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문명 - 쌀에서 찾은 인류 문명의 발자취
피에르 구루 지음, 김길훈.김건 옮김 / 푸른길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있어 주식(主食)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신(神)이 빚은 창조물이라고 생각을 한다.먹고 자고 배설하는 행위는 모든 인간이 치러내는 기본적인 본능 행위인 만큼 없어서는 안될 식량이 아닐 수가 없다.쌀은 전인류가 섭취하고 있지만 북남미 및 유럽,중동과 같은 지역에서는 쌀보다는 밀을 이용한 음식이 차지하고,쌀은 아시아 몬순(계절풍)지역에서 90%가 생산되고 있다.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산 쌀이 수입되기도 하면서 한국 농촌계는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아 돈이 되는 대체작물을 재배하기도 하는 것이 실정이다.

 

 인류는 수렵채집생활을 벗어나고 유목민족은 정주생활을 시작하면서 벼농사의 젖줄인 강을 끼고 벼농사를 짓게 되었던 것이다.기록에 의하면 벼농사는 중국 중국 길림성 창링(長嶺) 북부 지역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부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창링에서 비롯된 벼농사가 차츰 기후가 온화하고 넓은 강이 있는 양쯔강(揚子江 또는 長江) 유역에서 벼농사와 함께 중국 문화를 형성하였다고 한다.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의 경우는 벼농사보다는 기장과 밀을 주식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문명을 형성하였다.벼농사는 수경재배로서 일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랐기에 그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나는 보리타작이 끝나는 5월 중순이 되면 논의 흙을 쟁기로 뒤짚고 퇴비를 준 다음 논에 물을 갖다 댄다.그리고 생산할 만큼의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 할 정도의 어린 벼가 생장하면 밤에 횟불을 들고 동네 일꾼들이 모를 찌게 된다.왜냐하면 낮에 모를 찌게 되면 햇볕에 의해 말라 버리기 때문이다.다음날 아침 나는 부모님의 지시에 따라 찐 모를 일꾼들이 모심기에 편리하도록 적당하게 여기 저기 모를 던져 놓으면 양쪽 끝에서 못줄잡이들이 줄을 일직선으로 잡으면 일꾼들을 고개를 숙여 손놀림 빠르게 모를 심어 나간다.모심기가 끝나고 몇 일이 지나면 물에 둥둥 뜬 모를 다시 심기도 하고,김매기도 한다.벼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벼해충이 날아 들어 볏잎을 갉아 먹기에 벼멸구,도열병 등을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리기도 한다.당연히 아버지가 분무기가 일일이 농약을 분사하고 나는 뒤에서 줄을 잡았다 당겼다 했다.그것으로 벼농사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8월 중순 정도가 되면 벼가 성큼 자라 벼사이로 피(잡초)가 벼의 생장을 방해하기에 피사리도 해야 한다.9월이 지나고 10월 중순 경이 되면 내가 살던 마을 주변의 들판은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룬다.벼를 베고 타작을 한 후 볏잎은 초가 및 새끼꼬기,멍석 등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벼를 벼가마에 담은 후 정미소에 가서 도정을 하게 되면 벼농사는 일단 끝나는 셈이다.그리고 다시 11월이 되면 논의 흙을 다시 정지작업하여 눈이 오기 전에 보리를 심는다.이러한 쌀,보리 농사의 과정이 농부들에게는 생명줄이었기에 매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도 싫증은 커녕 오히려 농사의 선수가 될 정도로 신기하기만 했다.

 

 요근래에는 도시화,산업화가 진전되어 농촌의 벼농사,보리농사는 피폐되어 가고 있다.일부 농사를 짓는 경우는 도지인이라고 하여 마을을 지키고 있는 몇 몇 분들이 그나마 벼농사를 근근히 이어가고 있고,대부분은 대체작물(환금성)을 재배하고 있는 실정이다.도지인들에게 정부에서 농사자금을 보조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농촌의 논과 밭이 황폐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반면 뜻있는 분들이 죽어 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농촌을 살리는 대안 경제'가 화제가 되고 있고,귀농경영자들에게 의해 경제적 가치 및 농토를 살리려고 하는 의지가 바람직스럽기만 하다.문제는 이렇게 죽어 가는 농촌을 살리려는 대안 경제안 및 귀농경영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귀농지원책과 격려,홍보를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쌀과 문명을 쓴 피에르 구루저자 벼농사를 주로 짓고 있는 아시아권,아프리카권의 각국의 벼농사 실태와 벼농사와 관련한 문명에 대해 담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좀 아쉬운 점은 한국에 대한 소개는 고작 몇 줄 뿐인 것이다.토지와 식량의 근원인 쌀은 자연스럽게 해당국의 종교의식과 언어에 영향을 끼치고,물 관리(수리시설,관계시설,수경법 등)의 어려움을 자연환경적,정치적 지도자의 인식 등과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으며,벼농사와 같은 농법은 기계화 되기 이전에는 대부분 마을공동체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공동의식이 강했다는 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벼농사의 관건은 수리시설을 어떻게 발전시켜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달렸다.강을 낀 평야의 벼농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천수답,비탈 논과 같은 경우에는 물을 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고,비가 내려줘야 벼농사가 생각대로 되어 작황이 그나마괜찮았던 것으로 생각한다.불가항력적인 면에서는 전재지변,태풍,홍수와 같은 경우로서 일시에 벼들이 물에 젖고 휩쓸려 내려 가기에 농부들에게 있어 벼농사는 '화롯가에 놓인 엿'과 같은 형국이었으리라 짐작된다.적도 근처에 있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경우에는 기온이 높고 수경 벼농사가 발달하여 3모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또한 근자에는 벼의 품종 개선과 시장 조직에 의해 상업메커니즘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논이 있는 평야는 인간에게 노동의 장소이다.인간은 그곳에 물을 대고,배수로를 만들고,씨를 뿌리고 그곳에 살며 생계를 유지한다.평평한 공간은 아주 훌륭한 인간의 공간이 된다." -P309

 

  산업화와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벼농사는 많이 쇠락되었다.사람의 손과 발보다는 파종기,이앙기,콤바인,탈곡기 등이 벼농사를 지어 주고 있다.1만 년 전부터 시작된 농경사회의 시작이 비단 벼농사만은 아닐 것인데,한국인의 입장에서 주식으로 삼는 벼는 생명의 보약인 만큼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예전 농부들이 자신의 논에 물을 대려 새벽잠을 마다 하지 않고 보또랑으로 나가 막혔던 논의 물을 자신의 논으로 물을 대기 위해 이웃과 삿대질을 하던 풍경,그리고 자잘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벼를 둘러싼 다양한 작업들이 농부들에게는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천직이었을 것이다.인구증가와 더불어 벼농사는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식단이 서구화되면서 쌀보다는 밀가루로 만든 제품들이 세인들의 입맛을 돋구게 하면서 건강마저 해치게 할 우려가 있다.벼농사와 관련하여 아시아 및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등)의 벼농사의 작법 및 수리시설,문명 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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