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러시아워의 스피드 메이커, 여차장

 

 


직장 내 성폭행, ‘옷을 벗은’ 여차장

 

승객들, 시민들, 군중들, 그 누구였든 간에 여차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고 가식적이었다. 그들의 일상을 이해하는 척 하면서도, 그들의 허영을 꼬집고, 관음증적 시선으로 그들을 엿보면서도, 그들의 ‘순결’을 강조했던 사람들.

여차장이 현장에서 겪는 성희롱도 성희롱이었지만 직장 내에서 당하는 성폭력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물론 모든 여차장들이, 모든 버스 회사 내에서 그랬던 것은 아닐 터이다. 여차장의 주된 업무 중에 하나는 버스표를 파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가죽으로 만든 돈 가방을 들고 다녔다. 버스 한 대의 하루 수입이 고스란히 여차장의 돈 가방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가끔 버스 요금을 잘못 계산한 경우 여차장은 자신의 돈으로 손실을 메워야만 했다. 여차장이 언제나 현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게 되자 소매치기도 등장했다. 러시아워의 만원 버스에서 여차장의 돈 가방은 소매치기의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버스 한 대의 하루 수입을 여차장이 관리하다 보니, 회사 측에서도 여차장의 행동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돈을 못 믿어서였을 것이다. 간혹 실제로 횡령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마산의 어떤 버스 회사에 근무하던 여차장은 2년 동안 2천여 원을 횡령했으며, 운전수와 공모한 여차장이 돈을 횡령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건 때문이었는지 회사에서는 여차장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당시에는 알몸 투시기가 없었으니 손으로 하는 ‘신체검사’가 시행되었다. 여차장들은 퇴근을 할 때 모두 회사 측의 감독관에게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혹시나 여차장의 몸속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회사의 돈을 찾겠다는 명목이었다. 그런데 신체검사를 빌미로 여차장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내용은 이렇다. 

 

   
 

평양부 부영버스의 여차장 ‘뻐스걸’은 평양에 처음 생긴 것인 만큼 그들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거니와 이번엔 듣기에 너무나 추악한 사실로 (……) 어린 직업여성에게 참지 못할 모욕과 수치를 준 에로 감독이 있다. 버스 감독 삼구(三口, 가명)라는 자는 지난 5일 밤 6시 경에 그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뻐스걸들을 자기 혼자 있는 숙직실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불러서 ‘돈 감추지 않았는지 검사한다.’는 핑계로 나이든 처녀들을 옷을 벗게 한 후 유방은 물론 부끄러운 곳까지 손을 대어가며 감사를 하고 내보내어 졸지에 봉변을 당한 10여 명의 뻐스걸들은 분함과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여 울기까지 하고 어떤 뻐스걸은 기가 막혀 옷을 벗은 채 입으려 하지도 않으니까 동 감독은 창황히 손수 ‘호크’를 채워주는 등 추태를 연출하였고 여차장 자신들은 망측 망측하여 별로 이야기를 내어놓으려 하지 않으나 이 말을 들은 그들의 부형들은 분개하여 이 일을 크게 문제화 하려고 암암리에 대책을 협의 중 이라는데 장차 부(府)의 책임 문제까지 일어날 모양이라 한다.
― “돈 감추었나보다고-‘뻐스걸’ 나체검사”, 〈조선중앙일보〉, 1934년 12월 11일.

 
   



여차장을 가상의 범죄자, 미래의 범죄자로 규정하는 신체검사와 비슷한 제도는 어느 사회에나 만연한 일이다. 범죄의 예방이라는 목적으로 창안된 제도는 언제나 약자를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몬다. 그런 제도는 우리 모두를 암묵적으로 미래의 범죄자로 몰아넣는다. 특히 감독이라는 중간 관리의 폭력은 토지의 주인보다 그 토지를 관리하는 중간 계급인 ‘마름’의 폭력처럼 지독하고 교활한 데가 있다.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이 권력의 핵심인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의 피를 뽑게 마련인 것이다.

‘삼구’라는 버스 감독이 여차장에게 가한 성적 폭력은 중간 관리의 폭력이었고 외에도, 여차장의 생계 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버스 회사 사장의 성폭력이 또한 존재했다. 버스 회사 사장들의 성폭력은 더욱 극악무도했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전후 맥락을 정확하게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이 사건 이후 여러 잡지에서 ‘직업여성’ 혹은 ‘직업 부인’의 ‘성 문제’를 다룬 것을 보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직업여성의 직업을 미끼로 정조를 유린하고도 직업의 여탈을 손에 쥐고 있는 까닭에 안연히 사장의 의자에 앉아서 당당한 신사의 존엄을 가지고 있는 사실이 필경 그러한 수단으로 유린당한 처녀가 분연히 직업을 던지고 나와 부모와 동지에게 일장의 고백을 하는 동시에 색마 사장을 걸어 법의 재단(裁斷)을 구하게 되어 복마전인 사장실에 숨어 있든 이 색마의 거동이 청천백일 하에 전모를 나타내게 되었다. (……)

최정석이 검사국에 제출한 고소장의 내용은 지난해 2월 시내 미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세가 빈한하여 직업을 구하고자 경인버스회사에 직업을 구하였더니 지난해 4월 모일 밤 9식 30분 경 경인버스 사장 야전림(野田林)이 최정석(崔貞奭)을 취직에 관하여 의론할 말이 있다고 동 회사 3층 사장실로 불러 차장 견습으로 채용하겠다하고 사장실의 문을 열쇠로 잠그고 사장실 반침으로 끌고 들어가 강간을 하였다. 그 후 7월 모일 밤 역시 9시 30분 경 종업원이 돌아간 후에 사장실로 역시 호출을 받아 그 때는 본차장으로 승격시켜 준다고 강간을 하였으며 그 후 10월 모일 밤에는 당시 동 회사의 동맹 파업에 관하여 의론할 말이 있다고 시내 명치정(明治町) 죽내가(竹乃家) 여관으로 데라고 가서 ‘너만은 해고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정조를 유린하여버린 사실 등이다.
― “직업의 여탈을 호이(好餌)로 여차장의 정조를 유린”, 〈동아일보〉, 1933년 2월 2일.

 
   



최정석은 자신이 당한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결국 ‘야전림’이란 회사 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야전림은 승진과 해고를 미끼로 최정석을 강간했으며, 최정석은 혹시 자신의 일로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장의 성폭행을 쉬쉬했던 것이다. 결국 검찰은 여전림과 최정석을 소환하여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이때의 사법부도 남성의 성폭력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야전림에게 내린 법정 판결은 겨우 벌금 ‘500원’이었다.

여차장은 회사의 안팎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에 자주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던 듯하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은 성폭력에 대하여 무감각한 사회였고, 여차장을 비롯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전반적인 제도와 토양이 ‘직업여성들’도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을 ‘에로 서비스’로 내몰고 있었다. 결국 여차장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애로와 에로’ 사이에서 위험한 삶의 곡예를 연출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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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4-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어디에선들 애로와 에로 서비스를 무시하겠습니까.병원,방송국,회사,마트,요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