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로트레크 -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시공아트 61
버나드 덴버 지음, 이윤희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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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대중문화 방면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문화수준의 척도가 국가의 경쟁력이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는 것이다.음악,미술,춤꾼과 같은 예술의 삶을 살다간 예인들은 저마다 '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예술의 길이 예나 지금이나 어디 쉬운 일인가.엄한 스승을 만나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의 매서운 교육을 받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연후에 빛나는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또 하나 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사후에 그 가치와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아 뒤늦게 명성을 떨치는 인물도 있다.

 

 동양의 미술이 먹과 벼루,붓의 농담에 있다면 서양의 미술은 단연 다채로운 유화에 있다고 생각한다.종교적 색채를 띤 그림부터 인물,정물,풍경 등이 있으며,사조로는 인상파,입체파,신조형주의,다다이즘,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그중에 19세기 프랑스 알비에서 태어나 37세에 요절(夭折)한 툴루즈로트레크(Toulouse-Lautrec)화가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백작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다리 골절상을 입으면서 신체부자유를 겪게 되고 18세가 되면서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보통 서양인이라면 장신을 연상하게 되는데 툴루즈로트레크는 단신에다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남부럽지 않은 귀족가문에다 성격도 꽤 활발한 편이었던 그는 기본적인 미술교육은 샤를 삼촌에게,전문적인 내용은 프랭스토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미술 인생은 보나의 영향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소년시절 그는 스케치북에 주로 말과 관련한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되었는데 샤를 삼촌의 영향이 컸다.그가 시작한 그림은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풍경화,인물화 등을 빛과 대기의 감각을 살린 인상주의적 색채가 짙었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게 된 인상파의 사조는 모네,반 고흐 등의 그림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났던 것이다.인상파는 사실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탄생되었던 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또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철학은 문학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문학가가 에밀 졸라이다.

 

 나아가 그는 회화와 드로잉의 토대 위에 석판화와 포스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만능형의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활발한 성격이다보니 캬바레와 사창가 출입이 잦았던 만큼 물랭가(街)의 사창가 및 창녀,무용수,여점원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많이 그렸다.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관심 분야였던 것으로 보여진다.그 가운데 드가에게서 기술적,도상적 영감을 지속적으로 얻었다고 한다.로트레크는 창녀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창녀들의 벌거벗은 육체.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마치 수도사가 수도원에 있는 듯 안식을 찾았다고 한다.화가로서의 그의 취향은 매우 독특하기만 할 뿐이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레크는 선천성 유전병으로 신체적 부자유를 겪어야만 했다.그러나 그는 이러한 문제는 괘념치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을 다양하게 그려 나갔다.다양한 화가들과의 교류,인상주의의 그림을 묘사하기 위해 캬바레,사창가,카페 등지를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 세계를 좌절하지 않고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흠이 있다면 그는 알코올 중독자일 정도로 늘 술을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그게 화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운명을 달리했다.로트레크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면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혼란까지도 간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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