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토털 헬스케어? 물장수

 

 


물맛 감별의 달인

 

큰 기근이 들었다. 가뭄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하고 쌀값은 폭등했다. 조선 순조 24년인 1814년의 일이었다.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어 남에게 품을 파는 품팔이 생활을 해야만 했던 한 사내는 자신이 이제 죽을 운명임을 깨달았다. 일거리가 뚝 끊겼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깨끗한 귀신’이 되는 게 낫겠다 싶어 관악산 동쪽 기슭으로 찾아들었다. 그곳에는 ‘명품’ 샘물이 있었다.

사내는 매일 물만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난 뒤에는 상쾌한 햇볕을 쬐고 산에서 내려왔다. 가끔 사람들이 사내에게 밥을 주기도 했으나 사내는 정중히 그 밥을 거절했다. 이유는 남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밥을 굶은 그는 곧장 샘물로 뛰어가 또 물을 마셨다. 관악산을 오르내리며 그는 매일 샘물을 마셨고, 그 덕에 배고픔도 잊었다.

이듬해에는 대풍이 들었다. 사람들은 사내를 불러 다시 품팔이를 시켰다. 그런데 사내는 품팔이를 거절했다. 큰 기근 덕에 그는 곡식을 먹지 않고도 지내는 법, 즉 도가(道家)의 수행방법인 각곡방(却穀方)을 체득했던 것이다. 이후 사내는 몇 해 동안 물의 성질에 대해서 깊이 연구해나갔다. 물맛의 깊이를 터득한 그는 샘물, 우물물, 강물, 개울물을 정확히 판별해냈다. 사내의 신통한 능력은 시골 저잣거리의 입소문을 타고 기어이 한양의 고관대작 사랑에까지 스며들었다. 고관대작은 사내를 불러 도성 안의 유명한 샘물들의 등급을 매기게 했다. 사내는 삼청동의 성천(星泉)이 제일 좋고, 훈련원의 통정(通井)과 안현(鞍峴)의 옥폭(玉瀑)이 나란히 3등이며, 2등은 없다고 했다.

사내는 한술 더 떠서 물의 무겁고 가벼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각각의 물을 저울에 달아보니 과연 사내의 말과 같았다. 그 후 그는 명산을 찾아 유람을 떠났고,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 사내를 ‘수선(水仙)’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유재건(劉在建)이 편찬한 전기집(傳記集) 〈이향견문록〉(1862년)에 나온다.

유재건이 ‘수선’의 이야기를 〈이향견문록〉에 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글을 읽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 즉 더 좋은 음식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롯한 모든 탐욕스런 욕망을 경계하라는 뜻에서였을 터이다. 나에게 ‘수선’의 이야기는 자연의 소유이자 생명의 젖줄인 ‘물’을 수탈하고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과 오버랩 된다. 이제 어디를 가나 흔해빠진 생수 페트병을 보면 아직도 나는 ‘봉이 김선달’이 떠오른다.

  

 
대동강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흔히 ‘희대의 사기꾼’을 가리킬 때 많이 인용된다. 태양 에너지를 개발한 연구자, 어처구니없이 태양과 달의 소유권을 주장한 사람들을 언론에서는 가끔씩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 부른다. 이들이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아마도 이들이 인간의 소유가 아닌 태양이나 달의 소유권을 주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9세기 조선에서는 대동강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이를 매매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김선달은 대동강 주변의 나루터에서 만난 물장수들을 보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대동강을 팔아먹겠다는 속셈이었다. 김선달은 물장수들에게 엽전 몇 닢씩을 나눠주며 물을 길어 갈 때마다 자신에게 한 닢씩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물장수들은 대동강 물을 길을 때마다 김선달에게 엽전 한 닢씩을 내었다.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는 김선달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양 상인들은 필시 김선달이 대동강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한양 상인들은 대동강 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김선달을 꾀기 시작했다. 김선달은 물려줄 자식이 없긴 하지만, 대동강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라 팔 수 없다며 한양 상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양 상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김선달을 구워삶았다.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김선달은 대동강을 한양 상인들에게 팔기로 한다. 대동강은 결국 황소 60마리의 가격에 해당하는 4천 냥이라는 거금에 낙찰되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소유도 아닌 물건을 자신의 것처럼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의 재치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상인들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다. 대동강이 어찌 한 개인의 소유일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한양 상인들이 봉이 김선달을 대동강의 주인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도 ‘물’은 판매되는 ‘물건’이었으며, 그 판매에 대한 권리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이었다면 정말 ‘누군가는’ 대동강을 정식으로 매매했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물 시장’의 형성과 ‘물장수’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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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r 2011-01-05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토탈 헬스 케어의 선구자(?)^^격인 물장수의 이야기, 기대되는 걸요?ㅋㅋㅋ

자음과모음 2011-01-19 09: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lunar님- 관심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가운 새벽길을 뚫고 찰박찰박 물소리를 내며 잰 걸음으로 걷던 이들의 모습.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상상해보면 애잔하기도, 재밌기도, 신기하기도 해요- :-)

비로그인 2011-04-0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물장수가 더 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