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천재가 된 홍대리
이지성.정회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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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013.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적지 못했는데요, 제가 가진 글쓰기 능력으로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전율이 일었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읽었던 책들은 결국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책에서 언급한 인문고전 - 여태까지 한 권도 읽지 않은 - 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전율의 반인 자괴감이었고 다른 반은 두근거림이었지요. 나도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다 보면 더 똑똑해지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이제부터 문학의 비중을 줄이고 인문서 위주로 책을 읽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네요. 책 뒤에 나온 추천 인문서 목록을 복사한 A4 종이가 아까워요. 하지도 못할 거 마음은 왜 먹었는지.

  인문서를 통해서 나를 바꾸자는 게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말한 주제였다면 이번 책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인문서보다는 자기계발 책과 자기 분야의 전문서적을 읽자는 거지요. 이야기는 소설 형식으로 꾸몄습니다. 전 살기 위해 독서를 한 정회일 씨(공동저자이십니다)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홍대리를 주인공입니다. 알고 보니 홍대리 시리즈가 있더군요.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 브랜드라네요. 어쨌든 직장에서 능력이 달려 다른 부서로 밀리고 잘못하면 잘리기 직전인 홍대리가 독서 멘토 해일을 만나 책 읽기를 시작합니다.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 가벼운 책부터 읽은 후 100일에 33권 읽기, 나아가 1년에 365권 읽기로 점차 성장해갑니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책 읽기가 이 책의 주제인 것 같네요.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재밌고 책 크기도 작아 금세 읽을 만합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저도 2시간만에 다 읽었어요. 그런데 뭔가 와닿지 않습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만큼 소름이 끼치지도, 순간 저를 멍하게 만들지도 못했어요. 그저 그렇구나, 직장에 다니면서 자신을 계발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요.

  왜냐, 이 책은 철저히 '생존독서'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홍대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분야에서 1위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읽고 자기 분야에 관련한 책을 읽습니다. 책 가장 뒤에 '단계별 따라 읽는 홍 대리 도서 목록'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STEP 3_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한 도서 종류로 [자기계발, 시간관리], [업무], [공부법, 독서법], [인생, 꿈 찾기], [성공, 부자, 재테크]가 있습니다. 모두 실용도서입니다. 그런데 어라? 문학은 어딨나요? 소설과 시, 에세이는? 이것들은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가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이 바로 여기서 온 거지요. 책에서 자신의 삶을 바꿀 만한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책 읽기 자체에 즐거움을 느낄 때도 많다 이거죠. 멍청하게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말입니다. 책 읽기의 목적이 오로지 자신이 성공하는데 있다고 말하는 건 조금, 아니 많이 아쉽습니다. 물론 성장 뒤에 성공이 따르는 건 납득할 만한 순서이긴 하지만 반드시 이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책 읽기는 평범한 삶에 지극히 평범한 일이기도 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런 즐기는 책 읽기와 성공을 위한 책 읽기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도 100% 맞다고 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느 쪽도 100%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글쓴이 이지성 씨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책에 파묻혀 살면서도 자기 앞 길도 제대로 헤쳐 나가지 못해 가정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다듬는다고 인문서를 읽으면서도 사회 정의나 봉사, 기부의 삶에 철저하게 무관심인 사람도 있습니다. (11쪽) 문학이든 자기계발서이든, 어떤 책을 읽어도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책이든 가치가 없는 책은 없습니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이나 만화도 그 도가 지나치지만 않다면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 좋겠지요. 하지만 뭐든지 도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거, 명심하세요오.

  (2012년 2월 2일,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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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1 우리 글 바로 쓰기 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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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우리가 반세기도 더 지난 옛날부터 무심코 부르면서 자라난 이 노래부터 우리 말법으로 된 말이 아니다. "내가 살던 고향'이지 어째서 "나의 살던 고향"인가? 이 노래 말을 쓴 이원수 선생도 살아 계실 때 이 노랫말이 잘못되었지만 모두 부르는 노래를 고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일제시대에는 우리 말의 병폐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고 또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으니 예사로 넘겼지만, 지금은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훌륭한 문학의 업적을 남긴 분도 우리들에게 잘못된 말을 가르쳐 우리 말을 병들게 했을 경우 그 잘못을 드러내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을 하는 사람, 더구나 어린아이들에게 겨레의 말을 가르치는 아동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123쪽)



  정말 오랜만에 눈에 불을 켜고 본 책입니다. 많이 틀리는 말법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는데 그 두껍던 포스트잇 뭉텅이 하나를 다 쓰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리도 말을 잘못 쓴다는 것에 자책이 들고 이런 현실에 관심을 두고 고쳐나가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에 한숨이 납니다. 물론 저는 노력하지는 않고 관심만 조금 기울인, 보통 사람입니다.

  이 책은 정말 우연히 집어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고르다가 잠깐 편 것이지요.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이 책의 고침판(개정판)이 새로 나왔다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마구 웃었죠. 한글 연구가의 이름이 '오덕'이라니! 우히히히아하하하. 물론 지금 그렇게 웃는 분들을 보면 조금 씁쓸합니다.

  이번 글은 책에서 감명깊게 봤던 내용을 요약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아동문학가로 활동하시면서 우리 겨레의 말을 살리는 데 힘쓰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중국과 통하며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써왔고(주로 글 깨나 배운 사람들이나 그랬죠) 일제시대에는 일본어가, 그리고 독립 후부터 미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어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말글의 진짜 모습은 사라지고 차차 다른 말글에 물들어갔지요.

  글쟁이들의 '문자 쓰는' 버릇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따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민중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일 것을 열며하는 것이 글쟁이들에게 두루 퍼져 있는 버릇이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치지 않고는 우리 말글을 살릴 수 없다. (43쪽)


  한자어는 우리말에서 약 90% 정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한자어를 모두 없대고 모두 순 우리 말글로 바꾸는 건 아주 힘든 일일테고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문자 쓰는 버릇'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버릇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울수록 똑똑해져야 하는데 그 배움 자체가 조금은 그릇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을 책에서 몇 찾아 보았습니다.

· 한국여자 파죽의 4연승 (→거침없는) 『한겨레』, 1989. 1. 29
· 연습비행 중 새떼와 조우, 몇 마리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엔진에 화재가 발생, 추락했다. (→새떼를 만나 | →불이 나, 떨어졌다.) 『한국일보』, 1987. 9. 30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예시글도 옛 신문에서 쓰인 글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의 신문기사 제목과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괜히 어렵게 한자를 쓰는 걸까요? 바꿔 쓸 수 있는 우리 말이 있는데도 굳이? 익숙한 단어라도 한번쯤은 생각을 달리해 우리 말글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릴 때 신문 스포츠 꼭지에서 '패자'란 단어를 보고 어리둥절한 적도 있습니다. '진 사람'이란 뜻인지 '으뜸인 사람'이란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한자는 같은 발음인데도 다른 의미를 가진 게 많으니 이런 사용도 자제해야 하겠죠.

  한자어를 모두 순 우리 말글로 바꿔 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애쓸 수는 있습니다.

  이번엔 우리 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차례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사용했습니다. 뭐라고요? 늙은 사람이나 일본어를 써서 그렇지 우리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말하는 그 '늙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가르치고 그 아랫사람이 우리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한자어는 단순히 단어를 그리 쓴 것 뿐이지만 일본어는 우리 문법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책은 이 글에 쓰기 귀찮을만큼 많은 예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것들만 몇 가지 적어 볼까요.

· 세계 최대의 범종으로 만들어지는 이 종은…… (→만드는) KBS 방송, 1988. 8. 11
· 국가보안법의 출판규제 폐지돼야 (→폐지해야) 『중앙일보』, 1988. 7. 20
· 나의 첫 번째 존경하는 분 (→내가) 『길』, 제 11집
· 나에게 있어 낙선은 고배가 아니라 축배다. (→나의, 나에게) 『여성자신』, 1988. 7.
· 문화작업의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시작으로서, 시작이 되는, 〔을〕 시작하는) 『한겨레』, 1988. 7. 8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 속의, 감옥에서 〔얻은 생각〕), 어느 책 이름
· 어린이들을 보다 안전하고 포근하게 돌보고…… (→더, 더욱) 『해송 아기둥지』
· 문화제, 예술제 (→문화 잔치, 예술 잔치)


  예시글로만 보시면 잘 모르실 겁니다. 책을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잘못 받아들인 문법 중 하나가 '의'인데요, 이는 일본어 'の'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어에서는 이 'の'가 문법에서 꼭 필요한 존재랍니다만 우리 말글에서는 '의'를 없애고 말을 조금만 바꾸어도 충분히 뜻이 통하지요. 책은 '의'가 들어간 잘못된 문법을 무려 8개나 말하고 있습니다. (의, 와의, 에의, 로의, 에서의, 로서의, 로부터의) 글 가장 위에 있는 '나의 살던 고향은'도 마찬가지겠죠.


  현실적으로 한자어는 고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엉망진창 문법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글은 바르게 못 써도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영어는 글자 한자 잘못 쓰면 크게 수치스런 일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교육이고 정치고 문화고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종살이본성을 뿌리째 뽑아버리지 못한 때문이다. 걸핏하면 외국손님 보기에 부끄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도 우리가 마치 외국 사람들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는 종살이본성에서 나온 말이다. (199쪽)


  종살이본성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하지만 위의 말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맞춤법 틀린다고 누가 잡아가냐. 이런 사람들이 꼭 영어단어 잘못 쓰면 부끄러워하고 남이 그럴라치면 놀리고 그러죠. 세계화시대에 영어를 배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말글을 놓치면 절대 안 되겠죠. 마지막은 서양말입니다.

· 너 아까 우리한테 넘어졌었잖아. (→넘어졌잖아)
·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몰랐다)


  제가 보기엔 영어에서 때매김(시제)을 잘못 받아들였다고 봅니다. 영어에서 때매김은 현재, 과거, 미래와 진행, 완료, 완료진행이 뒤섞여 총 12개의 때매김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말글에서는 3개 뿐이지요. 이적(현재), 지난적(과거), 올적(미래). 더 낭감을 나타내는 때로서 '-고 있다' '-고 있었다'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었었다' 식의 지난적끝나때(과거완료시)라고 쓰는 말법은 없습니다. 과거완료를 쓰고 싶다면 '-했던 적이 있다' 같이 써야 하겠죠.

  과도한 수동태 문장도 잘못 받아들인 것 중 하나이고 무분별한 외국어도 문제입니다. 앞것은 충분히 고칠 수 있다지만 뒷것은 글쎄요, 이건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 컴퓨터, 마우스, 노트북, 왁스, 스프레이, 포스트잇, 배터리. 제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이리 많네요. 하지만 예전에 '네티즌'도 어떻게 바꾸나 했는데 '누리꾼'이라는 단어로 멋있게 바꿨잖아요? 서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죠.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보며 그리 열광하던 때가 별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석규의 쌍욕에 열광했나요? 신세경의 미모에 열광했나요? 밀본의 정체에 깜짝 놀랐나요? 단지 그뿐이었나요?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꾸기 무섭고 힘들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입니까? 남들도 다 '누군가 하겠지'라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는 누가 올바로 알려줄까요?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는 우리 말글 살리기, 이 책 읽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2012년 1월 29일 ~ 1월 31일,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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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 0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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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써라 - 글쓰기.읽기.혁명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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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에, 우선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를 부르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저자 자신이 선생님으로서 글쓰기 수업을 직접 하면서 겪은 일들을 엮어 놓았고 거기에서 글쓰기를 하기 위한 기초적인 소양과 마음가짐을 푼 책입니다. 그래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고 계속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그 안에서 교훈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이런 식의 글쓰기 책도 좋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네요. 반 정도 읽고 눈물을 머금으며 책을 덮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직전에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을 읽은 바람에 이야기 위주의 쉬운 책만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그래서 에세이와 흡사한 형식의 이 책을 보기 힘들었던 것 아닐까요? 아니면 알고 있다는 자만감? 편집의 산만함? 번역의 딱딱함?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요. 좋은 책이라고 다들 꼽는데 저는 중간에 덮어버리니 참 기분이 묘합니다. 사람마다 책에 대한 감상은 다 다른 건데 뭔가, 바보가 된 느낌이 들어요. 엉엉.

  딱 하나 체크해두었습니다. 언제나 마음 속에 달고 사는 건데요, 글은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겁니다.

  "글쓰기의 첫째 규칙은…"
  합창: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마라."
  "좋아. 글쓰기의 두 번째 규칙은 이겁니다.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마라."
  누가 말한다. "근데, 그건…"
  "맞아. 그리고 글쓰기의 셋째 규칙은, 읽는 사람을 지겹게 하지 마라. 자 이제 누구든 셋째, 넷째 규칙쯤은 짐작할 수 있겠죠?" (37쪽)


사람들이 '재미' 하면 보통 말초적인 재미만을 떠올립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이거 먹어라 퍽퍽퍽 으악 액션신,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내 머리 위의 귀신의 머리카락이 만져지는 공포신, 이런 장면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과 긴장을, 사람들은 책을 읽는 원동력이고 재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재미가 이런 게 다가 아니거든요. 재미란 건 '다음 페이지를 읽고 싶다'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요소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온전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펴는 거거든요. 그러기에 그 시간이 아깝지 않고 가치가 있게 독자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 이는 문학뿐 아니라 인문서에도 적용되는 거겠고요.

  책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헛소리를 했네요. 에이 젠장. 책 맨 첫 장의 차례를 보면 대부분의 부제가 한번씩은 들어본 얘기라서 더욱 흥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글쓰기에 겁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책인 듯싶습니다만 글쓰기의 초심을 만들어줄 지침서는 한 권으로 족하렵니다. 저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를 사랑합니다. 아래에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차례만 목록으로 써보렵니다. 제목은 함축적인 거니까 책을 한번 보셔야겠지만 왠지 대부분은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중요한 건 무조건 저질러보라는 것과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고, 힘들다.
 

1. 어떡하면 안 가르칠까 - 당신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2.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마라 - 지루하게 하지 말라니까
3. 넌 누구니? - 가슴의 소리를 따라라, 그래도 괜찮으니까
4. 가장 중요한 글쓰기 연습 - 온몸으로 글쓰는 법
5. 성적 - 막히는 건 신나는 거다
6. 사랑 - 글 다듬는 법
7. 생각 - 묻고 묻고 또 묻자
8. 선택 - 한번 겪어보고 쓰든지 말든지 해라
9. 뜻 깊음 - 당신에게 의미 있는 걸 써라
10. 통제를 그만두기 - 쓰고 싶은 걸 실컷 써라
11. 넌 누구냐니까? - 말로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12. 뚜렷함 - 글쓰기 비법 네 가지
13. 사랑에 빠지다 - 당신만의 그곳으로 가라
14. 혁명 - 당신의 힘으로 알아내라
15. 물 위로 걷다 - 저질러라, 그리고 써라
16. 에필로그 - 노예들의 나라



덧. 이건 보너스 샷입니다.


  (2012년 1월 28일,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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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하 스티븐 킹 걸작선 9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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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1,800쪽의 기나긴 장편인 <그것>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한 권에 사흘씩 총 아흐레 동안 읽으려고 했는데 중간에 설도 껴 있어서 결국 열하루 걸렸네요. 평소 싫어하는 하드커버인데다가 책 두께도 다른 책의 거의 두 배여서 거부감도 들었지만 재미있는 책은 그 누가 분탕질을 쳐도 결국 읽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다 읽었습니다. 상권과 중권에 각각 감상을 썼기에 이번 글에는 하권과 전체적인 이야기를 짤막히 쓰려 합니다.

  하권만 따져보면 텐션은 여전합니다. '그것'보다 긴장감 유지에 더 큰 역할을 한 헨리 패거리 덕분이지요. 물론 중권에서 돌싸움으로 액션이 폭발하긴 했습니다. 전까지는 왕따클럽과 헨리 패거리가 같은 10대의 느낌을 풍기지만 이번엔 완전 역전되지요. 헨리가 아버지 부치 바워스를 따라(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미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2살이 이런 모습을 보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어요. 그동안 같이 악동 짓을 하던 두 명의 친구도 이런 헨리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정도로요.

  그리고 장면전환이 전보다 빨라져서 진행속도도 덩달아 빨라졌습니다. 이건 하권의 좀 뒷부분에서 그런데요, 인물마다 시야가 빨리 바뀌고 현재와 과거 각 시간대의 전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걸리는 속도(전 이걸 문장의 분위기나 단어의 갯수로 그냥 어렴풋이 느꼈습니다)도 전보다는 긴박하고 빨라졌지요. 그리고 이 작품에서 처음 본 표현 방법이 있는데요, 현재와 과거를 도약하는 순간을 참 재밌게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

(현재)  벤은 자크 덴브로의 작업대를 비추던 깨끗한 노란 불빛고 기억한다. 그리고 빌이 했던 말도.
  "우리 모두 조, 조,

(과거)  조심해야 해. 흔적을 나, 남겨 놓으면 안 되니까. 잘못하면 아빠가……." 빌은 '기, 길'을 되풀이하다가 가까스로 "길길이 화를 내실 거야."라고 말했다.


중반까지는 어떤 것을 보고 뭔가를 떠올린 후 과거로 넘어가는데요, 종반에 이르러서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아주 절묘하게 왔다갔다 합니다. 이 방법참 쓸 만한 것 같아요.

  묘사력은 역시 스티븐 킹, 할 정도입니다. 액션신 하면 치고 박고 날라차고 퍽퍽퍽 으악 윽 이러면서 괜히 페이지를 때우는 작품이 많죠. 하지만 진짜 액션신이라면 액션이 부르는 감정이나 통각도 떠올리게 해야 합니다. 물론 조금 성향이 다르겠지만요. 하여튼, 인물이나 '그것'이 느끼는 충격까지도 생생하게 그린 킹 선생에게 박수 세 번 칩니다. 참 대단한 작가에요.

  작가뿐 아니라 번역자에게도 박수를.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더니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보다 모르는 어휘가 더 있답니까. 신기한 일입니다. 더께, 옹송그리다, 대꾼하다, 희붐하다 등 번역서에서 보기 힘든 순 우리말글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정확한 의미로 쓰이지 않고 의미를 비틀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요. 이런 번역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무리가 좀… 거시기해요. 총 5부의 장편인데 4부까지 비중 있게 그린 건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 과거란 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합니다. 기억을 복원해내는 것이 과거에 그들이 부렸던 마법을 다시 부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그런데 있죠, 27년만에 데리에 모인 그들이 할 일은 결국 '그것'을 없애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그것'을 없애는 일은 5부에 가야지 제대로 시작해요. 양이 300쪽으로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니까요. 게다가 어릴 때의 추격전이나 황무지에서의 돌싸움은 그렇게 잘 표현해놓고는 '그것'과의 결전은 글쎄요, 뭔가 뜬구름 잡는 듯했습니다. 전과 너무 달라진 액션(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에 조금 벙찌는 감도 있네요. 이상하게 스티븐 킹은 장편만 가면 매력이 떨어진단 말이죠. 특히 결말 부분에서.

  사람의 상상력과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를 '그것(it)'이라고 표현한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것'은 빌에게는 동생 조지의 모습으로, 에디에게는 문둥이의 모습으로, 스탠리와 마이클에게는 새의 모습으로, 벤에게는 미라의 모습으로(비벌리와 리처드, 미안하다. 너희가 무얼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형상합니다. 데리라는 무대에서 왕따클럽 7명이 주인공으로 행동했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에든 존재하겠지요.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센 '그것'이었지만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약점잡힌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에디가 평소 사용하는 천식약은 사실 수돗물에 쓴맛을 내는 게 섞인 의약일 뿐이지만 강력한 산성이라 믿고 '그것'에게 쏘자 '그것'은 진저리를 치며 도망가지요. 이 소재는 그렉 이건의 단편소설 <야경꾼>에서도 사용되었는데요 이 단편도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여튼, 다 읽었습니다. 너무 뛰어난 묘사 때문에 상권에서는 지루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중권부터는 마구 휘몰아치고 하권은 마지막 150쪽 정도가 조금 거시기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장편이었습니다. 단숨에 읽을 정도의 흡입력 있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솔직히 이런 류의 소설은 재미를 추구하기에 인생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얻거나 삶을 뒤돌아보게 하지는 않지만요, 재미라는 본분에 충실하면 된 거 아닐까요. 그런데 당분간은 스티븐 킹의 장편은 안 읽을 것 같습니다. 별 거 아닌데 머리가 터질 듯한 느낌이 들까요, 왜.

  (2012년 1월 24일 ~ 1월 27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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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중 스티븐 킹 걸작선 8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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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설 쇠러 시골에 가느라 읽는 속도가 약간 뒤쳐지긴 했습니다만 읽긴 읽었습니다. 그것도 폭풍과 같은 속도로 말이지요. 시골에서 하도 잠이 안 와 불편한 자세로 이 책을 잠시 들여다 보았는데 이런. 이야기 위주의 소설책일 경우에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한 시간에 100페이지 정도밖에 못 읽는 편입니다. 게다가 집중력도 바닥이지요. 도무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진득하게 못 보는 편이라니까요. 이런 제가 밤 중에, 자는 가족들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휴대폰 불빛 가리느라 모로 누워 불편한 자세로 300쪽을 봤다 이겁니다. 직전에 본 위화의 <인생>도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가더니.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려.

  상권에서는 마이클의 전화를 받고 인물들이 모이는 장면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과거를 조금씩 떠올리지요. 저기 아래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이 충돌하기도 하고 그때의 아픔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중권에서는 드디어 이들이 만납니다. 왕따클럽 7명 모두가 모이지는 못해서, 또 이제 어른이 돼서 과연 그들이 예전과 같은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가운데 이야기는 계속 진행됩니다. 이 와중에 7명의 고리역할과 동시에 데리의 숨은 수호자와 기록자를 맡고 있는 마이클의 과거를 볼 수 있어서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이클이 어떻게 황무지로 왔는지, 또 어떻게 왕따클럽과 만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긴장감이 엄청난 책이었습니다. 그 어두운 불빛 아래 불편한 자세와 잘 보이지 않아 자꾸 어둡게 가라앉는 글씨를 견뎌내고서 계속 책을 봤다 이거 아닙니까. 주인공들은 아직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다 같이 공유했었을 기억이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기뿐이니까요, 자신에게 닥쳤던 위험한 상황은 자신만이 기억합니다. 아니, 자신이 너무 잊고 싶어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인데도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도 있지만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문구라든가 단어에서 궁금증을 부른 후 그게 등장하는 과거의 에피소드를 불러오는 식이지요. 시답잖은 것도 있고 중요한 것도 있고. 계속 이런 식의 진행인데도 희안하게 중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고 물리는 6명의 기억사슬 때문인가.

  다만 하나 걱정되는 건 진행상의 문제입니다. 아니, 스티븐 킹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는 조금 그렇다 이겁니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장편에서 6명의 인물이 만나는 건 3부입니다. 책으로는 중권의 1/3 정도 되는 부분이군요. 그런데 중권이 끝난 시점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고 떡밥은 계속 던지고, 이럽니다. '그것'의 정체가 까발려진 지금, 성장한 그들이 '그것'을 물리치는 게 이 이야기의 목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권을 읽으면 궁금증이 풀리겠지만요. 단순히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던 예전을 훌훌 털고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던 헨리 일당을 혼내주는 모습만 보면 '그것'은 괴물의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성장하기 위해 경험치를 줄 중간 보스의 자리에도 서 있는 듯하다는 건방진 생각도 해봅니다.

  하여간, 상권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다가온 중권이었습니다. 번역자의 센스는 여전히 뛰어나고(전 역서에서 순 우리말글을 배우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스티븐 킹의 문장 또한 신이 납니다. 다만 종종 등장하는 마이크는 누구이며(마이클의 오타인 것 같은데) 가끔 주어가 빠져 웃긴 문장도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에이, 뭐 이 정도야.

  (2012년 1월 20일 ~ 1월 23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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