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화계의 이슈메이커, 기생 

 

4. 기생이라고 다 같은 기생이 아니다!: 화초기생의 탄생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가는 삼패 기생의 위력 앞에 일패 기생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1900년대 초반에도 일패 기생은 삼패 기생과 구별 짓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전까지 일패 기생과 삼패 기생을 구별하는 방법은 ‘붉은 우산’이었다. ‘붉은 우산’은 일패 기생에게만 허락된, 일패 기생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1906년 7월에 들어 삼패 기생들이 경무청에 자신들도 ‘붉은 우산’을 쓰겠다고 호소했고, 경무청에서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신 일패 기생의 신발만 달리해 삼패 기생과 구별하도록 했다. 일패 기생에게 검은색 외코신을 착용하게 하여 삼패 기생과 구별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별 방법만으로는 일패 기생의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생을 대하는 고객들의 취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일패 기생들은 권번에서 철저하게 가무(歌舞) 및 시조 등을 교육받았다. 자신들이야말로 조선 시대의 ‘예술’을 전승하는 사람들이라는 자긍심이 강했던 일패 기생들이었다. 일패 기생들은 ‘일류’ 선생들 밑에서 춤과 노래와 악기와 서화 등을 전수받았으며, 자신들의 롤 모델을 논개와 춘향, 황진이와 같은 의기(義妓)와 정절, 예인(藝人)의 대명사들로부터 찾았다. 




 

   
 

예기란 무엇인가. 연석에 초대받아 음악과 가무를 연주하여 연석에 흥을 한층 높이게 일단의 풍류를 가미함에 종사하는 여성이다. (……) 영웅열사가 만란(漫瀾)과 악전고투하며 고심참담하여 성공의 월계관을 쓸 때에 우리는 가무로써 그의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도다. 어찌 일개 유아탕자의 수중물이 되고 마는 것이 예기(藝妓)의 본이랴. (……) 가무 그것은 예술이며, 적어도 우리는 예술가로다.
―尹玉香, “예기의 입장과 자각”, 〈長恨〉, 1927년 2월

 
   

   

 

윤옥향이 ‘우리는 적어도 예술가인 예기’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당시 일패 기생의 지위가 예전만 못할 뿐만 아니라 삼패 기생과 구별 없이 ‘동류’로 취급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었다. 일패 기생의 입장에서 보면 정조를 쉽게 여기고 몸을 파는 삼패 기생과 예기인 자신들은 분명히 달랐다. ‘기생’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똑같이 취급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고객들’ 또한 기생의 가무보다는 기생의 ‘교태’에 더 끌리고 있었다. 40년 넘게 기생 노릇을 한 어떤 여인의 한탄을 들어 보자. 
  

   
 

얼굴이 희끔하고 모양이나 과히 흉치 아니하면 그래도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이리 간다, 저리 간다 하고 벌어먹지요. 지금은 기생만 그러할 뿐 아니라 기생을 불러 노는 사람도 또한 같은 축이지요. 가무는 둘째 하고 먼저 보는 것은 얼굴이지요. 물론 기생이면 얼굴도 추하여서는 못 쓰는 법이지요마는 기생을 얼굴만 취하려면 기생이라는 이름은 지어 무엇 합니까? 은군자나 색주가만 데리고 놀아도 그만 족할 것이지요. 예전 기생이라 하면 첫째는 가무를 보고, 둘째는 사람을 보는 것이요, 셋째는 얼굴을 보는 것인데, 지금 와서는 아주 정반대가 되었지요. (……) 정말로 망측한 것은 요사이 기생이올시다. 가무는 할 줄 모르면서 지껄이는 것으로 반 벌충을 하지요. 노는 손님도 그것을 받기는 잘하니까 그렇지요마는. 속속들이 비단옷에 금시계 줄이나 한 옆으로 떨어뜨리고 철 갖추어 패물이나 몸에 지니고 사람 만나 변이나 잘 쓰고, 돈 많은 사람의 간장이나 살살 녹여서 보자기 씌우고, 돌아서면 욕하고 얼굴 대하면 헤헤 웃고, 없는 정도 있는 듯이 능청을 부리다가 돈만 없는 모양을 보면 언제 보던 행로인(行路人)이냐 하고 보아도 못 본 체하는 것이 제일 명기라 하니 요사이 기생 노릇같이 하기 쉬우리까?
―“一老妓의 自白(二)”, 〈매일신보〉, 1914년 7월 29일

 
   

  

40년 풍상을 견디고 기생 노릇을 한 어느 노기의 신세 한탄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생은 더 이상 관기가 아니었고, 이제 권번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고용된 존재가 되었다. 기생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일종의 상품에 불과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기예가 아닌 얼굴을 무기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생을 ‘화초기생(花草妓生)’이라 불렀다. 나름 일패 기생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기생들에게 화초기생은 동종 업계의 ‘적’이나 다름없었으며, 기생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화초기생은 창기인 삼패 기생과 거의 비슷한 부류였다.

화초기생들의 무기는 어쩌면 ‘변신술’이었다. 화초기생들의 가무 수준은 형편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패 기생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화려한 복색과 야릇한 화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감추었다. 일패 기생들은 고객들의 눈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얼굴과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화초기생들과 끊임없이 구별 짓기를 해야 했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규방에 갇혀 있던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근대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여학생’도 생겨났다. 여학생은 ‘모던 걸’ 이자 ‘신여성’을 뜻하는 말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개화·계몽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삼패 기생들은 여학생들을 주목했다. 가진 재주라고는 남성들을 사로잡는 ‘미모’ 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서 여학생의 이미지를 도용했다. 삼패 기생들은 개화·계몽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여학생들의 복장을 입고 길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했다. 삼패 기생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성취와 관계없이 여학생의 패션을 모방함으로써 신학문을 배운 ‘신여성’이라는 표지를 내세웠으며, 이를 이용하여 ‘영업’을 했던 것이다. 옷차림만으로는 그 사람이 여학생인지 삼패 기생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경시청에서는 여학생 이외에는 절대로 여학생 복장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고시했다. 삼패 기생들이 흔히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대표적인 방법은 여학생과 간호사를 사칭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었지만, 삼패 기생들의 이러한 행태는 서구적인 개화·계몽을 무작정 추종했던 1900년대 일부 조선인들의 심리와 ‘유행으로서의 개화·계몽’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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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2010-11-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자료들이 다 너무 좋네요. 사진들도 참 이쁩니다....^^

비로그인 2011-04-0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복과 간호원복이 조선인들의 심리? 묘하게 연결지으면 이렇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