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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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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그냥, 잡담. 책에 대한 내용은 얼마 없다.


  책에도 분명 교묘한 마케팅이 존재한다. 사재기 따위의 허섭한 수 말고, 은근히 얼굴을 내비치면서 책을 홍보하는 방법이다. 영상의 시대답게 책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자신을 홍보한다. 별그대에서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달빛 프린스에서는 <꾸뻬씨의 행복여행>이었다. (오, 제목은 왜 이리도 긴가) 드라마셀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데다 책 내용에 맞춰 각본까지 수정할테니 마케팅 비용 좀 대라는 요청까지 있었다니 방송이 책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영상만 있느냐, 조금 아날로그적이어도 듣는 홍보수단도 있다. 라디오는 한물 간 지 한참 됐고 이제 그 자리는 팟캐스트가 꿰어찼다. 김영하가 책을 읽어줄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던 팟캐스트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여러 매체의 홍보 의지(?)가 결합하여 많은 소통 채널을 만들었다. 책에 관련돼 가장 인기가 좋은 팟캐스트는 역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다. 저번 회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다루었는데 때마침 알라딘에서 <속죄> 반값 세일을 하면서 이 책이 반짝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어쩌면 우연을 빙자한 마케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 잡담이 길어졌는데 뭐, 잡담하려고 쓰는 포스트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국 하고픈 말이 무언가 하면, 빨책을 듣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샀다는 거다. 빨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아마 알았던들 별로 땡기진 않았을 것이다. 에세이류는 웬만하면 피하는데다 워낙 재미없게 읽은 <죽음>도 한몫 한다. 책에 대한 에세이도 싫어하는데 죽음이라고 좋아할 성싶더냐. 하지만 빨책 신봉자에다가 팔랑귀인 난 이 책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빨책에선 정말 좋은 책이라고 썰을 풀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책이란 건 취향을 워낙 타는 것이고, 게다가 남들이 좋다고 말한 책을 읽었지만 크게 피를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띠지에 적힌 정재승의 추천사가 매우 거슬렸다. 읊어보자면


  매력적인 책이다. 우리의 몸과 삶에 대해 쏟아내는 과학적 통찰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총널살인 같은 명언들에 취하고, 몸의 변화에 공감하며 읽다가, 결국 감동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책!

(이것은 감성 마케팅이 분명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알라딘과 예스24는 이 책을 에세이와 교양인문학으로 분류하였다. 에스콰이어 리뷰에서는 회고록, 에세이, 인문서를 언급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결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 이 책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일단 인생을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의 4장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나이대에 해당하는 과학·생물학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를 말하면서


  우리는 뼈를 350개 가지고 태어나는데(긴뼈, 짧은뼈, 납작뼈, 불규칙뼈), 자라면서 뼈끼리 붙기 때문에 어른의 몸에는 206개만 남는다. 우리 몸무게에서 70퍼센트쯤은 물이다. 지표면에서 물에 덮인 부분의 비율과 비슷하다.


라는 식이다. 과학적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뭔 재미일까. 저자는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첫째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는 볼기분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해서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다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한 후 그 꿈은 접어야 했다. 젊었을 적부터 머리가 벗겨졌고, 허리가 매우 좋지 않다. 등등.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저자가 말하는 과학적 사실에 재미라는 양념을 쳐준다. 자신의 강점이었던 농구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자연히 농구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자신있어 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에세이의 소감이 굉장히 사변적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참 다행이다. 저자와 아버지의 다소 상반된 모습(저자의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한단다. 97세인데도 말이다)도 흥미롭다. 다만, 앞선 과학적 사실과 개인의 이야기가 너무 얼개 없이 서술되는 방식이 많이 발견된다. 빨책에선 이런 뜬금없음이 굉장히 위트 있다고 말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논리적 전개에서 너무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대체 왜 이 에피소드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책을 전체적으로 넓혀준다면, 삶과 인생,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은 책에 깊이를 더해준다. 주옥같은 말들이 워낙 많아 이것만 다 옮겨도 꽤나 많은 양이 될 듯싶다.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이번 책은 갈무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당장 책을 피면 좋은 글귀들이 많다. 몇 장만 펴보자.


*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33쪽)

* 나는 33세이다. 급진 혁명가였던 예수의 나이와 같다. 혁명가들에게 치명적인 나이다. _카미유 데물랭 (145쪽)

*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없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_윌리엄 오슬러 (163쪽)

* 노인들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키스와 포옹이 필요한 인생 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의사 외에는 누구도 그들을 만지지 않는다. _로널드 블라이스 (251쪽)

*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것이었다. _엘리자베스 1세 여왕 (287쪽)


  죽음을 다루는 책은 결국 삶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더욱 가열하게 살라고 역설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시간이 참 느리다는 생각도 든다. 1초 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1초가 모이고 모여 1달, 1년이 되면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화살과 시합에서 결국 지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직 남은 시간을 보면, 아니 당장 바로 앞만 봐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빛을 가지는가! 마지막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본문을 옮기고 잡담을 닫는다.


  내가 이제껏 지지부진 늘어놓은 이야기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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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시 no.6 #1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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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31.


  흠. 이 책을 왜 보고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 책은 거의 왜 샀는지, 어디서 샀는지, 어디서 추천받았는지 기억하는 편인데 이 책만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아마 영 어덜트 소설 중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루었다고 해서 한켠에 적어두었나보다. 구입은 민음사 리퍼브도서전에서 반값으로. 만약 이걸 제값주고 샀다면 아마도 땅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했을 듯싶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 이상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중 하나가 'no.6'다. 뭔가 심오한 이유는 없다. 그냥 여섯번째 도시이기 때문에 no.6일 뿐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완벽해 보이는 도시는 사실 허상이고 뒤에선 구린내가 풀풀 풍긴다. 다들 그걸 모를 뿐. 엘리트 소년 시온은 교정시설에서 탈출하는 부상당한 생쥐(캐릭터 별명이다)를 응급처치해주고 그때문에 계급이 박탈당한다. 몇 년 뒤, 공원 관리일을 하던 시온은 사람에게 기생하던 벌이 숙주를 죽이고 부화하는 것을 본다. 평소 no.6에 의문을 가지던 시온은 이 사건에서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되지만 생쥐가 그를 구한다. 쓰레기더미 서쪽 구역으로 피신한 시온은 no.6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가 단순한 스토리. 재밌는 인물이 나오고 인물들끼리 과거에서부터 얽히는 스토리도 있지만 정도가 매우 미미하다. no.6와 교정시설을 무너뜨리는, 어떻게 보면 매우 큰 도시를 붕괴시키는 게 메인스토리인데 그에 비해서 인물의 폭이 너무 좁다. 지금 손으로 꼽아보니 소설에서 많이 다뤄지는 인물은 꼴랑 다섯이고 서브캐릭터를 해봐야 스물 되려나. 실상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소설도 인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캐릭터성에 치중한 <무한도시>는 그 깊이가 매우 얕다.


  깊이의 단점은 묘사와 진행에서도 드러난다. 세계관으로만 따진다면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멋진 신세계>는 고전다운 서술 - 즉, 다소 고루하고 장황하지만 서사에 기댄 서술을 보여준다면 <무한도시>는 철저히 캐릭터에 의존한 서술이다. 청소션 소설을 표방하지만 라이트 노벨의 노선을 그대로 밟는다. 세계관도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고 권마다 다루는 이야기도 매우 적다. 9권의 시리즈는 대략 장편소설 2권 정도로 압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라이트 노벨의 공식(한두 권에 이야기 완결)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쪽 구역에서 슬렁슬렁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권이 있는가 하면 급박하게 교정시설로 들어가는 권도 있다. 즉, 이건 9권 분권해서는 안될 책이었다! 이건 명백하다. 교정시설이 무너진 후의 전개와 결말은 분량조절 실패로 허무하고 허무하다. 어쩌라는겨?


  아무리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문장에 깊이가 있어야 할텐데 글솜씨도 그닥 좋지 않다. 이러니 청소년 소설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 아닐까. <아가미>만 봐도 이렇지 않단 말이지. 아무리 세부 장르가 다르지만. BL 요소를 첨가한 두 캐릭터(시온과 생쥐)의 매력도 그리 와닿지 않는다.


  여튼 끝. 3일에 걸쳐 읽었는데 나중엔 메인스토리만 파악하려고 문장은 읽지도 않고 넘겼다. 머리에 남을 것도, 배울 것도, 재미도 없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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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 개정판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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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문학을 주로 다루고 감상도 정말 맛깔나게 쓰는 블로그 이웃의 별 다섯 개 리뷰를 보고 책을 고르곤 한다. 더러는 익숙한 책도 있지만 거의 처음 듣는 책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이다. 문장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이 블로거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는 타입이다. 번역에서도 매끄럽고 참신한 번역을 찾고, 나와는 영 안 맞는 은희경, 코맥 맥카시, 이언 매큐언을 최고로 꼽는다. 세 작가의 대표작(<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속죄>(이언 매큐언), <로드>(코맥 맥카시))을 읽어본 결과 아, 난 역시 좋은 독서가는 못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모두가 극찬하는 <속죄>는 묘사 덩어리에다가 판본 때문에(그렇게 믿고 싶다) 더욱 읽기 힘들었다. 한 30쪽 읽고 덮었던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사실, 구매계획이 전혀 없던 책이었다. 친구들과 홍대 카페 꼼마에 들렀다가 나 책 좀 읽어라는 으스대는 자세로 고르고 고르다 평소 읽지도 않을 책을 서가에서 꺼낸 게 화근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김영하의 <검은 꽃>을 구입했다) 읽자니 전의 경험 때문에 버겁고, 안 읽자니 들인 돈이 아까웠다. 며칠간 다소 읽기 쉬운 책들을 읽었기에 어려운 난도에 한번은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지.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확실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은 주인공 퍼론이 토요일 하루 동안 겪는 일을 장장 50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묘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폐허>(스콧 스미스)에서도 며칠 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여기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다. 잠 자다 읽어나고 창밖을 보는데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고 무슨 일이지 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간다. 이 단순한 상황에 작가는 수많은 글자를 넣는다. 인물이 겪는 상황의 단순묘사는 물론이요, 갑자기 아들과 아침에 대화를 했다거나 딸과 장인어른이 과거에 싸웠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가장 친한 동료에 대해 줄줄이 소세지로 말한다.


  스토리의 방향성은 아주 미미하고 곁가지로 계속 빠지고 다시 돌아올 듯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빠지는 모양새가 답답할 만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요일>은 재밌다. 서술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듯한데 자칫 잘못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아갈 이야기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 읽기 지루하고 너무 나갔다 싶으면 얼른 제자리로 끌어오는 느낌이랄까. 단 하루에 일어난 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알 수 있고 그덕분에 인물 간 대화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풍부하다 못해 넘칠 듯한 서술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모든 감상에서 평범한 토요일에 퍼론 가족에게 닥치는 사건을 통해 일상에 갑자기 스며드는 폭력을 말하던데, 솔직히 그런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서술과 묘사에 불안한 이미지를 은밀하게 삽입하는 건 역시 디테일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남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 눈에 띈다.


  퍼론의 서술 중 편안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온다. 아내가 곤히 자는 침실, 태곳적 진화의 딜레마(잠은 자야겠고, 그러다 잡아먹힐까봐 두렵고)를 생각하며 차 문을 잠근 차 안, 병원 동료 제이와 함께 있는 스쿼시코트, 가족과 모인 집은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든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동시에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한다거나 사랑하는 느낌이 아니다. 새벽의 비행기 사고를 아들과 대화할 땐 그저 단순한 사고로, 속으로는 흉폭한 테러이길 은근히 바란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을 넘어 완전히 밀어내려는 수준으로 강화된다. 벡스터와의 첫 마찰에서 퍼론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금만 상대에게 맞췄다면 저녁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의사의 권위를 이용하여 심리적으로 그를 갖고 놀아버리고 만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벡스터의 눈에서 원망이 아닌 슬픔이 보이는 마지막 장면과도 대치된다.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라고 생각하는 퍼론에게 평화는 오직 그만의 평화일 뿐이다.


  사실 퍼론의 집에 예정치 않은 손님이 하나 더 있다.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밝히지 않겠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퍼론의 집에는 또 다른 타인이 껴들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퍼론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타인은 무조건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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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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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028.


  사실 <천사들의 제국>은 보려고 본 게 아니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다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읽기는 조금 뭐하고 해서 가볍게 읽을 책이 없나 찾다가 한참 전에 결제한 베르나르 전집(베르나르 베르베르 앱에서 구입)을 봤다. 홧김에 산 세트에다가 <제 3인류 3>을 읽고 작가에게 배신감을 느껴 쳐박아두었는데. 여튼, 그나마 칭찬받은 <신>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서문에 이 책은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에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었다. 어려운 책보다는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고 그땐 베르나르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타나토노트>부터 읽기 시작.


  <타나토노트>는 고등학교 때인가 꽤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뭐 어차피 얻고자 하는 교훈도 없고 스킬도 없고 상상력을 빙자한 시간때우기용이란 생각이 드는 베르나르의 책이기에 생각없이 휙휙 넘겼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일직선적인 단순한 스토리라인(사실 그게 장점이다)과 공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 감동 없는 이야기까지 고루한 책의 장점을 모두 가진 책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소녀 감성으로 읽어야 흥미가 동하는 책이고, 앞서 말했듯이 시간때우기용이다. 단, 베르나르의 자료수집력과 자료끼리 연관짓는 능력, 상상력은 확실히 발군이다.


  멍-하니 <타나토노트>를 다 읽은 후 뒤이은 내용인 <천사들의 제국>을 바로 봤다. 예전에 <타나토노트>를 봤다면 당연히 <천사들의 제국>도 봤어야 했는데 분명히 읽은 기억이 없다. 왜냐고? 지금보다 더 쉬운 독서를 하던 그때에도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렸다. 전작에서 영계 탐사단이었던 미카엘 팽송이 환생점수를 다 채워 천사가 되었고, 그는 이제 세 명의 영혼을 맡아 600점의 환생점수를 채워야 한다.


  그래,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다운된다. 나는 팽송의 탐사 이야기를 보다가 갑자기 세 인간의 탄생담을 읽게 된다. 테라 인코그니타를 뒤로 밀며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던 용감한 개척자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앞길 살기 바쁜 답답하고 미련한 인간의 이야기로 회귀한 것이다. 주인공이었던 팽송은 우주를 날아다녔는데 이번 주인공인 세 명의 인간(자크, 비너스, 이고르)은 한낮 자기 인생을 살 뿐이다.


  작가도 세 캐릭터들만으로는 이야기의 볼륨을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천사가 된 팽송, 라울, 프레디, 그리고 마릴린 먼로(???) 이 넷이 자신들보다 더 높은 존재를 찾기 위해 탐사하는 이야기를 곁다리로 껴넣는다. 4명이 필요하면 전작에서 그럴 듯한 인물을 데려오든가 조금이나마 탐사에 당위성이 있는 인물이었어야 했는데 갑툭튀 마릴린 먼로라니. 이부터 영 아니올시다다. <천사들의 제국>은 인간이었던 <타나토노트>, 신으로 활동 할 <신>의 중간에서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분량과는 반대로 시리즈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스토리적 중심은 탐사에 있다. 결국 전(前) 영계 탐사단의 이야기가 메인이고, 진짜 곁다리는 자크와 비너스, 이고르의 인생이다.


  이건 정말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 명의 천사가 우리은하 외에 다른 운하에서 그곳의 천계를 찾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스토리인데 실상 이건 단편이나 중편으로 짧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다. 근데 여기에 세 명의 불쌍한 영혼의 이야기를 곁들여 이야기를 키웠다. 그것도 양장본 두 권으로 말이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중간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야 있지만 길이가 길어도 너무 길다. 물론 셋의 이야기에서 돌고 도는 순회과 숙명에서 오는 재밌는 운명의 이야기는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펠렉스와 아망딘의 만남, 화가 이야기) 에드몽 웰즈는 왜 지상의 인간에게 자신의 백과사전을 계속 쓰게 했는가. 쓸데없이 중간중간 들어가는 백과사전 내용은 왜 있는가.(자신의 정보수집을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내용도 꽤나 많은 듯하다. 


  베르나르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신>이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아마 내팽개쳤을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삶과 죽음, 운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철학적인 책'이라고 평한다. 세 번째 말하지만, 그저 시간때우기용 이상, 이하도 아니다. 혹평을 이렇게 길게 쓸줄은 몰랐다. 나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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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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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처음 읽는 87분서 시리즈이다. 국내 출간된 시리즈 중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과 표지여서 계속 미뤄두었는데 워낙 칭찬이 자자해 꺼내들게 되었다. 그리고 87분서 시리즈의 왕팬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57편의 모든 시리즈가 국내에 얼른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


  더글러스 킹은 경쟁자를 제치고 보스턴 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한 기업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한다. 거래일 직전, 킹의 아들을 납치했다는 전화를 받고 놀라지만 웬걸. 아들 바비는 아무일 없다는 듯 집에 들어온다. 사실 유괴된 사람은 킹의 부하직원인 찰스 레이놀즈의 아들 제프였다. 바비와 제프의 금발머리가 유괴범들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유괴범들은 잘못된 유괴대상에 화를 내다가 꾀를 낸다. 더글러스 킹에게, 당신의 아들이 아니어도 몸값을- 그것도 보스턴 거래를 망칠 수 있는금액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킹은 자신의 미래와 제프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 안의 87분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만 이번 책인 <킹의 몸값>은 다른 책에 비해 분서 수사관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해 그냥 그러하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수사관의 비중이 적고 범죄자와 피범죄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즘의 과학수사니 홈즈의 뛰어난 추리 따위은 등장하지 않고 전통적인 유괴범 수사방식이 동원된다. 범인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추적하고 유과현장에서 증거를 찾지만 사실, 꽤나 지지부진하다. 별 얘기거리가 안된다.


  진짜 주인공은 87분서 수사관이 아니다. 주인공은 남의 아이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더글러스 킹과 유괴범들이다. 사실 이상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라면 킹은 몸값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지불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사업이 중요하다지만 한 사람의- 그것도 어린 아이의 목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은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는 50만달러를 내주기가 무섭다. 이길 수만 있으면 규칙은 만드는 거라고 말하는(51쪽) 초반 장면에서 이미 그의 고매함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50만달러를 유괴범들에게 주는 순간 보스턴 거래는 끝이 나고 자신은 회사에 붙어 있기는 커녕 라이벌들에 의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곧 제프의 몸값에 대비되는 것은 결국 킹 자신의 목숨값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킹의 아내 다이앤은 제프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50만달러를 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집에서 나가겠다고 주장한다. 또 유괴범 패거리(주도자인 사이, 기술자인 에디, 에디의 아내 캐시) 중 캐시는 아이를 풀어주자고 거듭 말한다. 오, 이런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다 있는가! 남의 아이에게, 또 자신들에게 돈을 가져다줄 아이에게 어찌 이리도 착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여기에는 조그마한 함정이 있다. 다이앤은 어릴 적주터 가난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유복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킹은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생이다. 다이앤에겐 그깟 50만달러지만 킹에게 그 돈은 자신과 가족을 모두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놈이다. 나는 거기서 다이앤에게 묻고 싶다. 당싱은 과연 여태까지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거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킹이 현실을 뜻한다면 다이앤은 이상을 뜻한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나도 50만달러를 당연히 건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저런 상황을 접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제프를 구출하기 위해 한 부부가 천 달러를 보내는 장면도 있다.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 제프의 몸값이 50만달러가 아닌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면 킹은 과연 거래를 수용했을까이다. 천 달러를 보내온 부부에게 그 돈은 자신들의 전부였을까 아니면 목숨과도 같은 전재산이었을까. 킹이나 그 부부나 제프는 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이리도 다르단 말안가. 여기에서부터 돈에 의한 도덕적 딜레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속물이 된 나에게(어쩌면 당신에게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다. 


  캐시 또한 은행털이는 수용하면서 유괴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참된 인간성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유괴의 결말이 결국 전기의자이기때문에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싶다. 종막에 혼자 체포된 사이는 공범을 불지 않지만 이는 그들끼리의 의리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서 '경찰도 꺾지 못한 악당'이라는 이미지로 수감자들에게 거물대접을 받을 요량이다. 절대적 선과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상황과 상충하여 헛돌고만다. 각자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작성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지만 결국엔 모두 상처만 가진 채 각자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뭐, 죄값이래봐야 결국 마음의 짐일 뿐 신경쓰지 않는다면 죄 따위야 그딴 것으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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