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지나간다만큼 좋은 작품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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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시 가연 컬처클래식 15
이상민 지음, 이승환 각본, 김현석 각색 / 가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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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열한시'를 각색한 소설이다. 원작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국내 최초 타임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이기에 개봉 전부터 관심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영화 대신 소설을 보게 되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매우 좋다. 스토리 전개도 빠르고 짧은 분량이지만 인물의 개성과 그들 사이의 심리적 대립이 잘 표현된다. 사실 영화나 소설이나 분량이 다른 작품에 비해 짧기 때문에 작품안의 긴장감은 끊이지 않고 잘 이어지는 편이다. 작은 판형에 인쇄된 내용은 가독성 좋게 편집되어 있다. 작가의 문장도 읽기 편하게 잘 쓰였다.


  글은 쉽게 읽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뒤로 갈수록 처진다. 내용을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이 시간여행의 포맷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당위성도 다소 떨어진다. 우선 주인공인 우석과 지완은 감정이 너무 위아래로 요동친다. 동료애와 과거의 어긋난 거관계, 두 가지 감정이 묘하게 얽혀 서로 애증의 관계처럼 그려지지만 그렇게 설명하기에 소설 속 둘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소설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무지 당위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선, 이것이 얽히면서 스토리를 전개해가니 더욱 엉망이 될 수밖에. 애시당초 우석이 타임머신을 개발하려는 의도가 불분명하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에 집착하는 행동이 당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박희순의 연기는 좋았지만 자신 또한 타임머신의 제작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을 잃었던 기억을 치유하고 싶었던 우석에게 팀원 모두의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실험 데이터를 담은 슈퍼컴퓨터는 과거에 집착하는 그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만 극의 마지막, 혼신의 몸부림(?)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에 시간이 너무 짧고 얼척이 없다.


  소설이 영화보다 좋았던 점은 역시 설명의 세세함이다. 영화에서의 조실장은 아무 이유 없이 미움받는데(회사 사람이란 이유 하나로 납득하기 힘들다) 소설에서는 우석과 약간의 대립하는 사건을 보여주면서 극의 당위성을 높인다. 영식이 기지를 탈출하자는 의견에 찬성하거나 조실장이 문순을 살해하려는 장면은 앞선 세세한 심리묘사가 아니면 언뜻 이해할 수 없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보여주려는 영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설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각색소설은 영화팬에게 환영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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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 대안의 영토를 찾아가는 한국의 사회 혁신가들
송화준.한솔 엮음, 김종휘 외 인터뷰 / 알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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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어느 때부터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목받는 것은 사회적 기업이다. '적(的)'이라는 일본어 어투까지 당당하게 쓰면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사회적의 의미는 '사회에 관계되거나 사회성을 지닌, 또는 그런 것'이란다. 그렇다면 통상 알던 기업은 사회에 관계가 없다는 뜻인가? 기존의 기업이 오로지 금전적 이득만을 보고 상품을 판매하는 경향을 보인다면 사회적 기업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회적 기업의 뚜렷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사회적 추구 가치와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목표이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기업과 다를 바 없고 무조건 베푸는 비영리적 사업만을 바라보는 것은 '기업'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다. (그것은 봉사단체다) 책은 이러한 딜레마에 사회적 기업에 표준모델이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가치와 이익 중 어느 것을 더 탐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북문화재단의 김종휘 대표는 사회적 미션 반, 수익 모델 반인 모델,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벌고'와 같은 옛날 개념을 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은 어떨까 말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집적 대면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책은 공부 멘토로 유명한 공신닷컴, 같이 밥먹기를 주창하는 집밥, 지역 공동체를 앞세운 이웃(EWUT),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지향하는 붕가붕가레코드까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에서부터 그렇지 않은 기업까지 많은 사회적 기업을 소개한다. 각 사업의 아이템은 공부, 음악, 음식, 환경, 미술, 강연처럼 매우 광범위하다. 하지만 개별 아이템이 아닌 각 사업체 대표의 사고를 살펴보면 '함께'라는 단어가 아주 작은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학의 큰 틀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양한 사람의 존재를 아는 것 자체가 개인에게 큰 힘을 주고 서로 공유하고 협력하면 서로만이 아닌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서로 연대감이 강해질수록 실패도 끌어안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고, 이것이 진정 혁신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기업에 거창한 것은 없다. 해답은 '나'와 '너', 이런 개인이 아닌 '우리' 안에 있다.




  추가로,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하여 남긴다. 어째 발췌가 감상보다 더 긴 느낌이….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후반 이후 대다수의 청년들이 권위에 복종하는 그런 경향이 다시 찾아왔죠. 아마도 IMF로 상징되는 경제 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 또한 지금의 청년들은 자유롭게 생활하던 1990년대의 선배들, 이른바 '서태지 세대'로 지칭되는 선배들이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IMF가 닥치고 나서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세대죠. 자신들이 본 선배들의 몰락 때문에 다른 길로 '외도'하는 것은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어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다른 생각' 즉, 사고의 확장을 통해 현실과의 간극을 제공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행동하게 하는 것인데요. 요즘 친구들은 그런 인문학적 사고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개인주의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시위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시끄럽다든지, 길을 막는다든지 등)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사회와 구조에 대한 사고 없이 개인성만 극대화된 상고방식이라고 봐요.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불편'에는 굉장히 민감하지만, 집단적으로 풀 수박에 없는 구조적 문제애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또한 원래 문화인류학/사회학의 힘은 자신의 삶을 언어화하고 주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는 그 능력을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잘 쓰지 않죠. 오히려 기존 사회가 정한 '성공'을 이루기 위한 개인적 도구로만 쓰이는 것 같고요. (230,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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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 : 독한 혀들의 전쟁
JTBC 썰전 제작팀 지음 / 사막여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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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재미없었으므로 짧게.


JTBC의 핫한 프로그램 썰전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김구라, 강용석, 이철희 셋이서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썰을 푸는 정치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부제처럼 프로그램은 다소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도 쏟아져나온다. 각종 언론에서 다루는 문제를 아주 강하게, 그리고 독하게 말한다.


책의 장점이라면 언론이 다루는 중요한 사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현정부의 인사, 안철수, 민주당, 사교육, 북한, 일본, NLL, 증세와 복지 등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하던 이슈들을 큰 틀에서 다룬다. 이슈를 소개하는 편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큰 단점이다. 독자가 현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그닥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너무 큰 틀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알아서 찾아보라는 식이려나.


편집 면에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편집한 <나는 꼼수다>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나꼼수>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나꼼수>는 방송 말투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지만 <썰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MC 3인의 방송을 옮긴 게 아니라, 썰전 제작진이 강용석과 이희철에게 질문을 던지고 받은 답변을 모아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인기가 많아도 <나꼼수>만큼 폭발적으로 팔리지 않는 이유는 주 시청층이 돈 들여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책을 살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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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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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글을 쓰기 전에 고백하건대 공지영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으로서 문학적 가치를 보여준 것은 없고 이슈가 될 만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생각해서이다. 세간에 가장 알려진 <도가니>도 소재가 자극적었지 소설로서는 큰 가치가 없다고 폄하했다. SNS 상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소설가가 소설이나 잘 쓸 것이지라는 생각도 했다.


  돌이켜보니 그의 소설을 온전히 읽은 적이 없다. 문학적으로 이룬 것이 없느니, 그냥 베스트셀러를 쓰는 작가라느니, 편견에 쌓여 공지영이 내게 작품으로 해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전문적인 척 말만 해댔으니, 이제서는 꽤나 부끄러울 나름이다. 생각을 바꾼 건 역설적이게도 소설이 아닌 르포르타주다.


  책은 쌍용자동차의 파업을 다룬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연봉도 높은데 불법파업을 하네, 공장을 걸어잠그고 볼트를 날리네, 경찰을 폭행하네, 파업의 뒤에는 빨갱이가 있네…. 많은 언론에서 다루었던 쌍용차 파업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어려우면 해고절차를 밟는 게 당연하다고 은연 중에 말해왔다.


  이것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속살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의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쌍용자동차는 대우에 매각된 후 다시 중국의 상하이차에 매각된다. 당시 상하이차는 신규설비 및 프로젝트에 자금출자와 노동자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몇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쌍용자동차의 기술만 유출됐다. 투자 없이 기술 유출만 이뤄진 결과 적자가 심해졌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을 개시한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고용안정 협정과 신규투자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신규투자는 없었고 지속적인 기술 유출만이 있었고, 쌍용차는 심각한 적자를 맞는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이는 보수언론에서도 부정적으로 본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평가액을 감액하는 둥 감사보고서가 비상식적으로 작성된다. 법원이 임명한 법정관리인의 한 사람으로는 우습게도 경영부실의 책임자를 내세운다. 정상화를 위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은 오직 구조조정의 경제성과 필요성만을 역설했다. 결국 법정관리안은 승인받는다.


  사측은 전체 노동자의 37%에 이르는 2,646명의 정리해고안이 발표되었고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돌입힌다. 용역, 구사대와의 물리적인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외부에서는 수도와 전기, 음식 그리고 의료지원마저 끊어버렸다. 인도적인 배려는 전혀 없었다. 두 번의 경찰병력 투입이 있었다. 창고에 10년도 넘게 보관돼 있던 최루액과 외국에서도 사용이 제한된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용산참사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컨테이너를 사용하여 공장 안으로 진입하였고 무차별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대항하는 인원이 아닌 무장해제당한 사람에게도 봉과 방패를사용하였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투쟁 중,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가 언론에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눈치만 보던 언론 3사의 뉴스는 노조측의 가시적인 폭력성과 불법파업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지 전체 사항은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견지할 땐 좌우 어떤 편향도 없는 그대로의 정보를 받아야 함에도 정보는 균등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의자놀이>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한번 더 생각해야 했다. 뒷이야기는 전혀 모르고 티비에서 떠들어대는대로 보고 믿었다. 통계의 함정에 빠져 연봉 몇천의 귀족노조라고 했고(이는 이번 철도 파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동료였던 이들에게 파이프를 들이민다고 했다. 돈 몇 푼 더 받자고 그랬을까. 그 누가 동료에 맞서고 싶었겠는가. 해고 자체가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회사의 방만 경영에 대해 왜 노동자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가) 파업에 나선 것이다. 단전이 된 공장 안의 비상발전기를 이용해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게 해 회사의 금전적·시간적 손실을 줄이려 했던 그들은 모두 회사를 살리고 싶어 했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을 지나가는 회사원을 보며 공지영은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겪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모두는, 자신은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고 파업 같은 '불법적인 일'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공감의 문제다. 지금 같은 사회라면 모든 노동자는 언제든지 해고당하고 쌍용차 노동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어디서 일하든 노동에 대한 권리를 인지함과 동시에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노조와 파업이라는 단어에 심한 알러지를 갖는 우리 사회에서 이를 견지할 수 있는가는 두 번째 문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 후 구속당한 아픔보다 이후 쏟아지는 사회적 거부감과 비난이 더 절망적이었다고 한다. 인간 이하의 모습을 접하고 그런 대우를 받은 이들을 우리는 따뜻한 눈으로 봐야 한다. 자본논리로 굴러가는 세상을, 때론 부정하고 크게 소리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마지막 한 명이 탈락할 때까지 계속되는 의자놀이를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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