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13가지 질문 - 둥근 사각형을 믿는 사람들에게
잭 보웬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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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079.


0. 짧게 짧게.


1. 두 달 전에도 멋진 철학 입문서라고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포스트) <철학 쑈>의 출판사인 '다른'에서 철학서적을 하나 더 냈길래 냉큼 구매했더랬죠. 점찍어두었던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의 저자인 잭 보웬의 책이어서 더욱 신뢰가 가기도 했구요. 물론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사놓고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완전히 잊었는데, 어느 날 택배가 왔더군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는데 말이죠. 알고보니 <철학 쑈>의 구매 이벤트에 당첨됐더군요. 덕분에 똑같은 책이 두 권.


2. 선물 용도 외에 같은 책을 다시 구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구입은 고사하고 누구에게 선물받은 적도 없습니다. 참 비루한 인생이야. 쨌든, 짧은 기간에 같은 책이 생긴 건 운명이다!라는 생각도 들고 손때는 커녕 먼지만 끼는 책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박스 뜯자마자 책을 폈습니다.


3. 제목 그대로 철학서적입니다. 기존의 철학서와는 다르게 소설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피의 세계>가 철학사를 다루었다면 <13가지 질문>은 몇 가지 주제나 소재를 던져주고 그에 대한 철학적 논제를 풀어나갑니다. 지식, 자아·이성·정신, 과학, 참과 거짓, 신, 악, 동양 사상, 종교와 이성, 자유의지, 과학, 논리, 사회·정치·돈, 윤리와 도덕에 대해 총 13장에 걸쳐 말합니다.


4. 그리고 이 한 장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주인공인 이언이 꿈에서 노인을 만나 각종 모순이 가득한 질문과 상황을 맞닥뜨리는 이야기, 꿈에서 깬 이언이 부모님과 함께 그 모순에 대해 토론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만나 새로운 의문을 갖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재밌는 부분은 첫번째 이야기인 꿈의 세계입니다. 난생 처음 들은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날마다, 모든 것은 크기가 두 배가 된다.'입니다.(10장- 이기심, 과학) 측정기구마저도 두 배로 커지기 때문에 크기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재밌지 않나요? 이 역설을 돌파하는 법은 역시 책에 있기 때문에 한번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5. 책의 중간중간 가장자리에 주석이 달려 있는데요, 이언이 경험하는 사상(철학, 과학, 심리학, 종교학, 인문학, 사회학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주석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모두 좋은 내용입니다. 추가로 책 마지막의 '더 깊은 질문들' 장이 걸작입니다. 한가지 답을 낼 수 없는 고민스런 질문을 던집니다. 실제로 일이 일어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제논의 역설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할 거라고 말했는데, 당신이 그와 같은 운명에 처했다면 행복하겠는가? 정답 없이 그저 주관만 있는 질문들이라 난감할 따름이지만 자신의 답을 끝없이 의심하고 생각을 바꾸면서 자신만이 아닌 남도 사유할 수 있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6. 소재별로 철학적 논제를 풀어나가는 전개는 전부터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철학 입문서'의 형식입니다. 하지만 철학이란 놈이 늘 그렇듯이 한 소재가 다른 소재와 완전 별개는 아닙니다. '신'의 소재만 해도 인식과 지식의 한계 및 범위, 신학, 자유의지, 윤리학까지 여러 방면에 걸쳐 있거든요. 전체적인 사고 틀은 비슷한데 소재별로 장마다 이야기가 따로 나오니 이야기의 수렴이 힘들고 조금 난잡한 편입니다.


7. 그럼에도, 이 책, 무지 재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딱딱한 철학사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소설형식을 취하기에 읽는 재미도 있고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수많은 철학 논제와 사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재밌게 접하기, 제 독서론이기도 합니다. 재미는 어떤 것이든 시작에 있어 정말 큰 장점입니다. 음식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에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장마다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책인데 짧고 서투르게 다루니 책의 재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네요. 여튼, 모두 모순과 역설의 세상에 빠져보시겠습니까?


8. 추가로, '다른 출판사', 꽤나 멋진 곳입니다. <철학 쑈>나 <13가지 질문>, <소설쓰기의 모든 것>등 정말 좋은 책들을 뽑아주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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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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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아마 두번째로 접한 스웨덴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레니엄 시리즈지요.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차가움과 건조함이 그리 와닿지 않아 1권에서 접었던 시리즈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밀레니엄 시리즈와는 전연 딴판입니다. 장르가 다르다보니 추리 따위는 당연히 없고, 전혀 딱딱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유머가 넘칩니다. 하긴, '스웨덴 소설'이라는 큰 틀에 가두는 건 소설을 너무 얕잡아보는 행동이겠죠.


  곧 양로원에서 100세 생일파티를 맞이할 알란은 통제되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양로원 생활이 싫어 탈출을 감행합니다. 쑤시는 무릎에 오줌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지요. 버스정류장에서 자기가 가진 돈으로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는 버스를 탑니다. 헌데 도중에 한 사내의 트렁크를 쓱싹(?)하고 맙니다. 나중에 보니 갱의 트렁크였고, 그 갱은 알란을 쫓아옵니다. 하지만 알라은 그런 사정 모르고 자기 갈 길을 갑니다. 실종, 납치,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유명인사가 됩니다. 이렇게 현재가 이야기의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과거입니다. 알란이 태어난 후 100년의 세월을 다룹니다. 어릴 때부터 폭약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폭탄 만들기에 열을 올립니다. (그렇다고 범죄자는 아닙니다!) 알란이 크면서 자연히 세계 역사에 뒤섞입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폭사당할 뻔한 프랑코 장군을 구하고 트루먼 대통령과 친구가 되지를 않나 핵 탄두 개발에 큰 힌트를 주고 심지어 6·25전쟁이 한창일 때 북한에서 징징대는 어린 김정일과 만나기도 합니다.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 뒤에는 칼란 알손이라는, 초등교육도 이수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 있던 것입니다! 엄청난 비화입니다.


  고백하건데, 생각보다 지루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엄청 광고를 때리고 다들 재밌다고 손가락 치켜드니 우선 사긴 했는데 1/3 정도 까진 영 아니올시다, 였죠. 현재에 벌어지는 100세 노인의 도주극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면서도 너무나 태연한데다가 큰 갈등이나 위험요소가 없어요. 하긴,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인물들이 도망치는데 무슨 스펙타클을 바라겠습니까. 과거는 더 터무니없습니다. 오펜하이머도 끙끙대던 원자폭탄 문제를 단숨에 풀지 않나 블라디보스토크 수용소 대폭발의 주범에다 소련 물리학자와 함께 스파이로 활동까지 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소설이 허구의 사건을 다룬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지요.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알란의 매력에 폭 빠지게 되었네요. 알란이 살아온 10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세상은 참 많은 이념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왕정, 공화정,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런 이념은 사실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윗대가리들이 들고 일어나니까 아, 똑똑한 사람이 맞다고 하니 맞나보다 하며 그저 휩쓸려가기 일쑤지요. 프랑코, 트루먼, 마오쩌둥, 처칠, 김일성. 이 인물들이 한 데 섞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정치 얘기를 가장 싫어하고, 그저 휴식과 한 잔의 술만 있으면 좋다는 알란이 빛을 발합니다. 알란은 일련의 사건들을 정치적 편견 없이 자신의 시각으로 판단합니다. 자신의 청을 들어준다면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스탈린에게, 당신의 성격이 마음에 안 드니 없는 일로 하겠다며 알란이 스탈린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은, 정치적 이념을 위한 행동과 사고에서 오히려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는 걸 극대화해서 보여줍니다.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너무나 술술 풀려갑니다. 부하를 모두 잃은 갱 두목이나 사건을 담당하던 수사반장이 오히려 알란 일행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산으로. 하긴,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던 알란의 과거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없겠습니다만. 유쾌해보이는 여행길이지만 사실 현재의 이야기는 꽤나 심각합니다. 실종으로 시작해 절도, 납치, 살인, 거짓진술까지 지금의 눈으로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중범죄입니다. 분위기가 부드러운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느긋한 성격도 있겠지만, 과거의 이야기와 대비되면서 그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과거에 '사람이 빠진,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의 대립'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에 비하면 - 그것도 개미손톱만큼의 비중으로 말예요 -  현재의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립니다. 그만큼 과거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셈이지요.


  유쾌하게만 생각했던 여행길(사실 도주)을 곱씹다보니 심각한 의미가 숨어 있었군요. 쓰고보니 출판사 제공 책 소개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네요. 작가가 아닌 출판사가 원했던 방향으로 해석은 어느 정도 했나보네요. 뭐, 사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괜한 과잉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작가는, 그저 알란의 101살의 여행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여튼, 과거의 굵직한 사건을 새로운 장면으로 만나는 재미도 있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었습니다. 알란에게 장수의 축복을. 치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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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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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


  이 책이 발간되던 해인 2011년은 정치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나꼼수가 등장하면서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덕분에 진보성향의 신문을 읽게 됐고 정치관을 정립한 사람들이 많았다. 내곡동 사저, FTA, 선관위 등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사건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희망버스 등 많은 박수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모든 이들은 자신의 정의를 위해 힘껏 달렸고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세상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한 지인은 "문민정부가 들어섰는데 뭐가 그리 아니꼽다고, 지들 일이나 잘할 것이지 웬 오지랖이냐"고 비아냥댔다. 비록 정치적 민주화로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었지만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당한가. 언론은 광화문에 모인 수많은 촛불들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한 말을 계속 뒤집으면서 잇속 챙기기 바쁘다. 해결해야 할 일은 내팽개치고 그들만의 영역을 수호하기 위해 싸울 뿐이다.

 

  그렇다. 위험은 아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세상에 냉소를 날리고 '쿨하게' 무시한다. 우리는 중용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동시에 자신의 입맛에 맞춰 의미를 변질시킨다. 물론 자신을 성찰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중용은 진리를 위한 지름길이다. 하지만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케네디 역시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있다고 말이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만' 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 개인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뒤로 숨는 순간 우리는 분노할 수 있는 힘과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그러면 여태까지 그랬듯이 기득권은 우리를 또다시 기만할 것이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꾸준히 걸으면 희망은 머지않다.


  2년만에 다시 읽은 책에서 사르트르는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 고. 그렇다면 그 책임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응당 짊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에는 정답이 없다. 그것은 단지 각자 신념의 결과이자 사유의 꾸러미일 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것인가? 반응하라. 생각하라. 그리고, 분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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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632636475 네이버 재능기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작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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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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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어쩌면 고양이 애호가에게는 불편한 소설이 될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고양이 앞에서 자신을 집사(버틀러)로 낮추며 마치 고양이를 위해 봉사하고, 고양이 애호가들만이 알아듣는 단어로 대화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아지면서 다수의 기호가 일종의 권력이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소설에서, 고양이 애호가는 단순히 중점적 소재로만 등장할 뿐이니 소설가뿐 아니라 짤막한 감상을 남기는 나에게도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진 걸 모두 바칠만큼 사랑했던 여자친구에게, 단 한 통의 문자로 이별통보를 받은 '한'은 그녀와 다시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도중 길에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라 추측되는 고양이를 찾고, 그걸 계기로 그녀가 속한 애묘인 카페 정모에 참석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고 버틀러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은 후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거기서 애묘인 카페에 잠입(?)해 있던 김B의 설득에 버틀러들을 반대하는 '클럽 안티 버틀러'에 가입하게 된다. 취향을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려는 장국태 의원의 낙마, 그것이 클럽 안티 버틀러의 목표다.


  언뜻 보면 참 이상한 소설이다. 애묘인이 자신을 버틀러라고 부르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비(非) 버틀러인을 질시하거나 무시하는 건 거의 못 보았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정책을 대선에 이용하는 등 취향을 이용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비상식적이다. 현실의 정치는 단순한 기호와 취향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취향이 권력으로 변질되는 순간 이야기는 전복된다. 고양이를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클럽 안티 버틀러가 단순히 반(反) 고양이 애호가로 비춰질 수 있는데 애초 이 클럽의 모토는 취향의 군집을 막자는 것이다. 취향은 개인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정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 그저 표현의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자랄 경우 다른 취향의 남들을 보며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식의 자의식이 싹트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다수가 될 때 발생한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초였던 생각이 우월감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타적 증폭(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말만 들음으로써 판단착오나 실수)이 강화되는 순간이다.


  인물과 이야기가 잘 화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다소 보이지만 각 인물은 다름이 틀림으로 변질되는 폭력적인 순간을 잡아낸다.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해 고양이가 되고 싶어 했던 여자친구에게 차인 화자 한은, 그녀를 너무 사랑해 밉보이지 않기 위해 취향을 바꾸고 포기했다. 곽은 과거에 장국태에게 부(富)의 차에서 오는 차별을 느꼈고 오는 한과 비슷하게 연인에게 버림당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고양이 입술을 가진, 박의 아내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자신을 불길하게 여기며 차별했던 경험이 고양이 고기를 탐하는 정신적 강박을 키웠다. 남궁은 아버지에게서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패배적인 교훈을 배우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증오심을 품는다. 다름은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배우며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할 수 있다. 동시에,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다름의 순의미가 폭력과 무조건적인 증오, 분노로 변질되는 건 순식간이다.


  클럽 안티 버틀러가 취향을 과시와 권력으로 이용하는 집단에게 반대하는 것을 모토로 삼지만, 오는 오로지 고양이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고양이에게 여러 약을 먹이며 실험을 한다.(애초에 오가 클럽에 들어온 이유는 고양이가 싫어서였다) 이때 곽이 오에게 우리의 사상 때문에 고양이라는 종을 멸종하려 든다면 자기들 무리의 취향을 빌미로 소수 무리의 취향을 우습게 여겨버리는 버틀러와 우리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맞다. 모든 취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커피에는 쓴맛, 신맛, 고소한 맛, 단맛, 떫은맛이 숨어 있다. 누구는 커피 자체의 맛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누구는 단 게 좋아 카라멜마끼아토를 좋아한다. 이건 단지 취향일 뿐이다. 중요한 건 커피를 마실 때 맛있고 즐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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