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개정판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201901)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한겨레출판, 2003)

한국 남자 소설가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단언코 박민규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형식의 <카스테라>부터 시작해 찌질한 사랑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감히(!) 미국을 비판한 <지구영웅전설>, 단편집 <더블>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도 2010년에 박민규가 대상을 타고나서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말 다 했지. 그와중에 읽지 못한 책이 있었으니, 이번에 읽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하 ‘삼미’)이다.

책 첫 장을 펴자마자 박민규 특유의 이야기꾼의 재담 같은, 한없이 이어지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사다난한 1982년을 이야기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전세계의 온갖 사건 사고를 읽으며 꽤나 즐거웠다. <삼미>가 2003년에 출간된 책이어서 작가 특유의 문장과 표현방식이 이제 한물 간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왕년에 좋아하던 작가의 다다다다 쏟아붓는 수다가 반가웠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수식어( ‘아쉽게도’ 전대통령은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 순방을 마친 후, 무사히 귀국한다 _11쪽)는, 역시 박민규 이꼬르 위트라는 공식을 머리에 떠오르게 만든다.

감히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인천을 연고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가 탄생한다. 인천 시민의 온갖 기대를 받으며 시즌이 시작했건만 온갖 기록은 다 세우며 6개 팀 중 6위를 기록한다. 다음 해에는 엄청난 선전을 해 2위로 시즌을 마감하지만, 우습게도 그 다음 해에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갱신하는 등 대체 프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고 소설의 주인공도 야구에 관심을 끊고 대학에 입학하고 회사에 취업한다. 사회의 온갖 짐에 짖눌려가던 나에게 어릴적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던 조성훈이 찾아와 이미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 팀의, 팬클럽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인 것이다.

범인인 내가 과거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다면 돈 받고 그것밖에 못하냐며 온갖 쌍욕을 다했을텐데 박민규는 특유의 상상력과 시선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책 내용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야구 이야기가 메인일줄 알았건만 왠걸, <삼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그 안에서 좌절하는 우리네의 모습을 그린다.

작가에 의하면 야구가 처음 프로리그를 출범하면서 사회에는 프로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프로라는 새로운 세계와 가치관, 의미가 생기고 프로복음이라는 것까지 설파한다.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허허 이 친구 아마추어구먼, 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와 같이 우리가 자라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문장들이 프로복음에 속해 있다(77, 78쪽). 모두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 위에 서서, 사회가 인정하는 프로쪽으로 발돋움을 하려고 노력한다. 지옥철에 몸을 실고 야근을 하고 퇴근 후에 학원을 찾는다.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IMF 같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온몸 받쳐 열심히 살아도 결국 사회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만다. 프로의 세계에서 평범한 삶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삶은 몇 위일까? 순위는 커녕 프로팀에서 바로 방출당할 것이고, 삶으로 치면 죽음인 셈이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봐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는다. 허리가 부러져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되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126, 127쪽). 사회의 모두가 프로가 되기를 원하는 곳에서 어설픈 아마추어에게 주어진 것은 결국 죽음인 것이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우리도 마냥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길들여왔을지도 모른다.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와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은 산업혁명시대에 착실한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한 제도가 시발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알게 모르게 제도와 시스템에 길들여져 근면과 성실이 최고의 가치인줄 알고 쉬지 않고, 쉴 줄 모르고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262쪽).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할수록 훌륭한 사원으로 꼽히는 것마냥 말이다.

자본주의와 프로의식에 삐딱한 시선을 보이는 작가의 의도는 꽤나 좋았지만, 그가 풀어낸 뒷 이야기와 결말은 다소 아쉽다. IMF 시대를 겪은 주인공은 아내와 재결합해 돈도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조성훈은 프라모델 도색으로 장인이 되지 못할 바에는 얼른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어려운 때에 낭만적으로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충분히 희망적으로 봐도 될법하지만 이렇게 삐뚜름하게 쳐다보는 건, 과연, 내가 프로 ‘프로인 척하는 아마추어’여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도 좋다.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캐치볼을 하다가 공을 잡지 않고 거대하고 광할한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만 해도 좋다. 2루타성 타구를 잡으러 갔다가 땅에 핀 노란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 멍하니 쳐다보아도 좋다. 박민규 식으로 말하자면, 진짜 인생은 삼천포로 빠져야 만날 수 있는 것이고, 프로의 세계에서 이길 수는 없어도 삼천포에서는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으니까. 비록, 지금 삼천포는 사라졌지만, 그럼 어디로 갈까요, 칠천포는 어떨까요.

여담. 박민규 하면 톡톡 튀는 문체가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위트있는 표현(한 게임 한 게임 그것은 분명 평범한 패배가 아니었고, 뭔가 야구의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의 패배였고, 우주의 역행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는, 그런 느낌의 패배였다. _63쪽)과 섬세한 묘사(창을 건너온 봄볕이 - 따끔따끔, 내 등에 스킬 자수를 놓듯 두 가닥의 햇살을 피부 속에 심었다 매듭을 지어 뽑아 올리고 있었다. _113쪽)도 꽤나 있었다. 마초 작가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의외다.

여담 2. 위에서 썼듯이 마초 작가(…)여서인지 일부 설정과 이야기, 묘사가 거북할 수 있으나 2003년 당시의 시대를 감안해야 하겠다. 작가에 대한 비호가 아니라, 소설과 시대상을 완전히 분리해서 해석하는 것은 제대로 된 소설 읽기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하는 부분이 소설의 주 이미지라면 안되겠지만, 다행히 <삼미>는 이를 피해갔다.

여담 3. 가장 아쉬운 점인데, 이 작품은 표절 논란이 있었고 작가는 사과했다. 논란이 있었을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고서 작가가 표절했다는 글을 찾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위트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원글에서 몇 보였다. 작가가 잘못을 시인했으니, 게다가 몇 안되는 애정하는 작가니까… 참작해주자… 하다가도 괘씸한 마음이 든다. 좋아하는 작가여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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