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054.

  우리는 공포라는 감정을 어디서 느끼는가. 사람이 가장 무섭게 느낀다는 10m의 다이빙 대에서 투명한 물을 바라볼 때? 담력시험을 위해 들어간 한밤의 폐가에서 삐걱대는 문소리와 어디서 들려오는 지 모르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때? 어떤 미친 놈이 칼을 들고 클클클 낮게 웃으며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올 때?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들은 평범과 거리가 먼, '낯섦'에서 오는 감정이다. 태어나서 10m 높이의 다이빙대에 올라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 (사회가 흉흉하지만) 칼을 들고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또한 너무 뻔한 공포의 클리셰 아닌가. 저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무서움을 예상할 수 있다.

  더 큰 공포는 예상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이 예상 외의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낯섦을 떠나 상식 밖, 즉 인지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하고 낯섦의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스티븐 킹의 단편 '안개'와 동명인 영화 '미스트'에서 안개가 인물들의 시선과 함께 논리적 체계를 완전히 막았듯이 '미지'라는 개념은 인간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잃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익숙함에서 발아한다.

  <고의는 아니지만>(이하 <고의>)은 <아가미>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걸출한 작품을 써낸 구병모의 2011년도 단편집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아가미>가 성인 독자를 타겟으로 했다지만 다소 청소년 문학을 지향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 여류 작가는 다소 영(young)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앞서 발표한 장편은 판타지성을 짙게 띄는 반면 <고의>는 그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다룬다 해도 느껴지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판타지에서 마법과 검기가 난무하는 칼부림과, 현실에서 눈을 부라리고 커터칼을 휘두르는 난동을 비교하면 다소 비약일까?

  <고의>는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백미는 단연코 표제작인 '고의는 아니지만'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은 유치원 여교사 F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F는 굳건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가졌다. 준비물을 챙겨온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구분해 다른 교육을 시킨다.(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편부모거나 막노동을 한다) 그녀에게 이 분류는 차별이 아니라 조금 다르더라도 모두를 가르치겠다는 의지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도 눈치가 있는 법이다.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은 풀을 잔뜩 묻힌 손가락으로 핑거페인팅을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도구를 이용하여 비교적 고급스럽게 보이는 미술활동을 인지한다. 단순히 준비물 유무로 미술시간에 갈라졌던 아이들의 자리는 누군가의 지시가 없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F는 평등한 교육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다름'이 주는 불편함이 너무도 싫다. 준비물을 준비해오지 않는 데 화가 쌓이고 쌓인 F는 담장 밖에서 '막일'을 하던 인부들을 가르키며, 아이들에게 너희도 나중에 '저런 일'을 하며 살고 싶냐고 소리친다. 그리고 인부 중 몇이 밤에 F를 쫓아 혼쭐을 내주려다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야기에서 표면적으로 다루는 불평등에 대한 시선과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얄팍한 자존감이 매우 불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제목인 '고의는 아니지만'이 주는 의미가 더해져 더욱 심각한 의미로 다가온다. F는 선의를 통해 아이들을 보듬으려 했다.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 있는 본능적인 '다름'에 대한 선입관(즉, 다름=틀림)이 점점 자라나는 동안 이를 다스릴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F뿐 아니라 반 아이들에게서도 어릴 적부터 자각 없이 자동적으로 습득되는 불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라는 변명은 얼마나 구차한가. 또한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자신을 원천부정하면서까지 마음에 숨겨져 있던 욕망을 한껏 발산하는 모습을 어둡게 표현한다. (이는 다른 글 '어떤 자장가'에서 더욱 기괴하게 그려진다)

  7편의 단편 모두 좋진 않았지만 이전에 알던 구병모의 모습을 완전히 벗겨 작가의 이면을 알 수 있는 데서 오는 쾌감(?)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한 심리적 표상을 천천히 뜯으면서 겪는 이질감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소설로 생각하며 폈지만, 무섭다. 참으로 무서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 - 소크라테스부터 데리다까지 초특급 두뇌들의 불꽃 튀는 입담 공방전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프레드 반렌트 지음, 최영석 옮김, 라이언 던래비 그림 / 다른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52.


  대학생 때, 철학에 잠시 관심을 두고서 나름 입문서라는 걸 찾은 적이 있다. 내가 원했던 책은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 여러 철학자들의 철학사조를 풀어쓴 것이었다. 내가 찾은 건 <해리포터 철학 교실>이었다. 읽을 만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이왕 공부할 거 개론서는 집어치우고 철학의 진짜 몸통에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폈다. 30쪽을 채 보지 못하고 접었다. 다시 입문서. <생각: 철학으로 가는 가장 매력적인 지름길>이라는, 호평이 자자한 책이었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결국 찾은 건 <소피의 세계>였다. 몇 단어에 대한 철학사조를 읽는 것은 철학에 친숙해지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옛부터 쭉 이어지는 철학적 개념의 정의와 변화, 즉 철학사도 방법 중 하나였다. 다만, 사실관계와 개념설명만이 즐비한 책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삼국지연의가 정사보다 재밌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면에서 소설 형식을 차용한 <소피의 세계>는 매우 흥미로웠다. 중간에 한 번 포기했지만 결국 완독했다. 그뒤, <생각: 철학으로 가는 가장 매력적인 지름길>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후 읽은 철학서적은 거의 없다)


  몇 권 읽지 않은 철학책 중 감히 입문서를 꼽으라면 철학사를 소설로 풀어낸 <소피의 세계>와 근대철학을 나름 재밌게 서술한 <철학과 굴뚝청소부>다. 전자는 소설이라는 포맷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에 다소 친숙하게 다가가고, 후자는 관심에서 더 나아가 공부와 성찰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책이다. (여기에 <생각>을 추가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절판된 책이라 제외했다) 이제 여기에 한 권을 더 추가하겠다. 바로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프레드 반렌트 글, 라이언 던래비 그림, 이하 철학 쑈)이다.


  미국 도서관협회상을 받은 이 '만화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철학자부터 해체주의 현대 철학자 데리다까지 철학사를 그렸다. 표지만 보면 이게 무슨 책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수염이 잔뜩 나고 복면을 쓴 덩치, 무림사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도승, 버버리코트를 입은 로봇, 람보총을 든 할아버지. 이게 무슨 철학책이란 말인가?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캐릭터가 각 철학자를 잘 묘사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무미건조한 철학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재밌는 후일담까지 가득하다. 플라톤은 사실 별명이다.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헷갈리지?)이다. 플라톤(plato)은 '넓은'이나 '평평한'이란 뜻으로 어깨가 떡 벌어진 프로레슬러인 '아리스토클레스'의 별명이다. (표지에 복면을 쓴 덩치가 바로 플라톤이다) '진짜임', '누가 누구에게 실제로 한 말' 등의 각주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라고 항상 고상한 생각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살았다는 걸 보여주어 재미를 준다.


  만화책이고, 철학자를 캐릭터로 표현하였다고 책이 쉽다고 치부하면 오산이다. 물론 텍스트에 비해 그림은 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이 많기 때문에 다른 철학책에 비해 내용이 다소 적다. 다소 딱딱한 내용을 흥미로운 그림체와 구성으로 꾸며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단순한 결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결론으로 가는 사유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다. 보통 철학사에서 다루지 않는 동양철학자(노자, 공자, 달마 등)나 철학 초심자에게 다소 비중이 적은 철학자(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오귀스트 콩트, 쇠렌 키르케고르 등)도 다룬다.


  입문서이기에 이 책 자체로 세세한 내용을 공부할 수는 없다. 다소 쉽게 표현된 내용으로 철학에 친숙해진 뒤 각 철학자를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 표지의 네 명의 철학자는 차례대로 플라톤, 달마, ,마르크스, 니체다. (플라톤부터 시계방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048.


공대생 유머.

공대생은 인사로 이 세 마디를 한다. 과제 했냐? 저 여자 예쁘지 않냐? 밥 먹었냐?


남자 이야기.

나중에 밥이나 한 끼 먹자 해놓고 먹는 일이 없다.


엄마 이야기.

자식이 밥을 많이 먹어도 더 먹이고 싶다.


회사 이야기.

점심시간에 맛난 점심을 먹으면 계약성립이 수월해진다.



  모두들 매일 밥을 먹는다. 모종의 이유로 안 먹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먹는다. 배고플 땐 사나워지지만 점심시간에는 매일 화만 내는 상사도 잠시 인자해진다. 식욕은 기본적인 욕구 중에 생명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하자는 외침에 다들 자리를 뜨고, 아무리 미운 상대라도 밥은 먹고 다니냐며 걱정스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학창시절 학교에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외치셨다. 밥은 먹고 가야지!


  여행 에세이집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를 쓴 변종모가 새 에세이집을 꾸렸다. 여행과 그리움이라는 기본적인 테마를 깔고, 이번에는 독자에게 특별히 밥을 차려주었다. 기존의 에세이집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와 에피소드, 낯선 곳에서 문득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 처음 보는 장면에 대한 찬탄을 다룬다면, 이번엔 낯선 길에서 낯선 이와 함께한 식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낯선 길 위에서 혹은 몸이 지친 어느 날들에는 자주 생각날 것이다.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을 그 과일 물김치가 자주 생각이 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어린 시절 달콤한 물약 같은 만병통치약. 어머니의 과일 물김치는 내게 반찬이 아니라 약이다. _69쪽


  변종모뿐 아니라 모두에게 밥은 향수와 같다. 우리의 머릿속 추억에는 몇 가지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음식은, 지금 보면 별 거 아녀 보일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그것보다 훨씬 값비싸고 으리으리한 음식을 많이 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단촐해 보이는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하고 평생 맛의 세계를 겉돈다. 다이나믹 듀오도 어머니의 된장국을 그토록 부르지 않았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음식 냄새를 맡자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듯이, 밥에 관한 기억은 추억을 부른다. 그리고 그 추억은 무의식 저 아래에 있던 사람과 감정을 끄집어낸다.


  처음 보는 당신이 나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따뜻하게 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두고 온 곳의 내 소중한 사람들을 뜨겁게 떠올렸다. _프롤로그


  변종모는 요리사가 아니다. 음식을 먹는, 일상적인 사람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 얘기를 쓰면서도 음식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써서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다만 자신의 추억담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유 없이 좋아하다 보면 끝내 이유가 생긴다', '내가 잠시 당신에게 빈 그릇이었나 보다'라는 문장들은, 긴 산문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문구다. 그렇게 맛있게 먹던 짜이(인도식 밀크티)가 사실 갠지스 강물로 만든다는 걸 봤을 때 느낀 당혹스러움에선 유머와 동시에 성찰이 느껴진다.


  밥은 생명이고 온기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마음 속에 따뜻한 부엌이 있다. 밥을 먹을 땐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한다. 같이 밥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온기를 조용히, 또 온전히 느껴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차린 건 많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제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말없는 속삭임이 들린다.



  잠들지 못하는 밤,  P는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검은 천장 위로 쏟아내곤 했다. 사랑이 지나간다는 것,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검은 천장 같은 아득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하지 못했으므로 그저 들어주기만 하던 날들. _28쪽


  KKH의 그 높은 도로 위에서 중년의 남자들이 허옇게 뿜어대던 휴식의 시간에 잠시 삶이 고달프다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목구멍 깊숙이 박힌 어머니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도 이제 그들의 나이로 달려가고, 그들처럼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담배 연기를 뿜는다. 알 수 없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을 때 허연 달을 보면서 어머니가 누운 방향으로 고개 돌리는 날이 많아졌으므로. _65쪽


  이유 없이 좋았다. 그렇게 이유 없이 좋아하다 보면 끝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왜 사랑하냐고 묻지 마시라. 그냥 사랑하고 그냥 좋아하는 그 마음이 가장 순수한 것을. 그것을 의심하지 마시라. _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인시공]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43.


  내 이상형은 책을 좋아하는 여자다. 아무리 어리고 예뻐도 그건 결국 한순간이고, 나이나 외모도 시간이 지나면 시간과 함께 그 또한 지나간다. 마인드가 통해야 대화도 통하는데, 내 마인드는 책과 영화에 쏠려 있기 때문에 결국 책을 읽는 사람을 찾게 된다. 잠시 마음에 품었던 한 여인은 너무나 귀여웠지만 책을 지독히 싫어해서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 여자만 섹시한 게 아니다. 책을 읽는 남자도 굉장히 매력적이다.(커밍아웃이 아니다) 남녀노소를 떠나 책을 읽는 행위는 아름답고 섹시하다.


  <책인시공>은 노신사가 서점의 좁은 문에 서서 책을 들여다보는 사진으로 시작한다. 백발의 신사. 눈도 잘 보이지 않을 텐데 안경까지 벗고서 책 읽기에 몰두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어디에 기대지 않고 꼿꼿이 선 모습이 서점 특유의 분위기와 어울려 뭔가 결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회학자이면서 예술로서의 사회학을 지향하는 정수복은 <책인시공>에 파리 곳곳의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찍었다. 땡볕 아래지만 그늘에서 책을 읽는 사람,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카페에서 책을 읽는 사람, 서점 매대의 책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 시끄러운 길거리에서도 책을 손에 든 사람,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가게 벽에 기대어 글을 적는 사람 등 온갖 곳의 사진이 있다.


  우리나라는 길거리와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이 드물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책인시공>의 사진이 친숙할 것이다.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건 책을 읽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에 빠져서 허리는 점점 굳어지고 읽기에 몰두한 나머지 자세가 점점 흐트러진다. 벽에 기대기도 하고 때론 자세가 불편해 부스럭거리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누가 불러도 반응이 없을 때도 있다. 영혼이 책에 쏙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문화의 도시 파리에 사는 사람도 책에 몰두할 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정수복은 책과 사람 사진 외에 책 읽기에 대한 잡담을 잔뜩 썼다. 잡담이라고 시답잖은 글은 아니다.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푼 후에 여러 사람들(자신이나 다른 사람, 특히 작가들)이 말한 책 읽기 좋은 시간과 장소에 대해 말한다. <책인시공>의 매력은 인용되는 여러 텍스트에 있다. 한국과 파리를 오가는 동안 자신만의 서재를 잃어버리고 다시 꾸리는 글에서 기형도의 시 '오래된 서적'(주1)을 말하는 순간, 서재의 모든 책이 자신을 꺼내 읽어 달라고 아우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르 몽드'지에 실린 '책 읽기에 즐거움' 리스트에 든 '책을 읽고 있는 애인의 왼쪽 다리에 오른쪽 다리를 포개고 침대 위에서 책 읽기'라는 문장을 보면 야릇하지만 평온한 기분이 든다.


책의 압권은 서장에 해당하는 '독자 권리 장전'이다.(주2)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의 <소설처럼>에서 쓴 '독자의 절대적 권리들'을 정수복이 재구성하고 보완하였다. 17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장전은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글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언제든 아무 책이나 읽고 그 즐거움을 탐닉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소리내서 읽을 권리도, 다른 일을 하면서 읽을 권리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아예 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있다. 책 읽기에 사명감도 목적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책 읽기는 유의미하고 동시에 무의미하다. 독서 그 자체를 그저 즐기면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주1.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_기형도, 「오래된 서적」 중에서



주2.

1. 책을 읽을 권리

2. 책을 읽지 않을 권리

3.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권리

4.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5.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

6. 끝까지 읽기 않을 권리

7. 다시 읽을 권리

8.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9.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10. 책에 대한 검열에 저항할 권리

11. 책의 즐거움에 탐닉할 권리

12.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 읽을 권리

13. 반짝 독서를 할 권리

14. 소리내서 읽을 권리

15. 다른 일을 하면서 책을 읽을 권리

16.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

17. 책을 쓸 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과 사물의 기원
장 그노스.김진송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036.


  두 달 전 읽은 김진송의 책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는 악마의 형상을 한 나무 조각과 함께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이라는 이야기가 써 있다. 석탄과 석유를 암흑의 신이 플린 피로 묘사한 뒤 악마의 검은 피가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소설의 형식을 빌린 글이다.(주1) 많은 소설을 봐왔지만 이처럼 신선한 글은 많이 보지 못했다. 이 글은 <인간과 사물의 기원>(이하 <기원>이라는 책에서 발췌했단다. 배송기간 이틀을 기다리기조차 싫어서 그날로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왔다. 책을 산 지 두 달이 넘도록 펴보지도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그때의 책 구입은 인터넷 서점 할인금액과 왕복 교통비만큼의 손해가 있었다. 허나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는 것을 느낀다.


  <기원>은 거짓말을 담은 책이다. 저자 장 그노스는 소설이 아니라고 하지만(정확히는 그런 구분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명백한 소설이다. 첫째로 모든 이야기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개와 의자가 서로를 닮고 싶어서 비슷한 모양새로 진화했다든가, 비행기가 하늘에 뜨는 원동력이 염력이라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둘째로 글을 풀어쓸 때의 시점이다. 보통의 이야기에서는 현대인이 분명한데, 지금의 서울이 유적지로 발견됐을 땐 먼 미래의 고고학자가 되고 심지어 '철갑충과 그 기생 동물'에서는 차와 인간을 연구하는 외계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라에 의존한 이야기다.


  재밌는 건 허무맹랑한 진실과 거짓말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진실과 거짓은 한 끗 차라는 말도 있듯이 이 소설은 아주 그럴 듯하다. 이는 논리의 전개에 의거한다. 삼단논법- 'A가 B이고 B가 C라면 A는 C다'라는 명제는 아주 단명한 논리다. 재밌는 건 가장 처음 가정이 틀리다면 결론도 틀리지만 논리적으로는 적확하다는 것이다. <기원>은 삼단논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장 그노스는 처음부터 자신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완벽한 논리로 구성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이야기가 거짓임을 분명히 알지만 논리적으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데다가 명쾌하기까지 하니, 머리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과연 내가 아는 진실이 정말 '진실'이 맞는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증거와 개연성에 의존한다. 최초의 인류라는 것은, 그 전(前) 시대 인류의 뼈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최초'이다. 인간의 역사 연구는 진짜 역사가 아니라 학문 오류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증거(가정)가 거짓일지도 모르는데 완벽한 개연성(논리)만 붙들고 진짜를 외치며 으스대는 꼴이다. <기원>은 학문의 논리적 허구성을 말하며, 더불어 세상을 거꾸로 보는 능력을 선사한다.


  진실과 거짓과 논리, 이런 것들을 다 차치하고서도 <기원>은 텍스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다. 가장 재밌게 읽은 꼭지는 '비행기가 뜨는 힘'이다. 보잉747은 무게가 150톤에 육박한다. 이런 무게가 공기층과 얇디 얇은 날개가 만든 양력으로 하늘로 뜨다니, 과학적 근거가 확실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다, 장 그노스에 의하면 비행기는 인간의 염력에 의해 하늘을 난다. '난다'는 것은 인간을 지배하는 중력에 완전히 위배되는 개념이다. 자신과 반대되는 개념을 본능적으로 아는 승객들은 비행기가 하늘로 뜨려는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염력을 발생시킨다. 거짓말인 게 눈에 딱 보이지만 너무나도 교묘히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깜빡 속을 수밖에 없다. 아니, 염력은 진짜일지도 모른다.


  '강자 보호와 약자 처벌에 관한 법률'(일명 강보약처법)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국가의 성장이 정체된 시기, 정부는 국민을 점수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 계급(본문에서는 계급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재산과 자위, 학력, 직업 등으로 단계별 점수를 매긴 것으로 보아 계급이라고 칭해도 좋을 듯하다)은 각자의 색깔카드를 갖는다. 카드는 큰 힘을 갖는데, 어떤 사고가 벌어져도 색카드 하나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보다 하위 색카드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상위 카드에게 양보해야 한다.(이외에도 많은 혜택이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강보약처법은 카스트 제도와는 다르게 얼마든지 계층간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죽어라 일한다. 국민이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는 번창한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손가락만 쪽쪽 빨지는 않는다. 결국 계층간 벽은 절대 넘을 수 없다. 많은 요소로 사람에게 점수를 매기고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는 것은 인권침해에 가까운 일이지만 국민들은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국가의 성장은 엄청나고 이제 다른 나라에서까지 강보약처법을 벤치마킹하러 오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분명 부조리한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 아니 이미 벌어졌다는 생각에 참으로 무섭다.


  투박하지만 상상력만큼은 최상급이다. <기원>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책을 펴면 (한국에서 유독 힘있는)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나무>에 비해 서술이 불친절하달뿐이지 서사나 상상력은 동급이라 하겠다. 허무맹랑한 거짓에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기원을> 과감히 펴도 좋다. 장 그노스는 질문한다. 그 작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저 넓은 우주가 시작되었따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 오오냐, 이제부터 나도 안 믿으련다.



  주1.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는 하느님과의 대결에서 패해 자신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페트롤리우무스의 몸은 산산히 흩어졌고 검은 피가 대지에 스며들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천 년이 지나서야 하느님은 생명을 창조했다. 수많은 위험 속에서 인간이 진화하는 동안 지구 어느 구석의 늪에서 악마의 피가 새어나왔다! 악마의 피를 신비의 물이라 생각한 연금술사는 불타는 피를 끝없이 연구한다. 악마의 피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고 기술을 주었으며 문명을 주었다. 동시에 악마의 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얼굴에 칼을 겨눴다. 악마의 검은 기운이 세상을 서서히 뒤덮자 하느님의 선물인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모든 생명은 조금씩 사그러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