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자들이 테아트로폰에 귀를 가까이 대자, 아니나 다를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었다. 전화 수화기에서는 오페라가 흘러나왔고, 연극배우의 대사가 또렷하게 들렸다. 테아트로폰이 설치된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연일 붐볐다. 전화 수화기를 통해 오페라와 연극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초기의 전화기는 이처럼 일반적인 ‘통신’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락 기계’의 기능도 수행했다. 라디오가 없던 시절, 전화기는 라디오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극장 공연이 전화기를 통해 송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송출되었다. 또한 최신식 호텔에서는 전화기가 주크박스의 역할도 했다. 전화기에 동전을 넣으면 약 5분 동안 음악이 흘러나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도 테아트로폰으로 드뷔시의 오페라 <펠리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를 듣곤 했다고 한다. 교회의 미사, 선거 연설, 음악, 소설 낭독, 스포츠 경기 보도 등 전화기는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 최첨단 미디어였다.
대문 밖으로 걸어 나온 ‘걸’들의 세상
전화의 등장으로 전화교환수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났다. 전화뿐만 아니라 서구로부터 유입된 각종 기계 문물로 인해 다양한 직업들 또한 등장했다. 근대화의 물결에 편승하여 새롭게 등장한 직업 중에는 특히 여성들의 활동이 중심을 이뤘던 분야가 많았다. 개항 이전까지만 해도 집안일을 돌보며 지냈던 여성들이 이제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고, ‘가사 노동’이 아닌 자신만의 직업을 갖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선택한 직업은 대부분 ‘서비스직’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을 당시에는 ‘신여성’ 혹은 ‘모던 걸’이라 불렀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 ‘신여성’ 혹은 ‘모던 걸’은 부정적 의미가 강했다. 일본에서만 해도 모던 걸은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한 여성을 뜻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퇴폐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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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걸’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플리퍼(輕薄者[flipper])’라는 의미인데 이 ‘플리퍼’라는 것은 짐승 같은 생활[獸的生活]을 좋아하며 여자로서 상식을 갖지 못한 여자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으로 말하면 고전주의를 존중하던 ‘빅토리아 왕’ 시대에도 이미 문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 ‘모던 걸’이라는 것들은 정조를 귀중하게 여기는 이상 아래서 교양을 받을 기회가 없었음으로 인생의 실재가 어떠한 곳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여 항상 구사상을 배척하는 생각에 평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모던 걸이란 어떠한 여자인가”, <중외일보>, 1927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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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많은 남성들은 ‘모던 걸’을 천박하고 경박하며, 교양 없고 정조를 가볍게 생각하는 여자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여성들이 종사했던 직업명에도 별칭을 만들어 불렀는데, 항상 ‘걸(girl)’이라는 말을 붙여 썼다. 다방의 여급은 ‘카페 걸’, 백화점 여직원은 ‘데파트 걸’, 엘리베이터 안내원은 ‘엘리베이터 걸’, 극장에서 표를 파는 창구원은 ‘티켓 걸’, 버스 여차장은 ‘버스 걸’, 여자 전화교환수는 ‘할로 걸’이라 불렸다. 이러한 현상은 식민지 조선이 ‘도시화’, ‘근대화’, ‘산업화’ 됨에 따라 여성 서비스직이 많이 생겨난 결과였는데, 이는 전근대 사회와 비교해보면 매우 희귀하고 새로운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서비스직에 종사했던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신체는 매번 남성들에게 ‘보이고’ ‘만져졌다’. 식민지 조선의 많은 남성들은 거리를 활보하는 모던 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외향적 모습 속에서 육체적 쾌락을 상상하는 등 이중적인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