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A632636475 네이버 재능기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작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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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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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어쩌면 고양이 애호가에게는 불편한 소설이 될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고양이 앞에서 자신을 집사(버틀러)로 낮추며 마치 고양이를 위해 봉사하고, 고양이 애호가들만이 알아듣는 단어로 대화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아지면서 다수의 기호가 일종의 권력이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소설에서, 고양이 애호가는 단순히 중점적 소재로만 등장할 뿐이니 소설가뿐 아니라 짤막한 감상을 남기는 나에게도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진 걸 모두 바칠만큼 사랑했던 여자친구에게, 단 한 통의 문자로 이별통보를 받은 '한'은 그녀와 다시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도중 길에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라 추측되는 고양이를 찾고, 그걸 계기로 그녀가 속한 애묘인 카페 정모에 참석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고 버틀러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은 후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거기서 애묘인 카페에 잠입(?)해 있던 김B의 설득에 버틀러들을 반대하는 '클럽 안티 버틀러'에 가입하게 된다. 취향을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려는 장국태 의원의 낙마, 그것이 클럽 안티 버틀러의 목표다.


  언뜻 보면 참 이상한 소설이다. 애묘인이 자신을 버틀러라고 부르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비(非) 버틀러인을 질시하거나 무시하는 건 거의 못 보았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정책을 대선에 이용하는 등 취향을 이용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비상식적이다. 현실의 정치는 단순한 기호와 취향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취향이 권력으로 변질되는 순간 이야기는 전복된다. 고양이를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클럽 안티 버틀러가 단순히 반(反) 고양이 애호가로 비춰질 수 있는데 애초 이 클럽의 모토는 취향의 군집을 막자는 것이다. 취향은 개인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정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 그저 표현의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자랄 경우 다른 취향의 남들을 보며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식의 자의식이 싹트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다수가 될 때 발생한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초였던 생각이 우월감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타적 증폭(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말만 들음으로써 판단착오나 실수)이 강화되는 순간이다.


  인물과 이야기가 잘 화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다소 보이지만 각 인물은 다름이 틀림으로 변질되는 폭력적인 순간을 잡아낸다.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해 고양이가 되고 싶어 했던 여자친구에게 차인 화자 한은, 그녀를 너무 사랑해 밉보이지 않기 위해 취향을 바꾸고 포기했다. 곽은 과거에 장국태에게 부(富)의 차에서 오는 차별을 느꼈고 오는 한과 비슷하게 연인에게 버림당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고양이 입술을 가진, 박의 아내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자신을 불길하게 여기며 차별했던 경험이 고양이 고기를 탐하는 정신적 강박을 키웠다. 남궁은 아버지에게서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패배적인 교훈을 배우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증오심을 품는다. 다름은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배우며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할 수 있다. 동시에,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다름의 순의미가 폭력과 무조건적인 증오, 분노로 변질되는 건 순식간이다.


  클럽 안티 버틀러가 취향을 과시와 권력으로 이용하는 집단에게 반대하는 것을 모토로 삼지만, 오는 오로지 고양이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고양이에게 여러 약을 먹이며 실험을 한다.(애초에 오가 클럽에 들어온 이유는 고양이가 싫어서였다) 이때 곽이 오에게 우리의 사상 때문에 고양이라는 종을 멸종하려 든다면 자기들 무리의 취향을 빌미로 소수 무리의 취향을 우습게 여겨버리는 버틀러와 우리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맞다. 모든 취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커피에는 쓴맛, 신맛, 고소한 맛, 단맛, 떫은맛이 숨어 있다. 누구는 커피 자체의 맛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누구는 단 게 좋아 카라멜마끼아토를 좋아한다. 이건 단지 취향일 뿐이다. 중요한 건 커피를 마실 때 맛있고 즐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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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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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 최근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고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 퇴근 시간만 기다려진다.

·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

· 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 직업에 장래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정당한 대우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


  프랭크 미너스 박사가 던진 24가지 질문 중 일부이다. 24개 질문 중 12개 이상이면 무기력증에 해당한다고 한다. 객관성이 다소 의심스럽지만 내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 어느 정도 신뢰가 간다. 나는 무려 18개에 예라고 대답했다.


  요새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회사 출입문에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히고 그때부터 졸리기 시작한다. 매일 일이 거기서 거기 같고 발전이 없다. 앞으로 가다가 미끄러져 제자리로 온다면 노력한다는 느낌이라도 들텐데 그냥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일을 열심히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회사에 있음으로써 인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돈만 보며 심심한 삶을 사는 것인가.


  참 다행인 것은(어쩌면 불행하기도 하다) 회의감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장에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답은 똑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 악물고 돈을 번다, 지금 회사를 나간대도 지금만큼 월급을 줄 회사를 찾기 힘들다, 그냥 여기가 싫다…. 단 한명도 자신의 일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가까운 주변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2011년 잡코리아가 직장인 526명을 대상으로 업무에 대한 의욕을 잃거나 회의를 느끼는 '직장생활 무기력 증후군'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중 90.3%가 무기력 증후군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또는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즉, 무기력은 자발성과 의욕이 상실된 상태이다.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고 모든 순간에 자신을 믿지 못하며 마음부터 시작해 몸이 아프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기도 한다. 이러다보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우 살아내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기력 원인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온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경우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기에 인지과학과 심리학에서 이것과 관련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은 학습된 무기력 모델이다. 동물학대 논란이 있었던 학습된 무기력 실험은 개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고통의 수렁에 서서히 빠진다.


  회사원이 무기력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은 그냥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전에 읽은 <인생학교: 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회사원으로서 하루의 1/3은 고스란히 회사에 있어야 한다. 회사생활을 30년이라고 가정하면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을 회사와 함께한다. 그런데 나와 회사일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그때부터 괴리감이 들기 시작한다. 많은 세월을 바쳤는데 정작 저기 높으신 분 배만 불리고 나는 몸만 축내고. 취미가 일로 변했을 때 사람은 좌절하지만, 일이 그냥 '일'일 경우 더더욱 힘든 법이다.


  또한 바버라 에런크라이가 <긍정의 배신>에서 말했듯이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가 때로는 정신건강에 독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재밌게도 모두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특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음에는 특사로 선발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부활절을 기다린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다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자신이 절대 석방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서서히 죽어간다. 물론 인생에 대해 희망을 가지면서 동시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함을 말한다. 이는 이상주의자에게 닥치는 무기력증과 상당히 흡사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발아래를 보지 않고 계속 이상만 추구하며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추구만 하는 사람은 높은 이상의 벽 때문에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기력을 어떻게 헤어나올 것인가. 인간을 움직이는 네 개의 엔진이 있는데 인지, 동기, 정서, 행동이다. 무기력은 인지와 동기, 정서가 삐걱댈 때 나타난다. 즉, 무기력은 단순히 행동하지 못하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어서 벗어나려면 세 가지 엔진을 모두 손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진짜 의미를 찾고 자존감을 높이며 타인과 환경을 모두 용서해보려는 노력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무기력의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실제로 10년 넘게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가 이겨낸 저자 박경숙은 무기력증을 인지심리학 측면에서 자세히 다룸으로써 무기력증을 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다만 책날개에도 쓰였듯이, 동시에 자전적 자기계발서다. 심리학 도서로서 무기력증의 현상과 원인을 다양하게 보여준 것은 좋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무기력 회복법이 여타의 자기계발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룬 것이 아쉽다. 그래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육체든 심리든 치료의 가장 첫 단계는 원인파악이다. 그런 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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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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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우리는 공포라는 감정을 어디서 느끼는가. 사람이 가장 무섭게 느낀다는 10m의 다이빙 대에서 투명한 물을 바라볼 때? 담력시험을 위해 들어간 한밤의 폐가에서 삐걱대는 문소리와 어디서 들려오는 지 모르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때? 어떤 미친 놈이 칼을 들고 클클클 낮게 웃으며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올 때?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들은 평범과 거리가 먼, '낯섦'에서 오는 감정이다. 태어나서 10m 높이의 다이빙대에 올라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 (사회가 흉흉하지만) 칼을 들고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또한 너무 뻔한 공포의 클리셰 아닌가. 저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무서움을 예상할 수 있다.

  더 큰 공포는 예상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이 예상 외의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낯섦을 떠나 상식 밖, 즉 인지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하고 낯섦의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스티븐 킹의 단편 '안개'와 동명인 영화 '미스트'에서 안개가 인물들의 시선과 함께 논리적 체계를 완전히 막았듯이 '미지'라는 개념은 인간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잃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익숙함에서 발아한다.

  <고의는 아니지만>(이하 <고의>)은 <아가미>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걸출한 작품을 써낸 구병모의 2011년도 단편집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아가미>가 성인 독자를 타겟으로 했다지만 다소 청소년 문학을 지향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 여류 작가는 다소 영(young)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앞서 발표한 장편은 판타지성을 짙게 띄는 반면 <고의>는 그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다룬다 해도 느껴지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판타지에서 마법과 검기가 난무하는 칼부림과, 현실에서 눈을 부라리고 커터칼을 휘두르는 난동을 비교하면 다소 비약일까?

  <고의>는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백미는 단연코 표제작인 '고의는 아니지만'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은 유치원 여교사 F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F는 굳건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가졌다. 준비물을 챙겨온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구분해 다른 교육을 시킨다.(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편부모거나 막노동을 한다) 그녀에게 이 분류는 차별이 아니라 조금 다르더라도 모두를 가르치겠다는 의지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도 눈치가 있는 법이다.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은 풀을 잔뜩 묻힌 손가락으로 핑거페인팅을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도구를 이용하여 비교적 고급스럽게 보이는 미술활동을 인지한다. 단순히 준비물 유무로 미술시간에 갈라졌던 아이들의 자리는 누군가의 지시가 없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F는 평등한 교육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다름'이 주는 불편함이 너무도 싫다. 준비물을 준비해오지 않는 데 화가 쌓이고 쌓인 F는 담장 밖에서 '막일'을 하던 인부들을 가르키며, 아이들에게 너희도 나중에 '저런 일'을 하며 살고 싶냐고 소리친다. 그리고 인부 중 몇이 밤에 F를 쫓아 혼쭐을 내주려다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야기에서 표면적으로 다루는 불평등에 대한 시선과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얄팍한 자존감이 매우 불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제목인 '고의는 아니지만'이 주는 의미가 더해져 더욱 심각한 의미로 다가온다. F는 선의를 통해 아이들을 보듬으려 했다.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 있는 본능적인 '다름'에 대한 선입관(즉, 다름=틀림)이 점점 자라나는 동안 이를 다스릴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F뿐 아니라 반 아이들에게서도 어릴 적부터 자각 없이 자동적으로 습득되는 불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라는 변명은 얼마나 구차한가. 또한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자신을 원천부정하면서까지 마음에 숨겨져 있던 욕망을 한껏 발산하는 모습을 어둡게 표현한다. (이는 다른 글 '어떤 자장가'에서 더욱 기괴하게 그려진다)

  7편의 단편 모두 좋진 않았지만 이전에 알던 구병모의 모습을 완전히 벗겨 작가의 이면을 알 수 있는 데서 오는 쾌감(?)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한 심리적 표상을 천천히 뜯으면서 겪는 이질감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소설로 생각하며 폈지만, 무섭다. 참으로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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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 - 소크라테스부터 데리다까지 초특급 두뇌들의 불꽃 튀는 입담 공방전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프레드 반렌트 지음, 최영석 옮김, 라이언 던래비 그림 / 다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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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대학생 때, 철학에 잠시 관심을 두고서 나름 입문서라는 걸 찾은 적이 있다. 내가 원했던 책은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 여러 철학자들의 철학사조를 풀어쓴 것이었다. 내가 찾은 건 <해리포터 철학 교실>이었다. 읽을 만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이왕 공부할 거 개론서는 집어치우고 철학의 진짜 몸통에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폈다. 30쪽을 채 보지 못하고 접었다. 다시 입문서. <생각: 철학으로 가는 가장 매력적인 지름길>이라는, 호평이 자자한 책이었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결국 찾은 건 <소피의 세계>였다. 몇 단어에 대한 철학사조를 읽는 것은 철학에 친숙해지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옛부터 쭉 이어지는 철학적 개념의 정의와 변화, 즉 철학사도 방법 중 하나였다. 다만, 사실관계와 개념설명만이 즐비한 책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삼국지연의가 정사보다 재밌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면에서 소설 형식을 차용한 <소피의 세계>는 매우 흥미로웠다. 중간에 한 번 포기했지만 결국 완독했다. 그뒤, <생각: 철학으로 가는 가장 매력적인 지름길>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후 읽은 철학서적은 거의 없다)


  몇 권 읽지 않은 철학책 중 감히 입문서를 꼽으라면 철학사를 소설로 풀어낸 <소피의 세계>와 근대철학을 나름 재밌게 서술한 <철학과 굴뚝청소부>다. 전자는 소설이라는 포맷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에 다소 친숙하게 다가가고, 후자는 관심에서 더 나아가 공부와 성찰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책이다. (여기에 <생각>을 추가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절판된 책이라 제외했다) 이제 여기에 한 권을 더 추가하겠다. 바로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프레드 반렌트 글, 라이언 던래비 그림, 이하 철학 쑈)이다.


  미국 도서관협회상을 받은 이 '만화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철학자부터 해체주의 현대 철학자 데리다까지 철학사를 그렸다. 표지만 보면 이게 무슨 책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수염이 잔뜩 나고 복면을 쓴 덩치, 무림사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도승, 버버리코트를 입은 로봇, 람보총을 든 할아버지. 이게 무슨 철학책이란 말인가?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캐릭터가 각 철학자를 잘 묘사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무미건조한 철학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재밌는 후일담까지 가득하다. 플라톤은 사실 별명이다.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헷갈리지?)이다. 플라톤(plato)은 '넓은'이나 '평평한'이란 뜻으로 어깨가 떡 벌어진 프로레슬러인 '아리스토클레스'의 별명이다. (표지에 복면을 쓴 덩치가 바로 플라톤이다) '진짜임', '누가 누구에게 실제로 한 말' 등의 각주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라고 항상 고상한 생각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살았다는 걸 보여주어 재미를 준다.


  만화책이고, 철학자를 캐릭터로 표현하였다고 책이 쉽다고 치부하면 오산이다. 물론 텍스트에 비해 그림은 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이 많기 때문에 다른 철학책에 비해 내용이 다소 적다. 다소 딱딱한 내용을 흥미로운 그림체와 구성으로 꾸며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단순한 결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결론으로 가는 사유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다. 보통 철학사에서 다루지 않는 동양철학자(노자, 공자, 달마 등)나 철학 초심자에게 다소 비중이 적은 철학자(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오귀스트 콩트, 쇠렌 키르케고르 등)도 다룬다.


  입문서이기에 이 책 자체로 세세한 내용을 공부할 수는 없다. 다소 쉽게 표현된 내용으로 철학에 친숙해진 뒤 각 철학자를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 표지의 네 명의 철학자는 차례대로 플라톤, 달마, ,마르크스, 니체다. (플라톤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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