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68년에 발표된 박경리작가의 파시(波市)는 한국전쟁기 남쪽지방인 부산과 통영 사이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이 시기는 남과 북이 이념대립으로 벌어진 전쟁으로서 무고한 양민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전쟁을 피해 북쪽에서 남으로 남으로 흘러 들어온 피난민들은 정처없는 생활을 하루 하루 버텨내야 했던 암울하고 처연한 시기였다.그렇게 암울한 시기의 서민들의 일상을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 내고 있다.토속적인 부산.통영의 사투리와 서민들의 일상과 생각,가치관 등도 정겨움을 떠나 매우 현실적인 면이 다분했다.

 

 공간적 배경은 부산과 통영으로서 바다내음이 물씬 풍기고 해상의 섬들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은데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대적 분위기에 걸맞게 밝은 분위기는 아니다.다만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위한 생계문제,자식들의 혼사문제,연민과 동정,삶의 가치관 등이 잔잔하고 투박하고 현실적이기만 하다.그 당시는 한국전쟁의 기화를 틈타 일본은 군수산업 및 생필품 등이 활개를 친다.이를 놓칠세라 생필품으로 한 몫을 하려는 부류들의 발빠른 움직임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야기의 발단은 북에서 피난 내려 온 수옥 아가씨를 조만섭과 서영래가 통영으로 데려 오면서 시작된다.숫기가 없고 조신하는 수옥이는 조만섭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조씨의 부인 서울댁이 일본 밀수품 관계로 서영래씨댁에 심부름을 보내면서 사단이 나고 만다.서영래는 나이가 지긋함에도 불구하고 뒤를 이를 자식 욕심에 그만 수옥을 겁탈하고 임신케 한다.수옥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슬픔에 잠기자 이를 학수가 발견하면서 서영래씨로부터 떨어지게 하려 수옥은 학수를 따라 개섬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평온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이런 사실이 뒤늦게 서영래씨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서영래는 수옥을 찾으러 개섬까지 오게 되지만 학수는 두 번 다시 수옥처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죽지 않을 만큼 패주고 모욕을 준다.그리고 학수는 강제징집으로 전선에 뛰어 들게 되고 수옥은 학수의 어머니에게 맡겨진다.학수는 수옥을 잘 보살펴 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전선으로 가게 된다.

 

 한 편 조만섭의 딸 명화,박의사의 아들 응주,윤씨의 딸 죽희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의 생각이 완고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특히 박의사는 나라가 전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해 어떻게든 아들 응주와 죽희가 혼인을 맺어 해외로 나가기를 바란다.이 대목에서 지식있고 갖은 자들은 자신의 사리와 명예에만 급급하고 나라의 안위는 뒷전으로 생각하는 걸 보니 위화감과 사회 불평등감마저 든다.그러는 와중에서도 응주는 명화와의 미래를 꿈꾸는데 명화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버리고 만다.응주의 아버지는 어떠한 마음을 갖었든 응주는 대한의 건아로서 국토방위에 나서게 된다.그외 조만섭의 처남 문성재는 내연녀를 버리고 통영까지 내려왔지만 갈팡질팡 마음을 못잡는다.선애라는 여자가 그를 찾아 왔지만 말만 돈많이 벌어 갖다 바치겠다고 하니 마음 속은 학수 동생 학자를 탐하기도 하면서 건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바다는 다 같은 바다인데 내가 선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여기는 아우성이 있고 통영에는 흐느낌이 있다.어느 게 더 슬픈가? 시골 처녀가 남몰래 우는 것과,밤길을 누비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술 취한 창부,통영의 등댓불을 별빛같이 깜박이는데 저 외국 화물선의 불빛은 괴물이 쏘는 눈빛같이 황황하다.상아같이 미끈한 백인과 흉측스런 검둥이,슬픈 검둥이,슬픔은 진실인데 진실은 추악한 것이란 말인가.' - 본문 -

 

 공간적인 느낌을 부산과 통영을 대비적으로 잘 견주어 내고 있다.전쟁의 광기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박의사,응주,학수를 통해 전쟁의 상흔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박경리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통영과 인근 부산 사이의 바다 내음,사람 내음,기름 내음이 살아 있고 부산 자갈치 시장 등 부두가에는 지게꾼,부두노동자,떡장수,국수장수,선원들을 비롯하여 소음과 진구렁창 등이 하나같이 연상되어 온다.풍어기에 어장에서 형성되는 파시는 어부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파시가 있기에 주변에는 음식점,다방,여관,선구상(船具商)들도 즐비할 것이다.무명옷을 입은 당시 서민들의 수수한 모습에 비로드 치마,양단 등을 색시에게 선물로 해 주겠다는 촌부 서영래,문성재의 얘기를 들으면서 당시는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었는가 싶다.글 속에는 독특한 관용어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어 삶의 지혜를 안겨주고 있으며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어 장면을 연상하는 재미도 있다.특히 구수하고 투박한 토영 사투리를 가감없이 싣고 있어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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