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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마는 애로와 에로 사이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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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애편지 같은 것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여: 간혹 있지요. 신사 손님은 비교적 적지만 학생 따위가 저녁 늦게 돌아갈 때면 뒤를 쫓아서 우리 집 번지까지 알고 그냥 아무 번지 ‘뻐스걸 전(殿)’이라고 쓴 편지가 가끔 옵니다. (……) 슬쩍 발등을 밟는다든가 또는 떠민다든가 몸을 나에게 기대고 시치미 뚝 떼고 엉뚱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체하는 사람이 많아요. 웨들 그러는지 모르지요.
나: 아마, 그것이 속일 수 없는 인간의 본능 일지도 모르지요, 하고 한 번 건드렸다.
여: 글쎄올시다, 라는 말 뿐으로 더 긴 설명이 없었다.
― “고-, 스톱-하는 뻐스 여학교, 가로에 활약하는 104명의 여인군(女人軍), 거리의 여학교를 찾아서 3”, 〈삼천리〉, 193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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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장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교통사고와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가장 큰 위험은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이었다. 〈삼천리〉의 기자가 제목으로 뽑은 ‘거리의 여학교’란 말부터 성희롱의 소지가 다분하다. 기자가 지목한 ‘거리의 여학교’는 네 곳이었다. 종로에 있는 화신백화점(지금의 종로타워 자리), 동대문에 위치한 경성부영버스 사무소, 서대문에 있는 전매국,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었던 동양극장. 〈삼천리〉의 기자가 이 네 곳을 ‘거리의 여학교’라 명명한 것은 이곳에 다니는 여성들이 모두 짙은 화장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제복(양장)을 입고 다니면서 돈을 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발상 자체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성희롱’ 혹은 ‘성폭행’이 대부분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다. 물론 오늘날 성폭행은 명백한 범죄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너그러운’ 면이 남아 있어, 술에 취해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심신 미약 상태 인정’으로 사법부에서 감형을 해주는 등의 일이 빈번하다. 어쩌면 식민지 조선은 ‘성폭행을 권하는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고용주들이 서비스직에 여성을 고용하는 이유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여차장들에게도 일종의 ‘외모 가꾸기’가 요구되었다. 회사에서는 여차장에게 외모 가꾸기를 강요하고 관리했다. 여차장들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비싼 화장품에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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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부인 기자): 여자를 택하여 쓰는 자본주의의 심리를 생각하며 보면 모두가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여자라는 한 가지 조건으로 이용들이 되는 편인데. (……)
곽현모: 백화점 같은 데서도 손님이 남자 점원이 있을 때에는 살 물건도 안 사고 여자 점원이 와야 그때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많이 이용할 것이겠죠. (……)
채만식: 아하 그러면 노동 이외에 에로 서비스를 조건으로 붙입니다. 그려.
― “직업 부인 문제 특집-직업 부인 좌담회”, 〈신여성〉, 193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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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의 고용주들은 박봉에도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여성들을 원했다. 또한 고객들이 서비스직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로부터 원했던 것, 고용주가 서비스직 여성들에게 원했던 것은 ‘에로 서비스’였다. 사태가 이러하니 서비스직이었던 여차장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눈에는 ‘에로’라는 두 글자가 크게 부각되었을 터이다. 그러하니 남성들의 시선은 여차장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홅고 지나간다. 이상적인 여차장이란, 남성들이 원하는 여차장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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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여자는 얼굴도 얼굴이거니와 음성이 얀간해야 할 것이다. (……)
여자는 이 손도 그네들의 생명의 하나이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손이 아주 밉고 얼굴만 예쁘다면 그 여자도 역시 처음 얼굴만 보는 사람에게는 존경을 받을는지 몰라도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그 여자의 매력은 감소돼 갈 것이다.
K라는 ‘뻐스걸’이 있다. 그 여자의 얼굴은 그리고 음성도 다른 아모 여자보다도 뛰어나게 예쁘고 곱다. 갸름한 듯하면서도 그다지 보기 싫게 말상 같지 않고 도리어 두 볼이 보기 좋게 퉁퉁 한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하며 시꺼먼 눈 속에서 영롱히 구르는 맑은 눈동자 그리고 묘하게 도드라진 코 (……) 그 입술은 향상 붙은 듯 만 듯하니 정말 간간하게 빠개져 있다. 그리고 이 여자의 음성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약간 감기에 걸린 듯한 그 음성이다. 두 훌 쯤 콧소리를 한다. 이것이 얼마나 매력 있는 소리냐? (……) 이러한 K양인데도 불구하고 미소를 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앉았다가 표 찍어줄 때 그 여자의 손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도저히 없다. 툭툭 마디가 진 그 여자의 손, 게다가 빛깔까지 거무튀튀하다. 그리고 그 얼굴과는 아조 딴판으로 죽은 사람의 손 가죽 같이 가죽이 넉넉한 게 보기에도 흉측하다.
그 다음부터는 이 여자의 얼굴을 볼 적마다 그 손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그 여자가 만일 그 손까지 아름다웠다면……. (……)
그 여자들의 다리는 쇠망치보다 오히려 굳고 세질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5전만 내면 같이 ‘드라이브’ 할 수 있는 ‘뻐스걸’은 어떤 의미로 보아서 안가(安價)한[값싼] 처녀들이다. 그러나 그대들이여! 여자로서 가장 귀한 정조(貞操)는 고가(高價)로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여겨라.
그리고 그대들이 하루에도 몇 백 사람씩 접촉하게 되는 가운데서 현실 사회를 똑바로 보고 그대들이 앞으로 나갈 길을 꾸준히 닦으라.
― 김성마(金城馬), “정조와 직업여성, 서도수향(西都水鄕)의 가지가지”, 〈삼천리〉, 193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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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차장에게 도대체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그녀들은 5전만 내면 쉽게 ‘에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값싼 처녀들’로만 보였던 것일까. 여차장의 자격 요건이었던 완벽한 바디 라인과 섬섬옥수 같은 손, 수밀도 같은 볼에 섹시한 입술, 맑은 눈동자는 모두 남성들에게 ‘에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요구되던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정조’의 소중함도 지키고, 세상의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안목까지 바랐던 이 철저한 이중성이 어쩌면 식민지 조선의 일부 남성들이 여차장을 비롯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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