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여인 - 한일 역사기행
곽경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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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인류의 죄악과 우행(愚行),그리고 불행의 기록이다. - 윈스턴 처칠

 

 개인이든 국가든 지나간 역사를 제대로 알고,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잘못된 전철을 딛고 현재를 개혁과 변화를 이끌 수가 있고 미래의 일까지 예측하고 재단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이것은 역사 학습과 개인적 경험이 토대가 되고 누적되면서 얻은 소중한 지혜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지난 역사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과 분석,통찰력이 균형을 잃게 되면 힘의 역학 관계에서 또 다시 과거 식민 시대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한.일 간의 관계는 굴절된 역사를 중심으로 소개,회자가 되고 있다.흔히 일본은 제국이고 한국은 식민지였다는 이분법이 주류가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사법적 결론이 아직도 나지 않은 엉거주춤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양국 관계의 현재 및 전향적 미래를 위해 유익할 것이 없다는 것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 정부측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식민 통치 및 2차 세계대전 등에 대해 전쟁 미화론이 일본 전국 방방곡곡에 깊게 세뇌 되었다는 것이 가공(加恐)할 만한 위협이 아니겠는가.과거 제국이었던 서방 제국(諸國)들은 식민 국가에 대해 정신적,물질적 위로,배상 등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점에 비한다면 일본측이 한국을 비롯한 중국,동남아 제국에 저질렀던 온갖 만행은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은 실정이다.그것은 아마 일본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무사)들이 지녔던 충의 정신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피해자에게 사죄하고 항복할 바엔 차라리 할복(갓뿌쿠) 자살하는 것이 사무라이들의 정신이고 생존법이었던 것은 아닐런지.

 

 건축사인 곽경 저자는 과거 굴절된 한.일 역사의 원점(源点)을 찾아 나섰다.거의 1주간의 일본 여정을 누비면서 일본이 한.일 과거사를 어떻게 정립해 나갔는가,한국 침략사 및 식민 통치를 위한 만반의 준비 과정은 어느 계층에 의해 형성되었는가,그리고 제국주의가 종언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차여차하면 또 다시 군국주의의 부활을 5분 대기조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일본 정부의 속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꾹 참아야 했다.일본 민족,문화는 루스 베네디트가 쓴 『국화와 칼』와 같이 양면성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된다.겉마음과 속마음 즉 혼네와 다테마에의 불일치성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곽경 저자의 일본 역사 탐방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 묘를 찾아 가는 것을 시작으로 에도시대의 탄생과 막부의 붕괴 그리고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서구문물 도입,제국주의의 발흥,조선 병탄,2차 세계 대전과 일본인들의 귀환(인양) 기념관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 한.일 역사의 굴곡과 비탄을 현장감 있게 들려 주고 있다.마침 이쓰코라는 일본 여인이 저자와 합류하게 되면서 과거 한.일 역사의 시작과 과정,그리고 마침표가 없는 불우한 관계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두 분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고 겉으로는 화평의 분위기가 흐르지만 속마음은 어떠했을까.역사의 가해국과 피해국의 후세가 나누는 대화는 극히 단편적일 뿐이다.저자는 임진왜란,메이지 유신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대외 팽창주의 및 제국주의는 결국 패전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조선 정벌이 메이지 유신 주역 중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에 의해 정한론으로 시작되는가 싶더니 메이지 유신 주역들 마음이 한통속은 아니었던 것 같다.사이고 다카모리는 세이난 전쟁을 일으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하지만 결국 승산이 보이지 않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한편 구한말 조선의 정정(政情)은 규율과 질서가 없었던 부패와 무능이 판치던 시절이었다.세도가들이 득실하고 개화파와 쇄국파들이 갈라지면서 조선,청,일본이 벌였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러.일전쟁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조선을 한입에 꼴깍 삼키고 말았다.조선이 일본에게 속국이 되는 시점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1895년 7월 23일)을 기점으로 삼는다.조선 정벌의 시점이 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기록되고 있지만 실제 일본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고 있는 것은 신공황후가 삼한(신라,백제,고구려)를 정벌했다는 날조극부터 시작된다.중국의 유명한 고사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상기되는 바이다.일본이 왜곡,날조하고 있는 역사는 비단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뿐만이 아닌 셀 수 없이 많다.(고사기,일본서기 등)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인 에도 바쿠후 시대가 들어서게 되면서 300여 년 정도 일본은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지만,메이지 유신 정권이 들어설 무렵,일본은 서양의 대외 개방을 하면서 서구 문물의 적극 도입과 일반인들의 보통 교육 정책도 보편화한다.동시에 번(藩)을 폐하고 현(縣)을 두는 폐번치현 제도를 실시하고,류큐왕국(오키나와)까지 일본으로 강제 편입시킨다.특별하게 인상 깊은 점은 각료 및 군의 파벌이 초슈(야마구치현)와 사쓰마(가고시마) 출신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점이다.그외 히젠(사가현) 및 도사(고치현) 출신도 메이지 유신 탄생과 제국주의 시대 권력과 명예를 위해 결사적으로 나서게 되는데,대표적인 것이 정한론의 기수 사이고 다카모리와 죽마고우였던 오쿠보 도시미치의 내치론이 대립하면서 권력의 무정함을 실감케 했다.또 하나 현 일본 총리는 아베신조다.그의 외증조부격인 오시마 요시마사가 자행한 경복궁 습격,고종 체포,청.일 전쟁 진두지휘를 비롯하여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및 그의 실제(實弟) 사토 에이사쿠(모두 총리 역임),친부 아베 신타로가 아베신조의 정치적 스승이고 정치적 DNA를 승계한 셈이다.아베신조를 제외한 그의 조상들의 본향이 야마구치현 하기(萩)와 나가토(長門)이다.그런 까닭인지 아베신조는 정치적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조상의 본향을 찾아 음덕을 기리는 것 같다.

 

 일본은 종전을 맞이하면서 식민 국가에서 생존권을 보장 받았던 자국민들의 귀환(인양)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하카타 인양 기념관을 비롯하여 유수의 인양 기념관을 눈여겨 보면 속에서 구토가 날 지경이다.식민국가에 대한 모욕은 기본일 뿐만 아니라 누가 전쟁의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식민지에서 떵떵 거리며 살았던 일본인들,그들은 식민 국가인 조선인들을 만주 등으로 강제 이주 시키고(사민 정책이던가?) 그들은 일본 제국에 의해 토지 보상,상업권 등 생존이 확실하게 보장되었던 시절을 잊었던 말인가.일본 정부는 그들이 남루한 옷차림과 거짓꼴로 귀환하던 모습에 대해 일본 본토인의 동정과 연민을 사게 하려던 의도가 다분하다.

 

 곽경 저자와 함께 떠난 한.일 역사 탐방은 일본 제국이 한국에 가한 피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상기케 한다.비단 한.일 관계 뿐만 아닌 지난 중.일 역사,동남아와 일본 역사 속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특히 일본의 역사는 한국에게 전수,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그들의 민족의 기원도 한반도에서 넘어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에게 받은 문화,문물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 가면서 일본화를 철저히 하고 있는 셈이다.이쯤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속내(혼네)를 정확하고 철저하게 인식하고 분석하여 다시는 한.일 간 피의 역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특히 섬나라 근성에 대한 연구,분석도 시간이 되는대로 탐구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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