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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들판 - 완결편 견인 도시 연대기 4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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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견인 도시 연대기의 마지막 권입니다. 전의 세 권을 내리 읽다 보니 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제 성격도 있고, 뒤로 갈수록 약간은 지루해진 이야기 진행도 있고 해서 3부를 읽고선 다른 책으로 잠시 눈을 돌렸습니다. 가벼운 문체로 쓰인 레벌루션 시리즈라든가 산뜻한 산문집, 가볍게 읽기 딱 좋은 연애서적, 모험은 없지만 재미있었던 SF 소설까지,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견인 도시 연대기는, 조금 잊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특정 날짜까지 다 읽어야 해, 라는 압박감도 사실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이 안 가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가진 책엔 욕심이 많이 나지 않더라고요.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 투성이인데다가 세네 권씩 빌려왔는데 막상 방에 들어와서 책장을 보면 읽을 책이 넘친다 이거죠. 분명 읽고 싶어서 산 책들인데 왜 이리 눈이 안 가는지. 이게 '이미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의 법칙인가 봅니다. 연애서를 봐서 이런 생각이 든 건, 절대 아닙니다. 암요, 아닙니다.

시험도 많고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잠시 텍스트 불감증에 걸렸습니다. 덧붙여 영드를 본다고 시간을 더더욱 허비했지요. 전처럼 침대에 누워 느긋이 책을 보던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을 들기 며칠 전에 황석영 작가님의 북 콘서트에 참가했는데, 이야기를 잘 쓰려면 소설책을 읽는 비중을 줄이라고 하시더군요. 대신에 인문서 좀 읽으라고 당부하시던데요. 황작가 님 덕에 더더욱 손이 안 갔던 '황혼의 들판'이었습니다.

헛소리만 해댔네요. 책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죠. 4권은 전권의 6개월 후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톰과 렌은 비행무역상 일을 하고, 헤스터와 슈라이크는 자신들만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테오는 고향 자그와로 돌아갔고 피쉬케익은 스토커 팽의 머리를 주워 자신의 스토커를 수리하면서 다닙니다. 그린 스톰에서는 스토커 팽의 빈자리를 나가 장군이 매꾸는데 닥터 위논이 그의 부인이 되어 견인 도시와의 화친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좋아하고 자기만이 옳은줄 아는 사람이 꼭 있길 마련이지요. 그린 스톰 내에서도 반 나가 세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평화 사절단으로 자그와에 방문한 위논이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고, 자꾸만 정신이 훼까닥해서 스토커와 안나 두 인격을 왔다 갔다 하는 스토커 펭은 3권에서 언급된 위성 무기 오딘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텍스트 불감증 덕에 글 자체를 보기 싫었지만 '황혼의 들판'을 편 날 200쪽을 훌쩍 보았습니다. 원체 집중력이 좋지 않아 한 시간 이상 가만히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날만큼은 두 시간 가량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뻔해 보이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전 권들과는 읽는 맛이 확연히 다르더군요. 여전히 필치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입니다. 연대기 내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캐릭터들이 나이를 먹어 전체적인 이야기가 깊어졌습니다. 물론 30대 어른의 말도 안 되는 순수한 생각을 보자니 내 복장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제목 그대로 이야기는 황혼이었습니다. 황혼이 무슨 뜻이당가, 네이버는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따위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말하는군요. 소설 속에서도 톰이 말하지요. 렌을 위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톰과 헤스터는 언젠간 죽습니다. 아니, 그건 모든 인간의 숙명이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황혼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황혼 뒤에 밤이 있고 다시 해가 뜨지 않겠어요? 그렇기에 지는 태양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소설을 보면서 뭔가 배우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화려한 런던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신분계급차, 도시진화론의 당위성,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거나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 시리즈, 견인 도시 연대기는 정말 잘 짜인 이야기였습니다. 4권 마지막에서는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미셸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연상시키는 마무리라니, 아아 정말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다만, 원서를 읽어 보고픈 마음이 잔뜩 생긴 건 비밀입니다.

(2011년 10월 22일 ~ 2011년 10월 27일, 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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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무기 견인 도시 연대기 3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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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감상은 상당히 짧게 끝날 것 같군요.

연대기 3권에 들어섰습니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연대기의 절반을 막 넘어왔습니다. 슬슬 끝을 향해 가는 견인 도시 연대기, 그 중간의 3권, 한마디로 말하자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참기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랬습니다. 형만한 아우가 없다더니 그 둘째만한 셋째도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야기는 2권의 끝으로부터 16년 후입니다. 그때 헤스터가 가진 톰의 아이, 렌은 무럭무럭 자라 15살의 아름다운 소녀가 됩니다. 견인 도시였던 앵커리지는 아메리카에서 정착촌(바인랜드)가 됐습니다.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의 삶을 잘 살고 있죠. 하지만 톰과 헤스터의 자유로운 영혼을 받은 렌은 자신이 사는 곳이 한없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렌에게 재밌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앵커리지에 찾아온 로스트보이들이 앵커리지 도서관의 틴 북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합니다. 렌은 물건을 가져다주는 대신 자신을 모험의 길로 인도해달라고 하죠. '멍청한' 렌은 틴 북을 로스트보이들에게 주고 여차저차해서 납치당합니다.

하지만 브라이튼의 계략에 빠져 잠수함 오토리쿠스는 포획되고 렌은 노예로 팔려갑니다. 거기서 페니로얄에 대해 알게 되고 살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 페니로얄의 노예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뭐, 뻔하겠지요? 톰과 헤스터는 렌을 구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돌아다닙니다. 중간중간 여러 사건이 있고 시련도 있습니다.

전의 두 권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10대였던 톰과 헤스터는 이제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톰은 건강이 좋지 않고 심지어 머리가 조금씩 까졌지요. 아름답던 프레야는 노처녀가 됐고요.

이런 세월의 벽 앞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되었습니다. 청소년 소설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던 1, 2권과 달리 꽤나 딱딱합니다. 일전에는 광활히 펼쳐지는 땅이나 얼음 평원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네요. 과거의 톰과 지금의 렌은 같은 나이대이지만 행동거지나 사고방식이 꽤나 다릅니다. 그래서 조금, 아니 많이 지루했습니다.

너무나 긴 이야기를 계속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조지 R.R Martin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번역자의 잘못이고 뭐고 그냥 좋아하죠.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된 4부까지 읽으면서 슬슬 지루해진 건 3부부터였습니다. 거의 한 달에 걸쳐 내내 웨스테로스에 빠져 살다보니 자연스레 힘들더라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밌는 애니라도, 드라마라도 시리즈를 펼쳐놓고 쭉 보다보면 참 힘들 때가 있죠?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동영상도 24시간 보면 지루할 거라고! 그래서 주말에 텔레비전에서 몰아 보고 말이죠. 아니, 이건 나만 그런가?

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헤스터의 모습도 짜증났지요. 아무리 과거가 괴로웠다고 해도 16년간 사랑스런 앵커리지에서 살면서 성격이 바뀌긴커녕 더 날카로워진 헤스터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톰을 놔주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순수가 결여된 모습에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지요. 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걸까요?

4권을 대충 훑어보니 3권에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견인 도시 연대기를 전체적으로 두 부로 나눈다면 1, 2권과 3, 4권으로 나눌 수 있겠네요. 3권이 아니라 2막 1장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악마의 무기>는 4권의 프리퀄격 이야기라고 강하게, 아주 강하게 느꼈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4부도 자신을 2막 1장이라고 말했지요. 번역 문제도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고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악마의 무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과는 다르게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네요.

4권을 읽기 전에 잠시 머리를 회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책을 집어들렵니다. 에고, 힘들다.

(2011년 10월 7일 ~ 10월 10일,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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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현상금 견인 도시 연대기 2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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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견인 도시 연대기 2권입니다. 2권을 읽어본 결과 1권은 그 자체로 완성된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프리퀄적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권에서 톰과 헤스터는 죽은 안나 팽의 비행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2권은 그로부터 2년 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죠. 둘은 그동안 견인 도시에서 살지 않고 비행선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활합니다. 잠시 에어헤이븐에 들른 둘은 역사학자 페니로얄을 만납니다. 그는 둘에게 비행선에 자신을 태워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에 살던 도시에서 그에게 돈을 때인 블링코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꼬입니다. 안나 팽의 제니 하니버를 알게된 블링코는 그 정보를 반 견인 동맹에 팔게 되고 제니 하니버는 추격을 당합니다. 공중전이 벌어진 이후 고장난 제니 하니버는 바람에 실려 하늘을 둥둥 떠다니다가 새하얀 얼음 위의 견인 도시 '앵커리지'에 안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도시의 십 대 여왕 프레야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되고 톰은 오랜만의 견인 도시 생활에 들뜹니다. 게다가 못생긴 헤스터 대신 아름다운 프레야와 서로 호감을 품는 바람에 헤스터는 단단히 삐칩니다. 거기다가 허풍 가득한 역사학자 페니로얄의 아메리카 탐험기를 굳게 믿는 프레야는 도시를 아메리카로 향하게 합니다.

이제 앵커리지는 있는지도 모르는 아메리카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고 있고 그들의 뒤로는 제니 하니버를 원하는 반 견인 동맹이 쫓아옵니다.

이 책을 한 열 쪽 정도 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1권에서 문장이 약간 유치하다라고 썰을 풀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군요. 저자가 바뀔린 없고... 번역자 또한 바뀌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스토리 소개를 하다보니 알겠군요. 1권은 16살의 꼬마아이가 이런저런 사건을 맞아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여기 있다가 조금 있으면 저기로, 또 저기로, 사건 자체가 많아서 전개가 상당히 빨랐지요. 하지만 2권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1부는 상당히 정적입니다. 전처럼 장소를 옮기며 생기는 액션은 많지 않고 대신 앵커리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기는 사건들 위주로 이야기를 때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한결 차분해졌겠지요. 2년새 훌쩍 커버린 톰과 헤스터에게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고요.

하지만 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1권의 다소 가벼운 분위기와는 다른 2권의 초반부가 약간 버거웠던 건 사실입니다.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인데 이걸 읽는데도 꽤나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책의 진가는 중간을 넘어가면서부터입니다. 질투심에 눈이 먼 헤스터는 앵커리지를 떠나고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신나게' 진행됩니다. 2부 처음부터 예상치도 못한 인물과 사건이 저를 맞이했고 중간부터는 액션성이 강한 소설답게 상당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끌어드립니다. 자야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새벽 세 시고 네 시고 눈에 불을 켜게 만들더라니까요. 정말 대단한 전개였습니다.

1부의 감상에서 '나는 다크판타지를 원한다'라고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인물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원하는 바대로 되고 있습니다. 아, 완전 좋아요.

이번 권에서 맘에 안 들었던 점은 뒤와 비교해 약간은 긴장감이 떨어졌던 앞 부분, 그리고 역자의 너무나 친절한 각주였습니다.

아 하나 더, 2권의 주제는 아무래도 과거와 현재가 아니었나 싶네요. 꿈속에서도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는 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자.

(2011년 10월 2일 ~ 10월 6일, 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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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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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랜만에 읽는 SF입니다.

SF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지요. 딱히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만 며칠 전 읽었던 <1984>처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책이 있는 반면 각종 과학 얘기가 잔뜩 들어간 하드 SF가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견인 도시 연대기 1부 <모털 엔진>은 여태껏 읽은 여타 SF와 많이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로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장르이기도 하지요. 스팀펑크입니다. 단 일전의 스팀펑크 장르는 18, 19세기를 그리는 반면 <모털 엔진>은 명백히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과학이 한참 발전한 시대에 '60분 전쟁'의 여파로 지구는 살기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견인도시'를 만들어 생활하게 됩니다. 물론 견인도시에 반대하는 반 견인동맹도 존재하고요.

견인도시들은 서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보다 작은 도시를 먹으면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거죠. 그곳에서 날 적부터 살던 사람들은 사냥이 있을 때마다 환호합니다. 그런 런던 시가 솔트후크라는 작은 도시를 먹습니다. 런던 시의 역사학자 길드장인 밸런타인은 솔트후크의 해체작업에 참가합니다. 고물 수집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 그를 맞이한 것은, 한 소녀가 들이미는 칼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주 휘몰아치죠. 별 설명 없이 우선 칼부터 들이밀고 보는 겁니다. 주인공인 톰과 칼의 주인공 헤스터는 결국 런던에서 떨어지고 런던을 향한 그들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노예로 팔려갈뻔 했다가 공중도시로 가지 않나 해적타운을 만나기도 합니다. 작가 필립 리브가 꽤나 대단한 이야기꾼이란 걸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긴 여정은 아니지만 거기서 이야기를 길쭈우우욱하게 뽑아낸다는 거죠.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어느 봄날, 런던 시는 바닷물이 말라 버린 옛 북해를 가로질러 작은 광산 타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11쪽)


책의 첫 페이지를 펴면 보이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모든 세계관을 말해주고 이것만큼 1권에서 눈에 띄는 문장은 없습니다. 북해가 말랐다고? 런던 시가 광산 타운을 추격한다고? 세계관을 담고 있으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키는 역할. 첫 문단, 첫 문장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청소년입니다.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성장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른들은 다른 도시의 사냥을 보며 열광하고 반 견인동맹의 도시를 파괴한다고 축제를 열지만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죠. 아직 타성에 젖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나는 나, 너는 너지만 그렇다고 너는 단지 타인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결국 그 너도 너에겐 나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런 게 바로 동심, 아니겠습니까.

저는 웬만큼 재밌는 소설이라도 사흘 정도 잡고 있는데 이 놈을 읽는데는 하루 하고 반나절 정도 걸렸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흥미롭고 진행도 꽤나 빠르기 때문이지요. 문장도 약간 가벼운 편이고 복잡하지 않아 머릿속에 팍팍 들어왔거든요. 주인공이 어려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일뿐입니다. 문장이 너무나 가볍고 유치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의 저자가 이청준, 박완서, 박민규인데다가 직전에 시집 두 권을 읽었습니다. 가벼움을 느낀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세계관이 방대하고 스토리가 좋아도 문장이 유치하면 저처럼 단면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거든요. 작가의 문체가 문제인지 번역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으신 고귀하신 어른들은 SF는 역시 청소년 문학이다, 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 문학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해리포터도 처음엔 동화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멋진 다크 판타지로 끝났지요. (사견입니다만 해리포터 시리즈는 책으론 별로고 영화로는 썩 괜찮았습니다.) 견인도시 연대기도 앞으로 4부까지의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주인공들은 얼마나 성장할지, 이야기는 얼마나 어두워질지, 주제는 얼마나 무거워질지 기대해봅니다. 전 뼛속까지 어두운 사람이니까요.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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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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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자신의 손끝에서 깜빡거리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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