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청년과 처녀들을 총알받이,노리개로 삼았다.인생을 멋지게 그려나갈 시기에 나라가 외세에 짓밟히고 대동아공영권이 기세를 부리면서 조선의 청년들은 강제 노역,강제 징용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이다.게다가 꿈과 희망,이성을 알아가는 꽃다운 10대 소녀들은 돈벌게 해 준다는 감언에 속으면서 남양군도,만주와 같은 곳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적(性的)만족을 채워 주는 '위안부'생활을 해야만 했다.그들이 타지에서 겪었던 일상은 거의 인간 이하의 취급이었다.해방이 되어 비록 목숨은 부지할지언정 각종 신체적,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나간 과거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후손들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

 

 서수철이라는 남자와 오순덕이라는 여자가 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혼기가 될 무렵 삶의 동반자로서 미래를 언약한 사이인데,그들은 일제 강점기 간난신고와 같은 세월을 버티고 이겨내 사랑을 넘어 영혼을 담은 순정을 엮어 가는 이야기를 접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개만도 못한 일본군의 만행에 치가 절로 떨렸다.서수철과 오순덕은 달이 밝게 떠오른 저녁 무렵 우물가에서 '함께 살자'고 언약을 하면서 삶이 부풀대로 부풀었건만 그들의 언약은 누구의 해코지이고 장난인지 훗날 운명을 갈라 놓고 말았다.

 

 서수철은 대동아공영권 차원에서 일본 만주군에 합류하여 싸우다 총탄에 큰 부상을 입었건만 치료조차 해 주지 않아 상처 부위가 세균이 번지면서 그는 천신만고 끝에 남해안 소록도(小鹿島)에 몸을 내려 놓은 것이다.한편 오순덕은 동네 이장이 돈 버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꾐에 빠져 만주로 가게 되는데,그곳은 일본 군인들의 성적 만족을 채워 주는 곳이었던 것이다.소록도는 1916년 일본 제국에 의해 자혜병원으로 설립이 되었지만 환자의 치료,재활,갱생의 목적이 아닌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노역과 생체 실험의 무대였던 곳이었다.만주 위안부는 조선 처녀들이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되었는데,자칫 매독과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곧장 수술(인체 실험)로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소재원 작가의 작품을 《소원》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사회적 이슈,인간성 회복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상에 오래 남게 되었다.이번 작품은 일제 강점기 두 남녀 간의 영혼을 울리는 '순정'을 그린 글로서 나라 잃은 슬픔과 비극,처참함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그린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을 함께 읽으면 소록도에서의 일본 제국이 한센병(문둥병)에 걸린 환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소상하게 인식할 것이다.일본 제국의 인간만도 못한 만행 앞에 오늘따라 절로 치가 떨린다.1900년대 당시는 위생환경,의료수준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세균이 침투하여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불가마에서 구운 벽돌을 나르게 하고,젊은 남자의 성기를 거세하는 단종대(斷種臺),생체 실험,화장(火葬) 목적의 수술실,환자의 자녀들이 1달에 한 번 거리를 두고 만난다는수탄장(愁嘆場)이 역사의 비극이고 소록도에 그대로 남아 있다.일본군의 성적 해소 장소인 위안소는 말그대로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하루 수십 명도 넘는 일본군을 맞이해야 하니 몸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삶은 피폐되어 갔던 것이다.

 

 서수철 할아버지는 소록도에서 오순덕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각각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두 분의 스토리는 흘러간다.비록 이것은 두 분의 비극이 아니다.당시 일본군,일본군 앞잡이(조선인)들에 의해 인권과 생명이 유린당했다.두 분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는 비주권국가로 있다 보니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한 채 긴긴 세월을 한(恨)을 보듬고 살아야만 했다.소록도에서의 노인,아낙,강학순의 따뜻하고 넉넉한 정과 위안소에서 만난 하춘희 처녀와 같은 동료애가 있었기에 두 분은 비통함과 절망을 딛고 꿋꿋하게 삶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한다.게다가 위안소에서 치외법권자로 나섰던 적십자사 간호사의 직업정신과 인류애가 일본 제국의 만행과 대조되었다.두 분의 지난 시절 얘기를 부부기자인 한기준과 유소영의 인터뷰에 따라 소록도,나눔의 집을 교차하면서 당시의 죽음을 넘나드는 처참하고 기구했던 삶을 잘 조명했다.두 기자의 안내에 따라 두 분은 긴 세월 생사도 모르는 체 지내다 극적으로 해후하게 되었다.풋풋하고 젊었던 시절은 온데 간데 없고 하얀 백발로 변한 두 분의 만남은 또 하나의 한국 역사의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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