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루 -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1
하재욱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매일매일 다니는 길도 새롭게 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보지 않던 것들, 그냥 지나쳤던 것들 속에서 보지 않았던, 무시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됨으로 해서 생활의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즐거움이 있지 않으면 생활은 단조롭다. 지하철을 타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단순하지만 그 면면에서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모습을 추측도 해보고 나의 삶을 돌아본다. 가급적 손에 책을 들고 다른 책들을 꺼내 읽으려고 한다. 지루한 삶을 거부하고 싶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때로 좌절감도 들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또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뭔가 달라진 것이 업는지 찾아보고, 같은 자리에 있던 것들을 다른 자리로 옮겨 놓아보기도 한다. 계절이 바뀔 때는 그런 일을 하기 아주 적합하다. 


그래도 그중 잘 바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라디오 채널이다. FM 클래식 채널은 바꾸기 어렵다. 가끔 다른 채널도 돌려보지만 다시 바꾼다. 광고라는 것이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좋은 음악을 듣고 나서 바로 분위기를 깨는 광고가 나와 시끄럽게 그러면 재미없다. 다시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싶다. 지치지 말고 걷고 싶다. 오늘도 나의 삶을 시작한다. 


어느 날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하재욱 작가의 그림을 봤다. 그리고 팔로잉을 했다. 얼마나 타고 가길래 저런 그림을 그렇게 쓱쓱 그려낼까 싶다. 언젠가 나도 작은 스케치북을 사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다. 꺼내 그리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하루를 기록해보고 싶었다. 1년 전 일인데, 몇 장 되지 않는다. 행여 상대방이 눈치라도 채면 어쩌냐 싶어 살살 그리다가 채 그리지 못하고 놔두기도 했다. 하 작가는 어떤가. 지금도 매일 그는 기록하며 산다.

 





안녕 하루는 직장생활의 애환과 가족 간의 사랑과 삶이 담겨 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그렇게 사는 삶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 아이의 아빠로서 그는 만화가로서의 꿈을 이렇게 풀었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스케치는 1년 우리 삶의 길이를 재 볼 수 있다. 아버지, 아이들은 있는대 다만 아내가 보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무슨 이유일까. 사람은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을 때는 특히나 상대의 그 빈자리가 커 보이는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렇게 인생 하루는 시작되었다. 작가 자신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보니 무심히 지나쳤던 아버지의 어깨를 다시 느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야 그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말이다. 


"아이들은 이제 곧 자라서 자기만의 인생을 살겠죠? 저는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고요.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알겠더군요.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그 눈빛이 오로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어깨에 검붉은 눈물 말고 찬란한 별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이라도."-13페이지 중에서


그렇게 지친 가장들의 삶을 자신의 하루를 통해서 돌아보고,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가장들의 이야기와 사랑과 휴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셋째와 함께 어우러진 가족들의 삶에서 가장의 삶을. 작가가 기록한 하루의 삶을 보면서 나 자신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과 같이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음을 새삼 느끼고 미안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 대화와 포옹 등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더 늦지 않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 밀려온다. 


작가는 '아버지'를 시작으로, '일상', '가을', '추억', '셋째', '지하철', '겨울'과 '가족'을 여섯 장에 걸쳐 한 장의 그림과 글로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오늘 하루에 위로와 삶의 고단함을 거두어 주는 포근한 감성의 스케치가 좋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래도 마흔의 가장이 주어진 삶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떨어진 낙엽 주어 담듯 하루 하루 한 장 한 장 그리고, 글로 기록했다. 담았다. 기록이 주는 힘이 어떠한가, 기록하는 삶을 시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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