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부인’이 된 ‘노라’의 후예들
여차장을 비롯해서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 경우 세상에서는 그들을 ‘신여성’, ‘모던 걸’이라 불렀지만, 이보다 더 일상적으로는 ‘직업여성’이나 ‘직업 부인’이라 불렀다. ‘버스 걸’, ‘데파트 걸’, ‘가솔린 걸’, ‘엘리베이터 걸’, ‘티켓 걸’, ‘할로 걸’, ‘오피스 걸’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은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보면 모두 ‘노라’의 후예들이었다.

‘노라’는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작품 〈인형의 집〉의 주인공이다. 가부장의 폭력에 저항하며 ‘인간’의 자유를 찾아 집을 뛰쳐나온 노라는 유럽에서는 여성 해방의 상징적 존재였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일찍이 일본과 중국과 조선에 번역되어 많은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입센 열풍, 나아가 ‘노라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1921년 일본과 중국에 이어 조선에서도 입센의 〈인형의 집〉이 번역되었는데, 번역자는 당대 최고의 중문학자이자 한국 근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양건식이었다. 1933년 채만식도 〈인형의 집〉 후일담 격인 〈인형의 집을 나와서〉란 작품을 쓰기도 했다.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며 여성이 아닌 인간의 자유를 갈망했던 ‘노라’의 외침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라 신드롬’은 노라를 닮고자 하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 여성들로부터 일어났다. 남녀평등과 여성 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수많은 노라의 후예들이 식민지 조선에도 등장한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작가인 루쉰의 ‘노라 신드롬’에 대한 냉정한 일갈은 귀 기울일 만한 것이었다.

루쉰은 1923년 12월 26일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 강연회에서 입센의 ‘노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강연회에서 이야기한 내용의 제목은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였다. 루쉰이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주목한 것은 가부장적 권위에 맞서 집을 뛰쳐나간 한 여인의 선구자적인 행동이 아니라, ‘과연 집을 뛰쳐나가 사회에 ‘던져진’ 노라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
루쉰은 노라가 집을 나가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나는 타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여기에 더해 혹시 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는데, 그것은 아주 가혹한 결과로, 바로 굶어 죽는 것이었다. 루쉰은 왜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 학생들에게 이런 가혹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들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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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 더욱 절실하게 자신의 고통을 느끼도록 하고 영혼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썩은 시체를 목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허풍을 떨고 꿈을 꾸는 일은 오직 이러한 때에 위대해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령 길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꿈이며, 그러나 장래의 꿈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지금의 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쉰 지음, 홍석표 옮김,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무덤-노신 잡문집〉, 선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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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지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냉혹할 만큼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도대체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여성이 처한 현실은 무엇일까. 집을 나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 루쉰은 노라가 가부장제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떠나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단지 가정이 아닌 자신이 처한 사회의 문제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냉혹한 사회의 현실이란 집을 박차고 나간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었다. 가부장제의 모순을 각성한 ‘그 마음’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루쉰의 판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여기’에서 여성들이 가장 먼저 선취해야 할 것은 가부장제의 모순에 대한 단순한 각성도, 남녀평등의 외침도, 여성 참정권의 주장도 아닌 바로 ‘돈’이라고 말했다.
루쉰은 ‘돈’이야말로 여성의 참정권보다 거창한 여성 해방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루쉰이 말한 ‘돈’은 단순히 ‘돈’ 그 자체가 아니었다. 바로 ‘경제권’의 문제였다. 여성이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진정한 남녀평등의 세상을 욕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은 경제권의 획득이었으며, 경제적인 독립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보다 더 지난한 투쟁이 될 것이라는 것이 루쉰의 판단이었다. 경제권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여성 해방은 먼 일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루쉰의 판단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적중한 셈이다. 루쉰의 판단처럼 식민지 조선의 ‘직업여성’들도 가정을 나와 자신의 삶을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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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과 의지의 작용을 상반하지 않는 행동이라든지 행위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집을 버리고 떠나는 여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수두룩하게 듣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곧 조선의 ‘노라’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 그들 젊은 직업여성들은 지금 밤 속을 걸어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정에서는 봉건적 도덕의 무거운 사슬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나가면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상식이 범람하고 있으며 ‘울트라’ 동무들 사이에 가면 붉은 성사상이 그의 귀를 굳세게 이끈다. (……) 여성이 몇 천 년 동안 젖어온 부엌과 ‘하렘’을 떠나서 생활의 전사로서 대량적으로 가두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14~18년 세계대전 중이었다. (……) 이보다도 먼저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속의 ‘노라’로써 대표된 일반 여성의 봉건적 가정 도독에 대한 반항의 소리와 여권 주장의 부르짖음이 전 ‘유럽’의 여성계의 사상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 자본가들은 사나이보다도 임금은 싸고 노동 시간은 길고 순종 잘하는 다시 말하면 매우 저열한 노동 조건으로 고용할 수 있는 여자들을 더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정세는 오늘까지도 계속해 나오며 도시에는 여공으로부터 ‘오피스 와이프’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종류의 직업여성이 범람하고 있고 또 날로 그대로 증가해가는 추세에 있다. (……)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음-인용자)로 할 수 없이 생활 전선에 몰려나온 직업여성에게 맡겨지는 직업의 성질은 대부분은 여성의 독특한 성적 매력이라는 것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 그 위에 황금,지위의 폭력은 실직 앞에서는 참새와 같이 비겁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들의 정조까지를 위협하고 있다.
―김기림, “직업여성의 성 문제”, 〈신여성〉, 193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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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고용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진정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성을 고용하는 이유는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전략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눈요깃거리를 위해서였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수많은 노라의 후예들은 가정보다 더 크고 견고하고 촘촘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그물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