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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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타 뮐러의 이번 글은 동유럽이 붕괴되기 전 공산체제 속에서 민중들이 독재정부와 당에 의해 인간 이하의 수모와 탄압을 받던 시절을 일기를 써내려 가듯 담담한 회상과 어조로 가감없이 들려 주고 있다.동유럽이 무너지면서 이 글의 공간적 배경인 루마니아의 장기 독재자 차우세스크 부부의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던 장면을 TV로 본 적이 엊그제 같은데,인간의 권력이란 참으로 무상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권력의 탐욕의 뒷 안길은 늘 쓸쓸하고 싸늘하게 끝난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게 된다.

 

이 글을 읽어 가면서 느끼는 것은 민중 개개인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당 간부에 의해 감시가 되고 꼬투리가 될 만한 것들은 철저한 취조와 단속이 행해졌다는 살벌한 분위기가 전개된다.공간적 배경은 다양하지만 봉제공장,철사 공장 등의 노동자가 많은 곳이 위주가 되며,이 글에 나오는 <철사공장>은 작가가 직접 체험을 했던 곳으로 인간의 일상과 노동 환경,조건이 매우 열악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지켜 보고 겪었던 일을 파헤치는 르포르타 형식을 띠고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낀다.

 

이 글이 비록 장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적인 문장들이 많다.그것은 직접 대놓고 직설법으로 말하기 보다는 완곡하면서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대의 아픔과 고통,상처를 더욱 실감나게 나타내려는 의도가 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또한 작가는 독일계 소수민족 출신으로 루마니아측에서 보면 이방인이어 더욱 핍박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이제 이념과 사상은 무너지고 자본주의에 입각하여 자유물결이 동유럽에도 만연되어 있지만 당시의 상황은 인간의 행동이 감시와 탄압으로 마치 도살장에 끌려 가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사상 감시를 받은 한 여자가 여재단사에게 가져 온 노트의 겉표지에는 작업반 노트라고,속표지에는 생체무게와 도살무게라고 쓰여 있었다. - 본 문 -

 

호위호식하는 공산당 지도자 및 간부들을 제외한 대중들의 삶은 처연하기 짝이 없고 루마니아의 전체적인 공기(公氣)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작가가 형용하듯 길모퉁이에서는 태양은 풀어해쳐진 셔츠처럼 펄럭이고 아침 공기는 벤진 냄새,먼지 냄새,사람들의 신발 냄새 그리고 빵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허기진 사람들의 뱃 속에서는 배고픔의 냄새가 날 정도라고 했다.북한의 주민들의 실생활도 역시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건물의 계단부에는 창문이 있지만 빛이 들지 않고 전기도 없다.승강기는 위층들 사이에서 대롱대롱 걸려 있다,라이터가 깜박거리지만 불빛을 비추지는 못한다는 글에서 당시의 루마니아가 계획경제하에서 각종 부족한 생필품,전력난,민중들의 고단한 삶은 차우세스쿠를 비롯한 정치권력자와 공포를 작가의 또랑또랑한 시선으로 그 시대를 분명한 어조,선명한 색깔,콧 속으로 스며드는 퀴퀴한 냄새의 흔적을 독자들에게 투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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