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기생일지니
1937년 4월 19일 오전 7시 20분 신의주 초음정 12번지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코로니얼식 권총을 쏜 사람은 김순자였는데, 그녀는 보통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신여성’이었다. 김순자가 쏜 총알에 맞아 거꾸러진 사람은 남편 조흥갑이었다. 아랫배와 다리에 총상을 입은 조흥갑은 도립 의원 응급실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으나 오전 8시 결국 생을 달리하고 만다.

배울 만큼 배운 김순자는 왜 조흥갑을 죽였으며, 1발도 아닌 3발씩이나 총을 쐈던 것일까. 그녀의 남편은 공공연하게 외도를 했다. 남편과 정분이 난 여자는 기생이었던 최산월이었다. 조흥갑은 한 달 전부터 산월이에게 빠져 있었고, 산월이도 조흥갑을 좋아했다. 김순자는 기생방에서 놀고 있는 남편을 찾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부탁했으나 남편은 감히 아녀자가 기방에 왔다며 오히려 김순자를 나무랐다. 김순자는 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기생에게 자신의 남편을 빼앗겼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이대로 자살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김순자는 피가 거꾸로 도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남편을 찾아갔다.
김순자는 산월이와 남편이 동침하고 있는 현장을 덮쳤다. 그리고 세 발의 총을 쏘았다. 경찰에 체포된 김순자는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김순자는 기생에게 남편을 빼앗기느니 차라니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남편을 따라 죽을 작정이었다고 검사에게 진술했다. 그것만이 영원히 자신의 남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김순자가 범행에 사용한 권총은 남편 조흥갑의 것으로, 그는 안동 경찰서 고등계 형사였다. 내연녀였던 기생 최산월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순자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이지만, 최산월의 입장에서는 ‘사랑’한 것일 수도 있다. 기생과 얽힌 치정 사건은 무수하게 많았다. 기생들도 인간이었고, 그들 또한 사랑을 꿈꾸었다. 기생들의 사랑은 대부분 ‘비극’이었다. 기생들이 사랑한 남성들은 유부남인 경우가 많았다. 유부남이 아닌 경우에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파국을 맞는 경우가 흔했다. 비록 사랑이 파국으로 끝날지언정 남성과 ‘사랑’이라도 나눈 기생이라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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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생! 듣기에도 진저리나는 기생, 무슨 죄가 있어 사람으로 사람에게 학대와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동정이 없고, 의리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약자를 위하여 분투하는 사람은 없고 강한 자를 위하여 추세하고 복종하는 사람들뿐이라. 기생이라는 것이 듣기에도 욕지기가나고 약한 우리를 동정하여 줄 사람이 없겠지요. (……) 기생도 사람입니다. 기생의 가슴에도 뜨거운 정이 있습니다. 평생을 애인이 없이 고독한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평생을 학대와 유린 중에 시들어버려야 하겠습니까. 아! 남성들이시여. 노래 팔고 웃음 팔고 고기 파는 기생이라고 너무 괄시를 하지 마십시오.
―李月香 , “눈물겨운 나의 哀話”, 〈장한〉, 192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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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당신이 하신 것은 생각지도 아니하시고 기생만 죽일 년, 살릴 년 하시고 모주 먹은 돼지 벼르듯 하십니다. (……) 우리네 화류계 여성을 농락하는 모든 남성이 기생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며 더욱 한 번만 친하게 되면 아주 당신네 물건처럼 여기시는 까닭입니다. (……) 장난감 인형과 같이 동물원의 원숭이나 앵무새 같이 미물이나 물건으로 취급하는 까닭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거침없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잘못이시지요. 암만 웃음과 노래와 고기를 파는 기생이라 하기로서니 어찌 성명조차 없겠습니까.
―金蘭紅, “기생 생활의 이면(일)”, 〈장한〉, 192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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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든 삼패 기생이든 남성들의 입장에서 기생은 남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일 뿐이었다. 화류계를 만든 것도 남성들이었고, 화류계야말로 남성의 전도를 그르치는 ‘악마의 굴’이라고 거세게 비난한 것도 남성들이었다. 기생들은 남성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동정’을 원했다. 기생들은 딱히 생각나는 말을 찾지 못해 ‘동정’이라는 말을 썼을 뿐, 말 그대로 가엾게 여겨 달라는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한 줌의 도덕과 최소한의 ‘자존’ 아니었을까.
7. 식민지 조선 문화·예술계의 아이콘, 모던 ‘기생들’
기생은 신문과 잡지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당시에 만약 ‘연예 통신’이라는 신문과 방송이 있었다면, 단연 기생들의 이야기로 꽉 찼을 것이다. 기생의 삶은 대중들에게 질리지 않는 가십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고도 남았다. 기생은 한마디로 식민지 조선식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역’이었다.
기생 중에는 조선의 전통 예악을 전수받고 이를 후대에 전승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얼굴과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화초기생도 있었다. 어떤 기생들은 기생 생활을 접은 후에 대중가요 가수로 활동하거나 은막의 스타로 탈바꿈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배우로 이름을 떨친 기생은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 신일선 등이었으며, 최고의 레코드 판매 기록을 세운 기생 출신 대중가수로는 왕수복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기생들의 사진을 찍어 ‘기생 사진첩’을 만들어 팔았는데, 요즘 말로 하면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제작한 셈이었다. 그만큼 기생의 인기는 높았다. 인기 높은 기생들은 광고에도 출현하기에 이른다.

예나 지금이나 샴푸 광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기생 노홍은이 ‘화왕 샴푸’라는 샴푸의 광고 모델이었다. 이 샴푸는 일본의 가오사(花王社 화왕사)의 상품이었다. (가오사의 샴푸 광고 모델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일본 피겨 스케이트 선수 아다사 마오가 있다.)
기생은 식민지 조선 광고계의 ‘블루칩’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그녀들은 노동 운동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고, 물산 장려 운동과 자선 사업에 몰두하기도 했으며, ‘문화 외교 사절’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