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탐정 정약용 2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명탐정 2부에서는 법과 권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조선의 시대적 상황으로 봐서 임금은 법 위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보니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법이 되고 상하관계 및 신분제도(적서차별 및 남존여비)가 엄격하여 감히 윗사람의 비리나 잘못을 밖으로 누설하고 고변하기가 힘들었음을 알 수가 있다.다만 너무 억울할때는 신문고 제도와 비슷한 격쟁을 통하여 법의 부당함을 호소할 수가 있었던 거같다.

 당시엔 과학 수사라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문과 조사,관례에 따른 판부가 대부분이어 명쾌한 판결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전라도 만경 강도진 옥사사건을 보더라도 임산부 이씨가 죽임을 당해 강도진을 고소하는 사건이 터지자 주변 인물들의 탐문을 방증을 통해 임산부 이씨가 평소에 지병이 있었고 사건이 발생하던 날,이씨의 친척들이 뜯어 말겼기에 우발적인 죽음으로 본다며 강도진은 사형을 면하고 장100대에 유배로 끝이 나는데,임산부를 발로 차고 태아까지 죽게 만든 것은 인륜적인 면에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결국 힘없고 죽은 자만이 억울할 뿐이다.

 남녀간의 사랑,권력을 이용한 농간등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고 봉보부인 성씨의 양아들이며 노예의 아들이었던 이정행은 봉보부인 덕에 출세를 하지만 그의 성향과 성격은 권력을 이용하여 색을 밝히고 그것도 모자라 당시의 권력 구도마저 바꾸려 했던 야심찬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가 노론 벽파의 일원으로 남인 세력들을 제거하면서 정조의 뒤를 넘보려 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또한 이정행은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총애했던 주변의 여인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는데 심리적 관점으로 보면 사이코패스를 갖은 성도착증 환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결국 여리의 칼에 맞아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미래에 대한  환상을 여실히 깨지고 만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정조 말년의 정국은 누군가(심인?)에 의해 정조는 탕약에 들어간 독약에 의해 운명을 달리하면서 세자 순조는 즉위하자 마자 정순대비에 의해 신유 사옥이 불거지고 천주교인들은 대대적인 숙청을 당하게 된다.정약용 또한 서학과 관련하여 그리 자유로울수는 없지만 다시는 서학과 발을 끊겠다는 서약과 형조 참의로서 정순대비를 살려준 댓가로 유배형으로(경상도 장기현) 끝나겠지 했는데 천주교 탄압이 폭풍으로 번지자 황사영이 청나라에 조선의 천주교 세력확대 도움을 요청하는 문건(황사영 백사사건)이 터지면서 정약용 친인척 및 남인 세력들은 피비린내나는 정국이 이어지고 정약용,정약전 형제는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정약용은 수많은 저서를 남기게 되는데 참된 정치를 꿈꾸며 목민심서,경세유표등의 수많은 실학관련 저서를 남기게 된다.

 홍일점으로 등장한 여리는 이제 어엿한 처녀가 되고 정약용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서로의 미래를 위해 좋았던 기억으로만 남긴채 헤어지게 된다.남장으로 분한 여리는 오작인으로 정약용과 함께 바늘과 실처럼 늘 붙어 다니며 사랑과 우의를 돈독히 하는데 만남과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고 비록 그들이 부부로 살아가지는 못했어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하는 정신은 인상 깊게 다가온다.

 또한 국정은 정치,철학,경륜등이 조화를 이룬 인물이 탄생해야 하는데 당시의 왕조의 세습 정치로 인해 순조 및 고종등이 수렴청정을 하면서 군주 주변세력들이 너무 설쳐 대고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성리학의 유교 이념으로 인해 조선은 내내 형극의 길을 걷게 되지 않았나 판단이 든다.또한 흉년과 기근등으로 도탄에 빠진 민심을 제대로 달래지 못해 결국 19세기 후반엔 홍경래의 난,동학 혁명등 내란의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서학에 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던 정조,정약용의 명쾌하고 냉철한 판결등이 돋보였던 18세기말의 이야기는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권력층들도 새기고 실천으로 옮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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