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 나를 지켜주는 기업이 필요해요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8
김순천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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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저희 회사는 절대 해고를 시키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는 비정규직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정규직입니다. 저희 회사는 8시간 노동제를 꼭 지킵니다. 저희 회사는 여름에는 무조건 일주일 휴가를 줘서 다 쉬게 합니다.


  사회적 기업 심원테크의 김준호 이사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이 말이 그리도 울컥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얼까. 이 내용은 정상적인 회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위 항목은 너무도 낯설다. 1년에 정당히 주어진 연차를 쓰려니 눈치가 보이고, 정시퇴근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책은 기업이 우리 노동자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부당한 대우를 하는지 적나라하게 말한다. 노조 활동에 대한 강경한 압박, 상식이 통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 용역을 고용하여 노동자를 폭행하고 비정규직은 하루하루를 덜덜 떨며 지낸다. 이득만을 바라는 기업논리는 학문의 장이라는 대학까지 침투했다. 취업이 목적이 되어버린 대학생활은 자본이 교육을 짓누르는 상황을 보고도 고개를 돌려버리게 만들었다.


  아, 우리는 이 사회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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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우울하다. 항상 재밌는 독서를 지향하는데 이상하게 초부터 말렸다. 그건 모두 이 책이 시작이었다.


물론 현대 사회가 부의 불평등이 만연해 있다는 건 모두가 알던 사실이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불평등에 대한 통계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통계는 훌륭한 뒷받침 자료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에게 큰 감흥이 없다는 게 큰 단점이다.


여튼, 이 책은 사회와 경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책으론,





와우. 과감히 20대를 괴물로 표현한 이 책이 되겠다. 사실 20대뿐 아니라 자기계발을 신성시하는 (가시적이지만 거짓된) 성과사회에 사는 모든 이들은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감상은 아래 감상문 참고하시고.

(감상문: http://blog.aladin.co.kr/junghun07/6831783)


우리는 결국 최종목표가 '취업'이 된 사회에 살기 때문에 결국 기업에 대한 책을 읽어야 했다. 그게 아래 세 권의 책.























<대한민국>은 자본논리에 지배당한 기업과 대학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의자놀이>는 나쁜 기업의 에피소드로 분류된 쌍용자동차 노조탄압에 대해, <우리에게는>은 비교적 사회와 노동자를 위한 기업인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기 위해 폈다. 현재 <의자놀이>까지 읽었는데, 아, 분노가 치민다.




















자본에 의해 파괴당한 사회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자본논리에 반하는 공동소유를 다룬 <공통체>를 통해 우리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생각해 볼 예정이다. 그 후 자본이 우리에게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을 <자본론>과 <돈의 철학>이 알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로, 관심있는 사회과학 서적은 왼쪽의 두 권이다. <세상물정>은 여러 갈래의 주제로 뻗어나가는 껀덕지를 줄 것 같아서 꽤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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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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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강의를 마친 후 으레 그랬듯이 도서관 1층에서 책을 보았다. 평소 좋아하던 박민규의 신작 소설이었다. 뒤척여가며 책을 읽는 중에 이제 막 복학해 학과 공부에 열심인 한 동기가 두꺼운 전공책을 들고 와서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친구는 전공책을 펼쳐 오늘 배운 내용을 다시금 보았다. 그렇게 삼십여 분이 지나자 친구는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너, 뭐 보냐. 소설. 소설? 응, 소설. 야, 그럴 시간에 토익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 순간 매우 화가 났지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친구는 선의로 말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된 친구에게 작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취업을 하려면 높은 토익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조언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격증을 따는 건 어때? 영어 말고 다른 언어도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공모전 준비도 해보고. 분명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말들이다. 이 조언의 결승점은, 결국 취업이다.


  대학이 이미 취업양성소가 되었다는 말에 발끈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상은 맞는 말이다. 수능점수에 이어 취업률로 대학을 줄세워 평가하고 돈이 안되거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이 되어버렸다. 모두다 취업을 외치지만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우리나라에 단순히 학력만으로 취직하기도 힘들다. 영어는 당연지사, 일본어나 중국어까지 공부해야 하고 수십 개의 각종 자격증 취득에, 면접관에 잘 보이려고 성형도 불사하는데다가 '자소설'에 어울리는 휘황찬란한 경험까지(봉사활동, XX봉 등반, 마라톤 참가 등등…!) 해야 한다. 우리는 취업이라는 가시적 목표를 위해 시간을 쪼개어 관리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계발'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 계발은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도 목매다는 토익 점수와 자격증, 제 2외국어, 공모전이, 우리의 재능을 일깨워주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지인 중에는 딱 세 명 보았다. 당신은 아니라고? 난 정말 재밌어서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봐, 양심에 털난 거 다 보인다고. 우리 세대의 자기계발은 그저 취업준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 보기, 책읽기는 그저 생각없는 이들이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잉여활동이 되어버렸다.


  자기계발 열풍은 우리가 성과사회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열심히 한만큼 성과를 얻는 사회는 공정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진정 노력만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반문해보아야 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서 오는 교육 기회의 불균등부터 생각해보라. 세세히 따지면 출발점부터 살아오는 환경까지 모두 다르다. 죽어라 해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작은 희망으로 간간히 버틴다.


  자기계발 사회에서는 모든 잘못이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된다. 노력하면 안되는 게 어딨냐는 태도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남이 조금만 힘든 소리를 해도, 진작에 공부하지 않고 뭐했느냐고 타박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그저 노력할 의지 없이 염치가 없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린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걸맞는 결과(정규직)가 찾아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은, 원치 않는 결과(비정규직)이 자신에게 다가올 거라는 예상을 못하게 만들어 타인과의 연대를 무너뜨리고 만다. 이는 동시에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확대재생산한다. 대학들끼리는 '명확하게 노력의 산물인' 수능점수로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그보다 아래 학교와 함께 언급되는 걸 무척이나 꺼린다. 모든 집단은 편견의 가해자이면서도 희생자이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시선을 잠시 멀리해 다시 생각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큰 장애물은, 노력 부족의 문제를 사회 구조 운운하며 환경 탓만 하는 투덜이로 바라보는 편견이다. 또한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문제제기 자체를 효과적으로 봉쇄한다. 하지만 강신주는 문제제기 자체가 대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왜 우리가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공감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까.(사실 책에서 말하는 '해결책'은 책의 전체 내용에 비해 다소 빈약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문제를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 사회는 하나하나의 개인들로 인해 변해왔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한대로 살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일까? 그런 성공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제 제대로 고민을 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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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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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독백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밀린 월급을 품고 귀가하는 가장처럼

가난한 옆구리에 낀 군고구마 봉지처럼

조금은 가볍고 따스해진 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린 사람일수록 이 지상에서

그를 알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기를 기도하며

내가 잠든 새 그가 다녀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등불 아래 착한 편지 한 장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내 기도에 날개를 씻고

큰 강과 저문 숲 건너 고요히 내 어깨에 내리는 것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은 내 생애에

진실로 나를 찾아온 사랑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새처럼 반짝이며 물고기처럼 명랑한 음성으로

오로지 내 오랜 슬픔을 위해서만 속삭여주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깨끗한 울음 한 잎으로 피어나

그의 무릎에 고단했던 그리움과 상처들을 내려놓고

임종처럼 가벼워진 안식과 몸을 바꾸는 것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젖은 눈썹 하나로 가릴 수 없는 작별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새벽별

숫 눈길 위에 새겨진 종소리처럼




極地 (극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거의 언제나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존재였다

내가 미처 준비하기 전에

결별의 1초 후를 예비하기 전에

다를 떠나버렸다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떠나지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가야 할 사람들은 늘 먼저 일어서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잘 참아주었다


그러나 마침내 술자리가 끝났을 때

결국 취한 나를 데리고 어느 바닥에든 데려가

잠재우고 있는 것은 나였다


더 갈 데 없는 혼자였다




치타


전속력으로 달려가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치타를 보면


먹이를 물고 나무에 오를 힘마저 탕진한 채

하이에나 무리에게 쫓겨 주춤주춤

먹이를 놓고 뒷걸음질 치는 치타를 보면


주린 배를 허리에 붙인 채 다시 평원을 바라보는

저 무르고 퀭한 눈 바라보면


쉰 살 넘어 문자 메시지로

전속력으로 해고 통보받은 가장을 보면

닳아 없어진 구두 뒷굽을 보면


거울을 보면




  눈으로 읽을 땐 몰랐다. 입으로 낭독할 때도 몰랐다. 시를 보는 눈이 낮기 때문에, 솔직히 그럴 듯한 시를 체크해두고, 나는 시집도 읽소, 라고 큰소리 좀 내보려고 몇 편 옮겨적었다. 옮기고서야 아, 류근은, 나는, 우리는 모두 이렇게 혼자인 사람이구나. 세상에 혼자 존재한다는 걸 죽어도 싫어해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려 했던 건데, 그저 같이, 함께, 큰 사랑이 아닌 작은 눈길 하나를 바랐던 건데, 결국은 진창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할 때 그 허탈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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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디의 아이들 -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 반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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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인도라. 인도라면 세계 인구 2위의 나라, 카레, 영국, 유혈사태의 간디, 영화 '세 얼간이', 무한도전(…). 그렇게 많은 게 떠오르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유럽권이나 미국보다 당연히 적다. 인도에 대해 자세히 접한 건 거의 없고, 곽재구의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나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에서 릭샤를 접했다. '세 얼간이'나 뚜루뚜루뚜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코믹에 가까운데, 책과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인도는 너무나 어두웠고, 그들이 삶은 처절했다.


  1947년 독립 전후 인도는 농업국가였지만 50년대부터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시장개방 및 경제자유화를 본격화하고 소외계층의 빈곤을 타파할 정책을 계속 펼친다. 경제 발전의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2차 산업뿐만 아니라 3차 산업도 발전한다. 인도에는 관광지가 만들어졌고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다. 외국인이 인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공항이 필요하고, 자기 위해서 호텔도 필요하다. 밤새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 휘황찬란한 관광도시 뭄바이에서 몇 발자국만 넘어가면 빈민촌이 나온다. 안나와디다.


  책은 고철을 모아 분류하여 되파는 소년 압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외다리 여자가 불타 죽어서 경찰이 압둘 부자(父子)를 쫓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철 보관소에 숨기려 했다. 하지만 여자가 소사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압둘은 숨는 것은 죄지은 사람만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에 법과 정의를 믿고 경찰서로 향했다. (프롤로그부터 한참 뒤에 뒷내용이 나오는데, 압둘의 믿음은 헛된 것이었다)


  안나와디의 생활은 처참하다. 식수를 얻기 위해서는 두 시간이 넘게 줄을 서야 하고 안나와디를 가로지르는 개울에선 썩은 내가 떠날줄 모르며 축사 옆 길이 3미터에 폭 1.8미터인 오두막에서 악취와 함께 아버지와 어린 두 남매가 산다. 국가에서 교육을 위해 학교를 몇 세웠지만 학교는 기금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교육의 장은 되지 못한다. 노인의 다리가 차에 으스러져 길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아이들마저 외면한다. 피부가 좋지 않은 아이가 밤새 울자 아버지는 펄펄 끓는 콩 항아리를 자는 아이 몸에 쏟아붓는다. 경찰은 뇌물을 위해 애먼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심지어 높은 지위의 의사조차 뇌물을 요구한다.


  이런 환경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부패다. 빠른 경제 성장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인도 권력집단에게 기회는 대체로 내부 거래로 분배된다. 공항이나 호텔 건설도 웃돈을 많이 챙겨준 기업이 맡는다. 부패와 함께 나라가 개방되고 자유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의 집중은 심해졌다. 현재 인도는 부자 순위 상위 100명의 자산 총액이 국내 총생산의 25퍼센트에 육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 성장의 그림자인 '부패'를 앞세운다. 부패로 아주 많은 기회가 약탈되는 나라에서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몇 안 되는 순수한 기회인 것이다. 작중 인물인 아샤는 빈민촌 대표가 되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바꾸기 위해 경찰과 윗사람들에게도 돈을 주고, 심지어 저기 호텔에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애인도 있다. (딸인 만주는 당연히 싫어하지만)


  가난하면 똘똘 뭉쳐서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순위와 시장의 막강한 권위가 세상을 너무 변덕스럽게 만든 나머지, 이웃을 도우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위협받고 심지어 개인의 자유마저 위태로워지는 세상이 될 경우, 가난한 공동체의 상부상조 개념이 무너진다. 중산층은 나라의 추한 그림인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안나와디에는 빛이 들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글쎄, 인물들에게 달라진 건 없다. 옆에서 누가 죽어도 그뿐, 넝마주이를 하든 고철팔이를 하든 어제와 같은 날의 반복이다. 길고 어려웠던 외다리 여자의 살인 재판을 끝낸 압둘의 아버지 카람은 말한다. 꿈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 때조차, 그리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 모를 때에도, 그걸 잡으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언뜻 보면 끝까지 꿈을 좇으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리 뛰어도 앞의 빛은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강력한 고발서가 세상에 소개되어도 인도의 발전과는 반대로 안나와디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 같은 무서움과 분노가 나를 뜨겁게, 동시에 차갑게 만든다.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었으면, 강렬히 바란다. 너무나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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