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심재관 옮김 / 엔북(nbook)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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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타임머신은 일찍이 영화(2002)로 접했습니다. 80만년 후의 원시부족과 괴물, 그리고 백발 할아버지가 나오는 영화였는데 그때 봤던 결말이 참신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결말이 병맛이다, 원작을 완전히 망가트렸다고 하지만 영화 자체로 보면 나쁘진 않았습니다. 사실 그땐 SF고 웰즈고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전 중에 고전이라는 웰즈의 <타임머신>. 무려 1895년에 쓰였습니다. 점, 선, 면의 3차원 외에 4차원으로 시간을 언급한 게 언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타임머신의 4차원 시간축을 이동합니다. 지금은 숱한 책에서 4차원 개념을 말하기에 거부감 없이 이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이 책은 무려 100년도 전에 쓰였다고요!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메타소설 <시간의 지도>를 읽기 전에 적어도 원작은 읽어봐야지 않나 싶어 편 책입니다. 별 기대는 안했습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책 대다수가 어린이용 책이더군요. 전에 본 영화 내용도 기억하고 있어 그냥 훑어보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딱딱하게 시작하더니 1/3 정도 지나니 오 마이 갓-뜨! 책이 얇아 심리적 부담감이 적어 계속 보게 되더군요. 액션신이 적지만 고작 액션신 보려고 책 보는 거 아니잖아요. 웰즈가 가지고 있던 철학적 사고도 엿볼 수 있었고요. 긴장감이 넘치고 무엇보다도 위나라는 여자캐릭터가 너무나 귀엽고 예쁩니다! 으헝헝.

  미래에는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으리라 생각하고 미래로 온 시간여행자, 그의 눈 앞에는 평화 속에 사는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공포도, 두려움도 없이 매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우물 아래에는 오로지 노동만 하는, 추악한 모습의 종족이 살아갑니다. 시간여행자는 인류가 이리도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사라진 타임머신을 찾아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닙니다.

  소재로 쓰인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영화와 달리 시간여행의 역설은 언급하지 않더군요)도 참신했지만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웰즈의 통찰이 더욱 빛났습니다. 중간중간 조금 뛰어넘은 부분이 있어서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요. 아니, 몇 번을 봐도 100%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계를 이용하며 발전하던 인류가 오히려 그 문명 때문에 서서히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또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그리기도 하고요. 엘로이(지하에서 지상으로 역추방된, 아름다운 종족)는 또 그런 문명의 힘이 없으니 약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없는데도 그들에게 물건을 만들어 바치던 몰록(지하에 사는 종족)은 계속 물건을 만들어 바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연히 다르게 진화하기 전에, 아주 사소한 이유 하나(빛에 대한 적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요. 그러니까, 순진해 보이는 엘로이는 몰록을 속이고, 몰록은 단순한 이유임에도 그걸 너무나 당연히 여겨 아래에 숨어 살고 있는 겁니다. 습격이라고 생각한 몰록의 행동들이, 어쩌면 해방을 위한 아름다운 운동이지는 않을까요. 뭐, 순전히 제 생각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니 시간여행자의 행동과 생각도 서구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네요.

  에잇, 왜 이렇게 다크한 생각만 들지? 나중에 한 권 사서 몇 번이고 다시 보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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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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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024.

  밀레니엄 시리즈를 접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09년에 장르문학 잡지(지금은 폐간됨) '판타스틱'에서 시리즈를 극찬했을 때, 지금은 절판된 구간 표지가 너무 무서워서 그냥 놓았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밀레니엄> 시리즈가 재간된 '11년이었습니다. 한참 블로그에 책 감상 포스트를 올리던 때였는데 출판사에서 . 출판사에서 직접 '책을 줄테니 감상이나 써볼래?'라고 해서 와 공짜책이다, 하며 득달같이 달려들었죠. 하지만 도착이 늦어져 흥미를 잃었고 결국 이놈은 1년 동안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씁니다.

  영화가 한참 이름을 날리고 덩달아 원작도 잘 팔리더라고요. 영화 쪽은 아니어도 책 쪽으로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책을 볼 생각에 2월에 읽을 책으로 골라놨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 읽었습니다. 중간 중간 다른 책을 봐야 할 일이 있어서 고생 깨나 했지만요.

  제가 끝까지 읽는 책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뉘는데 스토리가 좋은 놈(캐릭터도 한몫 합니다), 문장이 좋은 놈, 그리고 전공서적입니다. 세 번째는 논외로 칩시다. 흠흠.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릴러 소설로서 스토리로 이끌어가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까요? 밀레니엄 시리즈는 한 부가 꽤나 두꺼운데 중간에 큰 고비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1권만 보면 이걸 뭔 재미로 읽나 싶었거든요. 딘 쿤츠의 <살인 예언자> 맨 처음을 보는 듯한 느낌? 문장 자체가 약간은 늘어지면서 흐름이 약간 루즈해지고, 분명 필요한 설명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별 쓰잘데기없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작가가 기자출신이어서 그런가. 영상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충격적인 장면이 몇 있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겠지만 소설에 왜 그리 열광했나 싶기도 했거든요.

  1권을 덮고 고민했어요. 2권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해서 2권을 폈습니다. 다행히, 빙고.

  1권에서는 흐름이 약간 떨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리에트라는 과거 인물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데 전혀 진행되는 것도 없고, 게다가 미카엘은 이 자기가 맡은 이 사건을 풀 거라고 생각도 안했고요. 남여 주인공인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조금씩 엮이기는 하나 아직 만나지 않아 서로 자기 얘기하기 바빠서 영 긴장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권부터는 사건에 진전이 있습니다. 과거에 놓쳤던 작은 것들을 번뜩이는 머리와 기자로서의 직관으로 조금씩 이어가면서 말이죠. 여기서부터 2권의 2/3 정도까지 계속 몰아칩니다. 이 부분은 정말 볼 만하더군요. 결말은 다소 싱거웠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쟁점들을 엮은 작가의 필력은 어우, 굉장하더군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시리즈 스릴러 소설에는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중요하잖아요? 보슈라든가 링컨 라임이라든가. 솔직히 미카엘은 별로 정이 안 갔어요. 기자로서 신념을 가진 건 좋은데 이 아저씨는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남자라서 그런가? 대신 리스베트가 참 매력적이죠. 안 좋은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타락하지 않은 마음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멋있는 아가씨. 때로 표독스런 눈빛으로 쏘아볼 때도 있지만 자신이 처음 느끼는 감정에 놀라는 순수한 아가씨. 닫힌 마음을 서서히 열어가는 과정이 너무 예뻤습니다. 여자라서 그런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밀레니엄 시리즈의 맨 처음이라 그런지 프렐류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카엘과 리스베트 콤비는 어떻게 만났는가, 그들의 배경은 어떠한가, 밀레니엄은 어떤 곳인가. 10점 만점에 10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다음 부를 기대할 만합니다. 10부 중 3부에서 이야기가 끝나서 매우 아쉽지만요. 적어도 밀레니엄 1부만 보면 정적인 느낌이 나는데 오히려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도 매우 아쉽습니다. 취향차이겠지요.

  스릴러 소설 좀 읽어야겠습니다. 이쪽은 많이 읽지 않아 스릴러 장르의 맛을 아직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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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하는 아들에게 - 누구나 꿈꾸며 시작하지만 사회는 현실이다
이장석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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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저는 다음주에 대학교 졸업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기업의 신입사원 교육을 받습니다. 그토록 힘겹게 달려왔던 16년의 결실을 맺는 순간이지요. 엄청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제 꿈 중 하나가 직접 번 돈으로 책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아이패드도 살 거고요, 어른다운 모습으로 제태크도 하고 싶어요. 그러려고 투자에 관련한 책도 몇 권 봤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 사회생활은 항상 희망과 두근거림만 가지고 살 수는 없겠지요? 선배들과의 관계, 나에게 할당된 일 제대로 마무리하기, 상사 눈치 보기, 각종 술 모임, 프로젝트, 영어 등등. 어이구,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네요. 앞으로 닥쳐올 스트레스가 심해 마치 이번 교육이 군입대 같다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몇 주 전부터 사나흘 간격으로 재입대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전역한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말이죠. 쩝.

  이런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주위에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들은 모두 대기업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더군요. 그렇다고 주위에 친한 형 누나들에게 물어보자니 아직은 사회경험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전전긍긍. 그러던 참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제목부터 딱 저에게 어울리는 책 아닌가요? 한국IBM 부사장님이 직접 쓰신 글입니다. 원래 아들에게 쓴 글이었다네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섣부른 셈을 하지 마라.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가식 없는 너를 보여준다면 훗날 네가 어두운 곳에서 헤맬 때 누군가 한줄기 빛을 품에 안고 너를 찾아나설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셈이고 내가 경험을 통해 배운 진리다. 인간관계는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해동을 통해 천천히 가까워지고 두터워지는 것이다. 그 어떤 관계도 네가 먼저 계산할 것이 아니란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195쪽)


  흔히 들은 조언으로는, 직장에서 친구를 사귈 생각을 하지 말란 겁니다. 그들은 철저히 동료이고 서로 비즈니스적으로 주고 받는 사이일 뿐이라고 말예요. 그래서 계산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헌데 길게 보면 30년이나 봐야 할 사람을 항상 그렇게 봐서는 회사생활이 참 고달프지 않겠어요?

  회사생활이라고 여태까지와는 별 다른 바는 없는 것 같아요. 웃사람에게 인사 잘 하고,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주고, 꿈을 가지고 살고, 약속을 잘 지키고, 이렇게 말이죠. 여태까지 해왔던대로 주욱 해오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어른의 태도로요. 언제나 꿈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묵묵히 걷는 거지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모든 게 끝났다고 느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니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였고 새내기라는 이름을 달았지요. 이처럼 군대도 다녀왔고 대학도 마쳤으나 사회에서는 또 병아리란 노란색 명찰을 달 겁니다. 대학에서 잘났던 놈이나 못났던 놈이나 같은 출발선을 밟고 서 있으니까요. 물론 두근거림과 불안감을 모두 가지고 말이지요.

  괴테는  "인간의 생활이나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한순간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카네기도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들의 말처럼 기회는 항상 예고 없이 다양한 형태로 네게 주어진다. 네가 작은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면 그것은 또 새로운 기회를 부른다. 네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하나하나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면서 네 그릇은 갈수록 커져갈 것이고 점점 더 많은 양의 물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151, 152쪽)


  말콤 글래드웰의 명저서 <아웃라이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결국 성공에는 운이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거 아니냐, 노력할 필요 없다고 잘못된 해석을 하곤 했죠. 결국 핑계일 뿐인대요. 처음부터 성공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가지 않지만 언제나 주위를 잘 둘러봐야겠습니다. 헛된 자신감을 가지고 떵떵대라는 건 아니겠지요. 저 같은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일이 무슨 회사의 중대사항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손을 번쩍!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자신감으로 중무장해보렵니다.

  어머니께 이 책을 보여드렸더니 그리도 좋아하십니다. 안 그래도 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고민이라고 하셨거든요. 미안해하시던 어머니 마음도, 불안하던 제 마음도 싹 가라앉혀준 책이었습니다. 글쓴이가 비즈니스로 회사업무를 시작했기에 저와는 조금 안 맞지만 결국 기본이 되는 건 다 같다고 봅니다. 사회 초년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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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히사츠네 게이이치 지음, 서수지 옮김 / 아이콘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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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저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다 똑같은 얘기거든요. 이 책에서 봤던 얘기가 저 책에 나오고, 다시 저-기 책에 나오고. 결국 실천 단계가 중요한데 사람들은(물론 저를 포함해서) 읽던 책이 명확한 답을 내주길 바랍니다. 사람마다 삶을 풀어가는 방법이 다른데 책에 너무 기대곤 하지요.

  하지만 자기계발서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바로 환기입니다. 어수선한 마음을 잠시 다스리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죠. 이런 책이 출간됐다는 건 자기처럼 사는 데 같은 걱정거리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데에 안도하기도 하고요. 이 책도 이런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이를 먹는 건 정말 무섭습니다. 나를 지켜줄 방어막은 점점 줄어들고,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자유만큼 책임이 점점 커가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챙겨야 합니다. 10대, 20대 시절도 정말 중요합니다. 꿈을 키워가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30대에 들자 뭔가 삐끗하기 시작합니다.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나이 앞의 숫자 3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벌써 포기하기에는 이른 것 같고. 승진도 하고 싶고 자산도 불리고 싶고 번듯한 가정도 차리고 싶고, 꿈은 여전히 많지만 조금은 현실에 순응하고 주저앉기 일쑤입니다. 앞을 보며 한참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보니 웬걸, 아무 것도 아닌 나만 보이는 거 있죠.
 


  하지만 글쓴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조용히 다독여줍니다. 나이를 7분할하여 각각의 기간에 이름을 붙였는데요, 30대는 아직 청년기입니다. 그것도 청년 전기~중기밖에 되지 않았지요. 김난도 선생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도 20대는 아직 오전 7시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30대는 고작, 10시나 됐을까요? 아직 늦지 않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거죠!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한 것은 공·사·개입니다. 보통은 공과 사를 구분하라고 하는데 글쓴이는 '개'를 하나 더 언급합니다. '사'라고 말했던 것을 다시 쪼개 '개'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예로 들어볼까요. 공은 회사에서의 모습입니다. 사는 어머니의 남편, 자식들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개는, 진정 '나'를 위한 것이지요.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라도 무너지면 밸런스가 맞지 않아 힘들게 산다고 하네요. 그러기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의 역할, 가정에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 역할을 수행하는 건 결국 자신이거든요. 나의 발전 없이는 다른 것도 발전시킬 수 없으니까요. 억지로라도 '개'의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 게 당연하죠. 처리해야 할 업무는 많고 집에 들어가야 가족에게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죠. 저자는 일과를 하루 단위가 아닌 2시간 단위로 짜라고 제안합니다. 큰 틀을 짜서 일을 해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리고 그걸 확장시켜 일주일, 나아가 더 긴 계획을 짜는 겁니다.

  이 책, 아쉽게도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공·사·개 개념 하나만 조금 새로웠달 뿐이지 그 외 뒷 내용은 전에 보았던 책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자기 계발서는 실천이 중요하단 걸 한번 더 깨달은 책 읽기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뭔가 잘 안 풀린다 싶으신 분들, 30대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볼 만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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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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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레이 브래드버리의 장편소설 <화씨 451>을 읽었습니다.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땅을 치며 통곡할 만한 일입니다. 으허허. 괜히 추천도서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요.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성 연대기>로 처음 만났습니다. 이 책이 찍어 나올 때 샘터에서 서평 이벤트로 받았던 책인데 책이 지독하게도 늦게 오는 겁니다. 그래서 있던 정 없던 정 다 떨어져서 책장에 박아두고 있었죠. 거의 1년만에 펴봤는데 이런, 이렇게도 좋은 책을 그때야 접했다는 게 너무 후회되는 거 있죠. 성장소설인 <민들레 와인>도 바로 빌려봤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책을 폈습니다. 이 작가, 다임 소설을 그렇게 많이 썼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요. 숱한 작가들이 레이 브래드버리를 좋은 작가로 칭하지만 접할 기회가 없다면, 모르는 거지요. 국내에 나온 작품은 많지 않지만 꼭 찾아 보세요. <화성 연대기>를 강력추천합니다.

  책의 무대는 지식를 금지한 사회입니다. 소방수(Fireman)은 영어 철자 그대로 방화수가 되어버렸죠. 책은 읽는 게 아니라 태워야 하는, 사회악인 존재입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지 않고 태우기 시작했을까요.

  "상상을 해 봐. 자네가 영사기를 돌린다고 생각해 보게. 19세기 사람이 말과 개와 짐마차를 끌고 느릿느릿 꾸물거리던 광경을. 그 다음 20세기엔 화면이 좀더 빨리지지.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요약, 압축, 다이제스트판, 타블로이드판. 그리고 내용들도 죄다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갔지.
(중략)
『햄릿이란 제목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부인도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나중에는 '햄릿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해서 보면 기껏해야 한 페이지 정도 설명해 놓은 게 다가 되었지. 그러면서 광고엔 이렇게 나오고. 이제 당신은 모든 고전을 완전히 통달할 수 있습니다. 읽으십시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알겠나? 보육원을 나와서 대학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거네. 지난 5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의 지적인 문화 형태라는 건 그런 식이었네." (93, 94쪽)


  빠르게 빠르게, 중요한 정보를 취하고 곁가지는 치워버려, 정보사회에 발맞춰 효율이 중요하게, 빠르게 빠르게. 사실 문학작품 이야기의 뼈대만 말해 보면 한두 페이지에 끝나기 마련이거든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보면요, 줄거리는 한 줄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간통한 여인, 비소를 먹고 자살하다') 이 간단한 사건을 듣고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지요. 베스트셀러 중 고전문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명작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이 있는데 뒤에 광고문구가 터무니없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고 하지요. 아,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서 간단한 스토리 소개를 보고 '난 저 책을 읽었어. 난 문화인이고 똑똑해'라며 자위하란 말인갑쇼?

  그런데 말이죠,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차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정신 덕분이죠. 그래서 요약본을 싫어합니다. 특히 문학 요약본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꼴랑 글줄 몇 줄 읽었다고 허영을 부릴 사람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그 간단함에 취해 계속해서 쉬운 것을 찾는다는 것이겠지요. 그들이 커서 사회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어우, 머리가 아픕니다.

  "(선략) 요즘은 방화수들이 별로 필요치 않아요. 대중들 스스로가 책 읽는 것을 거의 포기했소. 당신 같은 방화수들이 때때로 서커스하듯이 건물들을 폭파시킬 때면 군중들이 마구 몰려와서 현란한 불꽃 구경이나 즐기지. 그러나 그건 사실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오.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조차 불필요할 지경이니까. (후략)" (143쪽)


  디스토피아 소설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지 오웰이 쓴 <1984>입니다. <1984>에서는 군중 지배와 맹목적인 복종을 위해 반사회적 지식을 무력으로 금지시킵니다. 그런데 <화씨 451>에서는 있죠, 정부가 앞장서서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바로 책을 읽던 대중이 처음 이 일을 했죠. 글 읽기는 귀찮고 오로지 재미만 찾으면서 책을 내팽개친 결과지요. 책은 의미가 없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책은 내 인생에 답을 주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글자만 보고 그 안에서 생산적인 사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책에는 벽에 달린 스크린이 나옵니다. 거기선 온갖 쇼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앉아만 있으면 하루 종일 편안히 앉아 시간을 떼울 수 있습니다. 단순한 방송이 아닙니다. 만약 토크쇼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부분의 음성을 지우고 시청자 이름을 넣어 방송이 아니라 실제로 스크린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닌데 그들을 친척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하늘을 날던 로켓이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 어릿광대들이 서로의 팔다리를 마구 잘라내는 장면, 경기장을 난폭하게 질주하며 서로 치고 받고 박살나는 제트카들의 난장판 장면, 이런 것들이 1, 2분 간격으로 송출됩니다. (154쪽) 그런데 이 스크린을 꺼버리자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끈 사람을 무섭게 쳐다보고 조바심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아무 피드백이 필요 없는, 단순한 영상만을 보며 깔깔대고 웃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세요?

  "사람들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아요."
  "무슨! 사람들이 왜 얘기를 안 해?"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박엔 안 해요. 그런 것들이 뭐든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 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 하고 또 해요. (후략)" (56, 57쪽)


  고대 그리스 대학을 그린 그림, 기억나시나요? 의자든 흙바닥이든 앉아 서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때는 시장바닥에서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하지요. 그래서 의도치 않아도 고대 철학이 완성된 것 가인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있죠, 죄다 시시껄렁한 말만 하고 시끄러운 농만 던집니다. 어젯밤에 그 드라마 봤느냐, 남자 주인공 너무 멋있더라, 내가 차를 샀는데 진짜 예쁘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나 만렙 찍었어, 내 여친 어떠냐 졸라 예쁘지 않냐, 등등. 게다가 요즘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런 의미 없는 대화마저 사라졌어요.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심지어 바로 옆에 앉은 친구에게 카톡으로 할 말을 적어 보내는 세대가 와버렸습니다.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고 다르게 생각하면 별종인 것 같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놈의 사고방식.

  "그 때엔 그들이 귀기울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못할 땐, 또 다시 기다릴 수밖에. 우리 아이들에게 입으로 책을 전해 기다리게 하고, 또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잃는 것도 많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듣게 만들 순 없소. 자신들이 필요할 때 와야 하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세상이 날아가 버렸는지 궁금해하면서. 결코 오래 걸리진 않소." (233쪽)


  인문학이 완전히 죽은 시대. 돈이 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 게임 좀 그만하고 책을 읽으라고, 철학을 공부하라고, 인문서적을 읽으라고, 음악을 들으라고, 다들 권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권유일 뿐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 거고, 저는 답답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을테니까요. 남들이 답을 내주길 원하지 않고 스스로 궁금해 답을 찾기를 바라면서, 이 책, 강력 추천합니다. 단순한 SF 소설이 아닙니다. 감상에 쓰잘데기없는 소리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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