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5
이영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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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문학 작가였는데. 초기작들은 가벼운 문체 속에서 무게감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다소 허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근래 나오는 책들은... 어휴, 말을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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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악한 것은 문장이다. 10대 감성의 헛소리와 끝맺음짓지 못하고 자꾸만 끊기는 대화. 이 불편함이 낯섦으로 다가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20년 전 <드래곤라자>와 비슷한 수준의 농담들이다. 자기들끼리 자조적으로 뱉는 말들이 애들 소꿉장난 대사처럼 들린다. 그래, 아직 덜 성숙한 10, 20대 인간인 시하와 칸타는 그렇다고 치자. 긴 세월을 산 요정 데르긴마저 <드래곤라자> 후치의 재림을 보는 느낌이라니. 좋게 말하면 작가의 상징, 나쁘게 말하면 인물간의 자가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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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묘사도 감점에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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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치로 포탄을 내리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광경에 데르긴은 넋나간 웃음소리를 냈다. _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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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진배없는‘ 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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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역질 소리가 어떻게 좋은 자장가가 되느냐는 질문에 집착하던 데르긴은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옮겨 간 후에야 겨우 자신이 잠에서 깨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침인 듯했다 태양의 소재는 모호했지만 몸 곳곳의 반갑잖은 느낌은 그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데르긴은 눈을 비비다가 싸늘한 느낌에 흠칫했다. 마트 왕복과 계속된 감정적 흥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위였나. 자신이 어떻게 깨닫지도 못한 채 잠들었는지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수립한 데르긴은 자신이 왜 얼어죽지 않았냐는 두번째 의문을 불성실하게 바라보았다. _163,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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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환상의 나라라는 무대를 토대로 한글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일부러 과장되고 극적이며 번역투의 문장을 쓴 것일까? 의도했다면 내 불찰이다. 그런데 주인공 ‘시하‘ 이름을 ‘XX시 하수처리장‘에서 따왔다며. 그럼 여기 한국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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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흐름이랄 것도 없고 가독성도 현저히 떨어져서 읽을 맛도 안 난다.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의 줄기도 얼기설기 조잡하다. 페이지터너도 못해, 주제의식도 못 던져, 그 어느것도 이루지 못한 졸작이라 감히 평한다. 정말로 과수원에 불이 나서 책을 썼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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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문학이라면 요새 젊은 작가들이 훨씬 잘 한다. 흠, 환상 문학은 시절에 좀 뒤쳐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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