성을 띄리라곤 전혀 생각치도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을 말해보자면 이 책, 최근 이슈가 되는 데다가 갑자기 할인하길래 산 거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사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띠지에서 스티븐 킹이 이 책을 칭찬해도, 베스트셀러여도, 전미 박스오피스 1위여도 처음에 딱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영 책을 읽을 맛이 안 생기거든요.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사놓고 거의 2주일 이상 서랍 한 구석에 쳐박혀 있었지요.

그래도 이런 선입견을 깨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몰입도가 뛰어나 단 세 번 책을 펼쳤는데 훌쩍 다 읽어버렸지요. 어떤 것보다도 '헝거 게임' 자체가 주는 긴박감이 엄청납니다. 물론 인물 사이의 감정선 생성이나 변화도 흥미롭지만 한정된 공간(하지만 사실은 엄청 넓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재밌습니다. 살기 위해 프로 조공인에게 어깨 쫙 펴고 허세를 부리고는 말벌집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라든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자 게임의 관리인들이 숲에 불을 질러 조공인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하는 장면 등,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게임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이 흥비를 부릅니다.

하지만 곳곳에 책을 덮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헝거 게임' 자체가 주는 역겨움 때문이지요. 부와 가난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불평등은 당연하게 뒤따릅니다. <헝거 게임>에서도 이런 현상이 크게 두드러집니다. 소설의 골자인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는 추첨표는 한 사람에게 1년 당 하나 씩 돌아갑니다. 그리고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배급표 한 장와 추첨표 한 장을 받을 수 있죠. 캣니스와 동갑인 한 아이는 배급표가 무려 캣니스의 3배랍니다. 죽음을 담보로 단지 죽음을 연장할 뿐이지요. 아이들이 서로 피를 보며 싸우고 있는데, TV로 그 광경을 보며 신난다고, 헝거 게임을 자신들을 위한 쇼라고 생각하는 캐피톨 사람들도, 우웩.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도 단지 '헝거 게임' 우승자 배출 도시라는 허명을 얻기 위해 프로 조공인들을 내세우는 다른 도시도, 우웩. 자신들이 쇼에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불평등한 사회에 아무런 소리 내지 못하는 루저들에게, 우웩.

게임이 주는 긴박감을 이끌어 가는 데 다소 부족한 점을 느꼈다는 걸 굳이 단점으로 꼽겠습니다. 긴박감 외에 스토리나 감정처리가 다소 허술하고 유치했습니다. 화자가 16살의 어린 아이라서 그런 걸까요? 스토리 진행은 너무나 뻔하고 사이사이에 숨겨진 비밀 따위 없이 일직선방향으로 진행되서 이리 느꼈나 봅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줄어드는 것도 확연히 느꼈습니다. 제가 '왜?' 하며 궁금해 했던 것들은 아마 2부나 3부에서 밝혀주겠죠. 안 밝혀주면, 이건 그냥 그 상황을 위한 떡밥일 뿐이므로 작가에게 완전 실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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