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쿠바의 담배 공장, 위험한 책 읽기


 
 
18세기 중반 정조가 소설을 탄압했을 때, 저 멀리 쿠바에서도 조선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17세기 이래로 질 좋은 시가를 제조하는 나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18세기 중반 쿠바의 시가 제조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시가 제조업자이자 시인이었던 ‘사투르니노 마르티네스’라는 사람은 노동자들의 계몽을 위해 신문을 창간하기로 하고, 정치 연재물뿐만 아니라 과학과 문학에 관한 글들을 신문에 싣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투르니노 마르티네스는 신문을 발간하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신문을 발간했는데 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 정작 신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쿠바 노동자들 중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은 약 1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사투르니노 마르티네스는 다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전기수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구아나바코아 고등학교 교장에게 공장에서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달라고 부탁했고, 엘 피가로 공장의 사장에게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1866년 드디어 엘 피가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줄 전기수가 고용되었다. 책을 읽어주는 대가는 노동자들이 각출하여 지불하였다. 이때 공장에서 자주 읽혔던 책은 역사 개론서인 〈세기의 전쟁〉이나 역사 소설인 〈세계의 왕〉, 그리고 정치와 경제학 입문서 등이었다.   

 

 

1866년 1월에 시작됐던 이러한 책 읽기 방식은 급속도로 쿠바의 노동자들에게 퍼져나갔다. 엘 피가로를 시작으로 해서 곧 다른 공장들도 노동자들에 책을 읽어줄 전기수를 고용하기에 이르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약 4개월이 지난 1866년 5월 식민지 쿠바의 정치 담당 총독은 다음과 같은 칙령을 선포하였다.   

 

   
 

1. 담배 공장, 작업장, 그리고 모든 형태의 일터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책 읽기나 신문 읽기, 혹은 근로자 각자가 종사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토론 등을 빙자하여 이끌어내는 행위를 엄금한다.
2. 경찰은 이 칙령을 집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를 펼칠 것이며,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작업장 소유자나 대표, 관리인은 사태의 위험성에 따라 법으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독서의 역사〉, 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2000

 
   

  

노동자들이 전기수를 고용하여 책을 읽는 이러한 움직임을 총독은 ‘체제 전복 행위’로 파악했고 이로 인해 ‘독서 금지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총독의 이런 엄포 때문에 노동자들이 책 읽기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책 읽는 행위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은밀한 독서가 진행되었다. 권력의 안테나가 닿지 않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전기수를 고용하여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전기수에게 읽어주기를 부탁했던 책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고 한다. 

 

 

 쿠바의 담배 제조장 노동자들에게 전기수가 읽어주는 책은 세상을 보는 통로였다. 노동자들은 전기수의 목소리를 통해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의 부조리함과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깨달아갔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책 읽기는 위험했다. 식민지 쿠바의 총독은 노동자들의 책 읽기가 언젠가는 자신들이 유지하고 있는 체제를 전복시킬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정조나 식민지 쿠바의 총독 모두 ‘책’ 그 자체를 문제 삼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전기수가 읽어주는 그러한 책들이 체제와 제도를 옹호하는 책이 아니라 체제를 비판하고 경계하고 조롱하는 책이었다는 점이다. 민중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경계하는 책, 자신의 억압된 삶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탈주할 수 있었던 책을 원했고, 민중들의 이 같은 소망은 언제나 지배자들의 세계관과는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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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4-0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에서 허용하는 소설책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이 문득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