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토털 헬스케어? 물장수

 

 


위생은 하늘로 머리를 두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희망 없이 된 듯했을 때 아시아에 호열자가 발생했다. 왜 조선 사람들이 해마다 여름이면 전국적으로 이 유행병을 겪는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중 하나이다. 모든 오물이 불결하고 좁은 도랑으로 흘러내려 도랑은 종종 폐물로 막혀 도로로 흘러넘칠 정도가 되었다. 녹색의 이끼 낀 물웅덩이는 정원과 길가에 있고, 우물은 가까이에서 더러운 의복을 세탁한 배수로 오염되어 있으며, 썩은 야채들이 도로와 집의 창문 아래에 수북이 버려져 썩고 있다. 비위생적이라든가 불결하다든가 하는 정의(定義)에 속하는 모든 상상 가능한 모습들이 널리 퍼져 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어린아이조차 날것의 푸른 오이와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쓴 딸기, 그리고 물렁물렁하고도 뜨거운 빵을 먹는다. 그들은 뜨겁거나 차가운 밥에 거칠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김치를 급하게 먹으며, 배추는 도랑물에 씻어 무와 함께 소금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다. 모든 종류의 녹색 수확물을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먹음으로써 서구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런데도 탈나지 않는 것은 재앙으로부터 보편적으로 면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조선 사람들이 웃으면서 태연하게 일반적인 권리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자연의 여신에 대한 무례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10분의 1이라도 감히 행한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나 즉시 그리고 당연히 죽을 것이 분명하다.
― L. H. 언더우드 지음, 신복룡, 최수근 역주, 〈상투의 나라(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or Life in Korea)〉, 집문당, 1999(1904)

 
   

 

1888년 3월 일본 상선 한 척이 제물포 항구에 도착했다. 제물포에 내린 승객들 중에는 훗날 명성황후의 주치의로 활동하게 될 릴리아스 호턴(Lillias S. Horton)도 있었다. 릴리아스 호턴은 이미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죽을 때까지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릴리아스 호턴 언더우드’의 눈에 비친 조선은 말 그대로 불결함의 총 집결지였다. 언더우드의 눈에는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인간 세상의 풍물이 조선에 총집합한 것처럼 보였다. ‘문명화 된’ 미국의 선교사들 뿐 아니라 국내의 언론들도 앞다투어 ‘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위생’ 담론의 밑바탕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이 지나치게 비위생적이라는 사실, 그에 대한 뿌리 깊은 ‘수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1883년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불리는 〈한성순보〉가 발간되었다. 〈한성순보〉의 발간은 조선의 근대 개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한성순보〉의 발간 목적은 ‘국민 계몽’에 있었다. 이를 위해 〈한성순보〉에는 다양한 근대 계몽에 관한 기사가 실렸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정을 소개했다. 1884년 5월 5일자 〈한성순보〉의 “각국근사(各國近事)”란에 ‘만국위생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에 이태리에서 만국위생회를 조직하여 한다. 이는 일찍이 없었던 뜻있는 사업이다. 대체로 위생이라고 하면 모든 병을 발생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며 의료라고 하면 이미 발생한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때문에 의료와 위생이 병행하게만 된다면 사람마다 건강해져서 어떤 유행병에도 구제되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위생은 하늘로 머리를 두고 죽기를 싫어하는 세계의 동포와 우리 백성들의 급선무이다.

병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6가지 있으니 음식과 공기와 기후와 행위와 유전과 감염이다. 더러운 물은 百病의 원인이다. 땅 위의 더러운 먼지는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고 이것이 다시 물에 침투하여 물을 오염시킨다. 따라서 도로를 깨끗이 쓸고 마을마다 도로를 정비하여야 한다.

현재 구미 각국에는 자체 내에 위생국(衛生局)이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대책을 강구하고 여러 방면으로 검사하고 실험하며, 이런데 능통한 사람을 관리로 채용하여 모든 전국 위생 사무에 관계되는 일이면 감독하는 업무를 실시하고 있으니 그 규칙에는 다섯 가지 조항이 있다. 1은 먹는 음식과 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 2는 市道와 골목길, 하수도, 변소 등을 소제하여 더러운 것이 흘러내리거나 증발하지 못하게 한다. 3은 감염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고 그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소독한다. 4는 자녀가 출생하면 반드시 우두법에 따르도록 한다. 5는 일체의 의약 도구를 검사하여 경솔하게 사용하거나 부질없이 시험하지 못하도록 한다.

 
   



위생이야말로 근대 개화의 급선무였다. 이에 따라 1894년 7월 30일 위생국이 신설된다. 위생국은 전염병 예방과 의약 및 우두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했다. 그 구성원은 참의(參議) 1명, 주사(主事) 2명이었다. 그동안 방역 사업, 의약 관련 사무, 우두 사업 등이 별개의 기구들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혼란을 극복하고 제반 위생 사무를 총괄하는 단일 기구가 탄생한 것이다.  

 


 

위생은 병을 예방하는 것이며, 의료는 병을 치료하는 행위를 말한다. 치료는 일차적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전제로 하지만, 위생은 도래할 질병, 미래의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의 시스템이다. 이는 일상의 습속을 개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몇 백 년 동안 지속되었던 일상을 어느 날 갑자기 바꾸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위생은 질병과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민중의 삶의 습속과 싸우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 정부는 ‘문명’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위생 개혁에 갖은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우물 개량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된다. 바야흐로 ‘물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물과의 전쟁, 위생순검이 납신다

  

   
 

대저 물이란 것은 사람의 일용 음식에 들어가지 않는 데가 없다. 의복을 세탁하는 데든지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든지 몸을 정결하게 하는 데든지 무릇 천만 가지에 물을 사용하지 않고 되는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은 하루라도 물을 먹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물이 아니고는 일신의 혈맥도 관통하게 할 수 없고 다른 음식을 소화도 잘할 수 없으며 신체와 목숨을 잘 기르지 못할 것이다.
― “논설”, 〈제국신문〉, 1900년 5월 24일.

 
   


조선 정부는 위생 개혁의 일환으로 우물과 개천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우물과 개천의 관리는 각종 세균에 의한 발병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는 조선인의 신체, 곧 인종을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계몽 지식인들은 서구의 나라들이 ‘문명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민중들에게 역설했다. 정부에서는 각 동네마다 우물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우물에 입구에 문을 설치하여 개천의 더러운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며, 우물 주변에는 돌로 발판을 만들어 발에 묻은 오물이나 흙이 우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했다. 또 우물 위에는 지붕을 만들어 빗물이나 더러운 먼지의 침입을 예방했다. 우물의 물을 긷는 두레박도 여러 집에서 돌려쓰지 못하게 했다. 두레박을 통해 혹시나 병균이 전염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지만 오랜 습속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서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먹는 물은 대소변 거른 물, 섞인 물을 먹는 것이라.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 밑에 놓고 보면 가득한 것이 버러지 같은 생물인데 그 생물 까닭에 대개 열 사람이면 아홉은 체증이 있다든지 설사를 한다든지 학질을 앓는다든지 무슨 병이 있던지 성한 사람은 별반 없다. (……) 우리가 바라건대 한성부에서는 억지로라도 위협하여 가면서라도 욕은 먹고 시비를 듣더라도 조선 인민이 정한 물을 먹게 해 주는 것이 이 어둔 백성들을 인도하는 본의가 될 것이다.
― “논설”, 〈독립신문〉, 1897년 9월 2일.
  

양잿물이 지독하여 위생에 극해하거늘 무식한 여인네가 우물가에서 빨래하니 그 뉘가 금단하면.
― “시사필언”, 〈제국신문〉, 1901년 3월 23일.

 
   



대소변을 거른 물, 버러지 가득한 물, 양잿물 섞인 물……. 그런 물들은 서구인의 눈으로 보기엔 미개하고 불결한 물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물을 자연스럽게 사용해 온 조선인들에게는 위생개혁 자체가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다. 


조선 사람들은 아직도 개천에서 빨래를 했고, 농사를 위해 퇴비를 개천이 가까운 곳에 쌓아 놓았다. 화장실의 오물이 개천을 통해 흘러갔고 가끔씩 개천에서 오줌을 누기도 했다. 계몽 지식인들이 보기에 이 모든 행위는 건강에 아주 해로운 것이자 미개한 짓이었다. 인민의 자발적인 위생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자 정부에서는 드디어 공권력을 투입한다. 정부에서는 인민들이 정부에서 정한 ‘위생규칙’을 지키는지 어기는지를 감시하는 임무를 지닌 경찰을 선발하여 인민들의 위생 단속을 실시한다. 이른바 ‘위생순검’이 출현한 것이었다.

위생순검은 개천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 변소를 치우지 않는 집, 길가에 퇴비를 쌓아 놓은 것, 시장에서 상한 음식을 파는 것, 술 마시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것 등을 감시하고 단속했다. 여기에 더해 위생순검들은 자신이 담당한 구역에 있는 우물을 하루에 몇 차례씩 관리하고 감독했다. ‘위생 규칙’을 어긴 사람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태형(笞刑)을 받거나 당시의 생활수준에 비해 가혹한 벌금을 내야만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위생 사업이 이제 사람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흉물스런 죽음의 사업이 되었다. 한마디로 ‘위생’이 곧 ‘고생’이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1-04-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날 우리는 방사능 오염된 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